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73
제88장 또 다른 외인 (5)
마지막 조각.
수족 같던 부족들을 희생해 대족장의 발을 묶은 것도, 자신의 반려수를 희생해 혈마수의 제단을 만든 것도.
그에게 있어서 야심을 이루는 과정에 쌓아온 과업일 뿐이다.
하지만, 한판의 승부로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는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동시에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것들을 희생해 자신만의 군단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변은 없다.”
몇 번이고 숙고 끝에 정한 계략은 대수림의 모든 것을 장기 말로 움직일 것이며, 작은 실패의 가능성조차 용납하지 않게 할 것이다.
몇 번이고 수를 둔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계략은 나 스스로가 장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약속된 승리의 미래를 위해, 그는 스스로 직접 장기판 위에 말이 되어 뛰어들기를 결정했다.
“여봐라!”
결심을 굳힌 그가, 목소리를 높여 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족장. 무슨 일이오?”
삼삼오오 다가오는 부족원들을 보며, 그가 말했다.
“전쟁이다.”
“전쟁이라니. 역수귀가 죽은 마당에 굳이 전쟁을 벌일 필요가 있겠소?”
“사자부족. 백호부족. 회웅부족.”
하나 같이 만독호 인근에 자리 잡은 거대 부족들이었다.
만독의 땅은 대수림에서 신성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라 위험함에도 많은 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은 왜?”
“그들이 외인들과 결탁해 대족장을 죽이려 하였다.”
“그들이 말입니까? 하지만.”
그들은 족장의 수족이 아닙니까?
묻으려던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역수귀에 입은 피해가 너무 심했다.
부족원들이 죽은 것도 문제였지만, 애써 기른 반려수들이 역수귀의 저주에 미쳐 버린 것이 문제였다.
힘이 약해지면 잡아먹힌다.
약육강식의 법칙은 대수림의 야수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게, 물론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은 오히려 그들에게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사자부족을 토벌해 야수를 얻는다면?’
‘백호부족과 회웅부족을 우리의 지배하에 둔다면, 피해를 만회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대수림의 지배자가 될 수도….’
계산 끝에 전사들은 의문 대신 분노를 터트렸다.
“족장의 말대로 복수를 해야 합니다.”
“외인과 결탁하다니, 대수림의 은혜를 배반한 자들.”
“족장. 어찌하면 됩니까?”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에 남천사도가 대꾸했다.
“외인과 결탁한 부족들을 처단한다.”
동시에.
그가 족장들에게 몇 개의 알약을 건넸다.
“내가 내어주는 비약을 먹거라. 숲의 은혜가 너희들을 지켜줄 것이다.”
숲의 비약.
전사들은 족장이 건네주는 약이 기분을 고양시키는 물건임을 알고 있었다.
과거 부족 간의 전쟁에서 몇 번이고 써먹은 물건이니까.
오랜 공작 끝에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비약이라는 말에 의심 없이 손을 뻗었다.
금단의 약을 챙기는 손끝이 떨렸지만, 이미 곧 찾아올 희열의 순간을 아는 그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후후. 도나가 뱉어낸 돌을 굳이 야수들에게만 먹일 필요는 없지.’
그의 입가에 머물렀던 짧은 비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들끓는 복수의 환희가 자리했다.
“우리의 친구를, 반려를 앗아간 놈들을 징벌해야 할 때다!”
그에, 사람들이 스산하게 웃었다.
“복수를.”
“숲의 복수를.”
하나둘 비약을 삼키는 이들을 보며, 남천사도가 말갛게 웃었다.
‘도나. 나의 도나.’
너의 혼백이 만들어낸 재앙이 곧 대수림에 임할 것이니.
곧 이곳은 피와 절규의 장으로 변모하고 말 것이로다!
웅크리고 있던 남천사도가 비로소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대수림에 전쟁이 임박하고 있었다.
***
찌르륵. 찌르륵.
대수림의 밤은 무섭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밀림은 끝을 모르게 이어지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은 끔찍한 독을 감춘 독물과 사람쯤은 거뜬히 삼키는 습지와 자연이 만든 함정들이다.
또한, 대수림 깊은 곳에 존재하는 만독연은 가장 위험한 맹수들의 서식처이기도 했다.
가장 위협적인 환경은, 역설적으로 몹시 강력한 맹수들이 살아가는데 최적의 땅이었고, 강력한 맹수들을 조련하기 위한 부족들은 만독연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강력한 야생 맹수를 잡아 야수공으로 조련하는 것, 그것이 전사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인 힘을 얻는 방식이니까.
하지만, 그 어떤 용맹한 전사도 대수림을 혼자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잘못했다가 야생 맹수들의 서식지에 발을 딛으면, 순식간에 사냥당한다. 어떤 강자도, 홀로 수많은 맹수들을 당해내기는 어렵다. 만독연의 독기를 먹고 자란 맹수들은 교활하고 지능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살아갈 수 있되, 어디까지나 숲의 순리를 따라야 하는 곳.
바로 독의 고향이자, 대수림의 신성한 땅이라 불리는 만독연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런 험지를 초운휘는 홀로 나아갔다.
자박. 자박.
느긋한 발걸음 소리는, 위험천만한 독지를 걸어가는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다.
하지만, 숲이 반응했다.
침입자를 격퇴하는 대신, 숲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두려움에 떨며 길을 열었다.
저벅. 저벅.
풀벌레들조차 울음을 그치고, 야수들이 웅크려 길을 만들었다.
독충은 다리를 오므려 침입자를 비켜주었고, 날던 새는 날개를 접고, 침입자의 눈에 띄지 않게 숨을 죽였다.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땅.
포식자와 피포식자가 극명히 갈리는 약육강식의 땅.
그곳에서 오직 유일하게 초운휘만은 규칙에서 벗어난 존재처럼 숲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어떤 위협도 맞닥트리지 않은 채로.
한참을 걸어 멈춰 섰을 때, 사위는 고요했고, 오직 존재하는 것은 초운휘와 어둠뿐이 되었다.
그때 초운휘가 입술을 달싹였다.
“풍객.”
휘이이이이-.
처음으로 밀림의 나무들이 흔들리며, 월광이 내리쬐었다. 빽빽하게 얽힌 나뭇가지들이 풀려나며 허공의 맑은 공기가, 축축한 대수림의 습기를 밀어내고, 월광과 함께 흘러들었다.
어느덧 허공에는 초로의 노인이 장포를 나풀거리며 서서히 내려서고 있었다.
“풍객.”
“암존인가? 오랜만은 아니지만, 자네가 이렇게 반가울 수 있다니.”
“꼴이 말이 아닌걸?”
“…내가 너무 경솔했네. 대수림이 넓은 줄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이었어. 독충은…. 말하기도 싫을 정도군.”
평소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풍객의 얼굴에 진심으로 질색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얻은 것은 있어?”
“안타깝게도 사도를 찾아내는 것에는 실패했네. 하지만, 아주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야.”
풍객이 소매를 털어 옷자락에 붙은 독충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말을 듣고 만독연 주변의 마을들을 돌아보았지. 역수귀라는 마수들의 방문을 받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더군.”
“그랬나?”
“상상 이상이었네. 하지만, 그럼에도 사도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더군. 아마 네 번째 사도는 인내심이 강한 모양이네.”
“쉽지 않네.”
이쯤 하면 슬슬 모습을 드러내리라 생각했다. 사도는 마신이 될 그릇답게 일신의 능력도 강력하다.
한시라도 빨리 제단을 완성해 돌을 얻고자 하는 광기는, 인간의 인내심 따위를 가볍게 부술 정도다.
“다른 노림수가 있는 탓이겠지.”
“나도 같은 생각일세. 얻고자 하는 것이 있지 않고는 이렇게 침묵하고 있을 리가 없어.”
풍객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렇게 판을 벌여줬으면서도 말이지.”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모를 것으로 생각했나? 자네 같은 사람이 사천당가와 움직이는 이유가 단순히 남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은 아니겠지.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아닌가?”
시선을 맞춘 풍객이 조심스레 제 생각을 꺼내 놓았다.
“인신 공양.”
“…….”
“자네는 독왕과 사천당가의 정예, 그리고 대수림의 전사들을 미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무공을 익힌 단련된 고수의 육체만큼 제물로 적합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네. 아마, 사도는 고민할 것이야. 영물을 얻어 제단을 세우는 것이 먼저일지, 아니면 이때가 아니고 구할 수 없는 진귀한 제물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일지.”
“…….”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군. 인면지주와 싸워 탈진한 당가의 뒤를 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까. 제단의 재료와 제물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말을 더했다.
“아닌가?”
물어오는 풍객의 도발적인 시선에 비로소 초운휘가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
풍객은 그 미소가 무척이나 차가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오늘 낮에 아이들과 뒹굴며 낄낄거리던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삶은 투쟁의 연속이야. 쟁취하지 못한 보물은 돼지 목의 진주일 뿐이지.”
“…역시 맞군. 자네는 정말 무서운 사람일세. 지인을 미끼로 씀에 거리낌이 없다니.”
대수림의 가혹함보다 풍객은 눈앞의 존재가 더욱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피해가 생겨날지 모르네. 지금까지 웅크리고 있다면, 이번 사도는 위험해. 뭔가 대단한 노림수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말했잖아. 삶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삶을 쟁취하지 못하는 자들은 계속 살아갈 가치가 없어.”
냉정한 한 마디에 얼굴이 굳어가 메마른 목소리가 나왔다.
“독주는…. 어찌할 텐가.”
“그대가 말했잖아? 미끼는 크고 거대할수록 좋을 뿐이야.”
“…….”
“내가 바라는 것은 끝까지 만독연을 주시해 사도를 찾아내는 것이야. 놈을 내 앞에 데리고 와.”
“알겠네. 약속이니까.”
하지만 풍객은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존재다. 비록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형체만 그러할 뿐, 알맹이는 인간의 굴레를 벗어 버린 존재다.
그렇기에 두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폭풍의 이름을 듣고 절망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해일의 이름을 듣고도 겁을 먹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자연재해는 코앞에 임박하면 비로소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모습에 절망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 자는 무턱대고 살육을 즐기는 광인은 아니야.’
그렇기에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선하다고 볼 수 있는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행실을 보면 한없이 악에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가끔은 의문이 든다.
천재지변에게 선한 의지를 강요할 수 없지만, 불러올 재앙의 끝에 어떤 참극이 일어날지, 낙원이 임할지 알 수 없는 것은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여 풍객은 말했다.
단순히 선악을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자가 휩쓸고 간 자리 위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 알고 싶어서였다.
“맡겨 두게. 최대한 자네 사람들에 대한 피해를 줄이도록 할 테니.”
“아무래도 좋아. 그저 그쪽이 편할 때로 해.”
돌아오는 목소리에 풍객은 속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재앙의 존재가 멋쩍게 볼을 긁적이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이 재앙의 존재는 속내를 드러내는데 서툰 모양이군.’
천재지변 뒤에 남을 것이 무엇인지 확신이 섰다.
태풍이 되어 대수림을 뒤흔들 이 존재는, 지나간 후에 허망하게 주저앉아 절망할 살아있는 것 대신, 그들에게 그 뒤에 피어날 작은 새싹을 보여줄 것이다.
어쩌면 태풍이 되어 대수림을 휩쓰는 이유도, 이 땅에 은혜로운 비를 내려 주기 위함이 아닐까?
“뭔가 시선이 수상쩍은데?”
“그럴 리가. 난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네. 자네와 난 계약으로 엮인 관계가 아닌가?”
식어가던 마음에 조금 온기가 돌아오는 느낌을 받으며 풍객이 서서히 날아올랐다.
인간을 내려보는 압도적인 재앙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자 하나 어설픈 재앙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시선에 넣고 싶어서.
“아무래도 시선이 불손해.”
“허허. 그럼 난 이만.”
대수림의 독지를 향해 날아가는 풍객은 어쩐지 지금까지 자신을 골탕 먹이던 이 축축한 습기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 재해의 존재가 이 대수림에 어떤 대변혁을 가져오게 될 것인가?’
지금은 그것을 기다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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