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그래, 무공은 그렇게 녹여내는 거다
미인은 뭘 해도 어울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듯, 땀을 흘리는 생기 가득한 미녀가 검을 들어 겨누니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문제는 그 검으로 겨냥한 사람이 나라는 거다.
‘장식이…… 맞지 않나?’
장소월 소저가 내 허리에 매달려 있는 송문고검을 보고 장식 운운했지만, 진짜로 장식이 맞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는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다.
‘시선들이 참…….’
한껏 흥분해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흥미롭게 보는 사람도 있고, 질투 어린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참고로 대부분 후자다.
‘검으로 붙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은데…….’
검술 수련은 고사하고 제대로 검을 잡아 본 일도 손에 꼽을 마당에, 나름 검으로 일가를 이루었을 장소월 소저를 상대한다?
‘이건 피해야…….’
“대가(代價)라고 해두죠.”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거절하려는데 갑자기 대가를 언급하며 퇴로를 막는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겠다 싶어 친하게 지내자는 생각에 불쑥 들이대긴 했었다.
그러고서는 갑자기 말도 없이 휙 사라져 버렸다.
확실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감정 위에 이성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노렸네.’
장소월 소저는 천하의 재녀(才女)로 이름이 나 있다. 어디에 몸을 움직였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구파 및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단순히 미인이라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외모 못지않게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재기 넘치는 눈이 나를 직시했다.
향상심 가득한 눈빛이다.
아무래도 백무호 녀석이 허도진인과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은 모양이다.
송문고검을 꼭 짚어서 언급한 것을 보면 분명하다.
‘피하는 것은 그른 것 같고…….’
흐림 없는 이성으로 검을 겨누고 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검에 고픈 검사일 뿐이다.
이걸 피하면 무인이 아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느냐…인데.’
머릿속의 생각과 다르게 내 몸은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뻗고 있었다.
스르릉!
오랜 세월 손때 묻은 검이, 검을 쥐는 감각조차 낯선 내 손에서 날 선 예기를 흘렸다.
검을 뽑고 손에 쥔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애증이라…….’
허도진인에게 했던 이야기다.
내게 검은 애증의 존재라고.
그 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던 것 같다.
[정신 차려라, 이 녀석아.]‘아!’
검을 쥐고 겨누는 상대에게 검을 들어 세웠다.
비무를 허락하고 준비하는 자세다.
장삼풍 사부의 말에 나는 현실로 눈을 돌렸다.
“갑니다!”
한눈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장소월 소저가 가볍게 땅을 박차는 모습은 짧고 경쾌했다.
몸 전체가 한 줄기 바람처럼 빠르고 가볍게 쇄도해 온다.
거리를 좁히는 순간 검이 사선을 그으며 비스듬히 갈라 온다.
“합!”
기합 소리가 몸을 때리는 것 같다. 귀가 그 소리를 듣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 검은 무겁다!’
검이 닿기 전에 든 예감이다.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쩌엉!
가냘픈 회초리를 묵직한 도끼처럼 휘두른 것 같다.
덕분에 송문고검이 수모를 당했다. 오랜 세월 고아하게 지내 온 고검이 비명을 질렀다.
“어라? 봐주는 게 전혀 없는 건가요?!”
“봐줄 수 있나요! 그 검을 받으신 분께?!”
힘을 실은 강격은 상대를 부수지 못할 경우 반발도 크다. 지금과 같은 일격이라면 부딪히는 순간 몸이 밀려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소월 소저의 검은 강격이었음에도 회초리라도 휘두르는 듯 가볍게 날아들었다.
당연히 수습도 빨랐다.
‘큭!’
카카캉!
자철(磁鐵: 자석)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는지 장소월 소저의 검은 끈적끈적하게 따라붙으며 연거푸 세 번이나 송문고검을 두들겼다.
무겁지만 빠르다.
우직하게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측면을 노리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변화가 가득하다.
화산파의 무공이 떠오를 만큼 가볍고 경쾌한 보법이 이리저리 방위를 점하며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전신의 움직임을 한 점에 실은 검은 그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검이 살아 있다?’
온몸으로 살아 있다고 소리 지르는 검이다. 말을 걸면 직접 목소리를 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대론 안 돼.’
검에는 문외한이지만 비무(比武)에까지 문외한은 아니다.
일단 흐름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
쩌엉!
탓!
파도처럼 밀려드는 검세에 부딪히는 순간 나는 몸을 뒤로 물렸다.
능운금광보까지 쓰며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순식간에 스무 걸음 이상 거리가 벌어진 내 움직임에는 장소월 소저도 놀랐는지 한순간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나는 전혀 만족할 수가 없었다.
보법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인식했기 때문이다.
검을 쓰는 사람의 보법은 권각을 쓰는 사람의 보법과 다르다. 나아갈 때의 보폭과 무게중심을 두는 방식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다.
검을 들고 검사와 부딪쳐 보니 그 차이를 더욱 분명히 알겠다.
연격을 막아낸 것도 기존의 단련과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대응한 임기응변에 불과했을 뿐이다.
[뭘 좀 알겠냐?]‘심술궂으십니다, 사부.’
장삼풍 사부가 놀리듯 이죽거리셨다.
평소와 다르게 가르침도 없으시다.
[저 아이의 무공을 잘 보도록 해라.]보고 느껴라.
직접 가르쳐 주실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스스로 배우고 익혀야 할 영역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검에 대한 기초가 너무 없다.
‘검…… 검이라…….’
생각을 달리해 보았다. 그간의 경험을 되짚어 보았다.
마차에 오르거나, 말 위에 올라타면 갑자기 시야가 달라진다.
검을 쥐는 순간 내가 공격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다.
시야가 달라지는 것과 내가 공격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동시에 공유되는 점 또한 존재한다.
익숙하지 않다.
어느 정도 공격을 뻗었을 때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어느 정도의 타격이 이어지는가?
아무런 기준이 없다.
호흡에서부터, 발걸음, 공방의 간격까지 모든 것이 적수공권과 다르다.
하지만 물러날 수 없다.
사부님은 잘 보라 하셨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이 저기에 있다.
‘늘 그랬으니까.’
가르치는 것이 사부님들의 몫이었다면, 배우고 익히는 것은 내 몫이다.
사부님은 그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등을 떠미셨을 뿐이다.
그럼 배우고 익혀야 한다.
멈추지 마라!
생각하고 생각해라!
치열하게 갈구하라!
어쩐지 처음 사부님께 배우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무공 좀 배웠다고 늘어났던 여유가 통째로 지워졌다.
그렇다고 그 모든 흔적들이 지워졌다는 것은 아니다.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호흡과 혈관.
내뱉은 숨결마저도 무(武)에 바쳐진 몸.
이 육신은 무신들의 가르침을 담기 위한 그릇이다.
이 몸은 분명 미력하지만.
‘이 몸에는 무(武)의 신(神)들이 머문다!’
내가 배운 바를 담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익숙하지 않다면 익숙한 방식으로 검을 움직이면 그만이다.
장점으로 단점을 덮는다.
내가 가진 장점을 살린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녹여내서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나는 분명 장소월 소저의 검을 받아냈다.’
형편없이 밀리긴 했어도 분명한 사실이다.
치열하게 궁리하는 가운데 장소월 소저가 다시 거리를 좁혀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내게 있는 문제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검을 활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버린다.’
캉!
범처럼 달려드는 장소월 소저의 검격을 받아낸다.
하지만 장소월 소저의 검은 일격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교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끈질기게 빈틈을 노린다.
변화와 무거움 그리고 속도를 가미해 파도처럼 밀려들어 기어코 상대를 집어삼키는 검이다.
카카캉!
연거푸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진다.
하지만 분명히 거기에는 조금 전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소리가 달라?”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 달라진 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처음과 달리, 내 손에 들린 송문고검이 내지르는 소리는 더 이상 비명 소리처럼 처절하지 않았다.
‘검은 그냥 검이야. 검의 기대를 버리는 거다.’
무당의 검, 송문고검을 휘둘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다.
소림의 권의는 용맹무쌍이다.
거침없이 나아가 휘젓고 휘두른다.
그 모든 것을 검에 담아낼 순 없지만, 기세만은 담아낼 수 있다.
후확!
기세는 제대로 담아 거칠고 강맹하지만, 내뻗는 걸음과 검을 휘두르는 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어내는 호흡까지 모든 게 어설프다.
빈틈투성이다.
당연히 장소월 소저의 검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따앙!
하지만 그 검은 내게 접근하지 못한 채 튕겨졌다.
내게는 검뿐만이 아닌, 또 하나의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극선…… 보인다!’
그리고 맨손인 왼손이 있다.
일반적인 검사라면 검 하나에 모든 것을 담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양손을 이용한 적수공권의 수법이 더 익숙하다.
장소월 소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뭐예요, 그게? 우검좌수(右劍左手)?”
“급하면 다 하게 되어 있어요!”
오른손에 쥔 검은 일단 휘두르고 본다.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그에 대한 빈틈은 좌수, 맨손으로 펼치는 태극권으로 채운다.
이를테면 검과 방패다.
다른 검사들에게 없는 나만의 장점을 끄집어낸다.
‘장삼풍 사부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장삼풍 사부께서 내가 무엇을 깨닫길 바라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헛웃음을 지으며 밀려나는 장소월 소저를 향해 나는 처음으로 공세적으로 움직였다.
‘이 방식도 아예 장점이 없는 건 아니라서!’
더 이상 굳이 검에 맞춰 보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능운금광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내 거리, 내 영역에서 싸운다.
후확!
검을 휘두르고.
따앙!
맨손이 반격해 오는 장소월 소저의 검을 쳐낸다.
두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의 무기를 꺼냈다.
‘달마 사부가 말씀하셨지.’
권법은 순정한 것이라고.
그리고 각법은.
‘태산도 꿰뚫을 것처럼 쳐라!’
내가 익숙한 거리에서 움직인 발끝이 장소월 소저의 시야 사각에서 강궁처럼 뻗었다!
쩌어엉!
권각의 사거리에서 터져 나온 일격.
첫 격돌에서 내 송문고검이 내질렀던 것과 비슷한 비명 소리가 장소월 소저의 검에서 흘러나왔다.
장소월 소저와 다른 나만의 장점.
‘나는 짧은 사거리에서도 힘을 낼 수 있거든!’
검은 장병기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병기도 아니다. 손발이 닿는 짧은 거리에서 제 위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검이 취약한 곳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다.
“이건 검법이 아니잖아욧!!”
“아무렴 어때요!”
일단 섞고 보는 거다.
그럼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
장삼풍이 안도한 듯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래, 무공은 그렇게 녹여내는 거다.”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장삼풍의 웃음이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