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05
104화 나 미쳤나 봐
각오를 다지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장삼풍 사부가 제지하셨다.
“사부?”
[가만 지켜보려 했더니 안 되겠구나. 아직 네 수준에서 건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생사람 잡을 생각이 아니라면 건드릴 생각일랑 접어라.]“…….”
무공에 관해서는 틀린 적이 없으시다.
하지만 설아 누나와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펄펄 끓는 기름에 얼음물을 쏟아부으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대폭발이다.
어렸을 적 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저질렀다고 해야겠다.
그때의 여파로 주방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그 일을 저지른 백무호와 나는 엉덩이가 새빨개질 때까지 맞았다.
“……반발이 무지막지하겠죠.”
[그 아이 몸에서 일어나게 될 거다.]주방의 참상이 설아 누나의 몸속에서 일어난다.
경험 때문인지 무서울 정도로 선명한 결과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사천에서 경고하지 않았느냐! 타인의 몸에 함부로 이종의 기운을 불어넣어선 안 돼. 그것이 반발을 일으킬 수 있는 기운이라면 더더욱!]“그게 땅의 신력이라도 말입니까?”
땅의 신력은 한산월 아주머니에게도 통했던 힘이었다. 설아 누나의 근원이 한산월 아주머니와 같다면 충분히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신력은 내공의 상위 호환인 힘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월하게 반발을 누르고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부님의 판단은 다른 듯하다.
[제어할 수 있다면 도움은 되겠지. 겨울 삭풍이 몰아치는 곳에서 손가락 하나만 써서 일천 단의 돌탑을 쌓아 올릴 정밀도가 있다면 말이야. 다만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대가가 뒤따를 거다. 그걸 제어할 수 있겠느냐?]사부님의 질책에 내가 하려던 일의 난이도가 보였다.
끓어오르던 감정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죄송합니다.”
진정된 모습을 보이는 내게 장삼풍 사부가 이번에는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셨다.
[방법이 아예 없진 않지. 요는 충돌을 없애는 거니까. 충돌이 일어나도 보듬어 안아 다스리면 되는 거다.]“삼재일기공…….”
장삼풍 사부의 삼재일기공은 달마 사부의 중토신공과 천마 사부의 천마무겁수마저도 보듬어 안는 무공이다.
[물론 지금 수준에서 될 일은 아니지. 서두르지 마라. 저 아이의 어미도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 있다. 이는 나름 이와 같은 상황을 넘길 방법이 있다는 소리 아니겠느냐.]“……그렇기는 할 겁니다. 한 해에 한두 번 정도 있는 일로 알고 있거든요.”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었고, 설아 누나는 이를 무사히 넘겨 왔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와 같은 고통이 지금까지 쭉 있어 왔다는 의미다.
그것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시니…….’
마음이 쓰려 왔다.
반면 장삼풍 사부는 나름대로 고민에 들어가셨다.
[어린 나이에 이만한 힘을 내는 한음지기라……. 이런 반발이 있다는 건 정상적인 무공이 아니라는 건데……. 맥이 끊어지기도 쉬운 무공이기도 하고. 한데 이를 이었다?]장삼풍 사부가 지상에 있을 무렵에는 이름을 날리지 못한 무공인가 보다. 여러 무공에 박식한 장삼풍 사부도 바로 답을 내놓지 못하셨다.
[좀 알아봐야겠군. 아무튼, 기다려 보거라. 뭐, 여차하면 무공 하나 만들면 되겠지.]“……예?”
[밀어서 안 된다면 당기라고 하지 않았더냐. 밖에서 어렵다면 안에서 잡으면 될 일이지. 삼재일기공은 네게 맞춰진 무공이라 저 아이에게 전수하긴 어렵겠지만…… 뭐, 그 부분이야 적당히 손보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게다.]“하…… 하…….”
헛웃음이 나왔다.
‘사부님들은 이런 분들이셨지.’
남들이 알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욕심을 낼 무공을 뚝딱 만들어내시는 분들이시다.
[그러니 사부를 믿고 경거망동하지 말거라.]“옙!”
설아 누나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불가능이 없는 분들. 그게 사부님들이시다.
믿고 기다리면 된다.
그때였다.
“안 들어올 거니?”
안쪽에서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사부와 대화하는 소리를 설아 누나가 들었나 보다.
“들어가도 돼요?”
“이전이라면 안 된다고 했겠지만, 너도 이제 무공을 익혔으니까. 어머니가 네 성취를 보고 크게 놀라셨으니…… 괜찮을 거야.”
이런 때의 설아 누나는 가족 이외에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확실히 이 정도 냉기라면 어지간한 고수라도 위험하다.
“그럼 들어갑니다.”
여성의 방에 발을 들이는 일이지만, 서로 그런 걸 신경 쓸 사이는 아니기에 거리낌 없이 방문을 열었다.
‘차갑다.’
문에 손을 대자마자 한기가 느껴졌다. 차갑게 식어 있는 문고리는 얼음이나 다름없다.
문을 열자마자 나를 덮친 것은 한겨울을 연상케 하는 차가운 공기였다. 숨결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온다.
이전이었다면 건물에 다가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없다.
아무런 내색도 보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한가운데에는 은색의 비단금침을 덮은 설아 누나가 누워 있었다.
그 옆으로 태연하게 다가가 앉으며 안부를 물었다.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 어렸을 때만큼 힘들진 않으니까.”
설아 누나가 발작하듯 냉기를 뿜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때보다 견딜 만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나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설아 누나가 조용히 웃었다.
“그저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내 옛 선조들은 매일 이러셨다는걸.”
“그렇다고 누나가 지금 힘들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내 말에 설아 누나가 난처한 듯 혀를 날름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서 말실수를 한 것 같다.
말을 돌릴 필요가 있다.
“……누나 선조님들도 고생이 많았겠네요.”
“응, 그렇다고 하더라. 많이 힘드셨대. 많이 죽기도 하고, 어떤 분은…….”
뭔가 이야기하려던 설아 누나가 말끝을 흐렸다.
대충 어떤 말이 나올지는 짐작이 갔다.
‘이런 걸 매일 겪었다면 사고가 정상일 리 없겠지.’
설아 누나도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런데, 밖에서 누구랑 대화하는 거 아니었어?”
“처지가 안 좋은 아이가 있어서 이번에 거두게 됐어요.”
“아이야?”
“예.”
“……그래?”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듯 설아 누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 들었나?”
장삼풍 사부와 나누는 대화를 들은 거라면 이상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감정이 격해졌던 때라 생각 없이 말한 부분들이 있었으니까.
설아 누나가 돌연 새침한 눈을 했다.
“여자아이?”
“예.”
“……요즘 우리 청운이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우리 청운이는 착해서 이상한 애들이랑 엮이면 안 되는데.”
설아 누나의 말에 속이 뜨끔했다. 이상한 애들이라는 언급에 갑자기 당사연 소저가 떠오른 탓이다.
설아 누나의 눈이 더욱 새침해졌다.
“흐응.”
꼬집!
차가운 손이 내 볼을 꼬집었다.
살짝 꼬집은 거라 아프진 않았다.
아프게 꼬집었다고 해도 딱히 저항하진 않았겠지만.
새침하던 설아 누나의 눈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따뜻하네.”
“그래요?”
온몸이 차갑게 식어 있는 탓인지 내 체온도 따뜻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신력을 불어 넣는 건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불의 신력을 끌어올려 몸을 뜨겁게 한 나는 설아 누나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설아 누나가 살포시 웃었다.
“……기분 좋아.”
“……다행이네요.”
정말 기분이 좋아서 낸 소리라 그런지 한순간 설아 누나의 대답이 뭔가 야릇한 비음처럼 들렸다.
‘물러나라! 음란마귀야!!’
속으론 엄청 당황했지만, 그것에 대해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좀 더 이러고 있을까요?”
“응.”
내 마음은 전혀 모르는지 설아 누나는 별 고민도 없이 답했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설아 누나의 이마에 손을 올린 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연청운은 반 시진 정도를 백설아의 방에서 머물다 갔다.
혼자 남은 백설아는 조금 전 연청운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미쳤나 봐.”
몸 상태가 이렇지만 않았어도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을 거다.
몸이 조금만 정상이었어도 이불을 걷어차며 이리저리 몸부림치다가 방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기분 좋…… 악!”
백설아는 갑자기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던 백설아의 몸이 축 늘어졌다.
“괜찮아……. 참을 수…… 있어…….”
백설아의 두 손이 자신도 모르게 연청운의 손이 닿았던 이마 위로 모였다.
더 이상 연청운이 손대고 있을 당시의 온기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백설아는 여전히 따뜻하다 느꼈다.
“이걸로…… 참을 수 있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추위를 견디는 사람에겐 작은 불씨의 온기마저도 소중한 법이다.
하물며 연청운이 남기고 간 것은 작은 불씨가 아니었다.
“내일은……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만나야지……. 응…….”
백설아는 좋은 꿈을 꾸는 아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며 아직 오지 않은 따뜻한 내일을 기다렸다.
***
서왕모는 선계의 신선들을 총괄하는 곤륜의 안주인이다. 그녀 역시도 나름 짊어져야 하는 일들이 있다.
태평하게 노닥거리며 주야장천 여흥을 즐기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자오경을 자주 찾지 못하는 이유다.
“뭐가 필요한지는 알겠느니라.”
하지만 천마가 만든 보패를 통해 빠짐없이 연청운을 살폈다. 덕분에 연청운에게 줄 선물을 정할 수 있었다.
본래는 연청운이 쓸 만한 보패가 지상에 남아 있는지 찾아보려 했지만, 백설아라는 아이를 보니 이쪽을 더 좋아할 것이라 확신했다.
“옆 동네에 부탁을 해야겠지만, 여에게도 권리가 있느니라. 적당히 달마를 통하면 될 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광오한 놈도 저 아이를 좋게 보고 있다 하니 문제는 없을 게다.”
천상에는 소속에 따른 여러 부서가 있다. 그중 서왕모가 달마를 언급하며 말한 옆 동네는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의미했다.
다만, 서왕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쪽과 얽혀 있는 건인지 서왕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한 가지 더 확인해 볼 것도 있구나.”
뭔가를 고민하던 서왕모는 거처에서 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순식간에 공간을 넘은 서왕모가 원하는 곳에 다다랐다.
서왕모가 당도한 곳은 거대한 궁전이었다.
크고 거대한 궁전이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외로운 곳.
그 안으로 들어가던 서왕모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영감탱이.”
옥좌 위에 반쯤 누워 있던 어린 소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왜 불러, 할망구야.”
유행하는 필수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왕모와 마찬가지로 장삼풍이 선물한 보패를 들고 있던 현천상제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