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무인이 진화하는 순간이란
천하십검의 일인. 장문경의 절정검도는 천하 모든 검술의 장점을 모아 만든 검술이다.
장점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때에 따라, 상대에 따라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절정검도를 제대로 펼치기 위해선 무림의 여러 무공들에 대해 폭넓게 알아야 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당연히 장소월의 안목은 보통이 넘는다.
그런 장소월에게도 지금 연청운이 펼치는 무공은 특이했다.
‘자세부터가 일반적이지 않아.’
검사는 검을 앞에 세우고 몸을 그 뒤로 숨긴다.
하지만 연청운은 달랐다.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사람처럼 두 손 모두를 활용해 몸을 지켰다.
‘특이한 사람이야.’
연청운과는 첫 만남 때부터 충격적이었다.
가슴을 뒤흔든 극강의 일격!
안목 없는 사람이 본다면 그저 정권 찌르기에 불과했겠지만, 그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힘의 흐름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밀도 높은 강격이었다.
그 특별함에 이끌려 여기 삼양현까지 쫓아오게 됐다.
‘……나쁜 남자이기도 하고.’
연청운에게 화가 났느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일 거다. 앞으로 잘해 보자는 식으로 인연을 옭아매 놓고 말없이 사천으로 떠났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의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감정이 식고 마음이 차분해지니 되려 연청운이 미워졌다.
연청운이 떠난 삼양현에 지금껏 머물고 있었던 것은 한 방 먹여 주고 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게 설령 상대의 호의를 자신이 멋대로 생각하고 상상한 탓이었다 해도 그 정도는 해야 상처받은 자존심이 달래어질 것 같았다.
검을 쓰는 자세를 보면 누가 봐도 초심자였지만 그럼에도 거칠게 손을 썼던 건 그런 이유였다.
사악!
‘나아지고 있어!’
그럼에도 이 남자에게는 뭔가가 있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사각!
‘……베였다?’
나풀거리며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장소월의 소매 끝자락이었다.
***
검이란 무엇인가?
듣는 이에 따라 다른 대답을 내놓을 거다.
누군가는 검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며 스스로를 갈고닦는 수양의 도구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도구라 할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이가 있는 반면, 어느 이에게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상품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벤다!
휘두른다.
좀 더 바르게.
좀 더 제대로.
주먹에 힘을 싣는 법은 안다. 그 방식을 그대로 검에 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힘의 흐름은 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방식을 검에 담게 되면 결과가 엉망이 된다.
당연히 대가가 뒤따른다.
따앙!
다행히 익숙한 권각이 뒤를 받쳐준다.
그 뒷받침을 살려 다시금 검에 힘을 실어 본다.
따당!
‘어설프지만 나아지고 있어.’
분명 처음엔 엉성했지만 휘두를수록 뭔가가 나올 것 같다.
처음보다 낫다.
두 번째는 더 낫고, 세 번째는 괜찮아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쌓여 갈 때마다 그 안에 뭔가가 녹아드는 감각이 손을 타고 흘렀다.
‘좋은 교본이 눈앞에 있으니까.’
왜 장삼풍 사부가 장소월 소저의 검을 잘 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장소월 소저의 검은 다채로웠다. 화산파 검법이 가진 변화가 보이고, 소림의 무공이 가진 용맹무쌍함이 있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흐름에는 무당파의 유가 담겨 있는 듯하다.
고심 끝에 짜여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밀도 높은 구조다.
이해를 거듭할수록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움직인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당과(糖菓)처럼 천천히 녹아내리는 그것이 움직이고 움직여 손끝을 타고 흘렀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심오한 정수(精髓)가 손끝을 타고 흐르며 생명이 없는 날붙이에 스며든다.
차가운 쇠붙이에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자리 잡아 맥동한다.
검날에 피가 흐르는 듯한 감각.
무언가가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실감.
‘온다.’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것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감각에 모든 것을 맡긴 와중에 검 속에서 울음을 토해내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래, 알아.’
그런 순간이 있다.
영감처럼 한순간에 번쩍하고 지나가는 감각이.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순간이.
사악!
무인은 진화한다.
내 안에 담겨 있던 무언가가 검 속에 녹아들었다는 실감을 한 순간, 검을 모르는 문외한이 검에 무언가를 담아낸다.
그 순간, 그 짧은 순간만큼은.
‘지금!’
나는 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각!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검에 무엇을 담았는지 알지 못했다.
이것은 머리로 생각해서 해낸 게 아니니까.
다만 무언가를 담아냈다.
그것이 장삼풍 사부의 무공이었는지, 달마 사부의 무공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천마 사부의 무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해낸 결과물이 눈앞에 나풀거리며 흩날리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이런 결과를 낸 것인지 머리가 따라가지 못했지만, 상대하고 있던 장소월 소저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다. 마주친 두 눈에서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혼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웃으며 검을 내렸다.
“이쯤 할까요?”
“제 옷을 이렇게 해 놓고요?”
아직 승부욕이 남아 있는지 장소월 소저의 눈꼬리가 위로 향했다. 당장에라도 검을 휘두를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멋쩍은 얼굴로 검을 보였다.
“이대로는 검이 더 못 버틸 것 같아서요.”
검이 바르르 떨고 있다. 허도진인의 손에 들려있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 듯 검이 아프다는 소리를 냈다. 실제로 검날이 제법 상했다.
검이란 기본적으로 소모품이다. 예리하게 날을 세워도 몇 번 부딪히면 금방 날이 상한다.
그나마 고수들의 경우 검에 내력을 불어넣어 보호하기에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나는 아직 초보자다. 그런 섬세한 제어는 무리다.
“고생이 많았다.”
나는 애쓴 아이를 보듬듯 손끝으로 바르르 떠는 검날을 매만졌다. 그렇게 검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검면을 눌러 떨림을 억제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조금 전까지 검과 나 사이에 기묘한 이어짐이 있었던 탓인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반응처럼 느껴졌다.
검을 아끼는 내 모습에 장소월 소저도 슬그머니 검을 내렸다.
“싫다는 사람에게 검을 겨누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죠.”
“감사합니다.”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소월에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검을 존중하는 사람으로서의 말을 입에 담았다.
“검이란 것도 ‘좋네요.’”
“……나 참.”
장소월 소저가 어딘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
“와아! 씹!”
살벌하게 시작한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온건하게 끝난 비무를 보며 백무호가 감탄인지 한숨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소리를 짧게 토했다.
“저걸 이기네…….”
옆에 있던 범각이 고개를 갸웃했다.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계속했으면 이겼을 거야. 청운이 녀석은 다듬어지지 않았음에도 장 소저와 백중세였으니까. 조금만 더 다듬어져도 누가 이겼을지는 명확하지. 뭐, 순수하게 무공만 본다면.”
변수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연청운의 말대로 검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면 제대로 성취를 이루기 전에 검이 먼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상대가 나빴다고 할까?
검이라면 초심자가 분명하지만, 무공은 후기지수 중 필두로 꼽히는 고수이기 때문이다.
연청운이 제대로 기량을 정비했을 때부터 승패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딱 보면 각이 나오는 건데 그것도 모르냐?”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게 인지상정. 까칠한 대답을 들은 범각이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
“아, 너랑은 다르게?”
“……쳇!”
백무호와 장소월의 비무는 무승부로 끝났다. 그런 상황에서 연청운이 방문해 비무 대상이 바뀐 것이다.
백무호는 말문이 막혔다.
달랐던 것은 사실이니까.
“씁! 요즘 검을 들 때마다 좀 이상하단 말이지. 검이 자꾸 날 휘두르려는 느낌이랄까. 얼추 선화문이란 곳에서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백무호는 백무호대로 고민이 있었다.
선화문에서 휘둘렀던 검을 순수하게 느끼면서부터 생겨난 변화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선 알 길이 없는 범각은 코웃음만 쳤다.
“세상은 그런 걸 변명이라고 하지.”
“기어오른다, 너.”
백무호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한판 뜰까?”
“힉! 폭력 반대!”
범각이 뒷걸음질을 치며 손을 저었다.
“너, 소림 제자 아니지?”
“소림 제자가 아니라니! 이 빡빡 밀어 버린 머리가 안 보이냐?”
“그건 그냥 탈모인 거고.”
“…….”
백무호의 대답에 범각은 복잡 미묘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우울해진 범각에게서 관심을 끊어낸 백무호가 다시금 연청운과 장소월의 비무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좋은 걸 봐서 그런가? 뭔가 될 것 같기도 한데…….”
백무호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
장소월 소저와의 비무를 마친 나는 백가표국 심처로 들어갔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백가표국의 겉면과는 다른 곳, 옛날부터 사람들을 기피하듯 피해 온 설아 누나가 기거하는 곳이다.
‘음?’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받았다.
‘원래 이런 곳이었나?’
수준이 낮았을 때는 몰랐던 것. 도처에 깔려 있는 기척들이 있다.
“생각보다 대단한 곳이네요, 여기 백가표국이란 곳은.”
이화 역시 주변의 존재를 느낀 모양이다.
“느껴지니?”
“예.”
“……너 대단하구나.”
나는 그저 희미한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화는 뚜렷하게 기척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화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긴, 다른 힘도 아니고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신력을 지녔다. 오히려 내게 나눠 줘야 힘을 원활하게 쓸 수 있다 할 정도다.
“조용히 지나가자.”
“예.”
잠깐이지만 이화의 눈빛에서 뭔가 위험한 기색이 느껴졌다.
해석하자면 ‘감히 건방지게 누굴 내려다보는 거냐?’라고 묻는 느낌이랄까.
이대로라면 불필요한 충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싶어 적당히 다독여 심처 내부로 향했다.
목적지에는 홀로 외로이 서 있는 건물 하나가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주변에 차가운 공기가 흐른다.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건물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고, 주변 바닥에는 살얼음이 맺혀 있었다.
이화의 눈에도 범상치 않은 모습인지 눈을 가늘게 뜨며 주시했다.
“저건…….”
“설아 누나는 가끔 저렇게 될 때가 있거든.”
설아 누나가 기거하는 곳이다.
그날, 설아 누나의 힘을 본 이후로 이따금 본 적이 있는 광경이다.
“무호가 돌아갔으니 내가 돌아온 것도 들었을 텐데 전혀 소식이 없어 이렇지 않을까 싶긴 했지.”
저럴 때의 설아 누나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수기를 다스리는 땅의 신력에 상극이긴 하나 냉기를 견제할 수 있는 불의 신력이 더해진다면?
‘도울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괴로워하는 누나를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던 무력한 아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