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34
제80장 인형극의 시작 (4)
“이제 좀 이상하다는 실감이 나?”
오직 궁주만을 지켜야 할 백궁수호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설마 했던 생각이 비로소 실체를 드러냈다.
“아버님의 호위들까지 넘어갔다면 숙부가 궁을 손아귀에 넣은 것은 확실하군. 어찌 이런 참담한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네 집구석 이야기를 왜 나한테 물어?”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설소백은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궁 내 반란이 일어난 것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것도 자신의 불찰이니까.
“설마 숙부께서 아버님을 해한 것이오?”
“아직. 하지만, 네가 늦는다면 그렇게 될 거야.”
“어쩌면 빙백신공의 마지막 구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궁주는 주화입마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빙백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숨겨 두었다.
그리고 그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은 설소백 자신뿐이었다.
“어쨌든 잘못된 것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천년빙정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맞아. 아무리 나라도 주화입마를 말끔히 고친다고 장담을 할 수 없으니까. 동시에 누가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찾아야 할 거야.”
“알고 있습니다.”
어제의 습격으로 일어난 소란은 빠르게 잠잠해질 것이다.
숙부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혼란이 가시기 전에 백룡곡을 찾아 천년빙정을 취해야 한다. 그것이 아버님을 살리고, 정통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설소백은 눈앞의 사람이 달리 보였다.
‘과연 무림맹이 비밀병기로 자랑할만한 사람이구나.’
북해빙궁의 소궁주인 자신을 아득히 내려다보는 정보력에,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 거기에 과감하게 허를 찔러 호위들을 제거하고, 백궁수호대를 끌어내는 지략까지 갖추었다.
하나같이 비범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설소백은 인간이 이렇게 다방면으로 뛰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강호는 넓구나. 알려지지 않은 자가 이만한 능력을 지녔으니, 천하를 뒤지면 얼마나 많은 기인이사들이 있겠는가.’
실로 착각이라 할 수 있었지만, 설소백의 오만함을 죽이기에는 긍정적인 오해였다.
설소백이 자존심을 굽히며 가르침을 청했다.
“내게 방법을 일러 주시오.”
그에, 일영과 백궁빙영대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외친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자존심 높은 대원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일견 경건하기까지 할 정도.
이글거리는 시선을 돌아보며 초운휘가 입을 열었다.
“사냥을 준비해.”
“사냥을 말입니까?”
“백룡곡을 찾기에는 그만한 구실이 없거든. 수일 동안 사라졌다 돌아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북해의 풍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군.’
호전적인 북해의 사람들이라면, 사냥이라는 말에 반색을 하기 마련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곁에 침묵한 채 선 독안신검이 눈에 들어왔다.
‘독안신검을 데리고 온 것도 이 자의 책략이었지.’
처음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북해의 관습에 따라, 자신의 방문에 대한 답례로 거물을 데리고 온 줄로만 알았다.
실제로 큰 도움도 되었다.
북해의 소궁주인 자신이 몸소 방문했는데, 답례로 찾아온 것이 어린 관도들뿐이라면 체면이 꽤 상할 뻔했기도 하고.
하지만 어제의 일을 생각하자 그것뿐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독안신검이 숙부의 시선을 묶은 사이 일을 벌였다.’
하나의 포석만으로 교활한 숙부의 본색까지 드러내게 했으니, 도대체 몇 수나 앞선 계략을 꾸미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무서운 자다. 적이 된다면 북해의 멸망이 멀지 않겠구나.’
마른침을 삼키며 설소백이 돌아오는 답을 기다렸다.
“허나. 백룡곡으로 가는 지도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흑백쌍묘가 있다 하더라도 암호를 해독하지 않고서는 광활한 만년설해를 한참을 뒤져야 할 것입니다.”
원래라면 궁의 무사들을 대동해 찾아낼 생각이었지만, 설강벽의 손에 궁의 정예가 넘어갔다면 쓸 수 없는 방법이다.
골몰하던 차에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가져와.”
잠자코 있던 독안신검이 다가와 한 권의 책을 툭 꺼내 놓았다.
“이것은….”
“지도에 적힌 암호를 풀어낸 해석서다.”
“해독에 성공한 것입니까?”
책자를 살핀 설소백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무림맹의 능력은 과연 대단하군요!”
“응? 무림맹?”
“제가 뭔가 잘못 말했습니까?”
“아니야. 제대로 알았네. 완전 제대로 알았네, 무림맹.”
“?”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초운휘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무림맹주가 사실은 엄청나게 음흉하고 악독한 인간이라는 말이지. 허허 웃는 것 같은 사람인데 사실은 엄청난 냉혈한에 쪼잔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야.”
“그, 그렇군요.”
“심지어 박봉에, 사람을 부려 먹는 것은 얼마나 지독한데! 인간이 아니야! 요약하면 악마! 인두겁을 뒤집어쓴 악마다!”
입에서 불을 뿜을 기세로 외치는 모습에 설소백은 생각했다.
‘은밀히 키워진 비밀병기라 그런가? 맹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진 것 같지 않군. 십중팔구 목숨을 몇 번이나 넘나드는 가혹한 수련을 받은 탓일 테지.’
무림맹의 약점을 하나 알아낸 것에 만족하자.
***
상념에서 빠져나온 설소백은 품속을 더듬어 해독된 지도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빛냈다.
“…기필코 백룡곡을 찾아낸다.”
결의를 다지며 사냥에 타고 갈 말에 오르려던 때였다.
저 멀리 한 소녀가 다급하게 설원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궁에서 나온 북해의 무인을 보며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는데, 옷깃을 당겨 얼굴을 가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일영이 말한 소녀로군.’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일영이 그토록 원하던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거기. 너. 어째서 피하는 거냐! 맞아! 그래 너!”
사냥을 지원하러 온 설풍단의 무사가 외치자, 설소백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빠르게 달려간 그가, 소녀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려는 무인의 뺨을 세차게 올려붙였다.
“소, 소궁주님?”
다짜고짜 손찌검을 당한 무인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이 미친 새끼가 누구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지옥의 불길이 등 뒤에 쫓아온 느낌에 설소백이 추상같은 호령을 내질렀다.
“똑바로 서라! 설풍단의 무사여!”
“네, 넵. 소궁주님.”
“어째서 너는 북해의 귀한 손님을 거칠게 대한 것이지?”
“그, 그게 이 소녀가 저를 피하는 모습이 수상하여.”
“너희 설풍단 놈들은 항상 변명이 너무 많아. 네놈들같이 무례해서는 결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발길질까지 하는 싸늘한 모습에 북해의 후기지수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수군거렸다.
“못 보던 사이에 더욱 용맹해지신 것 같군.”
“북해의 남자는 자고로 저래야지. 너무 조용하셔서 좀 아쉬웠는데.”
사나운 자연과 싸우는 북해의 사람들에게 난폭한 것은 미덕이 되면 되었지, 결코 흠이 되지 못했다.
더러는 다른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었다.
“설풍단은 외당주님과 가깝게 지내는 이들이지. 설마, 소궁주님께서 뭔가 의도가 있으신 것인지도 모르겠어.”
“정치적인 면까지 계산하게 되신 건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시는구나.”
시작부터 다소 소란스러운 가운데, 단합을 위한 사냥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
“자자! 관도들은 나를 따른다!”
사냥을 원하는 북해의 후기지수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덕분에 교관들은 몇 무리의 관도들을 나누어 각자 북해의 후기지수들과 짝을 이뤄 담당을 정해야 했다.
“초 교관님은 소궁주님 쪽인가요?”
“네, 그렇게 되었네요.”
“유독 소궁주와 공주님이 초 교관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부러운 눈길을 한 여매홍은 복마신니와 동행이라는 모양이다.
“여자 관도들은 따로 움직이기로 했거든요.”
“그렇군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복마신니를 필두로, 여자 관도들이 어여쁜 옷을 갖춰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백리설과 모용소혜도 입을 비죽인 채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초운휘는 그들 너머에 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진설향을 눈에 담았다.
‘잘 있어 다행이야.’
지켜본 바에 따르면 북해에 온 이후, 좀처럼 진정을 못 하는 색시다. 혹여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딱히 캐묻지는 못했다.
‘사도만 멸한다면 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있어.’
천하를 뒤져 찾아낸 색시를 앞에 두고도, 모른척해야 한다는 사실이 야속했지만, 초운휘는 아쉬움을 사도에 대한 분노로 녹여냈다.
“친구. 어서 가지. 다들 곧 출발하려는 모양이야.”
“응.”
아쉬움을 접고, 초운휘가 소처럼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
두두두두두-!
설원을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핑-!
고삐를 놓고, 활을 당겨 간단히 시위를 당기자 저 멀리 질주하던 늑대가 켕! 소리와 함께 펄쩍 뛰었다.
펄럭! 펄럭!
사냥감을 확인하러 간 설풍단의 무사가 하얀 깃발을 펄럭였다.
“명중입니다!”
“하하. 오늘은 꽤 잘 맞는군.”
말을 달려 사냥감을 확인한 설소백이 말머리를 돌려 돌아오자, 따라온 북해의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신궁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역시 소궁주님. 따를 수가 없군요.”
“하하. 이러다 늑대의 씨가 죄다 마르는 것은 아닐까 걱정입니다.”
일견 아부 같은 말들이었지만, 실제로도 설소백의 궁술은 독보적이었다.
벌써 그의 곁에는 열두 마리의 설원늑대들이 혀를 빼물고 죽어 있었으니까.
반면에 그럴수록 주눅이 드는 인물이 있었으니.
“…대단하십니다. 형님.”
바로 설풍단주였다.
용맹한 설풍단을 이끄는 이답지 않게 유약한 인상의 청년이었는데, 천성적으로 기가 약한 건지 흐릿한 인상에, 좁은 어깨를 구부정하게 웅크린 사내였다.
매사에 자신만만한 설소백과 무척이나 대비되는 인물.
“어떠냐? 우형이 제법이지 않으냐?”
“최고입니다. 근데 저는….”
청년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활통을 내려다보았다.
몇 차례 쏘았지만, 번번이 빗나가고 만 터라, 기가 죽어 있었다.
“괜찮다. 사냥은 이제 막 시작한 것뿐이니까.”
“그, 그렇겠지요?”
유약하기만 한 모습에, 북해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제갈탄이 말을 몰아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분은 누구시오?”
“아. 설악벽 말인가? 외당주님의 자제분이시라네.”
“외당주라면 어제 뵌 분인 것 같은데, 그분의 자제란 말이오?”
“하하. 확실히 외당주께서는 풍채가 좋고 걸걸하시지. 반면에 유일한 독자라는 사람은 딱 저래서야.”
어깨를 한층 더 좁히며 부산스럽게 눈알을 굴리는 소심한 모습에 그가 코웃음을 쳤다.
“호부견자라는 말이 딱 맞는다는 말이지.”
“그렇군. 이해했소.”
말을 한 제갈탄은 말고삐를 흔들어 세차게 질주하더니, 고삐를 놓고 두 발로 말의 배를 조르고는 세차게 활시위를 당겼다.
빠우-. 쐑!
경쾌하게 날아간 화살이 멀리 날고 있던 철새를 한꺼번에 두 마리나 꽤 뚫었다.
“휘익! 따뜻한 곳에서 오신 분이 제법이로군.”
“하하. 이것 참. 오늘 망신 좀 당하겠는걸?”
“순순히 선두를 내어줄 수 없지. 다음은 내가 쏘겠네.”
각자 신나서 떠들며 이곳저곳 말을 질주하고 사냥감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구경하며, 초운휘는 은밀히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봐 달려온 거리를 가늠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멀리 나왔군. 슬슬 시작해봐도 괜찮겠어.’
생각하며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날렸다.
[일영. 슬슬 시작하지?]끄덕.
일영이 말을 달리며 수신호를 보내자, 거리를 두고 은밀히 뒤따르던 백궁빙영대원들이 어지럽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사냥의 진짜 목적은 늑대 따위가 아니었다.
– 백룡을 사냥한다.
바야흐로 백룡곡을 정복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