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44
제101장 약점을 잡으면 됩니다 (5)
“…검괴.”
주변을 돌아본 초운휘를 바라보는 번양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말없이 엉망이 된 장내를 돌아보는 그에게서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 탓이다.
“오늘의 일은 그대의 관도들이 본문의 비역을 침범하며 일어난.”
“입 닥쳐.”
짧은 한마디에 번양은 노기가 치밀었지만, 감히 덤벼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강호십대도객 혼원벽력도 팽가도의 찬사를 받아낸 자다.
독안신검이나, 복마신니, 취걸개 같은 강호의 명숙들이 아낀다는 소문도 마음에 걸렸다.
“그대가 명성을 얻더니 오만해진 모양이군. 이곳은 화산파네. 손님으로 왔다면 응당 주인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맞지.”
“흐흐.”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느긋한 웃음이었으니.
‘이자가 상황 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친 인간이 아니고서야 구대문파이자, 대검문으로 이름 높은 화산파를 적으로 돌릴 언사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뭔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군. 자네의 관도들은 죄를 지었고, 우리는 엄중한 문규를 집행하는 중이네.”
“까는 소리 말고.”
“그대.”
“내 관도들을 안내한 놈들은 모두 잡았어. 몇 대 두들겼더니 자기들도 지시를 받았다고 실토하더군.”
번양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떻게?’
촤악! 손을 흔들자 아무렇게나 뿌려지는 종이에, 익숙한 용모파기와 그들의 행적들이 낱낱이 나타났다.
심지어 특급 귀빈들에 관한 내용까지도.
‘정말이구나. 대체 무슨 수로 입을 열게 한 거지?’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번양이 도리어 역정을 내고 나섰다.
“화산파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란 말인가?”
화산파의 이름을 앞세우면 세상 어떤 누구도 당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마치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은 화산파의 일원임을 내비치는 것이었으니, 이번에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화산파? 무서워 오줌 지리겠네.”
“무림공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저들을 놓아두고 썩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간을 벌어보려는 것 같은데, 과연 화산파가 여기 올 시간이나 있을까?”
“놈! 무슨 뜻이냐!”
“흐흐. 글쎄?”
히죽 웃는 모습에 번양은 무척이나 불길해졌다.
“여기에 신경 쓸 여력은 없어 보이던데 말이야.”
히죽 웃은 초운휘가 목을 꺾었다.
“화산파고 개산파고, 상관없으니 딱 대.”
몸에서 풍기는 살벌한 기세에, 번양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검괴. 이 자를 잊고 있었구나.’
천재를 키워낸 거물이 위협을 무릅쓰리라 생각지 못했거늘.
아무래도 오늘은 득보다 실이 많은 날이 될 것 같았다.
***
한 식경 전.
제갈탄이 교관들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 화산파 제자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는지라 모른 척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니, 복도에서 여매홍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제갈 관도. 안색이 무척 좋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나요?”
“괜찮습니다. 교관님은 안에 계신가요?”
“네. 지금 상급교관님들께 혼나고 막 돌아오셨어요.”
“그렇군요.”
안도감이 가슴 한구석에 피어오른 것은, 방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으윽. 왜 다들 나만 가지고 그래….”
게으르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문을 열자, 안에는 베갯잎에 눈물을 적시는 교관이 있었다.
‘다행이야. 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에 교관의 표정이 퉁명스러워졌다.
“너 미쳤냐?”
‘평소의 교관님이군. 진짜야.’
생각하며 제갈탄이 빠르게 정황을 알렸다.
“뭐? 비역? 함정에 빠졌다고?”
“네. 증거라고 하긴 뭣하지만.”
품속의 용모파기도 꺼내기 전에 교관은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뺀질이인 네놈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화산파 쉐끼들. 진짜 치사하네.”
뭐라고 이 한 마디에 마음이 울컥거리는지 모르겠다.
명문정파인 화산파가 함정을 팠다는 말을 간단히 믿어주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역으로 추궁이나 당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제갈탄도 다음에 들려온 말에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저분하게 나오겠다면 오히려 편하지. 나도 더럽게 일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거든.”
좋아! 아주 좋아!
이를 갈아붙이는 교관을 보자 제갈탄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저, 교관님? 무척 든든하신 말씀입니다만. 이곳은 화산파입니다. 구대문파 중 한 곳인 화산파 말입니다. 잊으신 것 아니죠?”
“개새끼들. 개도 제 집구석에서 반절은 먹어준다지만, 너무 하잖아. 생각해보니까 상급 연회장 음식 맛있더라. 반면에 하급 연회장의 음식은 쓰레기였어.”
“중요한 때에 개인적인 원한이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먹을 것 때문에 화산파를 적으로 돌리시는 것은 좀 아니다 싶습니다.”
“뺀질아.”
“네….”
“걱정 마라. 다 잘될 거야.”
듣다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 조금 전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 꿈인 것만 같았다.
“다 좋습니다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데?”
“어떻게 일을 처리하시렵니까?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관도로서 정말 호기심에 묻는 겁니다.”
들어 올리는 주먹에 말을 고친 제갈탄에, 초운휘가 뒷짐을 지며 창문을 열었다.
“제갈아. 내가 도사네 집에 와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천기라고 아느뇨?”
“…갑자기 웬 도사 놀음이십니까? 그리고 도사네 집이 아니고, 도문입니다. 게다가 화산파는 이번 대제전을 기회 삼아 무파로 현판을 바꿔 달려고 하고 있고요.”
딱. 주먹질과 함께 침착한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딱 보니까, 천기가 그래. 하늘이 내게 방도를 알려줬다. 이 엿 같은 곳 확 뒤집어 버리라고.”
“…어….”
“이 교관을 믿느냐?”
‘솔직히 좀….’ 이라고 덧붙이려다 완전히 불이 붙어 있는 교관의 눈을 보고는 제갈탄은 할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래서 첫 시작은 무엇입니까?”
“내 방 앞을 지키는 화산파 도사들 봤지?”
“네. 아주 더는 설치지 못하게 눈을 부라리고 지키고 있던데요?”
“걔들이 답을 내어줄 거다.”
성큼성큼 방을 나서자, 못마땅한 표정의 화산파 제자들이 다가왔다. 가슴께에 수놓은 두 개의 매화는 이대 제자의 상징이다.
“무슨 일로 또 나온 건가, 검괴.”
“일전의 일은 넘어가겠으니, 제전이 끝날 때까지 자중하라는 본문의 말을 잊은 건가?”
딱딱한 반응에 대한 초운휘의 대답은 딱딱한 주먹이었다.
뻑! 뻐벅!
순식간에 앞에 선 도사의 낭심을 올려 차고, 연이어 두 번째 도사의 턱을 돌려버리자, 두 사람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끼약! 초 교관님!”
지켜보던 여매홍은 비명을 질렀고.
“…우리 모두 화산파에서 뼈를 묻으세.”
장철심은 수염을 쓸며 도를 닦기 시작했다.
“초운휘 교관!”
난리법석이 난 사이, 오직 윤섭만이 이변을 눈치채고 다가왔다.
[윤호와 관련된 일인가?] [그래.] [빌어먹을. 알겠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가지. 미치겠군. 화산파에서 칼을 뽑을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그가 관도로 위장한 호위와 함께 다가올 때 즈음, 초운휘는 진짜 준비하고 있던 계획을 시작했다.
[율아. 뒤엎는다.]정파인들에 둘러싸여 불쾌감만 쌓여가던 독고율이 기다렸던 지시에 스산하게 웃으며, 역시 다른 이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주군께서 움직이신다.]모두.
[백귀들은 주군을 영접할 준비를 마치라.]***
[시작해라.]“…….”
처음 지령에 반응한 것은 화산파의 마구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꼽추 사내였다.
전음을 들은 순간, 목을 꺾은 사내에게서 뼈 뒤틀리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굽은 등이 펴지고, 흐리멍텅한 눈에 스산한 빛이 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그림자처럼 나아간 그는, 익숙하게 묶여 있던 말을 풀고, 마방의 문을 연 후, 검지를 튕겼다.
화르륵!
한구석에 놓여 있던 건초 더미에 불씨가 옮겨붙자 순식간에 마방에 연기가 가득 차며 말들이 울부짖었다.
“불이야!”
시끄럽게 외치며 사라지는 그의 뒤에 남은 것은 미친 듯이 날뛰며 쏟아져 나오는 말들과 불이 삼켜버린 마방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움직이는 이들이 또 있었으니.
[함정을 찾아라.]다음 지령을 받은 것은 연회장의 숙수로 일하는 요리사와 아낙이었다.
시선을 맞춘 두 사람은 연회장을 오가는 이들을 살펴보고는 바로 전음을 나누었다.
조금 전까지 닭을 썰고, 채소를 다듬던 검이 두 사람의 손에 들린 순간, 서슬 퍼런 검광이 일렁였다.
[사막의 징벌을.] [사막의 주인을 위해.]사막살수곡의 살수들이었다.
연회를 준비하는 연회장에서, 더러는 객실에서, 더러는 전각의 축대가 부러지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무수히 이어졌다.
“이런! 이번 대제전은 마가 낀 것인가?”
“예끼. 말이라도 그런 말 말게. 화산파가 얼마나 공을 들여 준비했는데.”
“쩝. 실수했네. 좀 이상해서 말이지.”
썩은 음식을 먹거나, 앉아있던 탁자가 부숴지는 등 작은 횡액을 당한 이들이 투덜대며 항의하는 사이, 화산의 자락 아래에서는 또 다른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
화산파(華山派).
입산을 위해 모든 이들이 지나가는 이곳에 수십 개의 인형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헤에에-?”
개중에는 아득히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히죽거리는 이.
바로 귀갑철극을 낭창이는 단야였다. 그의 등 뒤에 선 귀면탈을 쓴 살수들은 사막살수곡에서도 특급으로 분류되는 강자들.
조금의 지체도 없이 화산으로 향하는 길 위에 발을 얹는다.
“여자. 계획대로 움직여 주는 거야아아?”
입산로의 계단에 발을 얹던 단야가 돌아보았을 때, 돌아온 것은 퉁퉁한 노인의 욕설이었다.
“피 냄새나는 살수놈! 성녀님께 예의를 갖추거라!”
“예의? 그게 뭐야.”
“무례한 남마교의 백정 같으니라고. 너 같은 녀석은 한 번.”
소매를 걷어붙이는 이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솟구쳐 나왔다.
투실투실한 얼굴에 보름달 같은 웃긴 외모를 가졌지만, 그는 사막살수곡주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천마신교 사장로.
소면마군 맹성.
그가 살기를 뿌리자, 자연스럽게 일어난 마기(魔氣)에 주변의 초목이 말라가며 실시간으로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만 해요.”
두 사람의 대치를 끝낸 것은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흑야 곡주. 계획의 협조는 사부님도 허락한 것이니 틀림없이 이행하겠어요.”
“헤에-. 시원해서 좋네.”
“하지만, 오늘의 행사는 그대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혈서생의 계획을 거스르겠다면, 그대가 사막혈수곡의 곡주라고 한들 본녀가 죽일 수밖에 없어요.”
천마신군 갈중혁의 가르침을 통해, 천마신교의 성녀로 거듭난 매(梅).
구천일의 배교 사태 이후, 갈중혁은 그녀에게 천마삼검식을 철저히 전수했다. 의외의 사실이라면, 호교원의 원주에서 교주로 복귀한 혈교주 구자극이 그녀를 꽤 좋게 보았다는 점이다.
– 아이야. 진마혈신공을 익혀 보겠느냐?
덕분에 북마교와 남마교의 독문무공을 유일하게 익히게 된 그녀.
천마의 그릇을 만드는 진마혈신공과, 천마 그 자체라는 천마신공을 오롯이 흡수한 그녀는, 과거와는 다른 경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히-. 예쁜이가 말이 무섭네.”
소름이 돋는다는 듯 장난스레 어깨를 떠는 그에 그녀의 등 뒤에 있던 이들이 나섰다.
“흑야. 성녀를 존중하게. 마도통일 이후, 처음 추대된 성녀임을 잊어서는 안 돼.”
“네놈은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한 대 패고 계획을 시전하는 것이 어떨까?”
뒤이어 모습을 나타낸 사자 같은 갈기 수염을 가진 노인에 단야가 입맛을 다셨다.
혈교 사호법의 수좌.
환영마군 남학.
그에 이어 나타난 외팔의 청년, 구자극이 눈을 흘기자, 입을 완전히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세월을 거스르며 다시 왕년의 기세를 회복한 전대의 혈교 교주, 그에게는 단야조차 거스를 수가 없었다.
“쳇-. 재미- 없어-.”
홀로 문파 몇 개는 잿더미로 만든다는 강력한 마존이 둘이나 한 자리에 나선 것이다.
무려 천마신교와 수라혈교의 고수들을 이끌고서.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이들이 나서자, 관심을 거둔 단야가 흰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붉은 눈을 반짝였다.
“자아-. 드가자아아–.”
그의 손짓과 함께, 귀면탈의 살수들이 일제히 화산파의 첫 관문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