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83
#2082.
격돌하다 (2)
“…….”
검은색으로 변해 버린 화면.
송출되던 방송이 끊긴 지 한참이나 됐지만, 누구도 그 화면을 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손을 꼭 쥐고…….
황망함과 간절함, 서글픔과 안타까움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럴 수밖에.
화면 안으로 보이는 저 처절하디처절한 싸움의 한 켠에 서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그들의 가족이니까.
강유환의 덜덜 떨리는 손이 제 얼굴을 덮는다.
어쩌면 휘청이는 몸을 다잡기 위해서, 어쩌면 붉어진 눈을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보이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망할 녀석…….’
강진호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걸 그라고 왜 몰랐겠는가.
그는 강진호의 아버지다.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강진호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물을 때마다 어물쩍거리며 넘어가는 모습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저 믿어주었을 뿐이다.
강진호가 말하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잘못된 일을 할 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자신의 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목도한 순간,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왜 좀 더 일찍 묻지 못했을까.
왜 배려라는 이름의 무관심으로 자신의 아들을 저리 방치했을까. 그가 조금 더 일찍 묻고,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강진호가 지고 있는 짐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몸을 떨리게 만드는 광경도,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가공할 힘도 강유환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서로 싸우는 이들이 흘리는 피와, 그 승부의 결과로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뿐이었다.
어깨 너머로 떨림이 전해진다.
그제야 강유환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떨림이 자신의 어깨가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보.”
강유환이 손을 뻗어 백현정의 어깨를 감쌌다.
그가 받은 충격 같은 건 전혀 대수롭지 않은 거라 느껴질 정도로 백현정은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양손을 얼굴 앞에 모은 채 기도하듯 떨고 있는 백현정을 보고 있으니, 우선 그부터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을 거요.”
“여보…… 진호가…….”
그 목소리는 차라리 조금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강유환은 그 목소리가 담담해 보이는 이유가 백현정이 침착을 유지하려 애쓰기 때문이 아님을 안다. 충격이 너무 크다 보니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것이다.
“괜찮을 거야. 우리 자식이잖아.”
“진호가…….”
그 말 뒤에 얼마나 많은 말이 숨어 있을까.
자식이 평범한 전쟁터에만 나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게 부모다. 그런데 그 자식이 저런 곳에서 싸워야 하는데 백현정의 속은 오죽하겠는가.
“차라리 말이라도…… 말이라도 미리 좀 해주지. 차라리…….”
강유환이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말할 수가 없었겠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강유환이 저런 입장이었더라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가.
목숨을 걸고 테러리스트들과 싸우러 간다?
하지만 무사히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할 수 없다.
사람인 이상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이해해 줍시다. 진호도 마음 편히 간 자리는 아니잖소.”
강진호의 속도 썩어 들어갔을 것이다.
“가장 힘든 건 우리가 아니지. 우리가 아니라 진호지. 그러니까…… 남들은 다 진호를 탓해도 우리는 진호를 탓하면 안 되지. 그게 부모잖아.”
“하지만…….”
백현정의 손이 안쓰러울 정도로 떨린다.
강유환이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심한 놈아.’
자식이라기에는 너무 커버린 강진호다. 그가 보듬기에 버거울 정도로. 그러니 괜히 참견하는 것보다는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저곳에 서 있는 강진호를 보니, 자신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 것 같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다.
저만한 짐을 홀로 진다는 게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가 조금만 강진호에게 더 다가갔다면, 그래서 그의 짐을 나눠 들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보, 우리 진호 괜찮겠죠? 우리…….”
“괜찮을 거요.”
강유환이 백현정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잖소. 우리 진호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아들이니까.”
“…….”
백현정이 말없이 고개를 숙욨다.
사람이 죽는 영화조차 잘 보지 못하는 백현정이다. 그런 사람이 화면으로 보이는 저 처절한 싸움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자식이 서 있는 전장.
그곳에서 눈을 뗄 수는 없다. 그녀는 어머니니까.
화면이 검에 물들고, 더는 그의 자식이 화면에 나오지 않고서야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겨우겨우 버텨온 것이 일거에 무너지는 것처럼.
그 순간, 지금껏 입을 닫고 있던 강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은영아.”
강은영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할 말은 너무 많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는 듯. 하지만 결국은 참아낼 수 없었는지, 격한 목소리가 맹렬하게 터져 나왔다.
“미친놈이!”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지가 뭐라고 저런 데 가서 저러고 있는데! 왜!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은영아!”
“미쳤어. 안 미치고서야 저게 말이나 돼? 저러다 죽으면? 누가 잘했다고 박수라도 쳐준대? 지가 뭔데 저러고 있냐고! 왜!”
그건 고함이라기보다는 비명이었다.
새빨개진 눈으로 악을 써 대는 강은영을 차마 볼 수 없던 강유환이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진호도…….”
강유환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생각이 있었겠지. 자길 위해서 간 게 아니잖느냐.”
“그러니까 더 미친놈이잖아! 자기가 왜 가는데, 자기가! 경찰은 놀아? 군대는 폼으로 있어? 왜 그걸 지가 해결하겠다고 난리냐고!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해!”
분을 참지 못한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안타까움과 원망, 그리고 화가 뒤범벅이 된 얼굴을 한 강은영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항상 저런 식이야, 항상!”
“은영아…….”
“미친 새끼.”
저기에 서 있는 강진호에게 화가 난다.
왜 하필 그가 저곳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참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수많은 커뮤니티와 SNS에서 올라오고 있는 저들에 대한 비난이었다.
공포에 질려 악을 쓰듯 욕을 해 대는 이들, 강진호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괴물이니 악마니 독에 받친 막말을 해 대는 이들.
그들이 강진호를 알겠는가.
강은영은 안다, 강진호가 왜 저곳에 서 있는지. 저 미련한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는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저런 곳에 서 있다는 것은 보나마나 자기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내막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조롱하고 욕하고 화낼 뿐이다.
그리고…….
강진호는 그런 이들을 위해 저곳에서 싸우고 있다.
그 사실이 강은영을 참을 수 없게 했다.
“이건 또 왜 안 나와!”
검게 물들어 버린 화면을 보며 강은영이 고함을 쳤다.
눈으로 보면 속이 문드러질 것 같지만, 막상 보지 못하니 또 속이 터질 것 같다.
“이…….”
결국 강은영은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눈앞에 있으면 물어뜯어서라도 말렸을 것이다. 한마디 말이라도 미리 해주었다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서라도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핵무기? 테러리스트?
그딴 걸 왜 그녀가 신경 써야 하는가.
그런 걸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엮일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녀의 오빠는 멍청하게 저곳에 서 있는가.
자기가 뭐라고.
가장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가족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 화면을 보며 피상적인 감상이나 늘어놓는 사람들과 달리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그녀를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쁜 새끼! 멍청한 새끼! 미친…….”
강은영의 입술이 덜덜 떨린다.
“미친…….”
“그만해라, 은영아.”
강유환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아빠…….”
“그래.”
강유환이 손을 뻗어 강은영을 끌어안아 주었다.
이 순간만큼은 강유환도 강진호에 대한 원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한마디라도…….
“어쩌면 우리 잘못일지도 모른다.”
“…….”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진호도 우리가 먼저 물어봐 주길 바랐을 수도 모르지. 제 입으로 먼저 말할 수는 없는 이야기니까.”
강은영의 어깨가 떨렸다.
“내 잘못이다. 내가 먼저 물었어야 하는 건데. 진호가 평소 같지 않다고 느꼈을 때, 강제로라도 캐물었어야 했는데.”
강유환이 눈을 감았다.
그건 아들에 대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지금 그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느낌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완벽해 보이는 이도 다들 저마다의 아픔과 약점을 감추고 산다.
그의 아들이라고 다를 리가 있겠는가.
더 큰 것을 감당하는 이일수록 겉으로는 대범한 척해야 한다. 그 속이 어떻게 썩어가더라도.
그걸 알아주고 보듬어줄 이들이 가족이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언제부턴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물밀 듯 밀려오는 강유환이었다.
“……돌아오겠죠?”
아마.
강은영이 진짜 하려던 말은 ‘살아 돌아오겠죠?’였을 것이다.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뿐.
“당연하지.”
“…….”
“항상 하루 이틀 걸린다고 하고 멀쩡하게 돌아오던 녀석이잖으냐. 이번에도 그럴 거다, 이번에도.”
“……오면 내가 죽여 버릴 거야.”
강유환이 말없이 강은영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 안 말리마.”
그렇게라도 떨고 있는 강은영과 백현정을 달래려 하던 그때.
딩동.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유환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누가 찾아오더라도 만나고 싶지 않다. 지금 그는 태연한 일상을 나눌 때가 아니니까. 오로지 강진호에 대한 걱정만으로 채우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하지만 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적으로 울렸다. 반드시 무언가를 전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처럼 집요하게.
강유환이 눈을 일그러뜨렸다.
침묵과 무시로는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 강유환이 강은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인터폰으로 향했다. 그들의 가족만으로 온전히 채워져야 할 시간을 다시 보장받기 위해서.
“누구세요?”
조금의 짜증이 그의 목소리에 묻어난다.
하지만 인터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강유환의 얼굴에서 짜증이 사라졌다.
“누, 누구시라고요?”
얼이 빠진 듯한 강유환이 작은 인터폰 화면으로 보이는 사람의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