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8
제20장 도둑을 털자 (1)
“저게 뭐로 보여?”
흑호파라고 쓰인 목판을 보며 남궁윤호가 지식을 쥐어짰다.
“흑호파라…. 이곳을 단독으로 장악하고 있는 문파 같습니다.”
“잘 봤네. 어째서 그렇지?”
“우선 문패가 화려합니다. 마치 세력을 과시하는 느낌이군요. 더하여, 장원이 흠이 없이 깨끗합니다. 싸움에 휘말릴 필요도 없다는 뜻이겠죠.”
“눈썰미가 괜찮네.”
남궁윤호를 칭찬하자, 백리설이 머리를 들이밀며 손을 들었다.
“또 있답니다! 아까 저희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몇몇 못생긴 아저씨들이 저쪽으로 향했어요.”
가장 기감이 예민한 백리설답게 그새 사라진 이들의 흔적을 읽은 모양이었다.
“흐음. 저 사람들에게서 [경계]의 감정이 보이지 않아요. 이곳에서 두려울 것이 없다는 뜻인가요?”
모용소혜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늘어놓았고.
“넌 없냐?”
시선을 던지자, 제갈탄이 덧붙였다.
“철사련에 속한 곳은 아니군요. 제대로 된 사도 문파가 아니라, 흑도 계열로 보입니다.”
사파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작금의 사도 세력은 철사련이라는 강력한 연합에 묶인 상황.
철사련에 속하지 않았다는 뜻은, 정식 사도 문파가 아니라, 흑도 출신의 무인들이 모여 만든 방파라는 것.
천하의 모든 거지들이 개방의 방도가 아니고, 세상의 모든 산적들이 녹림십팔채 소속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정식 문파가 아니면 격도 떨어진다.
이런 경우는 잘해야 이류 문파.
대부분은 삼류 문파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었다.
“잘 아네.”
“철사련에 속한 사파의 이름 정도는 모두 외우고 있으니까요.”
“꽤 많을 텐데.”
“제갈세가의 식솔이라면 상식이지요.”
“많이 알아서 좋겠네, X발.”
제갈탄이 재빨리 입을 닫았다.
유독 아는 척을 하면 급발진하는 교관의 성격을 아는 탓이다.
실로 제갈세가의 기재다운 대처였다.
남궁윤호가 물었다.
“교관님. 이곳을 흑호문이라는 흑도 방파가 장악한 것은 알았습니다. 우선적으로 파악할 것은 끝입니까?”
분명 교관은 ‘첫 가르침’을 준다고 했다.
자신들이 아는 내용 정도로 그칠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연히 아니지.”
바로 답이 나왔다.
“가장 유력한 문파를 파악했으면, 꼭 떠올려야 할 것이 있다.”
두근. 두근.
이어질 가르침에 모두 귀를 열고 집중했다.
“그 문파 옆집이 맛집이야.”
***
“뭐? 왜!”
역정을 내며 교관이 투덜댔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 아냐?”
“심지어 유력 흑도 문파 맛집은 식 재료도 좋은 것만 쓴다고!”
“대충 만들었다가, 성격 나쁜 흑도 놈들이 치도곤을 내니까!”
요즘에 얼마나 대충 장사하는 놈들이 많냐는 둥, 음식 재활용하는 집도 있다는 둥, 진득하게 투덜거리는 초운휘를 보며 일행의 시선이 짜게 식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며, 한껏 기대감을 키워 놓고, 내놓은 것은 잔뜩 김이 빠지는 것이었다.
“흥. 칫. 펫. 나 혼자 먹을 거다.”
그러시든가.
철없는 반응에 한층 더 안쓰러움이 더해진다.
어느덧 객잔, 일명 흑도 맛집의 입구에 도착하자, 얼굴에 칼자국이 난 대머리 사내가 가로막았다.
“그쪽은 뉘신가?”
이에 제갈탄이 나섰다.
“지나가던 객이요.”
“이런 곳에는 무슨 일로.”
“오다가다 들르게 되었소만. 이곳은 손님도 가려 받소?”
“흐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골적으로 등 뒤를 향하는 시선에 제갈탄은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흐흐. 반반한 것이 날로 삼켜도 야들야들하겠어.”
“지금.”
스릉.
“싸움을 거는 건가?”
엄지로 검을 밀어 올리자, 사내가 한걸음 물러섰다.
“후후. 농담이었네. 굳이 싸울 생각은 없어.”
“…….”
“들어가게. 매상을 올려주는 귀한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심기가 불편하다.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남궁윤호도 명백히 적의를 드러낼 정도로.
모용소혜가 불편한 기색으로 몸을 베베 꼬았다.
“교관니이임. 진짜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해야 해요?”
“응. 남이 차려준 밥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분명히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야생에서 풀뿌리를 캐 먹었으니까.
불에 닿은 제대로 요리한 음식이 땡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곳은 좀. 신경 쓰며 밥 먹다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아요.”
“이런 경험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말로는 교관을 이길 수가 없었다.
***
안에는 대낮임에도 술에 취한 한량들이 네댓 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굉장한 시선이네요.”
들어서기 무섭게 백리설은 자신을 훑는 시선에 미간을 찌푸렸다.
팔짱을 낀 모용소혜도 영 불편한지 작게 몸을 떨고 있었다.
“어디에 앉을까나?”
“저쪽이 좋겠습니다.”
몇 개의 너저분한 탁자를 창가 옆, 벽을 등진 자리에 남궁윤호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초운휘가 말했다.
“나쁘지 않네.”
“벽을 등지고 싸우기도 좋고, 도주하기 용이한 곳을 잡았습니다.”
“응. 그럴 거라 생각했어.”
다음으로 시선을 돌리자, 제갈탄이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이곳에 돼지술찜이 있나?”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순간, 초운휘가 퍽! 탁자 밑에서 정강이를 걷어찼다.
“왜, 왜 그러십니까?”
“넌 정신이 있냐 없냐? 이런 곳에 돼지술찜이 어떻게 있어?”
“어, 없습니까?”
돼지라면 가장 흔하고 저렴한 재료인 데다, 무한성에서도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요리다.
나름대로 고심 끝에 골랐는데, 뭔가 잘못되었던가?
초운휘가 혀를 찼다.
“술찜을 만들 술이 어디 있어? 죄다 처마셔 버렸겠지.”
“…….”
“거기에 이곳이 어디인지 잊었어? 먹고 죽을 것도 없는 화전민 마을이야. 많이 처먹는 가축을 키울 리가 없잖아.”
“아!”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
얕은 지식보다 이곳 사람들의 습성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거늘.
“그럼 어떤 것을 고르죠?”
“올 때 사람들 먹는 것 못 봤어?”
“아. 하나같이 부추 국수를 먹고 있었어요.”
“꿩 국수야. 산에서는 쉽게 잡을 수 있거든. 꿩 국수 다섯에, 안주로 소 내장구이 먹는 놈이 네 놈. 둘 다 시키면 되겠네.”
식당에 들어온 짧은 순간에 파악한 건가.
실로 노련한 눈썰미였다.
탁탁. 상스럽게 탁자를 치자, 예의 험상궂은 대머리 사내가 달려왔다.
“넌. 뭐야.”
“점소이입니다.”
“그 얼굴로? 새끼야. 여긴 천하제일 인성대회로 사람 뽑냐?”
“거. 말을 좀.”
“뭐! 왜! 내 말이 어때서! X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내가 네 얼굴 보고 국수가 넘어가겠냐? 국수가 넘어가겠냐고! 나 체하면 네가 물어줄 거야?”
위협적으로 검집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악을 쓰는 통에, 결국 점소이는 잔뜩 인상을 쓴 채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보며 초운휘가 말했다.
“두 번째 가르침. 깐깐한 손님처럼 보여야 고기를 많이 준다.”
그러시겠지.
아무래도 교관의 인성질은 사파에게도 먹히는 모양이었다.
***
“여기 음식 나왔수다.”
턱턱.
성의 없이 탁자에 그릇을 내려놓는 모습은 눈에 걸렸지만, 일행은 금방 편안해졌다.
“흐음. 좋은 냄새네요.”
“언니. 진짜 고기 많이 나왔어요!”
“이게 얼마만의 식사지?”
“정말 향이 좋아. 육수 비법이라도 배우고 싶군.”
각자 젓가락을 쥐고 국수에 밀어 넣던 순간이었다.
“아, X발.”
교관이 또 짜증을 냈다.
“또 무슨 일이슈?”
“방금 국물에 손가락이 닿았잖아!”
점소이가 코웃음을 쳤다.
“음식 나를 때 잠깐 닿은 것뿐이요. 왜? 그것도 못 참소?”
“당연히 못 참지. 너 같으면 뒷간에서 닦지도 않게 생긴 인간 손가락 담근 걸 먹겠냐?”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씨근덕거리는 점소이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결국 물러선 것은 점소이였다.
“다시 내어 오겠소!”
그러나, 교관의 인성질은 끊이지 않았다.
“다시 내와.”
“다시! 다시!”
“다시 가져오라니까!”
이어지는 소란에 네 사람은 물끄러미 국수를 내려다보았다.
교관의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퉁퉁 불어버린 국수가 불쌍할 지경이었다.
몇 번이고 국수를 엎자, 결국 사달이 났다.
목에 건 행주를 내던지며 점소이가 으르렁댔다.
“뭐가 문제요! 왜!”
“몰라서 물어?”
“손가락도 닿지 않았고, 분명 조심해서 들고 왔지 않소!”
“마음의 손가락이 담겨 있었어.”
“뭔 개소리요?”
“진짜라니까. 다시 가져와.”
“X발!”
콰앙.
곁에 있는 탁자를 걷어찬 점소이가 씨근덕거렸다.
“보자 보자 하니까 들어줄 수가 없군!”
드르륵.
조금 전까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던 이들이 은근히 이쪽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신호만 떨어지면 이쪽을 공격할 의지가 느껴지는 음험한 기운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탁. 탁.
백리설과 남궁윤호가 각자 발끝으로 탁자에 기대어 놓은 검을 차, 무릎에 올려 두었다.
잘그락. 잘그락.
제갈탄과 모용소혜는 모르는 척 소매 아래 젓가락을 숨겼다.
상황이 벌어지면 출수를 하려 함이다.
‘왜 굳이 싸움을 걸어서는.’
한숨이 나왔지만, 모두 긴장하며 슬며시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일촉즉발의 상황.
인성질을 부리던 초운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이야? 난 네가 네 X이라도 넣은 줄 알았다니까.”
아니면 미안.
장난스레 덧붙이는 말이 더욱 성질을 긁었다.
“으드득. 진짜 해보자는 거지!”
공허한 한 마디가 이어졌다.
“그럼. 이 개 같은 수면약은 누가 넣은 거야?”
우뚝.
짧은 한마디에 점소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수, 수면약이라니 무슨 소리요?”
“몰랐어? 너 코가 없냐? 아주 약에 쩐내가 진동하잖아.”
“나, 나는 모르는 일이요.”
“그래? 이상하네. 이거 운남성에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거든. 맞다. 사양방의 비전이 섞이면 유독 쓴 향이 강한데….”
냄새만으로 약의 정체와 제조한 곳의 위치, 제조자의 이름까지 언급하자, 점소이의 눈동자를 넘어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잘못 건드렸다.’
딱 봐도 그런 표정이었다.
“아무튼 넌 아니라는 거지?”
“그, 그렇습니다.”
“그럼 범인은 한 놈이네.”
턱.
초운휘가 곁에 있는 탁자에 손바닥을 올렸다.
쿠앙!
굉음이 나며 탁자가 네 조각으로 부서졌다.
“누가 그러더라. 사랑의 매를 때릴 때는 도구를 쓰래. 맨손으로 체벌하면 감정만 상한다던가?”
우두둑.
박살 난 탁자의 다리를 들고, 손날로 툭툭 치자 순식간에 몽둥이가 만들어졌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손속이었다.
“이제 도구를 들었으니, 음식에 장난을 친 개놈을 잡아 사랑의 매를 치면 되겠네.”
“어, 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발경으로 탁자를 부수고, 몽둥이를 만드는 모습에 정신을 팔린 점소이가 가로막았다.
“왜? 너도 범인이야?”
섬뜩.
장내를 떨리는 살기에 점소이가 뒷걸음질 쳤다.
“아니지? 그럼 비켜.”
뒤이어 초운휘가 주방으로 사라졌다.
와장창!
굉음이 뒤따랐다.
“뭐야? 너 뭐야!”
“아악! 크악! 뭐냐고!”
“사, 살려. 제발. 사람….”
뻑뻑. 우두둑.
한참을 이어지던 굉음이 사그라들고, 주방으로 사라진 인간이 돌아왔다.
한 손에는 피가 묻은 몽둥이를, 다른 한 손에는 떡이 된 사람을 질질 끄는 채였다.
투욱.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발치에 던지며 초운휘가 물었다.
“야. 아니지?”
“대, 대인. 무슨 말이십니까?”
“얘는 네가 시킨 일이라던데, 우리 착한 점소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안 그래?”
조금 전의 신위를 본 데다, 자신보다 강한 주인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점소이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모함입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
투욱.
피가 묻은 몽둥이를 내려놓은 초운휘가 말했다.
“국수 다시 말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