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단문종(丹文宗) 입문
축기단 이야기를 꺼낸 패천종의 허 장좌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봤다.
마치 너희들이 이러고도 버틸 수 있겠느냐는 표정.
하지만 나와 양준혁은 이미 입을 맞춰 둔 상태였다.
내가 입을 열려 하자, 말이 나오기도 전에 허 장좌가 외쳤다.
“그럼, 그렇지! 잘 선택했다. 그럼 여기 올라타거…….”
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허 장좌님, 저희는 이미 마음을 정해 두었습니다.”
이미 다른 수도자들은 내 말뜻을 이해했지만, 허 장좌는 그럴 리 없다는 듯 현실을 부정했다.
“그래! 애초에 패천종을 염두에 두었다는 뜻이렷다!”
“저, 그것이 아니오라……. 저희는 단문종에 갈 생각입니다.”
“…….”
허 장좌는 예상 밖의 대답을 들었는지, 충격을 받아 말이 없어졌고. 주변에서 상황을 구경하던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조차 너무도 놀란 듯 입을 벙끗거렸다.
그리고 한 사람, 단문종의 이 장좌는 전혀 기대도 없는 표정으로 무료하게 기다리던 중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화들짝 놀랐다.
“뭐, 뭣이?! 너희들이 정녕 우리 단문종에 오고 싶단 것이냐?”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린 뒤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자고로 진정한 성취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부위침(磨斧爲針)과도 같은 각오를 통해 쟁취해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적부터 오직 단문종만을 바라보며 수련에 힘써 왔습니다.”
[*마부위침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그러자 이 장좌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쉽게 쌓은 힘은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단문종은 매일매일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곳이지. 그래도 괜찮겠느냐?”
그래도 혹시나 싶어 재차 확인하는 이 장좌.
나는 이제 때가 왔음을 느끼고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당연히 제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하여도 저는 또다시 단문종만을 바라봤을 것입니다.”
이 장좌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해 보이자, 그는 가슴이 벅찼는지 참지 못하고 광소를 토해 냈다.
“크하하하하!!”
어찌나 큰 소리가 나는지, 주변에 있던 삼천의 산수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다른 결단기 수도자는 그런 이 장좌가 몹시 아니꼬운 표정들이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조성된 듯싶자, 나는 낚싯바늘을 내밀었다.
“한데……. 송구합니다만 이 장좌님.”
“그래그래! 무엇이든 말하거라! 너희 같은 인재들의 말은 얼마든지 들어주마.”
“사실 저희같이 보잘것없는 산수들이 어찌 축기단을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마냥 단문종에 들어가고 싶습니다만……. 그래도 축기에 도전할 적엔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나는 은근슬쩍 네놈도 축기단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토록 좋아하던 이 장좌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으, 음……. 그, 그게 말이다…….”
그때, 이때다 싶었는지 주변 수도자들이 나섰다.
“아니, 이 장좌! 어찌 저런 우수한 제자들에게 축기단을 마다하시오?”
“쯔쯧……! 내 이 장좌가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소이다!”
“고작 축기단을 아까워해 저런 천재들을 놓친다면 그쪽 장문인께서 참으로 좋아하시겠소이다?”
이놈들은 지금 나를 도와주는 형세였지만 사실 자기 재산이 아니니, 이 장좌를 몰아붙여 손해를 입힐 작정인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수도자의 말이 결정타가 되었다.
“어차피 단문종은 축기단을 만들어 내는 종문이 아니오? 다른 둔재들에게 돌아가는 것보다야 저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 백배 나은 결정 아니겠소? 이 장좌, 어디 내 말이 틀렸소이까?”
그 또한 이 장좌의 재산을 축낼 생각에 뱉은 말이었지만, 듣고 보니 그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그에 이 장좌는 결심했는지 곧 모두의 앞에서 선언했다.
“좋다! 너희 둘에게 내가 책임지고 축기단을 받게 해 주마! 걱정 말거라. 둔재 놈들에게 돌아갈 축기단을 너희들에게 주는 것이 종문에도 더욱 이득이니,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좌 역시 보통 능구렁이가 아닌지 축기단을 준다는 말이 아니라 ‘받게 해 주겠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사실 그는 종문의 재산으로 축기단을 지급할 계획이었다. 하나, 주변 결단기 수도자들도 호구가 아니었다.
웬 부적 모양의 법보를 꺼내 들어 이 장좌에게 기어코 맹서(盟誓)를 하게 만들었다.
법보에 대해 맹서를 하게 되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오직 맹서 당시의 경지를 돌파해 버리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초기에서 중기의 돌파가 아니라 아예 한 경지. 즉, 결단경에서 원영경으로의 돌파를 해야 했으니, 사실상 맹서를 어기는 것이 불가능한 셈.
그 광경을 보던 나는 속으로 실소하고 말았다.
‘정말 귀엽게들 노는구나……. 수백 년을 살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인가……?’
이제 상위 십 인의 종문 선택식이 끝났고, 나머지 290명의 차례였다.
하지만 이들에겐 애초에 선택권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선택권이란, 수천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위 10인에 당당히 발을 올린 이들을 우대하기 위한 규칙이었다.
각 종문에서 나온 결단기 수도자들은 저마다 점찍어 둔 산수들을 가리키며 뽑아 갔다. 290명 중 7할에 가까운 200명가량을 팔대 종문이 서로 나눠 가졌고, 나머지 90명 정도를 수십 곳의 중소 규모 수도 종문에서 데려갔다.
그래도 팔대 종문에 뽑힌 녀석들은 기쁨에 들뜬 모습이었지만, 중소 규모 종문에 걸린 놈들은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이제 자신들은 좋은 단약과 공법, 법기 등과는 평생 만나 보지 못할 처지가 됐으니까.
인원 분배가 끝나자, 각 종문의 인솔자들이 대형(大形)의 비행법기를 저마다 꺼내 들고 산수들을 태워 떠나갔다.
단문종의 이 장좌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 타거라!”
펑! 소리와 함께 거대한 단로(丹爐) 모양의 비행 법기가 나타났다. 단로의 뚜껑이 덮여 있어 그 위에 산수들이 올라탔다.
산수들은 비록 단문종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팔대 종문이기에 가슴이 벅찬 기색이었다.
“내, 내가 팔대 종문에 들어가다니……!”
“어머니! 제가 드디어 경연회를 뚫고 종문에 들어갑니다…….”
“크흐흑……! 크흑……!”
기뻐하며 흥분을 간신히 억누르는 사람.
자신의 부모님을 찾으며 효도를 약속하는 사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놈.
그들 저마다 적게는 5년, 많게는 수십 년까지 경연회만을 바라보며 도전해 왔기에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와 양준혁과는 거리를 벌리고 자리했다.
‘아마 우리의 자질이 비범하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어딜 가나 인간관계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법. 나는 재빨리 양준혁에게 말했다.
“형님, 우리 이럴 때가 아니라 다른 산수들과 안면을 트는 게 어떨까요?”
“음, 네 말이 맞다. 비록 우리가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단문종에선 그런 것이 먹히지 않을 테니…….”
“예, 맞습니다. 괜히 미움을 사지 말아야죠. 가시죠.”
한쪽에는 우리를 피해 모인 산수들이 십여 명씩 무리 지어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은 잠시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속세에 찌들대로 찌든 나의 미소에 도망가지는 않는다.
“안녕하십니까? 산수 여러분. 저는 장철이라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저는 장소미입니다.”
“저는…….”
여기저기서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린 뒤 모두의 인사가 끝나 가는 적절한 시점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하하하! 반갑소. 난 한일원이오. 위명이 자자한 권마를 뵈어 영광이오.”
자연스럽게 나서서 자신이 우두머리인 양 행동한다.
다른 산수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연기 6성에 달하는 한일원의 기세에 압도되어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제법이군. 이 녀석…….’
나는 가만히 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
눈이 동그란 편인데, 그리 선해 보이지 않는 형태.
어찌 보면 장난기 어린 모습을 보는 것도 같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하관, 광대, 웃을 때 입의 모양을 살펴보니 결론이 나왔다.
‘이 새끼 이거……. 전형적인 앞잡이의 얼굴이네. 밟아 놓고 시작할까? …아니다. 벌써부터 문제를 일으키면 앞으로의 생활에 지장이 갈지 모른다.’
나는 놈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짓고 답했다.
“나 또한 반갑소. 장철이오. 뭐, 권마라는 별호는 그다지 달갑지 않지만…….”
“하하하. 별호를 싫어하는 줄은 몰랐소. 그나저나 종문에 들어가면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었소. 장 수사.”
“나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딱딱한 말투는 쓰지 맙시다. 앞으로 오래 볼 사이 아닙니까? 하하하!”
내가 과장되게 웃어젖히자, 놈도 빙그레 웃으며 받아들였다.
나는 한일원을 일별하고 다른 무리에도 인사를 마쳤지만 더 이상 눈여겨볼 놈은 없는 듯했다.
아마 종문에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한일원이 원흉일 확률이 9할 9푼이었다.
‘저놈만 조심하면 되겠군.’
* * *
이틀이 지났다.
결단기 수도자의 영력을 이용한 극쾌속의 비행.
종문에 소속된 수도자들은 이미 도착한 듯 부랴부랴 준비를 했지만, 산수들의 눈에 보이는 전방은 황량한 벌판에 불과했다.
아주 드넓은 대초원(大草原).
마치 요동 지역의 대초원을 보는 것과 같이 엄청난 넓이의 땅이었다.
하지만 비행법기는 이 방향이 맞다는 듯 속도를 점점 줄여 가며 접근해 갔다.
그때, 이 장좌가 출입부(出入符)를 꺼내 영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막이 갈라지며 우리들이 통과할 만큼의 공간을 내주었다.
잠시 뒤, 전방엔 엄청난 규모의 산맥이 드러났다.
무협지 속의 십만대산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저러한 광경일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한 산수가 물었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저는 평생 들어 보지 못한지라…….”
이에 이 장좌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 대결계(大結界)는 바로 우리 단문종을 수호하는 호산대진(護山大陣)이다.”
“호산대진이요……?”
“그렇다. 이 결계는 우리 단문종의 모든 산맥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외부의 적을 모두 방비할 수 있지. 능히 원영(元婴)의 일격조차 막아 낸다.”
모두가 그 말을 듣곤 깜짝 놀랐다.
어떻게 돼먹은 결계이길래 최강이라 알려진 원영기 수도자의 일격도 막아 낸단 말인가?
“하하하! 그래그래. 우리 호산대진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듯했던 이 장좌는 곧 표정을 지우고 모두를 중앙에 모이게 했다.
그러곤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며 입을 열었다.
“우리 단문종은 다른 종문과 다르다. 알고 있는가?”
몇몇 산수들이 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단문종은 단약을 주로…….”
“네! 단문종은 법기, 부적, 단약을…….”
하지만 이 장좌는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딴 걸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잘 들어라. 우리 단문종의 근간은 바로 단약 제련이다. 그러므로 방대한 양의 공부가 받쳐 주지 못하면 너희는 수행을 높이기 힘들다.”
방대한 양의 공부라니…….
그의 암울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앞날에 펼쳐질 고생길을 가늠하는 중이리라.
“그 많은 양의 공부를 하는 데에는 영근의 자질 따윈 중요하지 않다. 온갖 천재들도 우리 단문종에선 수행을 포기하고 도망가기 일쑤였지……. 그리하여 미리 말한다! 이곳에선 오직 ‘노력’만이 너희들의 신분을 결정할 것이다!!”
번쩍!
때마침 이 장좌 놈이 술법을 부려 그의 등 뒤로 후광을 만들어 냈다.
처음엔 부정적인 기색으로 듣던 산수들의 입이 점점 벌어지더니 그놈의 ‘노력 예찬론’을 듣고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우린 운이 좋았구나! 자질이 아닌 노력을 보는 곳이었다니!”
“그래! 정말이군. 나 한중평은 비록 자질이 모자라 수행의 속도가 늦었지만, 노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걸세!”
“나도 어디 가서 끈기가 모자라단 말은 듣지 못하였소! 어디 한번 해 봅시다!”
모든 산수들이 그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보니, 노력에 있어서만큼은 저마다 천하제일을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노력이라는 것도 머리가 좋은 놈, 즉 타고난 놈에게는 소용없다는 걸.
결단기 수도자조차 방대한 양의 공부라고 하는 걸로 보아, 그 노력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나는 여섯 번의 회귀를 겪으며 말도 안 되는 암기력을 지녔기에 별걱정이 들지 않았다. 다만, 산수들이 또다시 속는다고 생각하니 꺼림칙할 뿐이었다.
‘불쌍한 놈들……. 두 번 배신당하는구나…….’
일각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비행법기는 종문이 존재할 것이라 짐작되는 몇 개의 산 중 한 곳으로 향했다.
족히 수천 장은 되어 보이는 산의 높이.
비행법기가 그중 하나의 산 초입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그곳엔 웬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허름한 나무로 이루어진 집들이 있어 영락없이 외진 시골의 풍경과 진배없었다.
다들 왜 이런 곳에 내렸는지 의아해할 때 이 장좌가 입을 열었다.
“단문종에선 자질이나 신분 따윈 티끌만큼의 영향력도 없다! 오직 노력! 오직 실력에 의해서만 그자를 평가한다! 알겠느냐?”
“예! 장좌님!”
“알겠습니다!! 장좌님!”
모두가 가슴이 한껏 부풀어 괴성을 지르듯 답한다.
그리고 이 장좌가 덧붙였다.
“그러므로 그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특별 대우란 없다! 너희는… 오늘부터 외문제자(外門弟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너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높이 올라올 수 있으리라! 뚫고 올라와라! 내가 있는 곳까지!”
그는 멋들어지게 말한 뒤, 한순간에 저 멀리 점이 되어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가 약을 파는 느낌이 물씬 들었지만 다른 산수들에겐 아니었나 보다.
모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그가 사라진 방향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