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86
제70장 혈교의 유령 (4)
구구구구.
머리가 곤두선 구일소의 모습은 흉신악살이 따로 없었다.
그가 전력을 다해 일으키는 기운에 대기가 공명하며 웅웅 울어댔고, 뜨거운 열풍이 혈신전을 휘몰아치며, 거센 태풍을 만들어냈다.
검지를 세운 구일소의 두 눈에서 새빨간 안광이 폭사하자, 허공에 떠오른 검이 무섭게 용틀임하기 시작했다.
“나의 업은 필살에 닿아 있으니.”
심의영역(心意靈域).
입신경에 발을 딛고 나서도 벼르고 벼른 심득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천 가지 마공의 정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무리(武理)를 집대성해, 검에 의지로 담아냈다.
“필살, 필멸의 영역 속에서 살아남아 보아라.”
동귀어진. 자폭을 불사하는 구일소의 눈빛이 기광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에서 패배의 기색이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와 시체로 쌓아온 인생의 업 위에, 진마혈신공과 천외금강경의 위력을 더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떨게 만들었던 살의(殺意)마저 담아냈다.
오직 힘.
그것을 위해 버린 모든 것의 무게를 담아내자, 파괴의 의지가 끝없이 뻗어나가며, 하늘 위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워냈다.
한 사람의 인간이 펼치는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천기조차 뒤흔드는 살의.
이 필살의 의지 속에서 구일소가 뇌까렸다.
– 재림천마 혈천하(再臨天魔 血天下).
천마가 재림하였으니, 천하는 응당 피로 물드리라.
수백 번이나 사경을 헤매고 마공을 연마하며 꾼 꿈은 하나였다.
“본좌가 진정한 마도의 하늘이다.”
오래전, 천마조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 자루 검 아래,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것의 피를 흐르게 하리라.
인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염원했던 기원. 야수의 의지가 검에 임하자, 풍압이 휘몰아치며 혈신전의 모든 것이 조각조각 부숴지며 폭풍 속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주변의 공기마저 빨아들이며 회전하던 검이 빛살 같이 움직이고, 그 뒤로 펑펑 파공음을 터트렸다.
‘나는 무적이다.’
더없이 강렬한 살의를 담아, 의지를 담아 만들어낸 일검에, 구일소는 승리를 확신했다.
‘신조차 이 일격은 버텨 낼 수 없으리라.’
검 끝이 얄미운 적의 심장을 꿰뚫은 순간, 그가 주먹을 쥐었다.
‘내가 천하제일인이다.’
—!
거대한 충격파가 얄미운 얼굴을 덮친 순간, 소리 없는 충격파가 몰아닥치며, 수백 년을 버텨온 혈신전의 지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흐. 흐. 흐. 꼴좋구나. 초운휘.”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끌어쓴 대가는 처참했다.
눈의 실핏줄은 모조리 터져 흰자위가 남아있지 않았고, 눈과 코에서는 무리한 공력을 운용한 반동으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천외금강경의 공능도, 진마혈신공의 재생력도 조각조각 부서진 진기를 짜맞추는데 급급할 정도.
그럼에도 구일소는 웃었다.
“흐흐. 괴물 같은 놈. 흐흐흐.”
‘이겼다.’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이다.
기둥만 남고 무너진 혈신전을 보면서 그는 어깨를 들썩였다.
“흐하하하! 이겼단 말이다!”
꿈속에서, 기억 속에서 언제나 찾아와 자신을 멋대로 괴롭히는 괴물을 드디어 죽였다.
희열에 구일소는 이성을 잃을 듯이 기뻐했다.
“쳇. 몸이 영 아니군. 죽어버린 놈들도 아까워. 망천회의 힘을 빌려야 하나?”
이번 싸움으로 어렵게 키운 자신의 수족들이 죽었다.
하나 같이 정예들로, 다시 키워내려면 지난한 시간과 자금이 들 터.
망천회의 도움을 받게 되면, 어떤 요구를 해올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본좌는 천하제일이다. 흐흐흐.”
괴소를 흘리며, 그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쿠-웅.
땅속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쿠웅.
폭발음에 하늘까지 치솟은 먼지가 밀려나며 거센 존재감이 다시 느껴졌다.
“마, 말도 안 돼.”
한계까지 공력을 쥐어 짜낸데다, 눈알이 터져 정확한 상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익숙한 기운의 근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일격 속에서도 살아났다고?”
쿵쿵쿵쿵.
화답을 하듯 거센 충격파가 연이어 이어졌다.
그리고, 간신히 회복된 시야 속에서 구일소는 꿈에도 믿기지 않는 악몽의 현신을 마주하고 말았다.
“커헉!”
하지만 다시 그는 고꾸라졌다.
‘공력이… 진탕되었다.’
진마혈신공의 재생력이 뒤따르지 못할 정도로 혈맥이 조각조각 부숴지고 있었다.
가공할 반탄력에 검에 투사한 심득이 통째로 흔들린다.
“…어, 어떻게.”
인간을 버리고 얻은 이 힘마저 짓누를 수 있을까.
“어떻게. 으흑. 어떻게 가능한 거냐!”
자욱하게 밀려난 분진 사이에서 번쩍이는 황금빛 금안(金眼)을 보며, 구일소가 절망에 부르짖었다.
“야. 이번 건 좀 괜찮았다. 쉐끼야.”
“넌 대체 무엇이냐! 무엇이기에 내 앞을 사사건건 가로막느냐!”
“내가 누구냐고 물었냐?”
놈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잡혀 애처롭게 떨던 검이 챙강 부러져 바닥을 굴렀다.
백련정강을 두들겨 만든 명검이 수수깡처럼 박살 나 버렸다.
“네, 형이다, 쉐기야.”
우드득!
목뼈가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휙 돌아간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구일소가 느낀 것은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억울하다는 감정이었다.
뻐억!
다시 두 다리가 부서져 엎어지고 말았지만, 구일소는 고통보다는 억울함에 더욱 아팠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다.
“이거 완전히 바퀴벌레네. 사지를 잘라 버리고, 조각조각 회를 치면 죽으려나?”
거센 손길에 두 다리가 몇 번이나 부서지고, 억센 주먹이 사지를 다지고 있었으니까.
“아… 아….”
“존만아. 그러게, 형이 얌전히 교나 지키라고 했지? 왜 자꾸 엄한 짓을 해서 피곤하게 하니?”
‘내가 네 아비뻘이다.’
으득.
거침없는 폭력 속에서 구일소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품속의 돌을 쥐었다.
각성석(覺城石).
마신을 강림시키는 망천회의 보물.
‘어쩔 수 없다. 이대로 각성해 놈을 죽인다.’
지금까지 돌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자신만의 실력으로 놈을 꺾고 싶다는 무인의 호승심 때문이었다.
또한, 마지막 한 가닥 의심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으득.
재빠르게 돌을 입에 밀어 넣을 때였다.
사지를 조각내던 손이 멈추며, 측은한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왜?’
“일소야. 그거 아냐?”
“…무엇을 말이냐.”
“그 돌을 취하면, 넌 네가 아니게 될 거다.”
“…….”
“마신이 된다. 말은 좋다. 하지만, 넌 네가 아니게 될 거야. 미친 괴물이 될 뿐이지.”
“…….”
“그래도 취하고 싶냐?”
멈칫.
구일소의 손이 멈췄다.
묘안석처럼 붉은 세로꼴 눈동자를 가진 돌. 속에서 넘실대는 요기는 당장 자신을 삼키리라.
‘진실이로군.’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돌을 취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구일소는 대답했다.
“상관없다.”
“…진짜냐?”
“초운휘.”
“…말해.”
“날 그딴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마지막 힘을 다해 떨쳐 일어난 구일소가 외쳤다.
“본좌는 패배자로 죽지 않아! 아니, 세상의 정점에 군림할 수 있다면 무엇이 되어도 좋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란 말이다!”
꿀꺽.
그리고는 돌을 삼켰다.
순간, 그의 정수리에서 붉은 요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지상에서 솟구친 붉은 요기는 구름마저 갈라내 하늘 끝에 닿을 듯 불기둥 같은 광채를 발하더니.
우르릉!
이내 짙은 먹구름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
콰르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붉은 빛기둥이 태어난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며, 짙은 먹구름이 빠르게 십만대산의 하늘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뭣들 하느냐! 교주를 막지 않고!”
갑작스레 일어난 이변에, 싸움도 잊고 마군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악-!
하지만 그들은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천지를 울리는 귀곡성에 귀를 막으며 주저앉아야 했다.
우우우우우우-.
“엄청난 요기로군요.”
곁에 다가온 사마율도 하늘 높이 솟구친 요기의 기둥을 보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렇지?”
천상까지 닿을 듯 승천하던 혈광은 구름을 밀어내며,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멸망할 징조라도 되는 것 같은 붉은 색이 하늘 아래 도래하고 있었다.
풍객이 다급히 전음을 보내왔다.
[암존. 어쩌자고 그를 막지 않았단 말인가.]“막으려고 했어. 막지 못했을 뿐이야. 쉽게 죽지 않더라고.”
[아아. 마신이 강림하기 시작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주군. 구일소가 변하고 있습니다.”
위지극의 지적대로였다.
허공에 떠오른 구일소는 관절이 부서진 인형처럼 몸이 뒤틀리고 있었다.
피부 위로 검붉은 혈관이 도드라지며 일어나더니, 얼굴은 죄다 녹아 촛농처럼 뚝뚝 떨어졌다.
“…저것이. 각성입니까?”
“잘 봐둬. 마신의 씨앗이 발아하는 모습이니까.”
끔찍하게 뼈가 뒤틀리고, 살갗이 녹아내리는 구일소의 입가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어어어.”
마치 혼백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 공허하게 울리며, 또 다른 불길한 목소리가 생기를 얻는다.
한 몸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듯 괴이한 음성.
“그륵. 게게겍.”
피를 토하며 기괴한 괴성을 이어가는 모습은, 끔찍하기도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렵게 만드는 고통마저 느껴졌다.
“인간이 마신으로 바뀌는 거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을 받기 마련이지.”
가라앉은 목소리에 사마율이 반응했다.
“주군께서도 같은 고통을 받으신 겁니까?”
“어느 정도는. 하지만, 내게 가장 고통은 육신의 것보다, 눈앞에서 여인을 잃은 쪽이 더욱 컸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거대한 요기의 용오름 때문일까?
한줄기 고함과 함께 귀밑머리가 희끗한 사내가 바람 같은 신법을 펼치며 장내에 내려섰다.
“귀하께서는.”
“멈추시게! 원주님이시네!”
백미영존의 외침에 검을 들던 이들이 일제히 물러섰다.
“저 청년이?”
“원주님의 세수가 백수를 훌쩍 넘으셨을 터인데.”
“설마, 반로환동?”
마지막까지 싸우던 마도명가의 고수들조차 구자극의 등장에 멈추고 말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교주가 망천회의 돌을 삼켰습니다.”
“마신의 씨앗이라는 물건 말인가. 진실로 가능한 일이었나?”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반신반의 하는 모양이었다.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음.”
붉은 공처럼 변해 꿈틀거리는 모습을 본 구자극이 신음을 삼켰다.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겁니까? 저 꼴을 보고 여전히 혈육이라 생각한다면 물러나십시오.”
“정말 마신이 강림한단 말인가?”
“그럼 거짓이라 믿었습니까?”
“으음.”
“망천회의 미친 짓을 하는 놈들이 이유가 없이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요.”
휘몰아치는 요기의 심각성을 알아챈 구자극이 손을 털었다.
“자네의 검일세.”
허공에서 암혼을 받아들자, 구자극이 눈매를 좁혔다.
“나조차 이런 농밀한 마기와 요기는 처음일세. 어찌해야 하겠나?”
“힘껏 후두려 패야지요.”
“자신이 있나? 솔직히 말하자면, 저것이 진짜 마신이라면. 본교의 사활을 걸고도 막을 수 있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군.”
휘번뜩.
어느덧 얼추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한층 더 무시무시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어느덧 붉은 공처럼 부풀고 맞춰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멈추고 팔다리가 돋아난다.
얼추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그것은 혈인(血人). 피에 푹 담근 인형과도 같았다.
‘그것’이 흘리는 존재감은 이 혈신전을 넘어, 교 안을 가득 채울 정도였으니.
“주-군. 광채가 옅어지고 있어.”
하늘까지 닿았던 광채 속에서 ‘그것’이 눈을 떴다.
마주치는 순간 온몸을 굳게 만드는 거대한 살의.
“진짜가 왔군.”
쿠웅.
허공에서 떠 있던 그것이 뚝 떨어져 두 발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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