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02
#901.
몰아내다 (1)
쿠웅!
쿠우우웅!
배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전신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흔들림이 느껴진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노부오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조금 전부터 배를 뒤집어 버릴 것 같은 소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공격이라도 받는 건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여객선을 공격한다는 것은 전쟁을 치르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아무리 막 나가는 놈들이라도 전쟁을 불사하고 일을 벌일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 흔들림과 충격은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다. 배에 이상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물론 배에 이상이 생긴다고 이런 충격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들지만, 노부오가 선박에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비명 소리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이곳에 타고 있는 이들은 무인이다. 심지어 배가 반으로 갈라져 모두가 바다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도 저리 호들갑을 떨 이들은 아니었다.
결국 이 모든 정황은 단 하나를 의미했다.
‘습격.’
누군가 이 배를 습격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이상의 합리적인 추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멍청한 질문이다.
이 배를 노릴 만한 이들은 하나밖에 없다.
총회.
그들이 온 게 분명했다.
‘미친놈들.’
황당하다.
물론 그들에게 일본이 침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노부오 자신이다. 하지만 노부오 역시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대비할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지금 누군가가 그쪽으로 쳐들어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준비를 마치고 중간에서 요격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특히나 덩치가 큰 조직일수록 신속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대화된 조직은 당연히 보고 체계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효율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소규모 집단에 비해서는 그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뭔가.
그의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부터 바로 움직였다고 해도 이 정도의 쾌속함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저들이 노부오가 소식을 전하기 이전부터 이 상황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그게 말이 맞지.’
상식적으로는 그쪽의 말이 맞았다.
노부오가 저쪽으로 메시지를 넣은 것은 객기에 가까웠다.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굳이 확인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노부오가 총회의 소속으로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면, 과연 그걸 윗선에다 보고했겠는가.
설사 보고가 들어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간단한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확인해 볼 윗대가리 놈들이 있을 리 없다.
확인을 해보면 된다고?
배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항로는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고정된 항로를 지키지 않을 경우를 감안하면 바다 전체를 뒤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걸 지시하고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날아든 메시지 하나에 그만한 일을 지시한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는 총회라면 말이다.
이건 총회를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노부오가 일본에 있고, 그의 지인이 한국이 지금 일본을 침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온다면 노부오는 어쩔 것인가.
보고?
그래,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보고를 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빤하다. 보고는 윗선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의 상급자 선에서 잘릴 것이다. 정신 차리라는 말이나 돌아오겠지.
노부오 역시 자신의 메시지가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기를, 최소한 해안의 경비라도 강화하는 선택을 해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 배가 한국에 닿기도 전에 직접 배로 쳐들어온 것이다.
무시무시한 행동력과 무시무시한 결단력이었다. 설사 저들이 노부오가 보낸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준비했다 하더라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전 세계 어디를 뒤진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조직은 없을 것이다.
“크흐흐…….”
노부오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럼 됐다.
그가 완전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들은 어쨌거나 일본이 침공한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그럼 그걸로 된 것이다.
그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
노부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훑어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깊은 한숨이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죽는 건가?’
이상하지 않지.
그가 당한 고문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의 육체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나카타 유지에게 그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두고두고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으니까.
아마 이 정도면 노부오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그가 계산하지 못한 것은, 노부오에게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의지가 없다는 정도겠지.
어차피 그는 그의 삶을 모두 버렸다.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배신자가 되어 처절한 고문 끝에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간다고 해도 다를 것이 없다.
그곳에서 그가 받을 것은 반쪽발이라는 멸시뿐이다. 더구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걸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무공이라도 남아 있으면 모르겠는데 말이지.’
노부오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아랫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나카타 유지는 그가 저항을 시도하는 순간, 그의 단전부터 깔끔하게 파괴했다. 이제 그는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을 것이다.
무학을 잃고, 나라를 잃고, 삶을 잃었다.
그런데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갈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하려 했던 것이 이뤄졌다면, 그걸로 됐다. 이제 노부오에게는 다른 길이 남아 있지 않았다.
“큭큭큭.”
노부오가 나직하게 웃었다.
열사라도 된 느낌이다.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그분들의 이름을 노부오가 입에 올리는 것은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기분이었다.
‘후회하지 않았을까?’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가시지를 않는다.
그분들은 차디찬 감옥에서 고문당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어떤 독립운동가는 감옥에서 고문받고도 재판장에서 오히려 판사를 꾸짖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죽음을 앞당기는 그런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노부오는 이렇게 후회가 되는데.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회한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멍청했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지금 노부오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마지막에 노부오를 지배한 감정은 단 하나였다.
허탈함.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도,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는 후회도 남지 않았다. 한차례씩 격렬한 무언가가 그를 휩쓸고 지나가더니,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그저 허탈함뿐이었다.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은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현명하게 행동했다면, 그 역시 조금은…….
‘웃기지도 않지.’
이제 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이제 죽어갈 텐데.
저들은 노부오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제보자가 있다고 해서 그 제보자를 찾으려 들지는 않는다. 그저 제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할 뿐이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뒤에야 노부오를 찾아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에 노부오는 이미 죽고 없다.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자신은 이곳에서 죽어갈 것이다. 그들이 굳이 이 배를 샅샅이 뒤져 그를 찾아내 데려가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일본이 이긴다면 당연히 죽는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이 개 같은 일본 놈들에게 제대로 엿을 한 방 먹였다는 것을 위안 삼아 죽어가면 되는 것이다.
죽어가면…….
노부오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인정하자 눈물이 계속 새어 나온다.
멋지게 죽을 수는 없다.
멋있는 죽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다. 노부오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보라.
세상이 흔들린다.
쿠웅, 쿠웅, 울려오는 거대한 폭음.
동시에 거대한 격랑이라도 만난 듯 뒤흔들리는 바닥.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어디선가 새어 들어온 빛과 만나서 제멋대로 뒤섞이고 있었다. 이것이 죽음을 맞는 이가 보는 광경이라면…… 꽤나 멋지지 않은가.
눈이 부신 듯한 빛의 환상 속에서 노부오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파묻힌 사내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본다.
‘저승사자? 아니면 천사?’
그 어느 쪽이겠지.
확실한 것은 이자는 사람은 아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노부오는 확신했다.
그가 생각하는 저승사자나 천사와는 좀 다르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그들이 갖추어야 할 ‘이질감’을 갖추고 있었다. 그저 겉모습만으로도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말이다.
고통 없이 죽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까?
노부오는 피식피식 웃었다.
그래, 죽었다.
그럼 이제 물어야겠지. 자신이 지옥으로 갈지, 그게 아니면 천국으로 갈지.
한국인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칭송받을 수도 있고, 어쩌면 길이길이 기억될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는 살육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살육을 저지른 죄인이 아닐까?
저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천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천사의 언어는 노부오의 귀에서 해석되지 못했다. 들어본 적 없는 언어. 천사와 인간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노부오였다.
천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노부오의 귀에 익숙한 말이 들려왔다.
천사의 옆에 뭔가 인간 같은 얼굴이 불쑥 내밀어지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뭐야, 이 새끼? 왜 맛이 가 있어?”
‘한국어?’
뭐지?
왜 저자가 한국어로 말하는 거지?
그가 한국인이라서?
그럼 저 사람은 통역…….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니가 노부온가 뭔가 하는 그놈이냐?”
“예?”
노부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야? 여기 현실이야?’
그럼 이자는 뭔가?
보통 사람의 세 배는 될 듯한 덩치를 가진 이 괴물은?
“쯧쯧, 고문도 심하게 당했네. 일어나, 인마. 밖으로 나갈 테니까.”
괴물.
아니, 바토르가 혀를 차더니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노부오의 몸을 장난감처럼 달랑 들어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도 상황 파악이 덜 된 노부오는 이런 공주님 안기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