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73
#972.
살육하다 (2)
[여긴 알바트로스 나인! 팔콘 에잇, 응답하라! 팔콘 에잇!]무전기를 바라보는 켄드릭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무전기는 난리가 났다.
세 개 이상의 채널이 지원되는 무전기지만, 쏟아지는 무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도한 채널이 동시에 접속하려다 보니,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하나는 확실하다.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넘버가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숲 가장자리에서 처음 들려온 무전이 점점 더 중심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럼 그 앞에 있던 이들은?
켄드릭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생각할 것도 없다. 무전을 보내던 이들이 더 이상 무전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단 하나를 의미하니까.
최소 전투 불능.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사망.
‘살아 있기만을 빌어야겠지.’
[알파에서 전달한다.]켄드릭이 긴장한 눈으로 무전기를 바라보았다.
지휘부에서의 전언이다.
[경계를 맡고 있는 이들 모두 지금 당장 이글 원으로 이동한다. 다시 한 번 전달한다. 전 병력, 이글 원으로 이동한다. 움직여!]다급함이 느껴진다.
그렇겠지.
지휘부는 그들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 숲은 그냥 숲으로 보이겠지만, 그냥 숲이 아니다.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수많은 부비트랩과 CCTV, 그리고 위성 감시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요새에 가깝다.
그런데…….
[밀린다! 못 막아! 후퇴! 후퇴한다! 후퇴! 오, 오지 마! 으아아아아악!]켄드릭이 얼굴을 굳혔다.
‘방금은 어디였지?’
이번에는 초소 이름마저 들리지 않았다. 이전에 들려온 무전으로 판단했을 시, 적은 숲 안으로 침투 중이다. 5㎞를 돌파하는 데 불과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가능한가?’
켄드릭에게는 무리다.
방해없이 전력으로 주파한다고 해도 5㎞를 십 분 만에 뚫을 수는 없다. 평지라면 무리 없이 가능하겠지만, 이곳은 원시림이 살아 있는 숲이다. 평소 속도의 반도 낼 수 없다.
개인이 전력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가능할까 말까 한 속도다. 그런데 저 다수가 저항을 받으며 이동하는데 이 속도를 유지한다고?
지옥의 군단이라도 온 건가?
“이, 이동은?”
“간다!”
윌셔의 떨리는 목소리에 켄드릭이 이를 악물었다.
‘이글 원이 어디지?’
머릿속에 지도를 그린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서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윌셔도 그를 쫓아 달린다.
‘빌어먹을.’
달리는 와중에도 켄드릭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쳐들어왔다는 것은 알겠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빤히 벌어지는 일을 부정할 만큼 그는 멍청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적의 진군 속도였다.
‘이게 가능한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다.
나이트 르보는 영국 무인들이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과도한 경계를 지시했다. 지금 이 숲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다.
영국의 정예들이다.
그런 이들이 과도한 근무표에 욕을 할 만큼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
나이트 르보가 프랑스의 정예병들을 직접 이끌고 쳐들어온다고 해도 이런 속도는 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물리치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릴 테니까.
그런데…….
[아아아악! 아악!] [사, 살려줘! 놈들이 온다! 다, 달아나!]무전기 너머로는 끔찍한 비명밖에 들리지 않는다. 켄드릭을 더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전기에서 들리는 이들의 절망 어린 목소리였다.
‘대영제국의 기사들이 아닌가.’
수십 년간 나라를 지키고 세상을 수호하기 위해 무학을 익혀온 이들이다. 그들의 굳건한 정신력은 일반적인 병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저런 비명 소리라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체 뭘 봤길래?’
영국의 무인들이 단체로 겁쟁이가 되었을 리는 없다. 켄드릭 역시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들을 비웃을 만큼 특출 난 정신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죽는 순간, 저리 비명을 지르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그의 동료들이 저리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건 이쪽의 문제가 아니다.
쳐들어오는 이들의 문제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이 켄드릭을 덮쳤다. 켄드릭이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고개를 돌려 폭음이 터진 곳을 바라봤다.
튀어 오른다.
켄드릭의 입이 헤, 벌어졌다.
달도 그 모습을 감춘 어둠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서야 켄드릭은 그것이 잘려 나간 아름드리 거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미친!”
직경이 2미터는 넘을 거대한 거목이 장난감처럼 튕겨 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뭔가, 저 광경은?
중장비를 동원한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저 나무 하나의 무게가 얼만데 저리 쉽게 튀어 오른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져야 저런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무가 튀어오르는 곳과 켄드릭이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정도…….
켄드릭이 화들짝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지금 안심한 건가?’
치욕적인 일이다.
적의 침투를 막아야 하는 무인이 적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다니. 무학을 익힌 이후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켄드릭이 이를 악물었다.
‘아니야.’
안심한 게 아니다. 지금 켄드릭에게 내려진 명령은 응전이 아니라 합류니까. 내려진 명령에 충실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한 것뿐이다. 정말 그것뿐이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되뇌며 켄드릭이 달리고 또 달렸다.
“가, 같이 가!”
윌셔가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켄드릭이 짜증을 부리며 속도를 조금 줄였다.
눈앞에 보이는 넝쿨을 검으로 잘라내고, 나뭇등걸을 밟고 뛰쳐나간다. 그런데도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직선으로 달리기에는 나무가 너무 많고, 속도른 내기에는 발밑에 걸리는 게 너무 많다.
‘교전 없이 달리는데도 고작 이 속돈데…….’
저들은 뭘 하고 있기에 저런 속도로 이동한단 말인가.
콰아아아아아앙!
폭음이 또다시 들리는 순간, 켄드릭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홱 돌아갔다.
‘빌어먹을!’
나무가 튀어오르는 곳이 훨씬 가까워졌다. 대충 눈대중으로만 봐도 그가 이동한 거리보다 저들이 이동한 거리가 훨씬 많다.
‘이게 말이나 되냐고!’
머리로는 더 이상 정리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불안해지기만 하니까. 켄드릭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내치고 하나에만 집중했다.
최대한 빠르게 합류한다.
합류해서…….
합류해서?
합류해서 뭘 어떻게 할 건데?
켄드릭의 떨리는 눈이 다시 옆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울창한 숲은 그들의 시야마저 앗아갔다. 분명 막고 있는 입장이지만, 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적.
아무도 막지 못하고 있는 적.
그런 이들을 막아야 한다. 그의 손으로.
켄드릭이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가, 같이 가자고!”
이제는 더 이상 윌셔의 투정이 들리지 않는다. 지금 달리는 속도를 늦추면 더는 뛰지 못할 것 같다. 점점 더 늦어지기만 하겠지.
가고 싶지 않으니까.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건 의지로 가능한 게 아니니까.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버린 머리로 켄드릭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알바트로스 포. 도착했습니다!”
질척이며 달라붙는 불안함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인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미 현장에는 많은 이들이 도착해 있었다.
켄드릭이 늦은 건 아니다. 애초에 이동하는 거리가 다 달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켄드릭은 어쩌면 자신이 조금 늦은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라앉아 있다.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음에도 분위기는 더 이상 침체될 수 없을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앞쪽으로 포진해! 대형에 합류해라!”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명령의 반응해 온 그의 몸은 켄드릭이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대형이라고?’
초소의 앞쪽 거대한 공터.
그곳에 일백에 가까운 이들이 도열해 있었다.
마치 바리게이트처럼.
일견 합리적인 진형이다. 켄드릭은 기사. 상대를 몸으로 막거나 공격한다. 그러니 전방에 서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후방은 마법사들이나 성직자들이 서겠지. 지원을 해야 하니까.
합리적이다. 물론 합리적이다.
전방에 서 있는 이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불안과 공포에 젖어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사람을 진정으로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은 강대한 적이 아니다. 보이지 않거나, 예측할 수 없는 적이다.
누군가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 적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면? 어떤 식으로 어떻게 공격해 올지도 예상할 수 없다면?
그건 상대할 수 없는 적 이상으로 사람을 공포에 빠지게 만든다. 내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를 수 있다는 뜻이니까.
켄드릭의 다리가 살짝 떨렸다.
알고 있다.
명령은 절대적이고, 이곳에서 도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버텨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련을 해왔으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무얼 위해서 이곳을 지키는 거지?’
우습지도 않은 일이었다.
적의 의도는 너무도 분명하다. 지금 이 시점에 쳐들어온다는 것은 원탁의 핵심부를 타격하거나 마스터를 구출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시점이 너무 공교로우니까.
다시 말해…….
지금 켄드릭은 나이트 르보를 지키고 마스터를 풀어주지 않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왜?’
이해할 수 없다. 납득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대형에 합류해 있었다.
과거에 들은 적이 있다. 제식이라는 것은 진형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라고. 앞으로 가라면 가고, 뒤로 돌라면 돈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제식이라고.
지금 이 순간, 켄드릭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적을 막겠다고 대형을 갖춘다.
이런 병신같은 일이 또 어디 있는가.
“아, 아니!”
켄드릭이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온다!”
그의 말이 거대한 고함 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와 동시의 그의 눈앞에 보이는 숲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끝도 없는, 나무로 이루어진 드넓은 숲은 마치 바다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바다가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들썩인다.
그리고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앙!
전방을 틀어막고 있는 나무들이 폭음과 함께 수수깡처럼 부러져 사방으로 비산한다.
켄드릭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폭발과 함께 일어난 먼지구름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걸어 나온다.
아름드리나무 같은 거대한 팔과 다리,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몸뚱아리, 그리고…….
“크아아아아아!”
붉게 물든 두 눈, 그 괴물과도 같은 몸을 감도는 알 수 없는 시커먼 기운까지.
지옥의 악마가 그대로 세상에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을 보며, 켄드릭은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주여.
당신의 어린양을 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