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51
제84장 설원의 이별 (1)
북해빙궁의 소요는 빠르게 잦아들었다.
설강벽이 포섭한 이들은 적지 않았지만, 궁주가 복귀한 시점에서 한순간에 와해 되었다.
역모는 궁주의 죽음을 기반으로 짜여진 것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신무학관의 조력에 감사하네.”
궁주 설태백은 손수 교관과 관도들을 불러 치하했다.
“북해빙궁은 오늘의 은혜를 결코 있지 않을 것이네. 앞으로 본궁은 무림맹과 혈맹을 맺고자 해.”
혈맹(血盟).
“허어.”
피로 맺어진 우방을 언급하자, 심의 상급 교관은 어찌 답해야 할지 말을 찾지 못했다.
북해에 올 때까지만 해도 무림맹이 바란 것은 소궁주와 친분을 쌓아 철사련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과분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궁주가 혈맹을 공언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무림맹이 공을 들이고도 성사하지 못한 일을 신무학관의 관도들이 이루어낸 것이다.
“용단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심의 상급 교관은 혈맹을 수락하는 것부터 확정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당황해 놓칠 정도로 우둔한 그가 아니니까.
‘한천궁이 포위될 때까지만 해도 살아 돌아가면 다행이라 생각했거늘.’
공적도 공적이지만 이번 일에서 어느 누구도 죽은 이가 없었다.
포위를 당해 제압된 관도들은 구금되었을 뿐 멀쩡했으며, 가장 치열했던 지하 통로의 밀실에서도 부상자는 나왔지만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위중한 상처를 입고 생사의 경각에 달했던 이들은 궁주가 북해의 창고를 열어 영약과 약초를 아낌없이 내어놓은 것으로 위험한 상황을 지났다.
‘실로 천운이 따랐음이야.’
일국의 내란에 휘말린 것치고는 기적이라 부를 만큼 적은 피해.
능풍운과 신공표가 고생을 했고, 복마신니가 목숨을 걸고 관도들을 지켰으며, 교관들 어느 하나 뒤에 남지 않고 필사적으로 싸운 결과이리라.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번 사건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을 수 있던 것은 오직 한 명의 공이었다.
“총관주께서도, 맹주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묵묵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는 독안의 검사.
독안신검 독고율은 이번 참사에서 구원자나 다름이 없었다.
절대사궁의 삼 인을 홀로 상대하며, 도망칠 시간을 벌었고, 화검적자의 목을 날려 참사를 막았다.
그의 존재감은 북해의 적의를 오롯이 홀로 받아넘겼고, 시간을 벌었으며, 적도를 섬멸하는 데 가장 앞장서 움직였다.
‘총관주님의 혜안은 대단하시군. 독안신검을 붙여주신 이유가 있었어.’
교관들 모두는 선망의 시선으로 독고율의 등을 쫓았다.
‘이분이 은천관의 총교두시다.’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생활하는 동료이시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희열이 샘솟는다.
독안신검 독고율.
정의로운 의지의 집행자는 그럼에도 조금도 오만하지 않았다.
“응당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과연 독안신검이요. 바라는 것이 정의의 집행과 악의 심판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군.”
궁주가 감탄하며 덧붙였다.
“허나. 북해빙궁은 은혜를 잊지 않네. 작은 영웅들의 노고를 외면하지 않고 합당한 대우를 할 생각이네.”
그가 박수를 치자, 북해의 무인들이 몇 개나 되는 상자들을 들여놓았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쪽빛을 발하는 돌과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붉은 산호초가 들어 있었다.
“북해의 빙옥이네.”
빙옥!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몸을 서늘하게 만들어 주는 빙옥은 더울 때도 요긴하지만, 무공을 익히는 이들에게는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기에 누구나 탐을 내는 물건이다.
일설에는 철사련이 북해와 손을 잡으려 한 이유가 빙옥의 유통권을 독점하려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옆에 있는 것은 적주산호라고 하네.”
적주산호는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몹시 색이 아름답고 생김이 화려하여 값비싼 물건이었다.
하나 같이 북해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값비싼 보물.
거기에 궁주는 한 가지를 더했다.
“빙옥은 목걸이를 만들어 두었네. 무공을 익힐 때 걸고 있으면 성취에 도움이 되겠지. 적주산호는 여인들에게는 머리 장신구로, 남자들에게는 검을 장식할 물건으로 손을 봐두었네.”
“이런 귀한 물건들을….”
“감사를 보물로 표하고자 준비한 것이 아닐세. 북해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관도들은 오늘의 영웅임을 기억될 것이고. 자네들은 영광의 한복판에 있었던 것을 증명할 수 있겠지.”
“세심한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얼떨떨해하는 여매홍의 옆모습을 지켜본 초운휘가 검지로 꾸욱 그녀의 옆구리를 눌렀다.
“꺄악!”
갑작스러운 신체접촉에 여매홍이 눈에 힘을 주며 화를 냈다.
“무슨 짓이에요?”
“저 물건들 사려면 월봉 얼마나 모아야 할까요?”
“그, 글쎄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값비싼 보물들이라. 이삼 년은 꾸준히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곁에서 능풍운이 대꾸했다.
“몇 년은커녕, 십 년은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할 걸세.”
“흥. 초운휘 교관. 자네는 버는 족족 술과 음식을 처먹으니, 백 년쯤은 모아야 간신히 살걸?”
일주경천 관철의 딴죽이 돌아왔지만, 초운휘는 다른 것에 골몰했다.
“X발. 푼돈에도 벌벌거리는 신무학관하고 아예 통이 다르네. 확 이직할까?”
“…초 교관님. 설마 해서 묻는 건데, 농담이시죠?”
“무인이 어찌 재물을 탐한다는 말인가? 친구. 자네 눈빛이 무섭네. 제발 아니라고 해줘.”
여매홍과 능풍운이 옷깃을 잡아당겼지만, 그들도 무림맹이 쪼잔한 새끼들인 것은 딱히 바로 잡지 않았다.
***
공식적인 축하가 끝나고.
따로 불려 나간 초운휘는 밀실에서 궁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궁주가 할 말이 있다고 불러냈기 때문.
사실 묻고 싶었던 것도 있었던지라, 바로 수락했다.
“아, X팔. 왜 안 와?”
남궁윤호와 제갈탄도 동행한 자리였다. 잔뜩 경직되어 있던 제갈탄이 사색이 되어 입을 막았다.
“교관님. 고작 일다경(십오 분)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북해의 궁주님 같은 분을 뵙는데 이 정도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뭔가 시간 때울 것도 없고.”
“다탁 위의 과자를 홀랑…. 컥!”
제갈탄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시끄럽고.”
주먹을 들고 흔들자, 남궁윤호가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전진 앞으로.”
“…전진 앞으로.”
“돌격.”
“돌격!”
전력으로 달려 주먹에 머리를 부딪힌 남궁윤호가 머리를 싸쥐며 제갈탄 곁에서 함께 끙끙거렸다.
‘저 미친 짓은 또 뭐지?’
이 촌극을 보던 설소백과 일영의 생각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있을까 싶지만, 두 사람은 입을 열어 지적하는 대신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모른 척을 했다.
“자네. 관도들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교관과 관도라면 사승관계에는 비할 수 없지만, 서로 이끌어주고, 뒤따른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할.
까지 말 한 북해신창이 쓰러졌다.
다짜고짜 날아온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의자 채로 넘어갔다.
“…….”
이곳에는 백궁빙영대원들도 있었다. 백룡곡의 일을 아는 모두가 불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바닥에 엎어져 노구를 뒹굴며 끙끙거리는 북해신창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도리어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했다.
[북해신창께서는 좋은 선배시지만, 눈치가 너무 없어.] [유배지에서 십 수년간 혼자 지내셨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애석하지만, 그로 인한 대가는 홀로 감당하셔야 하지 않을까?]궁주의 명령에 초개처럼 목숨을 던지고, 북해의 명예를 위해 생사투를 마다하지 않던 백궁빙영대원은 더 이상 없었다.
만년설해에서 본 악마적인 무위에, 백룡곡에서의 일까지 겪은 이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법을 깨우쳤다.
‘이런 인성으로 교관?’
얼마 전에는 그나마 의문이라도 가졌었다. 교관 이전에 정파인이 맞나 싶을 인성 더러운 인간이 교육자라니, 무림맹이 돌아버린 것은 아닐까 몰래 욕도 했다.
하지만, 남은 자존심의 찌꺼기마저 사라진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소궁주를 따라 역도들을 때려잡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저 멀리 아른거리던 아름다운 산맥의 일부가 무너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몹시 웅장해 이름이 있는 봉우리도 있었는데, 무슨 밀가루처럼 박살이 나더니, 평지로 바뀌었다.
인성 최악의 인간이 돌아왔을 때,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그게 왜 궁금한데?”
백궁빙영대는 그날 암묵적으로 의문을 가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적어도 이 인간이 연관된 일에 대해서는 말이다.
‘알면 X 된다.’
솔직히 답을 들어 무얼 하겠나?
산맥을 날려버리는 인간이 있다고 알게 된 들, 인간으로서 나약함에 자괴감만 들 뿐이다.
최악의 경우 성격파탄자의 심기를 건드려 작살이 난다.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가 있다더니, 이런 경우였군.’
백궁빙영대원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 배신자 새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였을 거다.
갑자기 멀쩡한 칠영의 멱살을 잡고 귀싸대기를 후려칠 때도 침묵한 것은 말이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유는 있다. 있어야 한다.’
이유가 있다고 믿고 침묵하는 것은 동일하니까.
“마, 말하겠습니다.”
퍽퍽 두들기자, 이빨이 튀어나오고, 피를 토하고, 똥마저 지리게 된 칠영이 답도 토해냈다.
“궁주대리. 아니, 설강벽이 제 가족을 인질….”
“됐고.”
뭔가 신파적인 이유가 나올 것 같았지만, 결국 이 지옥 같은 인간은 단전을 부수고, 남은 팔다리를 모조리 돌려버렸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어떤 시뻘건 것으로 변한 동료는 심히 마음에 걸렸지만, 모두는 생각했다.
‘역시 이유가 있네.’
가만히 있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오히려 안도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이는 이 폭력에 분개했다.
“초운휘 교관.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설악약이었다.
남궁윤호에 연심을 품은 북해의 공주는, 자신이 마음에 든 남자가 주먹을 들자, 전력으로 달려들어 자발적으로 꿀밤을 맞고 끙끙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대가 남궁 관도의 교관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어요.”
공주의 말은 합당했다.
하지만, 모두는 외면했다.
‘그만두세요, 공주님.’
‘진짜 죽습니다.’
백궁빙영대원들이 필사적으로 동공을 흔들어 그녀를 만류했다.
“…?”
하지만, 설악약은 백룡곡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른다.
어째서 고명한 북해신창이 날라차기를 피하지도 않고 얻어맞고 낑낑거리는지, 궁주의 밀실에서 폭력이 난무함에도 긍지 높은 백궁빙영대가 침묵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마음에 둔 남자를 괴롭히는 얄미운 인간을 향해 분노를 터트릴 뿐이다.
“그대가 본궁의 비원을 찾는 데 공을 세운 점은 부인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예의?”
“감사를 표하는 것은 저희라지만, 무도한 행동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요.”
“아, 그래?”
설악약은 사뿐사뿐 다가가 바닥에 넘어진 남궁윤호를 품에 안았다.
“딱하시게도.”
“어, 설 소저. 전 괜찮습니다.”
“보는 제가 괜찮지 않답니다. 소리가 굉장하던데 혹이라도 난 것이 아닐까요?”
몹시나 다정하게 말하며, 사랑스러운 손길로 머리를 더듬을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설악약.
이를 지켜보던 악마의 입가가 샐쭉해졌다.
백궁빙영대원들은 저마다 미간을 집었다.
‘그럴 줄 알았어.’
이 괴물은 어째서인지, 남녀가 찰싹 붙어 있는 꼴을 못 본다.
말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하지만, 질투심의 화신이라도 된 양 어떻게든 괴롭힌다.
‘어떻게 하지?’
그들은 악마의 표정을 읽었지만, 막는다는 생각은 못 했다.
막아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도 했지만, 충성스러운 그들은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찾았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없더라도 사랑은 원래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거야.] [남녀 관계는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다행히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궁주가 돌아왔다.
“너무 기다리게 했군. 미안하네.”
북해궁주의 등장에 엉덩이를 들썩이는 악마가 다시 자리에 앉은 것은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