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7
제45장 전운의 징조 (4)
“초운휘 임시 교관. 맞습니까?”
객잔을 엄중히 호위하고 있는 이들은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창천백검대였다.
일전에 묘진문 앞에서 마주한 적 있는 이들이었지만, 전과 달리 고압적인 자세는 온데간데없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지요.”
대원을 따라 들어간 곳에는 실내임에도 기이화초가 가득한 정원이 나왔다.
‘꽤 고상한 취미로군.’
자신을 호출한 이는 이미 정원의 너머에 있었다.
다만, 있는 이들은 남궁찬뿐이 아니었다.
백리선호와 모용주 두 사람도 함께였다.
‘어딜 갔나 했는데.’
이런 곳에 있었나?
발걸음을 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초운휘 교관.”
남궁일준이었다.
그가 경고하듯 귓가에 한 마디를 흘렸다.
[본 가의 어른께 실례하지 말게.]“노력해보죠.”
터덜터덜 안으로 들어가자, 모용주가 눈을 굴렸다.
“허허. 이런 자리는 오랜만이군.”
“밖에서 뵙는 것은 처음 아닌가요?”
“그동안 격조했지.”
모용주는 손녀에 대한 말을 꺼내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었지만, 남궁찬을 곁눈질하며 말을 아꼈다.
“자, 어서 앉게. 자네를 위해 어르신께서 만든 자리니까.”
백리선호의 손짓에 털썩 자리에 앉고는 눈앞에 사람을 보았다.
“허허. 진짜 올 줄은 몰랐네. 배짱이 대단하군.”
남궁찬은 얼마 전에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가 쌩쌩 부는 겨울바람 같았다면, 지금은 봄바람? 그런 느낌이네.’
분위기만 다른 것은 아닌 듯했다.
쪼르륵.
“먼 길 오는데 수고했을 텐데, 한 잔부터 하지.”
잔을 채워주는 손길도 부드럽다.
쭈욱.
잔을 비운 초운휘가 탁 탁자에 잔을 올려두었다.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꽤 직설적인 인사였군.”
“제가 좀 바쁜 몸이라서요.”
바로 본론을 묻자 곁에 있던 모용주와 백리선호가 도리어 기겁했다.
“이 사람아. 좀 숨 좀 돌리세.”
“어른께서 부르신 마당에 무슨 실례란 말인가?”
입 모양으로 욕하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이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나 보다.
‘엄한 사고라도 나올까 쫓아온 모양이군.’
하지만 의외로 남궁찬의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가 걸렸다.
“놔두게. 젊은이들의 패기를 보는 것도 싫어하지 않아.”
직설적인 것도 좋지.
남궁찬이 껄껄 웃으며 툭 말을 던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윤호를 어찌하면 내어줄 수 있겠나?”
“윤호를 제가 왜 내어줍니까?”
“자네를 따르는 것 같아 하는 말이네.”
“대가리가 여문 녀석이니 제 갈 길 알아서 정할 테지요.”
허허.
부드럽게 웃은 남궁찬이 백염을 쓸었다.
“자네는 내게 꽤 화가 난 것 같군.”
“딱히 화는 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엄한 집을 놔두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신출내기 교관에게 매달리는 꼴이 이해가 안 가서요.”
명백한 도발.
“이 사람아.”
모용주가 턱을 덜덜 떨었지만, 초운휘는 멈추지 않았다.
“가만 보니 없는 집구석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얘를 따돌려서 저를 귀찮게 만듭니까?”
“화가 난 것 맞군.”
의외로 남궁찬은 수긍하며 말했다.
“솔직히 실수를 인정하지. 나의 결단이 너무 안일했어.”
“어르신.”
백리선호의 탄식과 함께 남궁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게. 자네는 남궁세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글쎄요?”
화려하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힐끔거린 초운휘가 대답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는 집이라는 거?”
“초 교관!”
남궁일준과 함께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창천백검대의 손이 검에 올라갔다.
“되었다.”
미리 예상하고 손을 든 남궁찬이 아니었다면 달려들어 머리끄덩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이는 보지도 않고 초운휘는 물었다.
“왜 애를 내버린 겁니까?”
“…아무래도 좀 자세하게 설명해야겠군.”
툭.
기품 있게 잔을 내려놓은 남궁찬이 손가락을 들어 한켠을 가리켰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창천백검대일세.”
“상당한 고수로 보이시는군요.”
“그렇지. 오직 절정의 고수만이 검대에 들 수 있으니까.”
자부심 섞인 목소리로 남궁찬이 설명했다.
“만약 윤호가 남궁가의 일개 일원이었다면 난 아이를 끝까지 챙겼을 거야.”
“일개 일원이 아니면요?”
“다만 남궁가의 직계로서 가문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야.”
일원과 직계는 전혀 다르다.
남궁찬은 선을 긋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직계 혈족으로서 자라나면 막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지.”
“그렇습니까?”
“이런 호화로운 객잔에서 밥을 먹는 일은 일도 아니야.”
매 끼니 금으로 양식을 지어 먹는다고 해도 탓할 사람도 없지.
“윤호는 가주의 자식일세. 존재만으로 권력이 생기지.”
“가주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요?”
“자네는 모르겠지만, 남궁가의 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싸 들고 찾아온다네.”
“그것참 편하겠네요.”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지. 사소한 대화가 밖에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생각 없이 내뱉은 정보 하나가 엄청난 이권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겠네.
“일전에 한 아이가 술김에 말을 흘렸네.”
별로 사소한 것은 아니었어.
“그저 요즘에 식욕이 없다. 아이라면 할 수 있는 하찮은 투정이었지.”
“그런데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겠나?”
잠자코 대답을 기다리자, 남궁찬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본 가에 곡식을 대던 상단이 망했네.”
“네?”
“그 상단의 곡식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허.”
곁에서 모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이야기지.”
“유명한 이야기라고요?”
“세가의 아이들에게 말조심하라고 말할 때 꼭 언급하는 일이거든.”
미친 일이 진짜로 일어났네?
남궁찬의 설명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또한, 날이 밝기 무섭게 가문 앞에 긴 줄이 생겼네. 새롭게 곡식을 대겠다고 찾아온 상단들이었지.”
“…….”
“사소한 한 마디에 본 가와 오래 거래하던 상단의 일천 명이 길거리에 나앉고 말았어.”
곡식의 품질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아, 다른 거래처와도 계약이 끊어졌거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나?”
“밥은 항상 맛있게 먹자?”
“끌끌끌. 꽤 농이 심하군.”
남궁찬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일전의 윤호에게는 이런 막중한 혈족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패기가 없었어. 무공 또한 마찬가지고.”
“그랬군요.”
“어느 것에도 망설이기만 하던 아이가 세가를 물려받으면 결과는 뻔했지.”
빙빙 돌리는 말꼬리에 초운휘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서. 버린 겁니까?”
“초 교관!”
백리선호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로서는 이 무서운 어른 앞에서 조금도 말을 거르지 않는 초운휘가 걱정되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궁찬은 반응하지 않았다.
“맞네. 버렸지.”
대신 간단히 수긍했을 뿐이다.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시네요.”
“맞는 것을 틀렸다 말할 정도로 타락한 사람은 아닐세.”
거기까지 말한 남궁찬이 잔술로 목을 축였다.
“세간에서 나를 부르는 별호는 꽤 많다네. 검성, 창천신군. 그 전의 별호가 뭐였는지 아는가?”
“창천신협이었습니다, 어르신.”
모용주의 추임새에 남궁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알겠지만, 생각처럼 매정한 사람은 아니라네.”
“그런 것치곤.”
“내가 무정해지는 것은 오직 세가의 일에 관련되었을 때야.”
솔직히 못 믿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천하의 대 남궁세가 태상가주.
검성이라 불리는 존재가 일개 말단 교관과 자리를 함께한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파격이니까.
“거참 감사하군요.”
“자네는 입만 열면 어찌 못 돼 보이는가?”
모용주의 딴죽에 관계없이 남궁찬이 웃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자네에게 세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함이야.”
내 자식 녀석은 제법 가주의 기틀을 갖추긴 했지만, 아직 유함이 부족하거든.
덧붙이며 남궁찬이 백미를 세웠다.
“첫째 제안일세. 자네. 남궁가의 지붕 아래로 올 생각이 없는가?”
“교관이 천직인지라.”
“혈연으로 묶이는 방법도 있다네. 참한 일족의 아이를 내어주지.”
“전 연애 지상주의자라서요.”
“그런가? 하긴 곁에 꽤 멋진 여성이 붙어 있더군.”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정정하기도 전에 모용주가 덧붙였다.
“어르신. 요즘 애들은 꼭 혈연으로 묶일 필요가 없습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거리가 가장 좋다던데.
“그런가?”
속삭이자 남궁찬이 바로 다음 제안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 자네가 어찌 윤호에게 어떤 가르침을 내렸는지 알려주게.”
“끊임없는 관심과 세심한 손길로 가르쳤습니다.”
나름 진심을 담아 대답했지만, 이번에는 백리선호가 딴죽을 걸었다.
“애들에게 물어보니, 제때 출근하는 법이 없다던데.”
이럴 수가.
악독한 조교들의 입을 단속하는 것을 잊었다.
“하하.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제 밥줄이니까요.”
“그럼. 다음 제안으로 넘어가겠네.”
탁.
화려한 진수성찬 중에 오직 초라한 소채만 집어 우물거린 남궁찬이 마지막 제안을 입에 담았다.
“세 번째. 윤호를 세가로 돌려보내게.”
이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야.
남궁찬의 기세가 산악처럼 일어났다.
드드드드드드!
“어르신!”
갑작스럽게 일어난 기세에 모용주와 백리선호가 기겁했다.
그럼에도 남궁찬의 기세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일어나.
드드드드드드!
쉬지 않고 객잔의 모든 것을 흔들어냈다.
단순히 공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광풍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과연 검성이라 불릴 만한 모습이었다.
“흡.”
조금 전까지 초라한 노인처럼 보이던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 번째 제안이 거절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드드드드드드!
전각을, 나아가 소호 전체를 뒤흔들 것 같은 기파를 뿜어내면서도 남궁찬은 여유롭게 입을 열어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호에게 도움이 될 길은 세가가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점이야.”
“…….”
“아. 기세에 눌려 말을 못 하는 건가? 이것 참 미안하군.”
말과는 달리 한층 더 기세를 압박해 천지를 흔들어내며 남궁찬이 입술을 달싹였다.
“땅바닥에 붙어 오직 올려다봐야만 하는 자네는 모를 것이네.”
자네 같은 얼치기 인생과 달라.
제왕의 씨앗은 흔한 것이 아니지.
“이제라도 내려다만 보며 살게 해야 할 아이일세.”
일개 임시 교관의 욕심에 미래를 꺾어 버릴 수가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정론이야.”
창고를 채우고도 남을 재물.
말 한마디에 수천수만의 사람들을 움직일 권력.
나아가 천하를 떨쳐 울릴 신공절학까지.
“맛보지 않은 것을 모르는 것은 이해하지만, 자네가 먹어보지 못한 진미라고 아이에게 권하지 말라는 것은 횡포가 아닌가?”
우두둑!
“큭!”
기파에 휘말린 초운휘가 앉은 자리 채로 한치가 내려앉았다.
기세만으로 중력을 수십 배나 배가한 것과 같은 신기를 일으킨 것이다.
“어르신! 멈추십시오!”
“초 교관이 다칩니다!”
우우웅!
모용주와 백리선호가 나름 기운을 일으켜 보호하려 하였지만.
콰득!
두 사람의 기운을 손쉽게 밀어낸 남궁찬이 기세를 더했다.
그럼에도 여유로운 남궁찬이 마지막이라는 듯 제안을 읊조렸다.
“결정하게. 내어놓을 것이냐.”
아니면, 이곳에서 된통 당할 것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할 때였다.
“으득. 맞다. 두 번째 제안이 떠올랐네.”
두 번째 제안?
‘어떻게 가르쳤냐고 물었던 것 말인가?’
굳이 지금 두 번째 제안을 언급한 이유는 뭘까?
싶던 순간이었다.
쾅!
몹시 믿기지 않게도 자신의 기운을 버티어 낸 것도 모자라.
탁자를 걷어차 부순 초운휘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개 X같이 구는 쉐끼 있으면, 일단 들이받고 보라고 했는데.”
‘이놈이?’
광기마저 느껴지는 눈빛에 남궁찬이 재차 기운을 끌어올리려던 때였다.
“가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일을 방해당한 남궁찬이 노성을 지를 때였다.
눈에 띄게 당황한 창천백검대원이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알려왔다.
“본 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