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65
#764.
살아남다 (4)
“이게 말이 안 되는데…….”
강진호의 몸을 살피는 의사, 도용환이 식은땀을 흘렸다.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때때로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도 있다. 생명에 접해 있는 이들은 의외로 그런 순간을 자주 맞이한다.
당연히 죽는다고 생각한 환자가 살아나기도 하고, 어제까지는 멀쩡하던 환자의 상태가 급변하기도 한다.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오만은 현장에 떨어지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
의학에 몸담으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키워 나간 그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경외감조차 무색해지고 있었다.
‘이게 왜 멀쩡해?’
지금 뜯어내고 있는 봉합사를 묶은 장본인이 바로 도용환 자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는 쌍욕을 퍼붓고 있었을 것이다. 멀쩡한 살을 봉합해 놓았는데, 의사로서 어떻게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있나.
이 배의 상처는 그가 직접 봉합했다. 봉합하는 과정에서 복막은 갈라지지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했기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상처가 없다.
아니, 상처라고 할 만한 것은 있었다. 길게 나 있는 붉은 선. 마치 고양이가 긁은 것 같은 긴 선 하나가 봉합사 사이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봉합한 사람은 있는데 봉합한 상처가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뭐 문제 있어?”
“아, 아니요. 아닙니다!”
도용환이 기겁을 하며 대답을 했다.
‘여기 뭐냐고!’
3일 만에 복근이 베인 상처가 나아버리는 사람과 장정 다섯 정도를 합쳐놓은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누구를 더 무서워해야 하는가는 크나큰 딜레마였다.
귀신과 괴물 중에 어느 쪽이 더 무서운가를 정하라는 말과 같으니까.
그나마 귀신같은 인간은 과묵하고, 괴물 같은 인간은 그를 직접 위협하고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바이탈도 안정되었고! 내부에도 딱히 문제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바토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의사 양반.”
“예? 아! 예!”
“지금 ‘같습니다’가 나올 상황이야?”
“…….”
“병원에 그 많은 기기들은 폼으로 있나? 제대로 검사를 해보고 확답을 내려야 할 것 아냐. 혹시 퇴원하고 나서 문제 생기면, 의사 양반이 책임질 건가?”
“그, 그게 아니라…….”
도용환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왜 나냐고!’
병원장이 그를 불러 VVIP 왕진이 있다고 했을 때, 뒤도 보지 않고 달아났어야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왕진에서 보고 들은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의사 면허를 찢어버리고 당장 집으로 갔어야 했다.
무슨 놈의 모험심이 있어서 이런 미친 짓을 했단 말인가. 굳이 왕진비를 어마어마하게 챙기지 않더라도 그는 이미 먹고살기 충분한 돈을 벌고 있는데.
순간의 호기심을 참지 못한 대가가 이리 돌아올 줄이야.
“적당히 해라.”
지네 인간.
아니, 전신에 봉합사로 문신을 한 환자가 눈을 찌푸리자, 커다란 인간이 헛기침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실이나 빼주세요.”
“네! 당연히 그래 드려야죠.”
도용환이 번개처럼 쿠퍼를 놀려 봉합사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수술을 집도하여 이제는 스스로 대가(大家)라고 자신하는 도용환이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리 정밀하고 재빠르게 쿠퍼를 놀려본 적은 없었다.
“다, 다 됐습니다.”
도용환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수북한 봉합사를 정리한 도용환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워, 원래는 이거…… 봉합사를 풀더라도 격한 움직임을 하시면 봉합된 곳이 다시 벌어질 수 있으니 한동안은 격한 운동이나 움직임을 자제하라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어음, 이 경우는 그러니까…….”
도용환의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괘, 괜찮겠지요?”
“의사 양반!”
바토르가 고함을 질렀다.
사실 고함을 지르려고 큰 소리를 낸 게 아니라 그냥 바토르의 목청이 컸다. 울림통만 다른 이들의 몇 배는 되니,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히익!”
“자신을 가지고 똑바로 이야기를 하라고! 의사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말하는데, 환자가 뭘 믿어야 하냐고!”
“아, 아니, 그게…….”
도용환은 울고 싶었다.
의사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이 아니잖은가. 그의 모든 의학적 지식은 책과 임상에서 나온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케이스에 대응하는 게 쉽다면, 그 모든 교육과정이 왜 있겠는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겠지만, 이게 영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서…….”
“그래서? 모르겠다고?”
“그게…….”
강진호가 바토르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쯧.”
강진호가 혀를 차자 바토르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리 불만이냐?”
“불만 없다, 주인.”
“불만이 있어 보이는데?”
“없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바토르의 손은 쉴 새 없이 비벼지고, 그의 다리는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 진동 때문에 강진호가 앉아 있는 침대가 다 들썩이는 느낌이었다.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라.”
“그래도 되나?”
“……그래.”
바토르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의 천장까지 닿아버린 머리의 위치를 보며 도용환이 학을 뗐다.
“끄응.”
하지만 바토르는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왜?”
“나도 때와 장소를 구분할 줄 아는 놈이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바토르는 병원과 상성이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여유가 넘치는 놈이 저리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후에 검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딱히 필요할 것 같지 않은데, 퇴원은 언제…….”
“받으십시오.”
“받아야 합니다.”
“받아라, 주인.”
강진호는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합창을 한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이현수와 위긴스, 그리고 바토르까지 모두가 타오르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
“혹시 모를 상황이 있으니까.”
“주인이라고 통뼈는 아니다.”
강진호가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아무리 총회의 독재자라고는 하나 이인자, 삼인자, 사인자가 합창을 하는데 무슨 수로 거부를 하겠는가.
“그럼 오후 검사까지만.”
강진호가 굴복하자 다들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후에.”
“이봐, 의사 양반.”
슬그머니 도망가려는 도용환을 바토르가 불렀다.
“예?”
바토르가 싱긋 웃었다.
“거, 의사 양반이 우리 주인 주치의지?”
“……예?”
주치의라…….
사전적으로 보자면 어떤 환자의 의료팀 담당자로서 그 환자에게 주어지는 의료 서비스의 책임자를 말한다. 때로는 상담역도 되고, 치료에 대한 방향을 정하는 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아무리 봐도 저 덩치가 말하는 주치의는 ‘책임자’라는 의미가 강했다.
“정확하게 저는 아닙니다만…….”
“뭐 어려울 것 있나. 당신이 주치의 하면 되는 거지.”
“아, 아니요. 그걸 제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정하면 되잖아. 그렇지?”
‘아니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그 말을 목구멍 밖으로 내뱉을 용기가 있었다면 그가 왜 의사를 하고 있겠는가. 익스트림 스포츠에 종사하고 있지.
“내놔.”
“뭘 말입니까…….”
“명함.”
“…….”
바토르가 빙그레 웃었다.
“잘 부탁하지.”
탁.
혼이 빠져 버린 도용한이 뭔가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일반인 괴롭히지 말라고 했을 텐데.”
“괴롭힌 게 아니다, 주인.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직업에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는 법이지. 게다가…….”
바토르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말은 내가 아니라 조금 전에 병원장에게 찾아가서 후유증이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병원이 개 박살 나는 걸 각오하라고 협박한 놈한테 해야겠지.”
강진호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그 시선을 받은 이현수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목에도 상처가 나 있기에 뻑뻑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딱히 그런 놈들을 모은 기억은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주변에 멀쩡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감이 든다.
이현수도 처음에는 저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음…….”
그나마 멀쩡한, 정신 나간 인간들 중에서 그나마 사람 같은 위긴스가 대화를 주도했다.
“이 상황을 대체 뭐라고 평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다들 이런 꼴이 되어버려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상대를 감안하면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홍왕.’
홍왕은 괴물이었다.
그를 상대하는 데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차라리 축복이다. 몇 번을 반복해도 이런 결과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마냥 기뻐할 일도 아니었다.
모두들 홍왕계와 총회의 격차를 실감했다. 소수의 임기응변으로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팔다리를 잘라주고 몸만 빠져나온 것에 불과하다.
다시 한 번 홍왕계와 충돌한다면, 그들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설 터. 그때는 지금과 같은 요행은 바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기대를 할 수 있는 건…… 얻어낸 것이 있다는 거겠죠.”
“그 사실에 안도하기에는…….”
강진호의 시선이 위긴스의 오른팔로 향했다. 소매가 비어 펄럭이고 있는 옷가지를 보는 강진호의 미간이 좁혀진다.
“잃은 것이 너무 많다.”
“딱히 잃은 것도 아닙니다.”
위긴스가 다른 손을 들어 어깨를 감쌌다.
“어색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지요. 제가 바친 것 이상으로 로드께서 보상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강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야겠지.”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지자 위긴스가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하려다 한 팔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그러자 바토르가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 대신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쫘아악!
위긴스가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잃은 것은 안타깝지만, 그 사실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얻은 것을 생각하시지요. 로드께서 중국으로부터 데려온 이들은 확실한 전력이 될 것입니다.”
강진호의 시선이 이현수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지금…….”
그때였다.
벌컥!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제발 노크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탑재해 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백발의 사내, 장민이 두 눈으로 눈물을 줄줄 뿌리며 강진호에게 달려들었다.
“마존이시여어어어어어어!”
강진호는 달려드는 장민의 얼굴을 한 손으로 쭈욱 밀어냈다. 손에 닿는, 물기 젖은 감촉이 소름 돋게 싫다.
“마존이시여! 그 옥체가! 그 옥체가 상하였나이다! 이 미력한 종복을 죽여주시옵소서! 마존이시여어어어어어!”
이 기막힌 광경에 지나가던 간호사들이 안을 힐끔힐끔 본다. 그들의 입가에 어색한 웃음이 맺혔다.
강진호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그냥 깨어나지 말걸 그랬어.’
쪽팔린다.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