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35
#234.
한가하다 (4)
화르르륵.
강진호는 화덕 안에서 피어오르는 불을 보며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 강진호의 좌우로는 박유민과 주영기가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얼굴로 함께하고 있고, 그 앞에는 커다란 빵모자와 앞치마를 두른 조규민이 화덕 앞에 서서 비장한 얼굴로 말을 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타이밍이!”
“……저기요. 잠깐만요, 조 실장님.”
주영기가 이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했다.
“분명 처음에 피자를 만들기로 한 이유에 음식이라고는 컵라면이나 끓여 처먹을 줄 아는 누군가라도 배우기만 하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피자이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그랬죠.”
그 누군가라는 부분에서 강진호를 힐끔 바라본 주영기가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왜 화덕 피자입니까! 이건 요리 수준이잖아요. 강진호가 요리를 만들어서 판다는 겁니까?”
“어쩌다 보니…….”
“그리고 저 매장에 적혀 있는 ‘한국 정통 화덕 피자’는 대체 어느 나라 말이에요? 이탈리아 정통 화덕 피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이탈리아에서 배워 온 건 아니니까요. 사람은 정직해야죠.”
“차라리 망하라고 굿을 하지!”
주영기의 절규에 조규민이 슬쩍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사태가 이리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말 나름 번듯한 피자집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황정후와 의견을 조율하고 보고서가 까이는 둥 온갖 일을 겪고 나니 상황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적당한 프렌차이즈를 맡겨서는 프렌차이즈 홍보부의 영업 능력과 브랜드의 인지도로 성패가 갈린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프렌차이즈를 덜어내고 적당한, 말 그대로 스탠더드한 개인 피자집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 목표의 결과물이 심히 괴상한 것이 문제였다.
“피, 피자는 역시 화덕 피자죠!”
“그건 기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구요. 자영업을 얕보시지 말란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화덕 피자 기술을 배워 오지 않았겠습니까! 이탈리아 정통 피자 가게에서 돈을 주고 삼 일이나 할애해 수련을 했습니다.”
“……그럼 이탈리아 정통 피자라고 할 것이지!”
“그건 좀 찔리니까요.”
주영기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주방에서 고개를 빼 밖을 바라보니, 뭔가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예전 중딩 시절에 가출해서 서울 올라왔을 때 와본 피자집 같은 느낌이네.’
조규민의 취향이 물씬 들어간 피자집은 올드하고 펑키하고 트렌디함이 모두 담겨 있는 잡탕찌개 같았다. 테이블은 넓고 큰 반면에 의자는 뭔가 카페에나 있어야 할 것 같은 고풍스러운 스타일인데다가 인테리어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서부극에 나오는 펍 같은 느낌이 든다.
‘이건 망했어.’
주영기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 가게에서 이익을 낸다면, 그건 장사의 신이거나 신이 돕는 가게가 분명하다.
주영기가 고개를 돌려 조규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니, 이 사람 능력치가 이렇지가 않은데…….’
지금까지 보고 감탄해 온 조규민의 능력치가 무색할 정도였다. 어쩌다가 이런 끔찍스러운 혼종이 탄생했단 말인가.
가끔 보면 본인의 일에서는 감탄스러운 능력을 보이는데, 그 외의 일에서는 허당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조규민도 그런 타입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주영기였다.
“입지는 참 좋은데…….”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박유민이 중얼거렸다.
“왜, 왜 다들 이렇게 부정적이세요! 이 정도면 깔끔하고 좋구만! 대박 날 겁니다.”
“깔끔?”
“대박?”
주영기와 박유민의 연타에 조규민이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아니, 저 둘이 언제 저리 케미가 터졌지?’
주영기와 박유민이 언제 저리 친해져서 저리 조합 좋은 콤보를 때린단 말인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그때, 강진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예?”
“일단 피자 만드는 법부터 보여주세요.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지요.”
“아, 예!”
강진호의 지원사격에 조규민의 얼굴이 확 펴졌다. 확실히 강진호와는 말이 통한다.
“일단은 반죽이 중요합니다. 제가 배운 대로라면…… 에, 그러니까…….”
조규민이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그마나 반죽을 치대는 손은 뭔가 배운 티가 난다는 것이고, 서글픈 점은 그 반죽 하나를 치대는 와중에서도 뭔가 손이 여기저기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휘저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지휘자는 의도한 곳으로 손을 휘젓는다는 점이고, 조규민의 손은 갈 곳을 몰라 그저 형태만 그런다는 정도였다.
“저, 이건 그냥 순수한 제 생각입니다만…….”
주영기가 조규민에게 물었다.
“조 실장님이 이 피자집을 운영해도 망할 것 같은데, 조 실장님에게 배워서 진호가 운영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빤한 거 아닌가요?”
“…….”
조규민은 말없이 반죽을 내려쳤다.
다행히 피자는 완성되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결과물은 그들 모두가 피자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 무언가였다.
문제가 있다면 인정할 수 있는 인원이 그들이 전부라는 정도?
그나마 제조 과정을 본 세 사람은 이 검은 밀가루 덩어리가 피자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조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본 사람이라면 ‘둥글고 울퉁불퉁한 검은 어떤 것’이라는 말 외에는 이 기이한 것을 설명해 내지 못할 것이다.
“망했네.”
“망했다.”
“망했…….”
강진호마저 같은 말을 하려 하자 조규민이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 강진호 씨.”
“……이걸 팔자는 거군요.”
강진호가 피자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사부보다 피자를 못 만드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예?”
“아니요.”
재료가 없는 와중에도 그나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던 스승을 재평가하는 강진호였다.
이 좋은 환경에서 밀가루로 석탄을 만드는 이적을 선보이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론은 매우 심플했다.
“그럼, 음…….”
강진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보죠.”
“……네.”
조규민의 어깨가 추욱 처졌다.
대책 회의에서 의외로 가장 화려하게 의견을 개진한 이는 다름 아닌 주영기였다.
“여기서 이렇게 배워서는 답이 없다니까. 그냥 진호를 피자 만드는 곳에다 보내서 수행을 시켜야 해.”
“진호 바쁘잖아.”
“바쁘기는 뭘 바빠? 카페만 안 나가면 그만이지. 내 장사 할 상황인데, 언제까지 아버지 카페에 매달려서 장사하고 있을 거야! 못한다고 말씀드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한국 정통 화덕 피자’ 당장 떼어버려!”
“고심한 문구인데…….”
조규민이 아쉬워하자 주영기가 가슴을 쳤다.
“조 실장님은 절대 퇴사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년이 되는 그날까지 무조건 회사에 붙어 계시란 말입니다. 조 실장님이 은퇴해서 치킨집이라도 차리는 순간에 남은 인생은 인간극장되는 거예요!”
“인간극장…….”
“인생 예능으로 삽시다! 다큐 찍을 생각 하지 마시구요.”
“충고 고마워요…….”
조규민이 찌그러지자 주영기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야, 너는 뭔 의견 없어?”
강진호가 화덕을 슬쩍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화덕이 너무 작아.”
“이건 또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큰 화덕. 더 큰 화덕이 필요해.”
“통돼지 바비큐 할 일 있냐!”
주영기가 고개를 획 돌리자 박유민이 찔끔하여 바로 입을 열었다.
“인테리어 통일 좀 했으면 좋겠어. 정신 사나워.”
“크, 역시 박유민. 그래도 사람이지. 그래서 어떻게?”
“…….”
“세상에는 문제점은 지적할 수 있지만 해결책은 제시 못하는 사람이 꽤나 있더라고.”
“그래도 다행이다. 나름 다수파라서. 나만 그렇다고 하면 슬플 뻔했어.”
“자랑이다, 자랑이야!”
주영기가 셋을 둘러보며 입에서 불을 뿜었다.
“아이고, 이 화상들아! 돈이 썩어 빠지면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쓰든지, 아니면 어디 가서 기부를 해! 이런 식으로 창의적으로 돈을 날리지 말고!”
“진정해라.”
강진호가 일어서서 주영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주영기는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진호야!”
“응?”
“계약은 어떻게 된 거냐? 저쪽에서 해준 대로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냐?”
“으음…….”
강진호가 조규민을 돌아보았다.
“그, 그런 조항은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 인테리어 비용과 초기 창업 비용을 투자한 만큼 회수한다는 조항이 전부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주영기가 불타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투자 좀 더 해라. 통장에 돈 있지?”
“있다.”
“인테리어부터 다시 공사하고, 저 문구도 떼어내. 밖에 있는 간판도 뒤집어엎어.”
“……시간이 더 걸릴 텐데.”
“빨리 망하느니, 천천히 파는 게 낫다. 아냐?”
“맞는 말이다.”
박유민도 동의했다.
“이대로는 무조건 망할 거야.”
“내가 웬만하면 조용히 보고만 있으려고 했는데, 이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네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 상한선을 정해. 그 안에서 재공사 비용을 만들어보자.”
“음, 알겠다.”
“그리고 조 실장님.”
“예?”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닙니다. 간단한 프렌차이즈 하나 운영해 보라고 해서 시작한 일인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계약 위반 아닙니까?”
“…….”
“그동안 도움받은 건 여기서 다 깐 겁니다. 이렇게 대놓고 엿 먹이는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조규민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회장님, 거 보십쇼. 원래대로 하자고 했잖습니까.’
사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조규민의 파멸적인 센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혀 그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조규민이었다.
“내가 아는 형 중에 인테리어하는 형 있어. 술 좀 먹이고 아가리도 좀 치면 싸게 해줄 거야.”
“음…….”
“그러니 너는 그사이에 피자 굽는 법이나 배워 와라. 조 실장님, 배울 곳 구해주실 수 있죠?”
“예,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리고 유민이, 너는…… 음, 너는 음…….”
박유민의 눈이 흔들렸다. 여기서 할 일이 없으면 잉여 인간 인증이 아닌가.
“개업 날 팬 사인회라도 할래? 우주가 느껴지는 피자 맛이라든가…….”
“내 손으로 내 친구 가게를 지옥으로 밀어 넣으라는 건가?”
주영기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는 하루하루가 돈이야. 일분일초가 돈이고. 이러는 와중에도 임대료는 나가고 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
“오케이.”
“라져.”
주영기가 콧김을 뿜으며 주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박유민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쟤, 매니저 일 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어, 그게…….”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회사 쪽에서 쟤 하나한테 관리를 다 맡길 수는 없다고 해서 일단은 은영이가 필요할 때만 출근하는 식으로 가기로 했어. 다른 연예인도 그런 식으로 같이 맡으면서 경력 쌓으라고 했는데, 자기가 싫다고 했나 봐.”
“……에드온 같은 거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그런 것 말이다.
“그럼 쟤가 지금 제일 잉여롭다는 거 아냐?”
“……그렇지.”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주영기의 뒷모습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흐르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강진호의 첫 번째 가게가 문을 여는 그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