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34
#533.
결착 나다 (3)
까드드득!
칼을 목에 꽂아 넣는 소리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현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이 상황이 게임이라면, 이 게임의 효과음을 넣은 놈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해고당했을 것이다. 당위성이고 나발이고 간에 듣는 사람이 경기를 일으킬 만큼 이질감이 심한데, 이런 썩은 게임을 누가 플레이하겠는가.
언제나 현실은 창작보다 우월한 법이라는 듯 바토르의 목은 날카로운 강진호의 검에도 저항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목에 칼을 꽂아버리는 강진호나, 칼이 목에 들어오는데도 살아남는 바토르나, 둘 다 대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끄윽!”
하지만 살아남았다고 해서 고통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분일까?
이현수는 바토르의 기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은 완전히 무력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는 악귀 같은 얼굴을 한 강진호가 자신의 목으로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듯 말이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육체는 너무도 단단해서 단번에 목이 베어지지도 않는다. 내공이 아닌 외공으로 완성된 육체는 내공의 소진과는 관계없이 그 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까득! 까득! 까드득!
한 번, 한 번 내려칠 때마다 마치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와 함께 목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저 아래에서.
사형집행을 하는 순간, 기기 이상으로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한 번씩 발생한다. 원래대로라면 발판이 떨어지고 그 아래로 추락한 사형수의 목이 밧줄에 걸려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야 하지만, 때로 버튼을 눌러도 발판이 떨어지지 않아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한 순간에서 살아남아 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사형수가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라 한다. 순식간에 몇 십 년은 늙어버린 얼굴이 되기도 하고, 머리가 급속도로 세어버리기도 하는 등.
그럼 지금 바토르는?
실패도 아니다.
목이 점점 꿰뚫려 한 발, 한 발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해야 하는 바토르는 대체 어떤 기분일까?
아무리 바토르가 강건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고는 하나 저런 상황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이라고는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악마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칼을 내려치고 또 내려치는 상황을 제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말이다.
“흐으으으…… 으으…….”
이현수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안다.
강진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강진호의 입장에서 보면 바토르는 선을 넘었다. 바토르에게 있어서는 숭부가, 그리고 전투가 전부인지 몰라도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죽음은 그의 세계를 붕괴시킨다. 그로 말미암아 살아가던 이들의 삶이 모두 급변할 것이다. 서로 짊어지는 리스크가 다르다. 그러니 동일한 패배라고 한들 동일한 대가를 짊어져서는 안 된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저건 너무 과하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저렇게 괴롭히며 죽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악마와 같다고 불리는 사람이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히 증오에 차 있다거나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머리가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왜냐면…….
‘죽일 수 있잖아.’
마음먹고 찔러 댄다면 아무리 바토르의 육체가 강하다고 한들 저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었다. 강진호가 기운을 집중한다면 바토르의 육체조차 뚫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으니까.
그런데 굳이 저렇게 극한의 공포를 줘야 할까?
나름 강진호에 대한 이해자라고 자부하는 이현수조차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주…… 죽여…….”
“안 들려.”
“죽여…… 죽여줘.”
“미안하지만, 난 한국인이라 중국어는 못 알아듣겠는데?”
“……제발.”
“웃기지 마라, 바토르.”
강진호의 눈이 더욱 차가워졌다.
이제는 차갑다 못해 그의 눈 안에서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패자는 무슨 꼴을 당해도 정당하다. 너는 그런 생각으로 덤볐던 것 아닌가?”
“…….”
“그게 아니라면 다짜고짜 자신과 관계도 없던 사람의 목숨을 빼앗겠다고 달려드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을 했어야겠지. 그 썩어버린 머리통으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말이야.”
강진호는 지금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제멋대로다.
이 무인이라는 것들은.
과거, 그가 중원에 있을 당시, 왜 백성들이 무인이라고 하면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악귀 취급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무에 미친 놈들을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스스로의 행동 하나, 선택 하나가 주변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 마치…….
‘예전의 나처럼 말이야.’
한때는 그 역이 바토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아니, 몇 배는 더 심했을 것이다. 그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다.
물론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강진호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생존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는 것은 변치 않으니까.
그럼에도 강진호가 일말의 메스꺼움을 버릴 수 없는 것은, 그 생존이라는 절대의 명제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하지 않아도 될 일마저 저질렀다는 자각 때문이다.
지금의 그였다면 하지 않았을 그런 짓 말이다.
스스로의 편의와 목적을 위해서 아무런 고민도, 고뇌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다른 이의 삶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그걸 당연시 여겼다.
지금의 강진호가 과거의 강진호를 보았다면 뭐라 생각했을까?
악마 같다고 생각했겠지.
아니, 더러운 것이라도 본 듯 경멸했을 것이다.
그 경멸의 대상이 분리해 낼 수 없는 자신이라는 자각, 그 자각을 바토르가 전해주었다.
그런 바토르를 보았을 때, 잠시나만 간만에 흥분되는 투사를 만났다고 즐거워하던 자신이 역겹기까지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건 단순한 분풀이.
스스로에게 할 수 없는 감정의 분출이었다.
그 대상이 된 바토르에게는 정말 불쌍하지만…… 뭐 어떤가, 그 역시 그렇게 살아왔을 텐데.
강자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돌려주면 그만이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강진호가 강자이니까.
바토르의 눈빛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목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 이상으로 입가에서 침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강인하던 바토르의 정신마저 지금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 그만!”
절망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바토르가 아닌 다른 이의 입에서.
장다징.
바토르를 수행해 온 장다징이 부리나케 달려와 쓰러져 있는 바토르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강진호의 고개가 장다징에게로 향했다.
“가, 강진호 씨.”
장다징의 턱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가 강진호의 앞에 나서기까지 얼마나 큰 심적 고뇌를 겪었는지를 대변하는 모습이었다.
강진호에 대한 공포.
나서면 즉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심지어는 죽지도 못하고 바토르와 같은 꼴이 될 수 있다는 공포마저 이겨내고 장다징이 그의 앞에 선 것이다.
강진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바, 바토르 님의 죄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건 승부에서 패한 무인은 어떤 꼴을 당하더라도 불평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 바토르 님은 이미 그 대가를 충분히 치렀습니다. 부디 그 목숨만은 살려주시기를…….”
강진호의 시선이 장다징에게로 향했다.
조금은 무심한 듯한 표정에 희미한 의혹이 떠올라 있었다.
“너의 상관인가?”
“그렇습니다.”
“상관을 위해 목숨을 걸 만한 의리가 네게 있는가?”
“저 역시…….”
장다징이 살짝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했다.
“그런 의리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설사 제가 이곳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말만은 하고 죽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장다징은 영 어색한 얼굴이었다.
그 역시 왜 자신이 바토르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충동적으로 뛰쳐나오긴 했다. 마음이 그리 시키니까. 하지만 머리로는 이제 겨우 며칠 만난 바토르를 위해서 이런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지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으면 하나뿐.
바토르가 그를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다는 것뿐.
한국에 나와 있는 정보원이라는 처지는 홍왕계 내에서도 한직이다. 능력 있는 정보원이라면 중원 내의 다른 계파를 조사하지, 한국으로 보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는 계급에 따라 취급이 극심하게 차이 나는 곳이었다.
스스로의 직위가 곧 명예이자 힘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은 자기보다 못한 계급을 괄시하고 무시한다. 그것을 모두가 당연히 여긴다. 계파 내에서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이를 찾아볼 수 없던 장다징은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에게 무시당했다.
오로지 이곳에 같이 파견 나와 있는, 같은 처지의 이들만이 서로를 위로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바토르는 그를 괄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대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그 멸시 없는 시선이 지금 장다징의 등을 떠민 것인지도 몰랐다.
“부디!”
장다징이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는 홍왕계이지만, 또 홍왕계가 아닙니다. 그는 홍왕계가 마음먹고 있는 한국 정복에 전혀 관계가 없는 자입니다. 그저 홍왕과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한국에 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러니 그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대로…….”
“대신 죽을 수 있나?”
강진호가 장다징의 말을 끊었다.
“말 그대로야. 대신 죽을 수 있나? 그럼 살려주지. 대신 널 죽이겠다.”
“…….”
장다징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신 죽을 수 있는가? 그가 바토르를 위해서?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장다징을 보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목숨은 귀한 법이지.”
“……가, 강진호 씨.”
“걱정할 것 없어. 대신 죽는다고 했으면 네 목을 쳐버리고 이놈도 같은 꼴로 만들었을 테니까. 나는 쓸데없이 감정적으로 나서는 놈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솔직한 놈에겐 상을 줘야지. 살려주마.”
장다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환희로 들어차려던 장다징의 얼굴이 순식간에 절망으로 물들고 말았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강진호의 얼굴이 더없이 사악하게 물들어 있었다.
“애초에 죽일 생각도 없었거든.”
강진호가 손을 뻗어 바토르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 바로 앞으로 잡아당겼다. 목에서 뿜어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강진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죽음은 너무 편안한 끝이지. 나는 그리 자비롭지 않아.”
강진호의 눈이 붉게, 더더욱 붉게 물들었다.
완연한 핏빛으로 물든 그의 눈동자가 피보다 더 붉고, 더 검게 물들어갔다.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드는 것 같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붉은색으로 말이다.
“자, 나를 봐라, 바토르. 나를!”
유부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은 기괴한 목소리가 강진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