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41
제60장 복건성으로 (1)
털퍽.
핏물 위에 몸을 뉘이는 잔혹사군을 무심히 내려다보던 초운휘가 몸을 돌렸다.
시선 속에서 한쪽 기둥에 기대어 선 채 진양이 몸을 떨고 있었다.
“놀랐느냐?”
“어, 어떻게….”
“궁금해 할 것 없다. 의아하게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지.”
“저, 저를 죽이실 건가요?”
목소리에 담긴 무정(無情)을 읽어냈는지 진양이 물어왔다.
“죽인다는 선택지도 있긴 하지.”
철퍽. 철퍽.
붉은 발자국을 찍으며 그녀에 다가간 초운휘가 빙긋 웃었다.
“목격자는 지우는 쪽이 편리하거든.”
“아…. 아아….”
피에 젖은 손을 들어 진양의 머리칼을 쓰다듬자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 이래 봬도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몸이거든. 내 아이들과 같은 병아리를 죽이는 것은 꺼려지는구나.”
“…타의 모범?”
“무엇보다 꼬맹이가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자신의 손등을 타고 흘러 그녀의 머리끝에 아롱지는 핏방울을 보며 초운휘가 손을 거뒀다.
“너는 오늘의 일을 잊게 될 것이다.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
“…….”
“손가락을 튕기면 바로 ‘기억소거술’이 발동된다. 거스르지 말거라. 자칫 백치가 될 수 있으니.”
경고하며 엄지에 검지를 걸려 할 때였다.
“자, 잠깐만요!”
진양이 왈칵 소매를 붙잡으며 외쳤다.
“무슨 일이지?”
“꼭 기억을 지워야 하는 건가요?”
“죽인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쪽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비, 비밀은 꼭 지킬게요. 기억을 남겨주실 수 있으실까요?”
“내가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해야 하지?”
목소리를 낮게 깔자, 진양이 제 발끝을 바라보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보, 본문은 부유해요! 대인께 사례를 할 수도 있고.”
“딱히 끌리지 않는구나.”
“본문은 동정호의 명문이니 분명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공포에 덜덜 떨면서도 절실하게 매달리는 모습은 퍽 보호 본능을 일으킬만한 모습이었지만.
“역시나 기각이다. 고검문 따위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내 처지가 궁색하지는 않거든.”
검지를 튕기려 치켜들자, 진양이 자포자기한 듯 외쳤다.
“제, 제가 기억을 잃으면 분명히 진진이 이상함을 느낄 거예요!”
“…….”
우뚝.
초운휘의 손이 멈추었다.
“확실히 그건 그렇군.”
“그, 그리고. 그리고.”
뱅글뱅글 큰 눈알을 굴리던 진양이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
“누, 누군가 대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할까요? 아니, 기억이라기보다는 추억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나중에 재회할지도.”
초면에 보였던 도도한 모습을 잃은 채 맞닿은 검지를 꾸물거리며 겁먹은 참새처럼 지저귀는 모습은 퍽 우스운 것이었다.
“재회라. 가능성이 없는 소리군.”
“아주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만은.”
“하지만 한 가지는 마음에 드는구나.”
“……!”
슬쩍 귓가에 속삭이자, 눈도 못 마주치던 진양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다시 살 의지를 준 것은 분명, 추억이 된 후회였지.”
얼굴을 붉히며 물러서는 그녀를 향해 초운휘가 작게 미소 지어 보였다.
“꼬맹이에게 안부 전해주기 바란다.”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진양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
활활.
마을 한구석에 잔혹사군과 철혈야수대를 모아 태운 초운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곳의 일은 마무리로군.”
이제 내 일만 남은 건가?
“능풍운에게 무사하다는 소식을 남겨두었으니, 알아서 돌아가겠지.”
짧은 말과 함께 사라지면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만날 생각은 없었다.
미래의 무림맹주를 구해낸 것만으로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복건성인가?”
구실은 묘진문의 의뢰를 받아 흑백쌍묘를 찾는다는 것이었지만, 복건성을 목적지로 택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사람을 찾는 것.
후일 망천회와의 싸움에서 큰 조력자가 될 인물을 말이다.
“지금 즈음이면 녀석이 꽤 고생하고 있을 때겠군.”
기억 속의 빛바랜 얼굴을 떠올린 초운휘가 중얼거렸다.
“녀석을 구하는 김에, 철무혼에도 한 방 먹여줄까?”
한때 철사련과 손을 잡으려 했던 만큼, 련주 철무혼의 심중을 익히 아는 초운휘다.
“이전 삶처럼 끝까지 교활하게 눈치나 보는 짓은 못하게 막아야지.”
상황에 따라 망천회에 붙었다, 정파에 붙었다 하는 철사련 탓에 이전 삶에서는 상당한 고생을 했다.
“간사한 기회주의자 녀석에게 또다시 휘말릴 수는 없지.”
하여 겸사겸사 철무혼에게 결정을 강요할 생각이었다.
“사군과 철혈야수대가 전멸했으니, 체면을 위해서라도 놈은 결코 망천회와 손을 잡을 수는 없어.”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할 생각이었다.
“철사련주의 권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나면 어떨까?”
망천회와 손을 잡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 생각이었다.
“한동안 고생 좀 할 거다. 철무혼.”
뇌까린 초운휘가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 멀리 복건성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
짹짹짹짹!
이제는 완전히 수련장으로 탈바꿈한 계곡 수련장.
오늘도 수련에 여념이 없던 남궁윤호에게 제갈탄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아아. 아무래도 좀 걱정이 되어서.”
“교관님 말이로군.”
남궁윤호가 땀을 닦으며 한쪽에 검집을 기대어 놓았다.
“다른 교관분들은 하나, 둘 임무를 완수했다는 소식이야.”
“교관님께서는 원체 위험한 임무를 맡으셨다니, 다소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나.”
말과는 달리 휑한 수련장을 돌아보는 남궁윤호는 쓸쓸한 기색이었다.
“끙.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답답하지나 않을 텐데.”
“사소한 일은 관심을 두지 않는 분이신 것은 알고 있지만, 기다리는 입장이 되니 야속할 지경일세.”
탄식하는 사이, 활발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또 교관님 걱정이에요? 잘 계실 거라니까요? 한숨 쉴 시간 있으면, 저 물회오리 좀 어떻게 해봐요.”
쫄딱 젖은 모용소혜의 등장에, 남궁윤호가 입맛을 다셨다.
“복건성은 무척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어. 걱정도 되지 않아?”
“윤호의 말대로야. 사파의 무인들은 난폭하고, 흉악하지. 아무리 교관님이라도 한들.”
“난폭하고 흉악하다고 해도, 교관님만 할까요?”
“…….”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뺀질뺀질 살 구석을 찾아낼 뿐이라니까요?”
확실히 그렇다. 한때, 여름 훈련이랍시고, 화전민 마을에 쳐들어가 사고를 치는 모습은 사파보다 근본 없는 흑도인들조차 학을 뗄 정도였으니까.
“…납득할 수밖에 없군.”
한없이 감정적으로 긍정적인 대답에 귀를 기울이는 남궁윤호와 달리 제갈탄은 냉정하게 상황을 평했다.
“이번은 경우가 좀 달라. 교관님께서 가신 동정호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심상치 않거든.”
“지옥에 끌려가도, 저승사자에게 공갈치고 도망칠 분이 심상치 않은 정도로 위험할까요?”
“…….”
“교관님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보면 좋겠네요.”
“…교관님 전문가?”
모용소혜가 한쪽에 골똘히 생각에 잠긴 백리설을 향해 손을 팔랑거렸다.
“언니 생각은 어때요?”
질문을 받은 백리설은, 오도카니 앉은 채 색조가 옅은 눈을 들어 바닥을 한번, 허공을 한번 쳐다보더니 꽥 소리쳤다.
“바람이야!”
“네?”
“응?”
“엉?”
“교관님께 여자가 달라붙고 있어!”
모용소혜의 시선이 짜게 식었다.
“언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여자의 직감이야.”
“직감인가요?”
한숨을 푸욱 내쉰 모용소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니는 너무 교관님을 고평가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언니같이 취향이 괴상한 사람이 아니고는 누가 교관님을 거들떠나 보냐고요.”
“진설향 관도의 말을 잊었어?”
“아무 사이도 아니라던데.”
“아니야. 뭔가 있어. 이건 여자의 직감이야.”
혼자 근거 없는 주장을 되풀이한 백리설이 본격적으로 엄지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집구석에서 조용히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나 까먹고 지내면 좋을 텐데. 쉽지 않네. 돌아오시면 어떻게든 해야겠어.”
“…보통은 그런 취향이 되기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백리설은 걱정도 되지 않는 건가?
싶어 남궁윤호가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교관님을 어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쯤 되면 광신도 수준이다.
“그보다는 우리 근면성실하고 착실한 교관님을 꼬시려는 여우들 쪽이 더 걱정이랍니다.”
“역시 이 여자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군.”
“제갈씨. 말본새가 천박하네요. 한번 해보자는 건가요?”
으르렁대는 둘 사이에 끼어든 모용소혜가 양팔을 붕붕 휘저으며 한동안 고생했다.
“으아아…. 지쳤어요.”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남궁윤호가 물었다.
“그나저나 근면성실하고 착실한 교관님이라니. 백리 관도의 평가에 비하면 난 아직 교관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 같군.”
“정상인이라는 뜻이에요. 교관님이 근면성실하게 착실할 때는, 게으름을 부릴 때밖에 없잖아요?”
모용소혜가 지적했지만, 다시금 계곡에 뛰어드는 남궁윤호는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작은 불안마저 마음의 힘으로 삼아 물회오리를 격파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달까?
“으아앙! 어쩌지? 교관님 바람기 걱정에 잠이 오질 않아.”
“아…. 죽겠네.”
양어깨를 잡힌 채 머리가 휙휙 휘둘려지는 모용소혜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
“여기도 꽤 다르군.”
경공을 펼쳐 당도한 복건성의 모습은 역시나 기억과는 상이했다.
“과연 철사련이 거점으로 삼을 만해.”
동정호 인근의 도시들 또한 상당히 크다 할만했지만, 복건성에 비하면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거대하게 세워진 두 겹의 성벽은 단단하기 짝이 없고,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수도 상당했다.
“완전 요새를 방불케 하는군.”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의 규모였는데, 거대한 성이 한쪽으로는 산을 에워싸고, 다른 한쪽으로는 바다에 맞닿아 있다.
“정말 기억과는 달라.”
새삼 과거로 돌아온 것을 실감하며 나아가니, 성벽에 걸린 깃발에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 쌍룡무적(雙龍無敵).
검고 붉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킨 채 여의주를 탐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잔혹사군이 쌍룡문의 문주라고 했던가? 아직 비보는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군.”
단숨에 경공으로 달려왔으니, 동정호에서의 죽음이 알려지기까지 며칠간 말미가 남아 있다.
“잔혹사군의 죽음이 알려지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볼까?”
초운휘가 표표히 경공을 펼치며 복건성을 향해 나아갔다.
***
복건성 서문에 위치한 작은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쥐꼬리 수염의 점소이가 절뚝이며 나타났다.
“헤헤. 대인.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점소이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다리를 저는 것도 모자라, 한쪽 눈에는 백태가 끼어 동공이 목적을 잃고 갈팡질팡거린다.
어지간한 사람은 꺼림직함을 느끼고 물러났을 몰골이지만, 초운휘는 개의치 않았다.
“꽤 장사가 잘되는군.”
대답을 들은 점소이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헤. 헤. 대인. 허름한데다 손님 하나 없는뎁쇼? 농담으로라도 호황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손님이 없어?”
쿵쿵. 발끝으로 마룻바닥을 밟자 점소이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혹 어디서 오신 분입니까?”
“무한성.”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포권을 하며 노인이 회색빛으로 바랜 눈동자를 깜빡이며 덧붙였다.
“하오문 복건분타 분타주. 냉염이라고 합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