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78
#277.
시작하다 (2)
정수연이 멘탈을 다잡는 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세상에.”
물론 세상에는 결벽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집에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금방 그 집이 세균에 감염되어 모두가 사망할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하지만 청소를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가정집과 다르게 영업을 하는 가게는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항상 쓰레기가 나오고, 사람이 오가며, 기름때가 흐른다.
그런 곳을 가정집처럼 청결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사실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왜 주방이 내 방보다 깨끗하냐고.’
전에 있던 직장에서 나름 깔끔 떤다고 핀잔을 듣던 정수연이다. 요리사는 맛을 추구하기 이전에 청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론이 있는 그녀가 아니던가.
하나 그녀는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시커먼 남자 셋이 운영하는 피자집이라고 하기에 만만하게 본 측면도 있긴 한데, 주방을 이만큼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이미 프로라고 봐야 한다.
“멘탈 나간 거 같은데?”
“그럴 만도 하지. 우리는 만날 보는데도 한 번씩 소름 돋잖아.”
“그렇지.”
주영기와 박유민이 불만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 있냐고 그랬지?”
“응.”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패기가 쩌는군. 출근한 첫날에 사장더러 병 있느냐니.”
“……오죽하면 그랬겠냐.”
심정적으로는 강진호가 아니라 정수연의 편을 들고 싶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죽어라고 바닥을 닦아놓으면 다시 닦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가 다시 닦는 강진호를 보고 있자면, 적어도 청소라는 측면에서는 이 가게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는 것 같은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말려봤지만, 그때뿐.
강진호의 청결병은 불치병에 가까웠다.
“저 언니도 이제 고생 좀 하겠네.”
주영기가 혀를 찼다.
“저 새끼, 군대 있을 때도 이걸로 가혹 행위 저지르더니, 여기서도 그러면 안 되는데.”
“군대에서 그랬어?”
“야, 말도 마라. 저 새끼 내무실에는 간부들도 안 들어갔어. 눈부시다고.”
“대체 뭘 어쨌기에?”
박유민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야, 정신 차려라.”
“으응.”
실제로 멘탈이 나간 쪽은 정수연이 아니라 강진호 쪽이었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가감 없이 정신병자라는 평을 들은 강진호는 최근 들어 가장 큰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
“……내가 좀 과하게 청소를 하는 편인가?”
“아니. 그건 과하다기보다 미쳤지.”
“솔직히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의 솔직한 대답에 강진호가 해탈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깨끗한 게 죈가.’
더러워서 죄가 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깨끗해서 죄가 된다는 소리를 또 처음 들어보는 강진호였다.
강진호가 산산조각이 난 멘탈을 추스르려고 노력할 때, 정수연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죄, 죄송해요. 제가 말이 좀 심했죠?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아니요.”
강진호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의 말을 바탕으로 하자면, 그 정도만 욕해준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저렇게 주방을 깨끗하게 유지하시는지 너무 신기하네요.”
눈빛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는 정수연의 모습은 뿌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어쩐지 당연히 말을 걸기 위해 다가와야 할 거리에서 한 발쯤 물러나 있는 그녀의 모습이 강진호를 서글프게 만들고 있었다.
“웬만큼 노력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저 말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 이 미친놈아’쯤으로 들리는 것은 강진호가 삐뚤어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네, 뭐…….”
“그런데요, 사장님.”
“네.”
“주방이 너무 휑한데요?”
“네?”
“접시랑 화덕 피자 담는 그릇 말고는 뭐가 있는 게 없네요.”
“아, 네. 그렇죠.”
“제가 듣기로는 피자 말고 다른 음식들은 제가 총괄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는데,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음…….”
정수연이 조금 곤란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는 사장님이 완전히 아마추어이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 화덕도 엄청 잘 관리되어 있고, 재료도 관리가 잘되어 있어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 피자 단일 메뉴로 지금까지 가게가 유지가 되었다는 말은 피자가 엄청 맛있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나?”
“피자가 맛있는 건 사실인데, 그게 이유는 아니지 않아?”
주영기와 박유민가 주고받는 말을 무시하며 강진호가 정수연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네. 그래서요?”
“그런데도 제가 다 맡아도 되겠어요?”
“네. 하시면 됩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정수연의 얼굴에 어린 불안함을 감지한 강진호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는 피자 만드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박유민이 저항을 시도했다.
“나는 설거지는 잘해!”
“마, 그게 자랑이냐?”
“자랑이지. 그리고 나는 웬만한 요리는 할 줄 알아.”
“뭐?”
“카레라든가, 카레…….”
강진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정수연을 보며 말했다.
“보셨죠?”
“네.”
“기본적으로 저희는 음식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로운 메뉴를 추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구했을 뿐, 사실 이 가게에 어떤 메뉴가 추가되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정수연의 대답에는 영혼이 없었다.
“정말입니다.”
“에이, 사장님. 놀리지 마세요.”
“네?”
“가게를 여신 거잖아요. 피자 가게를, 그것도 이 번화가에요.”
“그렇죠.”
“그런데 사전 조사도 하나도 안 하고 피자 하나만 덜렁 냈다구요?”
“…….”
“여자 친구하고 피자집도 안 가보셨어요? 설마?”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여자 친구가…….”
“……없어요.”
가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초상집이 되었다.
“……믿기지는 않지만, 한 번 믿어볼게요.”
“감사합니다.”
무엇 때문에 감사한지는 모르겠지만, 강진호는 정말 감사한 심정이었다. 정수연이 대체 왜 시작할 때 피자 말고 다른 메뉴를 넣지 않았느냐고 추궁할 때는 초등학생이 되어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 기분이었다.
그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가치는 충분했다.
“그럼 일단 기본적인 파스타 메뉴와 음료 메뉴를 추가할게요. 파스타는 제가 만들어야 하지만, 음료는 손이 바쁠 때 도와주셔야 하니, 다들 레시피를 숙지하셔야 해요.”
“저, 손이 영 막손이라…….”
박유민이 은근슬쩍 빠지려고 하자 주영기가 엉덩이를 걷어찼다.
“마!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이가!”
“……알았어.”
정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기본적으로 재료도 없고 조리 도구도 없어서 당장 추가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사장님이 허락하신다면 제가 아는 재료상에 연락해서 조리 도구 일체와 재료를 주문할게요.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이게 돈이 좀 들거든요.”
“괜찮습니다. 저희 돈 많이 벌어요.”
주영기가 어깨를 쫙 펴면서 말하자 정수연이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벌어봐야 얼마나 번다고.’
그녀는 얼마 전까지 고층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장사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있던 몸이다. 물론 파스타까지가 한계였고 스테이크는 손도 대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곳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주방은 전쟁터야.’
항상 칼을 휘두르고, 불을 지르고, 사람이 비명을 질러 대는 곳이 주방이다. 이런 작은 가게에 손님이 와봐야 얼마나 오겠는가.
“그럼 일단 조리 도구 준비될 때까지는 피자 굽는 거나 도우면 되겠네.”
“도울 일이 있을까?”
“그렇다고 서빙하라고 시킬 수는 없잖아. 조리하시는 분들한테는 그런 거 시키면 안 된다고 했어.”
“그래?”
주영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수연이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 내 월급은 벌까?’
잘못하면 한 달도 일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급 우울해지는 정수연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수연의 걱정은 가게 문을 연 지 단 십 분 만에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뭐야, 여기? 뭐냐고?’
정수연은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는 입을 쩌억 벌렸다.
가게 오픈이 30분 남았을 무렵부터 앞쪽이 좀 소란스럽다 싶더니,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가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물론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대비를 할 수 있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 오픈과 동시에 들어오는 손님의 수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일하던 곳은 일하는 사람이 스무 명이 넘는 대형 레스토랑이라는 것이고, 이곳은 겨우 남자 세 명이서 일하는 작은 피자 가게라는 점이다.
그 두 곳의 손님 수가 같으면 안 되는 거다.
더욱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이 세 남자의 태도였다. 손님들이 들어오자마자 강진호는 태연한 얼굴로 손을 벅벅. 아주 벅벅 씻더니 주방으로 털레털레 걸어 들어가 버렸고, 주영기는 익숙한 자세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유민은…….
“이쪽으로 서주세요, 이쪽으로요. 그쪽으로 서시면 옆집 입구 가려서 안 돼요. 저 어제도 사장님한테 혼났어요. 이쪽으로 와주세요.”
아주 능수능란하게 줄을 서 있는 손님들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익숙하다는 거야? 이 상황이?’
왜 익숙하냐고!
너희가 이런 상황에 익숙하면 안 되지! 나도 안 익숙한데!
뭐라고 해야 할까.
MMORPG 게임을 하다가 머리나 좀 식힐 겸 초보 존에 놀러 갔는데, 구석에서 초보 장비 입고 잉여잉여하게 놀던 저랩들이 갑자기 출현한 용을 일격에 때려잡는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그런데 진짜 왜 인기가 있는 거야? 왜 장사가 잘되는 거지?’
정수연은 자신에게 컬쳐 쇼크를 안겨준 메뉴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불고기 피자
콤비네이션 피자
페페로니 피자
콜라
사이다
이쯤이면 이건 메뉴판이 아니라 메뉴 메모라고 해야 할 판이다. 성질 더러운 진상 손님을 만나면 내가 이거도 못 외울 것 같아서 친절히 적어서 가져왔냐고 한소리 들을 정도로 단출하고 간단한 메뉴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피자집에서 이런 단출한 메뉴를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정수연이었다.
그런데 왜 손님이 꽉 차다 못해서 대기 줄까지 생기는 것인가.
그녀의 멘탈이 사정없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피자의 달인?’
17년 동안 피자만 만들고 산 것도 아닐 텐데, 게다가 피자가 너무 맛있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메뉴에 특별함이 없었다.
“모르겠다.”
정수연은 방긋 웃어버렸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지금은 그냥 대체 이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지켜보면 된다.
“진호야! 불고기 세 개! 페페로니 한 개!”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비닐로 덮어놓은 반죽 통을 꺼내더니, 주먹보다 크게 뭉쳐 놓은 반죽 네 개를 집었다.
정수연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자, 잘 봐야 해.’
비결이 있다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진호가 피자를 만드는 광경을 본 정수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