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0
제17장 선택 강요 (5)
싸움은 어느 순간 박빙을 넘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비무에 임했던 남궁용호는 남궁윤호가 펼쳐내는 검격에 평정심을 잃고 있었다.
쩌엉!
“크윽!”
초식을 펼쳐내기도 전에, 초식의 축이 되는 팔꿈치를, 무릎을, 무게 중심을 뒤흔드는 공격.
초식의 무서움도 있었지만,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은 기괴한 박자를 타고 나아가고, 휘몰아치는 공격들이었다.
‘후흐…. 또!’
쉬익!
호흡을 삼키려는 순간, 찔러오고.
‘푸흐. 큭.’
숨을 내쉬는 순간 귀신같이 베어온다.
심법의 흐름을 귀신같이 끊어대니, 호흡이 원활치 않았다.
또한, 호흡이 이어지지 않으니, 숨과 진기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호흡을 끊고, 몰아치며, 초식의 시작부터 봉쇄하는 검격에 남궁용호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설마. 형은 남궁세가 무공의 파훼법이라도 익힌 것 아닐까?’
파훼법.
무공의 약점을 역으로 공략하는 공략법.
이내 남궁용호는 고개를 저었다.
‘남궁세가의 무공은 절대적이야. 천하제일검가의 무공을 누가 파훼할 수 있겠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궁용호의 추측은 어느 정도 맞았다.
차이가 있다면 초식을 공략하는 단조로운 방법 대신, 모든 남궁세가의 초식을 머릿속에 때려 박은 다음 어떻게든 빈틈을 공략하는 방법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이미 조부의 검무를 보며, 깊숙한 곳에서 남궁세가 무공의 정수를 깨달은 남궁윤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피나는 노력과 지독한 반복 수련이 동반한 결과임에 말해 무엇할까.
챙. 채채채채챙.
어지럽게 이어지는 공격을 쳐내는 남궁윤호는 철벽이라 칭해 부족함이 없었다.
소검룡. 혹은 십초살의 이름은 유령에 닿지 않았다.
영원히 맞닿지 않을 동전의 양면처럼, 눈앞에 존재하되, 잡을 수 없는 유령과도 같았다.
쩌엉!
“크윽!”
튕겨 나온 검에 손목이 욱신거렸다.
검을 든 손이 덜덜 떨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진기가 들끓는 것이 더욱 문제였다.
호흡을 빼앗긴 것만으로 도도하게 흐르던 진기가 가닥가닥 끊어지며, 머리가 윙윙거렸다.
투두둑.
무리해서 끌어낸 화려한 공격의 반동인지, 코피가 터지며 후두둑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눈앞이 가물거리며, 혼미한 가운데서 오직 뇌리를 가득 채우는 것은 지독한 수치심과 승부욕.
‘관도는 물론이고, 교관들마저 눈에 차지 않아.’
‘동천관은 어때? 듣기로 처참하다고 들었는데, 오래 있어 봤으니 잘 알 것 아냐.’
‘할 만큼 했잖아? 그런 곳에서 배울 것이 뭐가 있겠어.’
얼마 전 멋모르고 떠들었던 제 목소리가 떠올라, 평점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진기가 끊기고, 마음이 요동치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기가 뇌리를 익혀 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질 줄 알고?”
원초적인 욕망이 뇌리를 채워가자, 저열한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이기면 돼!”
더욱 크고 화려한 초식을 남발하는 것은 수순이었다.
채앵! 쩌엉!
하지만 손에 익지 않은 초식일수록 더 쉽게, 간단하게 파괴되었다.
“아아아악!”
투두두둑.
진기가 진탕되어 눈에 실핏줄이 터지며 남궁용호가 성난 야수처럼 포효하기 시작했다.
***
“용호야!”
“어허. 어딜 가십니까.”
턱.
가슴을 막는 검집에 남궁일준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이것 치우게. 저대로 가만두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
주화입마.
심기체의 균형이 무너져, 폭주하는 현상이다.
운이 좋더라도 큰 내상, 보통의 경우에 기혈이 역류해 반신불수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다.
일반적인 정파의 무공을 익힐 때는 흔히 발생하는 일은 아니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평생 승승장구하던 아이라 더욱 충격이 큰 모양이야.’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것은 큰 자랑거리였다.
역으로 생각하면, 패배의 경험이, 면역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상대가 제가 눈 아래로 여기던 형이라 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상대는 집요했다.
“얘들 싸움에 어른들이 끼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자네. 진심으로 죽고 싶은가?”
턱.
탁자를 걷어차자 기대어 두었던 검이 빙글 솟구쳐 올랐다.
허공에서 검을 낚아챈 남궁일준이 으르렁거렸다.
“마지막 경고야. 날 방해하겠다면 이대로 베어주지.”
“어이구. 무서워라.”
뚝.
장난스레 몸을 떠는 모습에 남궁일준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꽈악.
공력을 일으킨 엄지로 검을 튕겨내며, 다른 한 손으로는 검집을 밀어내며 발검(拔劍).
단숨에 눈앞의 무뢰한을 베어내고자 마음먹은 순간, 남궁일준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검이…. 뽑히지 않아?’
꽈악. 꽈악.
힘을 주어 당겼지만,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흐흐. 검집이 꽤 독특하네요.”
손가락이 향한 곳을 본 남궁일준은 그제야 검이 뽑히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철을 두들겨 정련하고, 상어 가죽을 덧씌운 검집에 두 개의 젓가락이 돋아 있었다.
식탁에 굴러다니던 나무젓가락이 놀랍게도 검집을 관통한 것도 모자라, 검신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언제 손을 쓴 거지?’
머리 꼭대기까지 달구던 열기가 식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화를 내야 할 쪽은 애초에 이쪽이라고 생각하는데.”
‘베인다.’
번쩍.
눈앞에 섬광이 일어난 순간, 어느새 상대는 검집에 검신을 밀어 넣고 있었다.
착.
“오늘은 한번 넘어가 주죠.”
쩌억.
양손에 쥐고 있던 검이 두 동강이 나는 모습에 남궁일준은 뒤이어 소름이 돋아왔다.
‘엄청난 쾌검.’
몸이 채 반응하지 못했다.
대체 이 자는 누구란 말인가?
“얘들 일은 얘들이 풀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쪼르르륵.
혼자 술병을 기울이는 모습에, 남궁일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사이.
비무는 격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쐐액! 쐐애액!
거침없는 괴성을 지르며, 일검 일검에 전력을 다하는 남궁용호.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난잡하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주한 채 바람을 비껴내는 거목처럼 멈추어선 남궁윤호와 무척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채채채챙!
대척점에 선 기세로 마주 선 두 사람 중, 한 명은 우뚝 섰고, 다른 한 사람은 꼴사납게 밀려났다.
밀려난 것은 소검룡, 십초살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신룡.
전력의 공격을 쏟아내었음에도 밀려나자, 결국 남궁용호가 땅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악을 썼다.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없어!”
승부욕에 사로잡힌 남궁용호가 붉어진 얼굴로 검을 세웠다.
지금까지와 달리, 은빛으로 빛나던 검신 위에 새파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파라라라락.
검신에서 생겨난 강력한 기파가 뜨거운 열풍을 쏟아냈다.
이를 마주한 남궁윤호가 검기의 열풍 속에서 조용히 좌수를 들어 상대를 겨누며, 오른손으로는 검을 등 뒤에 숨긴 채, 자세를 낮췄다.
파라라라락.
휘몰아치는 검풍에 남궁일준이 고함을 쳤다.
“안 된다! 용호야!”
비무에서 검기라니.
이성을 잃은 남궁용호의 모습에 남궁일준이 재빨리 달려가려고 했다.
“어허.”
퍽.
다시 앞을 가로막는 검집에 남궁일준이 악을 썼다.
“이놈! 아이들이 다치는 것은 두고 볼 참이냐!”
“싸우면서 크는 거지 왜 자꾸 화를 내고 그래?”
“둘 중 하나라도 다친다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던가 말던가.”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검기를 전력전개한 남궁용호가 지면을 박찼다.
사악!
승부욕에 사로잡힌 와중에도, 경탄할 만한 깔끔한 신법이다.
바람처럼 허공으로 몸을 띄운 채, 지면을 향해 벼락같은 검기를 내질렀다.
웅웅웅웅웅.
거대한 검기가 허공에서 뚝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피할 수 없는 사신의 칼날이 몸을 낮춘 남궁윤호의 머리를 당장이라도 쪼갤 듯했다.
그 순간.
눈을 감고 있던 남궁윤호가 입을 달싹였다.
“봉황승천.”
한껏 낮춘 자세를 튕겨 올리며, 벼락처럼 양손을 떨친다.
피잉!
검기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손목이 꺾인 남궁용호가 악!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공에서 균형을 잃었다.
피잉!
핑그르르. 퍼엉.
튕겨 나간 검기의 조각이 팔각정의 기둥을 스쳤고.
우지직.
화려한 지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요, 용호는. 용호야!”
다행히 용호는 무사했다.
정신을 잃은 채로 등부터 떨어지던 것을 남궁윤호가 받아낸 것이다.
품속에서 축 처진 남궁용호의 입이 뻐끔거렸다.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남궁윤호는 모르는 척 검을 떨구고는, 선언했다.
“제 패배입니다.”
“쿨럭. 쿨럭.”
내상을 입은 남궁용호가 뭔가를 말하려다 자꾸 미끄러졌다.
남궁윤호는 황망하게 달려가 그를 일으키는 남궁일준을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숙부. 제가 욕심을 부리고도 패하였으니, 이제 세가에 남아 있을 염치가 없습니다. 이대로 가문을 떠나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윤호야.”
“교관님.”
“…….”
“이제 하늘 아래 갈 곳이 없이 되었습니다. 돌아갈 곳은 동천관의 낡은 숙소뿐이군요.”
그렇게 말한, 남궁윤호는 한켠에 마련해둔 괴나리봇짐을 툭툭 털고 어깨에 걸었다.
“그럼 안녕히.”
애초에 떠날 생각이었던 것인지,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뚜벅. 뚜벅.
멀어지는 남궁윤호의 뒷모습을 보며, 남궁일준은 몇 번이고 떨리는 손을 거두어야 했다.
***
돌아오는 길.
울렁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걷고 있자니,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져 줬냐?”
침묵을 고수하던 듬직한 스승의 물음에 남궁윤호가 얼른 대답했다.
“교관님께서 일러주신 바를 따랐을 뿐입니다.”
“일러준 게 뭔데.”
“모든 것을 잃더라도 최후의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해라. 모용 소저를 통해 일러주시지 않았습니까?”
근심만이 가득하던 때, 들려온 한 마디는 어찌나 반갑던지.
엊그제의 기억이 떠오른 남궁윤호가 드물게 환한 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교관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근심을 되돌아보니, 제 미련이 결단을 미뤄왔더군요.”
정말 그랬다.
“세가에 돌아가고 싶다. 가문의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 소가주가 될 수는 없을까? 모두가 제 욕심이었습니다.”
정답은 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최후의 마지막에 오늘을 떠올리면 미소 지을 수 있으리라.
교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잃은 다고 생각하니, 답은 금방 나왔다.
“하핫. 비록 가문을 잃어도 후회할 것 같지 않습니다. 명성이고 인정이 다 무엇입니까. 아, 마지막에 도깨비 같은 동생 녀석 엉덩이도 두들겨줬으니, 형으로 할 일은 다 한 것 아닙니까?”
가문을 버렸지만 웃음이 나왔다.
교관의 말대로 폐부 깊숙한 곳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비집고 올랐다.
“그랬어?”
“제법 괜찮은 선택 아닙니까?”
교관이 빙긋 웃었다.
남궁윤호도 마주 보며 웃었다.
뻐억.
행복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따뜻한 마음을 시린 고통이 채웠다.
뻑. 뻐억.
“어억!”
정강이를 감싸 쥔 남궁윤호가 울먹이며 외쳤다.
“왜, 왜 이러십니까?”
“왜긴 왜야. 야, 이 새끼야.”
퍽. 퍽.
등짝과 뒤통수를 마구잡이로 내리치며 초운휘가 이를 갈아붙였다.
“인마! 걸고 싶으면 네 것만 걸어. 왜 내 돈까지 거냐!”
“허, 허락하신 일 아니었습니까?”
“네놈이 두 배로 불려줄 줄 알았찌. 하. 이 X 같은 새끼.”
“나올 때도 분명 미련 없이 돌아서지 않으셨습니까.”
“지고 돈 달라기 쪽팔리잖아.”
퍽퍽.
돌주먹이 머리며 옆구리를 거침없이 두들겼다.
어찌나 아픈지 행복이 죄다 증발하고 빈자리를 후회가 채웠다.
마음속에 쌓아 높은 존경의 탑이 빠르게 허물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윽. 윽. 최후의 마지막에라도…. 웃을 수 있다면 된다더니.”
“웃어. 인마. 오늘이 네 최후에 마지막이니까.”
아아아.
이건, 좀 아닌데.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문득 모용소혜가 전한 한 마디가 떠올랐다.
교관님이 말씀하셨어요.
귀엽게 말하며 귓가에 속삭였지.
– 강호는 원래가 악취미래요.
실로 그러했다.
남궁윤호, 자신이 겪어온 강호의 대부분이자, 앞으로 나아갈 강호의 대부분이 될 교관께서는 존재 자체가 악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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