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80
#779.
안정되다 (4)
“너로는 못하는 일이라고?”
“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박유민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듯 되물어왔다.
“솔직히 이해를 잘 못하겠는데, 변하고 변하지 않고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음?”
“말이 그렇잖아. 네가 변하는 게 뭐 이상한 것도 아닌데, 네 말을 들어보면 변하면 안 된다는 듯이 말하고 있으니까.”
“많이 변해야 하니까.”
“얼마나?”
강진호는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얼마나라…….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이해를 시켜야 하는가.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네가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내가 나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들이 아는 상식 선에서는 그 어떤 말로도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설명하기가 좀 애매한데…….”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든 게 다 달라질 정도다. 지금의 나와는 많은 것이 다르겠지.”
“야, 그게…….”
주영기가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모를 수는 없다.
강진호에게 뭔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강진호가 사는 세상이 그들이 사는 세상과는 많은 것이 다르다는 것을.
그들의 입장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일도 강진호의 세상에서는 자연스럽게 벌어질 것이다. 그걸 다 알고도 친구인 셋이다.
“왜 변해야 하는데?”
“지금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니까.”
“변하면 감당할 수 있고?”
“그럴 확률이 높아.”
“흐음.”
박유민이 가만히 고민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어.”
강진호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많은 고민들이 있다. 개중에는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고민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강진호가 하고 있는 고민이 그랬다. 설명한다 해도 답변을 들을 수는 없다. 그리고 설사 모든 상황을 털어놓고 구한 조언이라 해도 강진호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고민이니까.
“그런데 진호야.”
“응?”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네가 너 자신 때문에 고민하는 걸 본 적이 없어.”
“…….”
“언제나 그랬잖아. 너는 다른 사람 때문에 고민해. 지금도 그렇겠지. 네가 말하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도, 네 문제는 아닐 거야. 다른 문제겠지.”
강진호는 박유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과의 관계를 믿는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이다. 그렇게 믿고 있던 강진호다. 하지만 지금 박유민은 몇 마디 말로 강진호가 처한 상황을 모두 이해해 버렸다.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강진호는 박유민을 이토록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남한테 이로운 짓은 적당히 해.”
“……응?”
“너는 오지랖이 너무 넓어.”
박유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강진호는 황당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지랖?’
이게 무슨 소린가.
이기주의의 끝판왕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강진호다. 그런데 무슨 오지랖…….
“어?”
강진호가 놀란 얼굴을 했다. 바로 옆에서 주영기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진호야.”
“으응?”
“네가 하는 고민이 뭔지는 난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사람을 너무 생각하지 마.”
박유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좀 그렇긴 해. 사실 나도 너한테 도움을 받았고, 네 덕분에 인생이 달라진 판에…….”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중요한 거야. 여하튼 그런 판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우습긴 해. 사다리 걷어차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네게 도움을 받아서 삶이 달라질 사람이 앞으로도 많이 있겠지. 여기서 내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은 조금 나아질지 모르겠는데…….”
박유민이 강진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람은 남을 위해 살 수는 없어.”
“…….”
“아니, 있겠지. 그런 사람이야 있겠지. 이 넓은 세상에 자기보다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야 분명히 있겠지. 그런데 나는 그게 내 친구는 아니었으면 해.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내 친구인 사람이 굳이 그런 가시밭길을 걷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아.”
박유민은 멋쩍은 듯 어색한 얼굴을 했다.
“조금 이기적이긴 한데…….”
“뭐, 맞는 말이지.”
주영기가 박유민의 말을 받았다.
“이기적인 게 뭐 잘못됐나? 나만 생각하고 살아도 힘든데 어떻게 남까지 챙겨? 이기적이지 말라고 가르친 양반들은 뭘 그렇게 남 생각 하고 산다고. 일단 내가 살아야 남을 볼 여유가 생길 것 아냐.”
“동감.”
강진호는 계속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진호야.”
“응?”
“무슨 고민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만 생각해. 어느 쪽이 네게 더 나은가.”
“……내게.”
“그래. 주변 사람 생각 좀 그만하고, 그리고 우리 생각도 좀 그만해.”
강진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박유민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박유민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내 나이가 몇이라고 생각하냐?”
“응?”
박유민은 평소답지 않게 굳은 얼굴이었다.
“나도 이제 혼자 알아서 할 나이는 됐어. 나는 네 친구야. 자식이 아니라.”
“…….”
“친구잖아. 그렇지? 그런데 내가 아는 친구라는 말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받아먹는 관계는 아냐. 서로 주고 받는 거지. 네가 없다고 혼자 알아서 하지도 못하면 그건 내가 병신인 거지, 네가 뭘 잘못한 건 아니잖아.”
강진호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다 마찬가지야. 진호야, 네가 뭘 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알아서 잘할 수 있어. 우리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럴 거야. 그렇지 않아?”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잘못된 이유는 하나겠지.”
박유민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강진호를 때렸다.
“네가 살고 싶은 삶이라는 건 뭔데?”
‘혼났네.’
강진호는 붕붕이를 놔두고 걸었다.
술을 마셔서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조금 걸으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꾸 혼나네.’
이 세상으로 처음 돌아왔을 때, 강진호는 세상이 수수깡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나약했다.
세상도, 사람도.
수수깡으로 만들어진 건물과, 수수깡으로 만들어진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며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적응하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수깡은 나였지.’
약해 보이던 사람은 약하지 않고, 한없이 강하다고 느낀 자신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착각은 하나였다.
강진호는 자신이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은 겪을 수 없는 일을 겪고, 훨씬 험난한 삶을 살아왔다는 확신이 있었다.
겪은 일이 많은 만큼, 겪어온 전장이 많은 만큼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
강진호는 그저 위기를 끊임없이 헤쳐 왔을 뿐이다.
적이 있으면 죽이고, 감당하지 못할 적이 상대라면 달아난다.
그 두 가지의 원칙을 꾸준히 지켜왔을 뿐, 살아남아야 할 당위라든가, 살아남아 누려야 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살아남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족들을 다시 보고 싶다.
그 두 가지가 강진호의 삶을 지탱하는 명제였다.
인격은 고민과 배움에서 나온다. 하지만 강진호는 고민하지 않고, 배우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가 남보다 나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아왔을 뿐이다.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친구들이 주변에 있기에 더욱 대비되어 보인다.
‘내가 힘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저 녀석들에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힘이 지금의 강진호를 만들었다.
강진호가 고민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던 이유는 강했기 때문이다. 강함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 새로운 삶이 그에게 주어진 이후, 강진호는 수없는 위기를 넘겨왔다. 목숨의 위기부터 인간관계의 작은 위기까지…… 그 모든 위기를 강진호는 힘으로 짓눌러 해결했다.
만약 강진호에게 힘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다른 이들의 짐이 되어 살고 있었을 것이다. 힘이 없으면 인생을 지탱할 수 없다. 그 사실은 역으로 강진호가 힘이 없으면 많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오늘 강진호는 그 사실을 실감했다.
바뀌어야 한다.
“후…….”
밤공기가 어느새 조금은 쌀쌀해졌다. 사람을 녹이던 더위도 가시고, 이제 다시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그 가을의 길목에서 강진호는 수많은 생각과 함께 걸었다.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이리 고민한 적이 있던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무언가를 이루어냈다고는 생각한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어지는 곳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과연 저들만큼 강진호는 고민했을까?
아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지금 강진호의 가슴이 무거운 것이다.
‘다들 치열하게 살아가는구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수많은 이들이 그를 스쳐 지나간다. 그저 풍경에 불과한 이들, 저 많은 이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자신만의 고민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 새롭게 보였다.
강진호는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하늘.
별이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때는 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 어떤 삶이든 저마다의 고민이 있다. 그 어떤 이든 그저 행복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조금은 쉽게 생각해 버린 게 아닐까?
검은 하늘이 내려다보는 곳이라면, 현대라면 두 번째의 삶처럼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나름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안주해 버린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물음.
그리고 끊임없는 고민.
강진호는 가만히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현대로 돌아온 그날의 일, 다시 무학을 익히겠다고 다짐한 일, 그의 주변을 채워준 가족들, 그리고 그를 지탱해 준 친구들, 그를 믿고 있는 사람들…….
가치 있는 삶이다.
수십 년을 살아온 두 번째의 삶에 비해 그 반의반도 살지 못한 세 번째의 삶이지만, 둘 중 어느 쪽이 강진호에게 더 가치 있는 삶이었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지금의 삶을 택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가치가 있기에 더욱 지키고 싶다.
그 자신을 버려서라도.
“너는 중원인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중원인이기에, 중원에서 수십년을 살았기에 지금의 삶을 하찮게 여겨야 한다는 건가?
어쩌면 그는 틀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천마존 역시 틀렸다.
지금의 삶은 그런 식으로 간단히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때였다.
전화가 울린다.
휴대폰을 빼 든 강진호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히익!’
최연하라 찍힌 액정을 보는 순간, 강진호의 뒤통수에 뜨끈뜨끈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