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3
#32.
도움 받다 (1)
“하지만 이사장님!”
동명 고등학교의 교장인 김민준은 굳은 얼굴로 이사장을 바라보았다.
이사장 최명길.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교육 재단인 동명 재단을 운용하고 있는 자.
교육 재단의 이사장으로서는 소문이 좋지 않고, 실제로도 이런저런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재단을 운영할 수 있던 것은 상황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리는 저지르되, 걸렸을 때도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
돈과 권력을 사용하되, 언제든 자신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했다.
이러한 일련의 원칙하에 재단을 운영해 왔기에 최명길은 지금까지도 큰 문제없이 동명 재단을 운영하며 자신의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김민준은 몇 십 년간 최명길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최명길은 지금까지 김민준이 알던 그 최명길이 아니었다.
“이사장님, 그건 무리입니다.”
“무리라고?”
김민준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이사장님이라고 해도 이유 없이 학생을 퇴학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학생이 마음먹고 교육 위원회나 교육청에 제소하게 된다면 큰 사단이 납니다. 그리고 혹여나 언론에 이 일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동명 재단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겁니다.”
최명길은 날카로운 눈으로 김민준을 노려보았다.
“무너진다고?”
“이사장님, 이성을 찾으셔야 합니다.”
“지금 나한테 이성을 찾으라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하지만 이사장님.”
“시끄럽네.”
“…….”
김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손자가 관련된 일이라지만, 최명길은 지금 너무 흥분해 있었다.
“더구나 강진호 학생이 최영수 학생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무슨 말씀이신지?”
“그놈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야. 그놈만 아니었다면 우리 영수가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강진호는 그에 관련해서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 정학도 이사장 자신이 직접 내린 결론이 아니었던가.
“이미 관련된 일은 처벌을 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은 힘듭니다.”
“누가 그 일을 처벌하라고 했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놈만 퇴학시킬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어떤 일이든 말이지.”
김민준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최명길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이사장님.”
최명길은 역정을 냈다.
“답답한 사람 같으니! 왜 꼭 그 일인가. 다른 일을 찾아보란 말이야! 학교를 다니면서 문제 일으킨 사안이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강진호 학생은 이번 일 이전에는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성적도 전교 10위권 내에 위치해 있고, 특별히 사고를 치거나 한 적이 없는 모범생이라 딱히 나올 만한 것이…….”
“그럼 만들면 될 것 아닌가.”
“이사장님.”
최명길은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여러 말 하고 싶지 않네. 자네가 할 일은 하나야. 강진호를 학교 밖으로 내보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학교에서 쫓아내란 말이야.”
억지에 가까운 최명길의 말에 김민준은 일순 대답할 말을 잃어버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이사장님…….”
최명길의 날카로운 눈빛이 김민준에게로 쏟아졌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건가?”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일어나겠네.”
최명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김민준 교장은 밖으로 향하는 이사장의 등에 머리를 숙였다.
“살펴 가십시오.”
쾅!
문이 거칠게 닫혔다.
“휴우…….”
김민준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하라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아니, 요구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지만, 명령이라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요구를 해왔다면 김민준은 두말할 것 없이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명길의 요구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최명길이 이사장이고, 그가 교장이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남아 있는 임기도 길지 않고, 아무리 사립학교라고는 하나 김민준도 한 명의 교육자. 이사장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를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김민준이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것은 그동안 그가 최명길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최명길이 재단의 재산을 교묘히 빼돌리는 것을 방조하고, 그에 따른 콩고물을 얻어먹은 사람이 바로 김민준이었다.
단순히 방조한 것에 그치지 않고, 서류 조작을 비롯하여 수많은 일을 함께해 왔다. 그 대가로 김민준은 최명길에게 많은 돈을 받았고, 그럼으로써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김민준이 최명길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최명길은 돈 이외에도 김민준의 약점을 쥐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김민준에게 자신의 치부를 결코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휴…….”
김민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학생들에게 피걸레라는, 좋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는 학생주임 공익현 선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교장 선생님, 방금 이사장님이 다녀가시지 않았습니까?”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 그대로예요.”
“이사장님 표정이 살벌해 보이시던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무슨 일이야 있지.
김민준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 일은 그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나름 수완이 좋다고 정평이 나 있으니 도움을 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좋지 않은 일이라 관련되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우선되어야겠지만, 그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면 아군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리라.
“공익현 선생님.”
“예, 교장 선생님.”
“마침 잘 왔습니다. 이사장님이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데, 대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공익현이 호기심이 동한 얼굴로 물었다.
“무리한 요구라니요?”
“강진호 학생 알지요?”
“얼마 전에 이사장님 손자인 최영수를 폭행한 놈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 강진호 학생 말입니다. 이사장님이 저번 일로는 분이 덜 풀렸는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학생을 퇴학시키라고 하시는군요.”
“퇴학이요?”
“예.”
“퇴학, 퇴학이라……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공익현은 놀란 얼굴로 교장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분명 정학 처분을 내렸다. 그것도 저지른 일에 비해서 과하다고 할 수 있는 정학 7일이라는 강도 높은 처분이 내려졌다.
그것으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앙금이 남아 있던 것이다.
‘노인네, 쪼잔하기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학생의 처분을 결정한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가 아는 이사장은 부패하기는 했지만 일정 선은 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손자가 관련되어서인지 이성이 마비된 것 같았다.
“무리한 일인 것 같습니다.”
교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워낙 막무가내시라…….”
“어떻게 설득해 볼 여지가 없습니까?”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십니다. 휴,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공익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퇴학은 우리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교육청에 사유 보고도 해야 하는데, 자퇴도 아니고 퇴학이라니요?”
“그 부분이야 우리가 적당히 알아서 자퇴로 결론지으면 될 일이지요. 문제는 도무지 그럴 건수가 없다는 겁니다. 애초에 이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 강진호 학생이 꽤나 모범생이었다고 하더군요.”
“예, 확실히 그랬죠.”
공익현 역시 강진호가 최영수를 때렸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었다. 그가 아는 강진호는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학생이었고, 결코 최영수와 싸움 같은 것을 벌일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대체 무슨 수로 그 학생을 내보낸다는 말입니까?”
“음…….”
공익현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실제로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영 내키지가 않습니다.”
“나도 그래요. 아무리 이사장님 손자를 때렸다고는 하나 그런 일 때문에 학생을 학교에서 내보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하지만…….”
공익현은 뭔가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뭔가요?”
“양심을 빼놓고 이야기하자면, 가능한 방법이 있기는 할 것 같습니다.”
“방법이요?”
“그런데 이게…… 시행하려면 그 학생뿐 아니라 우리 학교 선생의 목도 위험한 일이라…….”
“어느 선생이 위험하다는 말입니까?”
“강진호 학생의 담임인 김성주 선생님입니다.”
“김성주 선생?”
교장은 김성주 선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성주 선생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공익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교장이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공익현 선생을 다그쳤다.
“공익현 선생님, 방법이 있다면서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교장의 재촉에도 공익현은 묵묵부답이었다.
“공 선생님!”
결국 공익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다고는 해도 제 제자고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교장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능구렁이 같은…….’
양심?
그런 것 때문에 입을 다물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일을 공익현에게 털어놓은 것도, 평소 그가 공익현을 가까이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공익현은 대가를 내놓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라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율할 상황이지만, 지금 교장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공익현만 알고 있는 방법이라면 시간을 끌수록 대가가 커질 확률도 높았다.
속전속결.
교장이 취해야 할 방법이었다.
“휴, 그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공 선생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사장님의 진노가 풀리겠습니까?”
“하지만…….”
“공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김성주 선생이 강진호 학생의 일로 뭔가 실수를 한 모양이군요. 잘못을 하고 실수를 저지르는데, 동료라는 이유로 무조건 모른 체하고 감싸기만 하는 것이 양심을 지키는 일일까요?”
공익현은 슬쩍 교장을 바라보았다.
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 일만 잘 풀리면 이사장님이 섭섭지 않게 보답해 주실 겁니다. 이사장님이 아니라면 저라도 보답을 해드려야지요.”
“제가 보답 같은 걸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니잖습니까.”
“알지요, 알아. 그래도 최소한의 보답이란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교육자의 양심을 걸고 행동해 주세요, 공익현 선생님.”
공익현이 고민하는 척하다가 교장을 바라보았다.
교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방금 하신 말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걱정 마세요.”
공익현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실은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