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32
제57장 칠천사도의 행방 (3)
“일을 같이하자고?”
“너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다.”
목소리를 낮춘 흑문사검이 운을 떼었다.
“최근에 동정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몰라. 관심도 없고.”
“끌끌. 강호초출인 녀석이 이렇게 귀가 어두워서야.”
혀를 찬 흑문사검이 몸을 기울여 왔다.
“철사련주께서 장강십팔채의 토벌을 선포하셨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를 도와 명성을 날릴 기회라는 뜻이지. 어떠냐? 말만 하면 좋은 자리를 알아봐 주마.”
“생각 없어.”
“철사련의 거물의 눈에 띌 기회다. 이만한 제안은 흔치 않아.”
“내 사부가 했던 말이 있지.”
검지로 식탁을 꾹꾹 누르며 초운휘가 히죽 웃었다.
“강호에 나가거든 솔깃한 제안이랍시고 해오는 이를 조심하라고.”
“…설익은 가르침이라 하나, 사부가 되어 아무것도 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군.”
관심이 없다는 듯 흑문사검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뇌호문에 있다. 생각이 바뀐다면 찾아오도록.”
“같이 일할 생각 없다니까.”
“끌끌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아가야.”
펄럭.
장포를 흔들며 흑문사검이 몸을 돌리자, 이쪽을 구경하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 길을 비켜 주었다.
‘뇌호문의 이인자라더니 꽤 알려진 모양이군.’
내일이 없이 사는 삼류 무인들마저 겁을 먹는 것을 보면 말이다.
확실히 그의 곁에 있다면 한층 더 수월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덥썩 미끼를 물어서야 칼받이 정도로 쓰이겠지.’
어떻게 쓰일지, 어느 역할을 맡을지는 오롯이 스스로 결정할 생각이다.
‘흐흐. 꽤 속이 쓰릴 거다.’
***
주루를 나온 젊은 제자 무광이 흑문사검을 따라잡았다.
“사부님. 저 천둥벌거숭이 녀석을 어째서 가만두신 겁니까?”
성격이 차갑고 손속이 잔인한 사부다. 경망스러운 놈을 징치하지 않고 일어난 것이 몹시 의아했다.
“모자란 것. 천둥벌거숭이 따위에 당한 놈이 할 말이냐?”
“그, 그건 저자가 워낙 기습적으로 공격을 해온지라.”
“눈도 어둡기 짝이 없구나. 놈의 검법은 진짜배기였다.”
“사부님께서 높게 평가하실 정도입니까?”
처음으로 첫째 제자 흑광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는 아까 놈이 비천십자검을 펼치는 것을 보았더냐?”
“확실히 빠르기는 했습니다. 허나, 대비하고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모자란 것들.”
대꾸에 흑문사검이 혀를 찼다.
“식탁에 올려둔 검을 뽑아, 나와 일격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검을 놓았지.”
“그건 보았습니다만.”
“검을 뽑아 베고, 나와 검을 부딪친 후, 납검을 하는 데까지 놈의 검집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보았더냐? 전력을 다 보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
“!”
사부를 상대로 여력을 두었다?
두 제자가 눈을 부릅떴다.
“그럼에도 손목이 뻐근해질 만큼 강력한 역도가 검 끝에 실려 있었다. 알겠느냐? 건성으로 펼친 검법만으로도 나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단 말이다.”
“그건…. 과연 놀라운 일이군요.”
사색이 되던 둘 중 무광이 안색을 굳혔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무명객이 사부의 인정을 받은 것에 시기심이 든 것이다.
“그럼 더욱 가만히 놔둘 수 없지 않습니까?”
“이 중차대한 시기에 내가 몸소 놈을 두 쪽을 내었어야 옳더냐?”
“그, 그건.”
흑광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사부님께서는 묘안이 있으시군요.”
혈십자검과 사부는 앙숙이나 다름이 없는 사이다. 경쟁자의 제자가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닌 것이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였다.
“놈이 자신의 검법을 전수하는 것에 골몰한 나머지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를 키웠어.”
“확실히 강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보이더군요. 관심도 딱히 없는 것 같고.”
“강호는 힘만 센 멍청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성격이 드세니 원한을 살 것이요, 글자를 모르니 쉽사리 이용당하겠지.”
“…그렇다는 말은.”
“은자를 툭툭 던지는 꼬라지가 곧 길바닥에 나앉을 기세더구나. 그때 우리가 놈을 이용하면 된다.”
“사부님께서는 놈이 찾아오리라 생각하시는군요.”
“당연하지 않으냐? 갓 상경한 애송이 놈이 매달릴 줄은 없을 테니까.”
교활하게 웃은 흑문사검이 첫째 제자를 향해 말했다.
“흑광아. 너는 놈을 뒤따르며 최대한 빠르게 빈털터리가 되도록 만들어라.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까마귀 같은 성격이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네, 사부님!”
“무광이 너는 뒷조사를 맡아라. 혹시 모르는 일이니.”
“알겠습니다, 사부님.”
“넵!”
두 제자의 대답에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흑문사검이 연신 실소를 흘렸다.
“혈십자검. 네놈의 제자 놈은 내가 잘 사용해 주마.”
흑문사검이 대소를 터트렸다.
***
“형장! 형장!”
다시 주루에 들어선 흑광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이를 발견하곤 다가갔다.
“뭐야. 아까 간 형씨 아냐? 시비라도 걸러 온 건가?”
불콰하게 취한 가운데, 검집으로 손을 가져가는 모습에 흑광이 손사래를 쳤다.
“조금 전의 일은 결례가 많았소. 사부께서 생각해보시고는 안되겠다며 나를 보내셨소?”
“뭐야? 싸울 생각으로 온 게 아니야? 에이, 재미없게.”
검집에서 손을 거두고는 연신 술잔을 채우는 양을 지켜보던 흑광이 점소이를 불렀다.
그리고는 가장 비싼 술을 가져오게 하고는 반대편에 앉았다.
“뭐야? 사과는 받았으니, 어서 가.”
“하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함께 하면 어떤가?”
“난 혼자 있는 쪽이 좋은….”
“술은 내가 사지.”
“내가 또 사람을 무척 좋아하지.”
얼른 말을 바꾸고는 뭔가 켕기는 듯 변명하기 시작한다.
“딱히 내가 좀스러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야. 난 돈에 연연하지 않는 호탕한 사람이거든.”
“그런가?”
“진짜라니까.”
한참을 자신이 얼마나 대범한지, 손이 큰지를 떠드는 모습에 흑광은 내심 웃었다.
‘사부님의 말씀 대로로군. 이놈은 무공 외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어.’
대범함을 과시라도 하듯 은자를 툭툭 꺼내는 모습에 왠지 앞으로의 운명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대의 호방함은 잘 알았으니, 앞으로 잘 지내보세.”
“흐흐. 나도 잘 부탁해.”
“참. 사부의 유지를 따라 동정호의 풍류를 즐기고 있다고 했던가?”
“응. 솔직히 내키지 않지만, 유언이니 적당히 즐기고 이곳을 뜰 생각이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생각한 흑광이 은근히 제안했다.
“뇌호문은 동정호 인근에서 유서 깊은 대문파라네. 원한다면 풍류를 즐기는 데 도움을 주고 싶군.”
“…도움? 도움이라.”
꺼리는 기색에 흑광이 냉큼 올가미를 던졌다.
“내 이름만 대도 상당히 요긴할 거야. 단골에게는 통 크게 값도 깎아주거든.”
“정말이야? 그럼 부탁하지.”
냉큼 수락하며 기뻐하는 상대를 보며 흑광이 속으로 비웃었다.
‘얼빠진 놈. 속옷까지 탈탈 털어주마.’
***
개방도가 가져온 소식에 취걸개가 뒷목을 잡았다.
“주루에 이어 도박장인가?”
“아침에 들어가 밤새 골패를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부족할 마당에, 두 발로 놈들의 안방까지 걸어 들어가다니.”
“뭔가 사연이 있지 않겠습니까?”
능풍운이 조심스레 두둔하려 했지만, 개방도의 소식은 한층 더 절망적인 것이었다.
“뇌호문의 총관, 흑문사검의 대제자가 곁에 붙어 있습니다.”
“컥! 흑문사검같은 작자가 왜!”
“주루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워낙 위험한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 자세한 일은 잘….”
“어서 가서 돌아오라 전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짜증 섞인 손짓으로 지시했지만, 개방도는 우물쭈물 자리를 지켰다.
“보고할 것이 남아 있는 거냐?”
“그게….”
잠시 말을 곱씹은 개방도가 마저 소식을 전했다.
“흑광이라는 자와 아주 소꿉친구처럼 붙어 다니는 탓에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
“심지어는 술에 취해 시비를 걸고 다니는 탓에 원수를 잔뜩 산 터라, 몰래 죽여버리겠다며 은밀히 뒤따르는 무리가 적지 않아서….”
이어지는 말은 이 인간이 신무학관의 교관인지, 사파의 말종 놈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고, 두야.”
뒷목을 잡던 취걸개가 비틀거리며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초 교관은 무슨 생각일까요?”
“뭔가 노리는 것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만.”
애써 고민해봐도 도통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의문은 골치만 아플 뿐이다.
심지어 칼날 위에 위태하게 선 지금은 더더욱.
잔뜩 피곤해진 안색으로 취걸개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부터 계획대로 해야겠다. 사군이 토벌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니, 시간이 많지 않아. 그 전에 저들의 중추에 숨어 들어가야 한다.”
그의 말에 능풍운과 금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로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
흑광은 요 며칠간 기가 막힌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사람이 이토록 막무가내일 수가 있나? 아니,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던 거지?’
십자괴검은 단연코 난생 처음 보는 제멋대로 사는 인간이었다.
성격이 급해 길가다 시비를 거는 것은 다반사.
답답하면 육두문자가 잠시의 고민도 없이 터져 나온다.
육두문자만이 아니다, 욕과 주먹과 칼이 함께 나간다.
인내심이 얼마나 짧은지,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문일 지경이었다.
‘완전 미친놈이잖아?’
한동안은 사부의 명대로 놈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펴보기는 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사파인이 자유분방하고 폭급하다고는 하지만,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십자괴검은 ‘내가 먼저 치면 쟤가 죽고, 쟤가 먼저 까면 내가 죽는다’ 딱 이 사고방식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친개도 상대를 보고 짓는 법이거늘.’
어제는 어깨를 부딪쳐 팔이 부러졌다며 죽는소리를 하더니 돈을 뜯으려 하였다.
일종의 위로금이라는 모양이다.
‘문제는 상대가 철혈야수대원이었다는 거지.’
거기까지면 말을 안 한다.
“너는 이 포효하는 늑대의 문양을 보고 떠오르는 것이 없나?”
다행히 자신을 알아본 야수대원은 적당히 넘어가려는 모양이었지만.
“뭐야. 그게 늑대였어? 난 웬 개가 하품하는 그림인가 했네.”
이 미친놈은 도발까지 해버렸다.
철사련주가 친히 그림을 그려 하사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덕분에 철혈야수대의 일원이라면 포효하는 늑대를 보며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그 자부심의 원천을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했으니.
‘이놈은 강호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백치 수준이야!’
당연히 상대의 눈이 돌아갔다.
“너. 뱉은 말이 있으니 뒈져도 아쉽지 않겠지.”
“해보자는 거야? 개처럼 네발로 기게 해주지.”
서슬 퍼런 대치에 낀 자신이 중재하지 않았으면, 큰 사달이 날 뻔했다.
‘내가 왜 이 일에 끼어서.’
자칫 자신이 낀 일이라 내빼지도 못하고, 진땀이 나도록 빌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 확실히 토박이가 안내를 해주니 확실히 재미가 있네.”
곁에서 속도 모르고 놈이 떠들었다.
“…과찬의 말을.”
“사람 구경은 질렸어. 배를 타고 싶은데 아는 곳 있어?”
“배를 탈 생각인가?”
“사부가 꼭 동정호에 오거든, 화려한 배를 띄워놓고 야경을 즐기라 했거든. 수면에 비친 불빛이 예술이라던데.”
속없는 말에 흑광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배, 배란 말이지?’
놈을 빈털터리로 만들 좋은 기회다.
“나를 따라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