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06
#805.
약동하다 (5)
“잔다.”
“자고 있어.”
“자고 있는 게 확실해.”
……안 잔다.
강진호는 동물원 원숭이 꼴이 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 강진호가 보육원에 잘 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이전에도 보육원에서 자고 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밥은 식탁에서, 잠은 집에서.
두 다리가 멀쩡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굳이 밖에서 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강진호다. 최근에는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지만.
“밥 먹어야 하는데…….”
“밥 다 됐는데…….”
“응. 밥 먹어야 돼.”
시간이 얼마나 됐지?
얼굴 위로 햇살이 내려앉는다. 그 말인즉, 이미 해가 떴다는 뜻이고, 아침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강진호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아침인가.’
이 시간까지 자본 적이 언제였더라?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늦잠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강진호의 기준으로는 확실하게 늦잠이었다. 해가 뜨고 눈을 떠본 적이 몇 년은 된 것 같다.
이제 슬슬 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하는 찰나, 아이들이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자?”
쿡.
손가락이 볼을 찌른다. 강진호는 그 손길에 웃음을 터뜨렸다.
“일어났다!”
“안 잔다!”
“우어으!”
강진호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키자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는 오빠 방해하지 말랬지! 이 썩을 놈들!”
“도망가자!”
“마녀가 쫓아온다!”
뭔가 왁자지껄하다.
강진호는 몸을 일으켜 이불을 차곡차곡 갰다.
‘이상한 기분이네.’
온기가 남아 있는 이불을 개고 있자니, 이곳에서 잠을 잤다는 실감이 난다. 집에서도 세 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 늦잠을 자다니, 신기한 일이다.
“일어났어?”
방 안으로 들어온 조미혜가 강진호를 보며 발끝을 까딱했다.
“음.”
“얼른 씻고 밥 먹어, 오빠.”
“음.”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외부인은 보육원에서 잘 수 없다. 하지만 강진호는 외부인이라기에는 애매한 위치라서 별문제 없이 남자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애들 다 일어났는데 오빠가 누워 있으면 어떻게 해! 모범을 보여야지.”
“면목없다.”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물론 일찍 일어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보육원이고, 많은 아이들이 같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생활 리듬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신기하긴 하네. 오빠는 늦잠 안 잘 것 같은데.”
“평소에는 잘 안 자는데, 오늘은 좀 그러네.”
“편했나 보다.”
“응?”
강진호의 반문에 조미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여기가 편했나 보다고.”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편했나?’
신기한 일이다.
강진호가 이 보육원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집보다 편히 여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늘 강진호는 제대로 늘어졌다.
‘휴식이 필요했던 건 맞는 모양이네.’
조규민의 진단이 정확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얼른 씻어, 오빠.”
“알았다.”
조미혜가 싱긋 웃고는 옆방으로 건너갔다.
‘옆방?’
그러더니 바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가 중천에 떴다, 해가! 이 인간아! 어젯밤에 또 뭘 처 하고 잤기에 아직까지 드러누워 처 자고 있어! 당장 안 일어나? 야! 너 어제 또 야동 보고 잤지!”
“으아아아아아아아!”
한진성의 서글픈 괴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강진호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오빠.”
“……응?”
“오빠, 간만에 여기서 밥 먹으니까 다 살피고 싶어하는 건 아는데…….”
“응.”
“조리사분들이 지금 엄청 긴장하고 있거든?”
“…….”
“그냥 밥 먹자. 응?”
“알았어.”
강진호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없이 식판에 밥을 받았다.
과거, 성심 보육원은 소규모로 운영되었다. 그때는 보육 교사들이 아이들의 식사도 같이 만들었다. 하지만 새로 건물을 짓고 옮기면서 식당이 만들어졌고, 지금은 조리사를 고용하여 급식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이 음식이 먹을 만한지를 살필 때, 강진호는 음식의 재료는 신선한지, 아낌없이 식재료가 사용되었는지를 매의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좋아.’
강진호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조리실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조금 미안하네.’
아마 강진호가 자는 동안 누군가 오늘 밥을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언질을 준 모양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강진호가 군대에 있을 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저 지나가던 사단장이 화장실에 가려고 들러도 부대는 뒤집어진다. 사단장이 점검의 의지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식탁으로 다가와 앉은 강진호가 한진성에게 물었다.
“밥은 괜찮아?”
“형.”
“응?”
“부탁이 있는데, 원장님한테 이야기해서 제발 실험 정신 좀 버려 달라고 해.”
“……응?”
“나는 그냥 평범한 밥으로도 만족해. 급식으로 빠에야가 나오는 건 좀 심하지 않아? 한 번씩은 여기가 보육원 식당인지, 세계 음식 박람횐지 헷갈릴 때도 있어.”
“잘 나오는 모양이네.”
“밥은 진짜 잘 나와. 여기서 먹다가 학교 가서 급식 먹으면 밥이 안 넘어간다니까. 크으, 내가 급식충의 본분을 지켜야 하는데, 배가 불렀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겠지.
성심 보육원은 다른 보육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지원을 받고 있다. 일단 황정후가 재경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고, 거기에 강진호도 사재를 털어 넣고 있다. 국가에서 나오는 지원이 없어서 별 무리 없이 돌아갈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그 돈은 보육원의 운영에 100% 사용되고 있다. 강진호가 관심을 가지는 곳이라는 사실은 조규민을 긴장시켰고, 조규민의 긴장은 철저한 관리로 이어졌다.
일상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부금의 사용처 문제가 이곳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것이 선순환된다. 넉넉한 자금이 아이들에게 사용된다. 아이들은 최상의 상태로 다른 것들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다 좋은 일이다. 다만…….
‘수와 사람이라…….’
처해 있는 상황 때문인지 강진호는 그런 사실마저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강진호가 운영하는 보육원이 이곳밖에 없을 때는 이런 관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앞으로 보육원이 늘어나게 된다면?
수십 개의 보육원을 관리하면서도 지금과 같은 관리, 지금과 같은 지원이 가능할까?
그때는 보육원조차 숫자로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만약 그 모든 보육원을 이렇게 관리한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게 된다.
결국 성심 보육원의 원생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이 보육원이 비효율의 극치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비효율이 행복을 낳고 있다.
강진호가 국에 숟가락을 담궜다.
“입맛이 없어?”
“아니.”
“깨작거리는데.”
조미혜가 불만스레 말하자, 한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야! 식판에 담긴 게 벌써 반이 사라졌는데 깨작거린다고 하면 뭘 어쩌라는 거냐? 주걱으로 퍼먹기라도 하라는 거야?”
“오빠.”
“응?”
“진호 오빠 왔다고 나대는 건 이해하는데, 그러다 뒈져.”
“……미안.”
한진성이 찌그러졌다.
두 살 어린 여자애에게 기를 펴지 못하는 한진성을 보자니 강진호도 어쩐지 서글퍼졌다.
‘요즘 여자애들은 왜 이리 대가 세지?’
아니, 어쩌면 강진호의 주변 여자들이 대가 센 건지도 모른다.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한진성을 보며 물었다.
“공부는 잘되어가고?”
“죽겠어, 형.”
한진성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공부는 하고 있는데, 성적이 안 올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한진성의 반응에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조미혜를 바라보았다. 조미혜가 말없이 손가락을 위로 가리켰다. 성적이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 대학 노리고 있는데?”
“재경대.”
“……응?”
한진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서 재경대 노리는 게 아니라, 조 실장님이 재경대 가면 전액 장학금 해준다고 했어. 학자금 대출에 목줄 안 조이려면 재경대 가야 돼.”
“조 실장님이?”
“응. 다른 데 가면 국물도 없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조규민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한진성이 재경대에 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럴 확률이 없었다면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지.
“학원은?”
“쩔어.”
한진성이 진지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나는 잘 몰랐는데, 강사님들이 진짜 유명하신 분들이더라고.”
“그래?”
“정확하게는…… 갈수록 유명해지고 있어. 뭐라더라? 1타?”
“흠.”
“형, 돈을 얼마나 쓴 거야?”
“……나는 잘 몰라.”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다. 애들이 공부할 학원을 만드는 일을 조규민이 도맡아 했으니까. 좀 과하다 싶게 돈을 쓰기는 했을 것이다.
‘엄청 저질러 댔구나.’
돌이켜 보면 미친 짓이다. 몇 되지 않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곳에 학원을 만들고 유명한 강사를 끌어온다는 게.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얼마 전까지 강진호는 그런 일을 태연하게 저질러 댔다. 그러면서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결국 그 비효율이라는 것은 강진호의 재력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었다. 자신의 돈을 어떤 식으로 쓰든 그건 강진호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총회는 강진호 개인의 것이 아니니까.
회의 돈을 강진호의 방식으로 비효율적으로 소비할 수는 없다. 적절하게 효율과 비효율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의 강진호에게는 그 기준이 없었다.
‘뭐가 옳은 걸까?’
강진호가 밥에 숟가락을 꽂아 넣었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쉬라고 했지만, 머릿속에서 그런 고민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강진호가 떨떠름하게 밥을 먹자, 그 모습을 본 조미혜가 입을 열었다.
“오빠.”
“응?”
“밥 먹고 뭐 할 거야?”
“뭐 하냐니…….”
“집에 가?”
강진호가 살짝 고민했다.
조규민은 적어도 삼 일 이상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도 삼 일 정도는 못 들어갈 수 있다고 미리 말을 해뒀다.
그러니 집에 가는 건 좀 그렇고…….
“딱히 생각해 놓은 건 없는데?”
“잘됐다.”
“응?”
“오빠, 오늘 창고정리 할 건데, 같이 일 좀 해.”
“으응?”
“요즘 주말만 되면 오빠들 공부한다고 학원 가버려서 일손이 부족하단 말이야.”
“인력이 부족해?”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아이들이 창고를 정리할 수도 있다. 평범한 집에 자라는 아이들도 집안일을 돕는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아이들도 보육원의 일을 나눠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큰 남자애 몇몇이 빠졌다고 보육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였다. 아이들의 노동은 상수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사람을 더 뽑아야 할 텐데, 왜 더 안 뽑지?”
“사람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냐.”
“그럼?”
“여하튼 가보면 알아.”
조미혜가 빙긋 웃었다.
강진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