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47
제61장 백검을 꺾다 (3)
냉염은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처, 천검에 이어 백검까지 죽여?”
“백검이 문제가 아닙니다. 암존께서 자망문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무기들에 말인가!”
이미 복건성은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난리가 나 있었다.
검주들은 하나같이 사군이 키운, 충성을 맹세한 고수들.
개개인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쌍룡문의 비호까지 받는다는 점에서 감히 손 쓸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이들에게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분타의 하오문도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암존! 이 자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아무리 본단에서 보낸 분이라 하지만, 너무 선을 넘었습니다!”
“복건성에서 쌍룡의 분노를 사 어쩌려는 것입니까.”
“분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것입니다.”
아비규환이 된 가운데에서, 냉염도 언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워낙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탓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부분타주, 외팔이 노인이었다.
“분타주. 지금이라도 암존에게 경고를 해야 하지 않겠소?”
“…….”
한쪽에서 듣고 있던 문도가 반론을 꺼내 들었다.
“노사. 암존을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달리 방법이 있는가?”
“거리를 두며, 이번 일은 분타와 관련이 없다고 발을 뺀다면….”
“본단이 보낸 귀빈을 죽게 내버려 두잔 말인가?”
“…….”
“또한, 암존이 죽는다면 과연 저들이 멈추리라 생각하는가? 우리는 한배를 탄 상황이네.”
좌중이 입을 다물자 외팔이 노인이 분타주 냉염을 향해 외쳤다.
“분타주. 제가 암존을 만나보겠습니다.”
“…지금 그를 만난다면 오히려 꼬리를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야.”
“제가 느낀 바에 의하면 암존은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이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분명 뜻이 있을 테니, 알아보고 대응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백척간두의 위기입니다. 만약 암존이 이대로 패하기라도 한다면, 분노는 우리를 넘어 다른 무고한 자들에까지 미칠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온한 움직임이 생기면, 분풀이로 온갖 무고한 민초들에게까지 화풀이하던 쌍룡문이다.
도전을 알게 된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끝낼 리가 없었다.
“더는 일이 커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겠지.”
수십 년 동안 쌍룡의 치세를 거스르기 위해 온갖 준비를 해온 분타다.
이대로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
“알겠네. 그대가 부디 암존을….”
마음을 정한 냉염이 좌중을 돌아보며, 선언을 하려 할 때였다.
“분타주님! 큰일 났습니다! 암존이 자망문에 스스로 찾아갔다고 합니다!”
‘끝났군.’
모두의 눈에서 희망이 사라졌다.
***
그 시각.
초운휘는 자망문에서 멀지 않은 하오문의 은신처에 있었다.
“이제 좀 살만한가?”
정신을 차린 야율척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나를 기다린 것이오?”
“그래. 복수를 함께 하자던 사람을 두고 혼자 갈 수 없으니까.”
“…그건 감사하오만.”
몸을 일으키던 야율척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어지간해서 꿈쩍도 않던 무표정이 당황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게 무엇을 먹인 것이오?”
“대환단.”
“대환단?”
“몸보신으로 제격이지?”
“내, 내가 아는 대환단이 맞소?”
“소림사의 땡중들이 만든 영약을 말하는 것이라면 맞아.”
“…정말이요?”
“진짜야. 내가 먹였거든.”
“깜짝이야.”
그림자에서 휙 솟구친 단야를 보면서도, 표정도 바뀌지 않은 채로 야율척이 투덜댔다.
“몸에 힘이 멀쩡할 때보다 더한 것이, 믿지 않을 도리도 없군.”
용솟음치는 힘에 적응하기 힘든지, 야율척은 몇 번이나 몸을 움직이고는 무뚝뚝하게 물어왔다.
“내게 뭘 원하는 거요? 대환단 같은 귀한 영약까지 먹이는 것을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데.”
“하하.”
이전 삶과 이번 삶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감정의 표출에 초운휘는 작게 웃어 버렸다.
“말했지 않나? 개파를 하면 문파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단 둘만의 문파를 만든다는 정신 나간 소리가 진심이었소?”
물끄러미 바라보자 야율척이 중얼거렸다.
“…진심이었군.”
“이곳을 잘 알고 있는 너라면 이곳의 문제를 잘 알고 있겠지.”
“복건성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짓눌려 있소. 쌍룡이 만든 체계에, 저들이 만든 율법에 짓눌려 울부짖으며 살아가지.”
“짓눌려본 고통도 알고 있고.”
“울고 싶어도 눈치를 보며 울어야 하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순응하오. 내 은인도 마찬가지였지.”
“코끼리를 어릴 때부터 말뚝에 묶어 놓으면, 자라나 힘이 세진다고 해도 말뚝을 뽑고 나아갈 생각을 못 해. 한계를 말뚝과 연결된 밧줄이 허용하는 반경 안으로 정해 버리거든.”
“갑자기 코끼리는 이야기는 왜….”
“내가 할 일은 말뚝을 뽑아내는 거야.”
“?”
그리고 네가 할 일은.
“저들에게 마음껏 나아가도 된다고 알려주는 일이고.”
“!”
“족쇄는 순한 코끼리의 발목이 아니라, 사람을 해하는 야수의 목에 걸려있어야 할 물건.”
펄럭.
흑색 장포를 펄럭이며, 죽립을 밀어 올리며 초운휘가 덧붙였다.
“그걸 모르는 녀석에게 이제부터 알려줘야겠지.”
***
“암존이라….”
자망문의 문주는 들려온 소식에 코웃음을 쳤다.
처음에는 들려온 소식에 꽤 당황하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 선보인 신위는 강호에서도 상당히 강자에 속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소식에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본문을 상대로 선전포고라고? 알량한 무공을 믿고 기고만장해하는 꼴이라니.”
시간이 주어진 이상, 승리는 자신의 편이었다.
“한 손이 여러 손을 감당하지 못하는 법이지.”
연무장에 도열한 천여 명의 문도들을 보며, 그가 미소 지었다.
어지간한 중소문파는 한 시진 안에 지워 버릴 수 있는 전력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천검이 백. 백검의 주인이 다섯이다.”
한켠에 흉흉한 안색을 한 이들을 보며, 그는 만족했다.
백검들에게 손가락질당하고 무시를 당해도, 필요할 때는 이렇게 고수를 보내준다.
“다소 돈이 깨지긴 하지만 말이야. 제길. 어떻게 벌충한다.”
암존에 대한 걱정이 사그라들자, 뒤이어 찾아온 것은, 이룡의 지원을 받은 대가로 내어줘야 할 사례금이었다.
“꽤 지출이 크군. 하지만, 앞으로 얻게 될 이익에 비한다면야.”
앞으로의 일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문밖을 지키던 문도가 달려와 알렸다.
“문주님! 암존입니다! 암존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혼자인가?”
“둘입니다.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출귀몰하군. 어딘가 숨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말이야.”
혀를 차며 생각했다.
‘최근 불온한 놈들이 수작을 부린다더니, 조력자라도 붙은 모양이군.’
“이참에 한꺼번에 정리해야겠어.”
그가 곁을 돌아보자 시선을 받은 백검들이 검집을 흔들어 보였다.
“문주 덕분에 간만에 힘 좀 쓰겠군.”
“간만에 백검이 피를 볼 기회가 생기니 어찌나 좋은지.”
전의를 드러내는 이들 가운데, 소매에 손을 넣은 노인이 빙긋 웃었다.
“문주는 걱정 마시오. 놈은 오늘 죽은 목숨이오.”
자신만만한 대답에 문주가 웃었다.
복건일흉 아진걸.
백검은 하나같이 절정을 넘은 고수들이었지만, 노인은 전대부터 명성을 떨쳐온 강자 중의 강자.
‘무려 삼십위에 이름을 올린 위인이야.’
복건성을 대표하는 백인의 고수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초고수라는 뜻이다.
“아 대인만 믿겠습니다.”
한층 마음이 놓인 자망문주가 외쳤다.
“문을 열어 손님을 맡아라! 마지막 가는 길에 예우는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하하하.
한차례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두 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
복건일흉 아진걸.
그는 얼마 전 이룡에게서 내려온 명령을 떠올렸다.
– 암존을 죽여라.
최근 성 안에 떠들썩하게 들리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이룡의 명령까지 내려오자 다소 의아하기는 했다.
– 하오문과 연관이 있는 자다.
뒤이어 내려온 소식에 아진걸은 납득했다.
‘슬슬 정리를 할 때가 되었지.’
비록 지금은 한 줌도 남지 않은 자들이었지만, 하오문이라는 뒷배는 영 꺼림직한 것들이었다.
이룡이 움직였다면 놈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 분명할 터.
‘슬슬 분위기를 환기할 때도 되었지.’
쌍룡의 치세는 그가 보기에도 상당히 가혹했다. 때문에 가끔씩 불복하는 무리가 튀어나왔고, 잊을 만하면 구실을 만들어 숙청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리라.
하오문과 엮어 여러 불순분자들을 걸러낸다는 것이 다를 뿐.
‘공적을 세울 기회이기도 하니.’
특히 최근 피를 보지 않은 날이 많아, 무료하던 참이었다.
상념을 거둔 그는 정문을 넘어오는 두 사람을 살폈다.
검은 죽립을 눌러쓴 기이한 인물 하나와 깡마른 사내.
‘저 자가 암존인가?’
과감하고 무쌍하다는 평판과 달리 외견은 실망스러웠다.
‘듣던 것보다 대단치는 않은데.’
기세도 특출나 보이지 않는다.
‘혹, 반박귀진의 고수?’
반박귀진(返璞歸眞).
무공이 극의에 도달하면 오히려 평범해 보인다는 경지.
‘후후. 설마.’
반박귀진은 인간의 탈을 벗는다는 탈인경, 초절정을 넘어, 신격을 얻기 시작한다는 신화경에 이르러도 쉽게 얻지 못하는 경지다.
그가 아는 한 반박귀진의 고수는 무림맹주 이준호, 철사련주 철무혼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기세를 숨기는 특이한 무공을 익혔는지도 모르겠어.’
이것만으로 상당한 수준이다.
기세가 잘 느껴지지 않는 무공은 몹시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공방을 나눔에 기감에 잘 잡히지 않아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니까.
상대를 가름하는 사이, 단상의 한가운데 앉아있던 자망문주가 의자의 팔걸이를 치며 일어섰다.
“그대가 암존인가?”
걷고 있던 사내가 멈춰 섰다.
“그래.”
“말이 좀 짧군. 복건성의 법칙에 대해서 잘 모른다더니.”
“내가 유독 법이나 규율과는 친하지 않아서 말이야.”
수백 명의 문도들 사이에 포위된 와중에도 대답을 하는 신색은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군.’
백검을 쥔 손이 잘게 떨렸다.
썰어낼 만한 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살심이 동한 것이다.
“또한, 앞으로 할 일에 그대의 협조가 필요할 것 같아서.”
“협조? 지금 협조라고 했나?”
“그래. 환대를 해주는 대가로 좋은 제안을 하나 하지.”
죽립을 슬쩍 밀어 올리며 선심을 쓴다는 듯 암존이 입을 열었다.
“나는 개파를 할 생각이다.”
“개파? 암존. 그대가 아무리 고수라고 한들, 복건성에 자네를 따를 이가 있으리라 생각하나?”
“걱정 마. 단 둘만의 문파를 만들 생각이니까.”
“하. 단 둘만의 문파라. 그것이 어찌 문파라 할 수 있겠나?”
하하하하. 하하하하.
깔깔깔깔. 깔깔깔깔.
삼엄하게 도열한 문도들 여기저기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입가에 조소를 매단 자망문주가 껄껄대며 말했다.
“문파란, 혹은 무의 일맥이란 무공만으로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득 찬 창고에, 많은 문도, 더하여 다른 문파들의 인정이 필요하지. 권세도 말이야.”
“내 생각은 달라.”
“아무것도 없는 둘만의 문파라니. 껄껄. 보기와는 달리 꽤 짓궂은 농담을 잘하는군.”
즐겁게 웃던 자망문주의 안색이 와락 굳더니, 노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암존. 장난은 여기까지다. 편히 죽고 싶다면 한 가지를 말해라.”
“뭐가 알고 싶은 거지?”
“하오문의 분타에 대해서 말해라. 그럼 편히 죽게 해주지.”
“대관절 무슨 소리인지.”
“끌끌. 네 대답은 잘 들었다. 수없이 많은 하오문도들이 복건성을 어지럽혔다? 좋은 대답이군.”
“내 대답은 들을 생각도 없었군.”
“후후. 구실이 필요했을 뿐일세. 덕분에 한동안 쥐어짤 이유가 생겼군.”
“…….”
스릉.
대답 대신 암존은 상앗빛 검집을 기울여 검을 쥐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 문파의 주춧돌은 시체요, 기둥은 공포라는 이름이 될지니.”
문파의 주춧돌과 기둥.
“잘 받아 가겠다.”
번쩍.
백광 하는 상앗빛 검신에 지켜보고 있던 아진걸이 벼락처럼 외쳤다.
“피해라!”
쿠—-웅!
에워싸고 있던 자망문의 문도들이 검광에 휩쓸리며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