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취죽 선생과 정답게 차를 마시는 할아버지의 친우.
당시 들썩이던 사천이 어떻게 그리 빨리 안정화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결국, 무리가 향하는 방향은 수장이 정하는 것이다.
사천무림이 자잘한 분쟁은 있었어도 전면전은 발생하지 않았었다.
이를 근거로 각 수뇌부가 전쟁보다는 공존을 원하고 있다고 예측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예측이 정확했던 것이다.
‘이러면 흑애무천이 아닌 다른 쪽을 찾아봐야겠는데…….’
굳이 찾고자 한다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사천 정파가 당가, 청성파, 아미파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천 사파가 흑애무천만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천마신교의 암수로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파와의 싸움을 유도해 이득을 취하려 했었던 번목답을 표적으로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중심축을 이루는 거대 문파들을 중심으로 뭉치려 할 테니 언젠간 큰 세력 간의 충돌로 이어질 여지는 다분했다.
‘어찌한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다음 행보를 고민했다.
다만 흑애천주는 내 그런 모습을 다르게 본 것 같다.
“흑애무천의 수장인 흑애천주가 공존과 평화를 바란다고 하니 이상한가?”
흑애천주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여러 가지로 나에 대한 시험이 들어 있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딱히.”
“사파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보였네만.”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아무래도 나를 사고가 굳은 정파의 신성으로 대하시는 것 같다.
‘제가 천마신교의 천마지 말입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무림의 전설인 사부님들과 소통하게 되었고, 정파의 후기지수에서 천마신교의 주인인 천마까지 되었다.
이 무림에서 나만큼 ‘선입견(先入見)’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법이니, 선입견이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선입견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공손 어르신처럼요. 뭐, 편협해지면 세상 살기는 쉽겠습니다만…….”
“하하하하하하!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공손 어르신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박장대소(拍掌大笑).
보는 내가 다 당혹스러울 정도의 반응이다.
“하하하하! 무애에게서 받은 가르침인 겐가?”
“……예?”
“흐음! 반응을 보니 아닌가 보군. 하하하! 하기야 자네는 내가 무애와 지우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야기에 두서가 없는 느낌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으니 따라갈 수도 없다.
반면 공손 어르신의 만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젊은 시절, 내게 흑애천주라는 굴레가 씌워지기 전 무애와 어울렸던 시절이 있었다네. 사파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내게 무애가 이리 말했지.”
“세상엔 많은 정답이 있네. 서는 곳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니, 그만큼 많은 정답이 있겠지. 그렇다고 편협한 자가 고른 정답이 만민에게 이롭기는 어려울 것 같네만. 뭐, 편협해지는 만큼 골라야 할 정답이 줄어들어 고민할 필요가 없을 테니 세상 살기는 쉽겠군.”
지금 내가 한 말과 비슷하다.
“나는 무애의 조언에 따라 위에 서는 자는 더 크고 넓게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그리고 그 조언을 지금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고 있지. 무애의 손자에게서 그 말을 다시 듣는 날이 올 줄이야. 하하하하!”
왜 수십 년간 그 탈 많은 사천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다시금 알 것 같다.
“자네도 언젠간 크게 될 것이니 기억해 두게. 위에 서는 자의 마음이 안락하면 아래에 문제가 생기는 법이라네.”
진지한 공손 어르신의 조언에 천마신교의 문제를 해결한 뒤 대충 자리를 양보하고 마음 편하게 행동하려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책임감이 옅었다.
‘미숙했어.’
공손 어르신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지난날의 나는 분명 대충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면이 없지 않았다.
위에 선 자로서의 책임감이 부족했다.
[사파 놈치곤 제법이군.]천마 사부가 퉁명스럽게 평가했다.
천마 사부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사실 이는 극찬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했다.
나는 공손 어르신의 조언을 마음에 새겼다.
“허면 왜 그리 고민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겐가?”
내 고민을 묻는 공손 어르신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현재 내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함부로 풀어 놓을 것이 못 된다.
어디까지 혈교와 학의 마수가 뻗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만큼 함부로 노출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믿을 수 있어.’
지금까지의 대화만으로도 공손 어르신은 믿을 만한 어른이다.
사실 할아버지의 친우라는 것만으로도 신뢰할 이유로는 차고 넘친다.
게다가 어느 의미로는 공손 어르신은 청성파 이상으로 중요했다.
‘말하자.’
“제가 현재 천마신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
“…….”
내 단도직입적인 말에도 두 분의 표정은 평온했다.
‘대단들 하시네…….’
뜬금없는 것을 넘어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 같은 말임에도 안색 하나 변함이 없다.
역시 연륜이란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내 안에서 두 분에 대한 평가가 한층 더 올라갔다.
그런데.
“나도 오래 살았나 보구먼. 귀가 좀…….”
“허허. 자네도 그런가? 이거야 원…….”
새끼손가락으로 태연하게 귀를 파던 두 분의 시선이 다시금 내게 모였다.
“다시 말해 보련?”
‘그냥 현실도피셨나…….’
“제가 천마입니다.”
“…….”
“…….”
호로록!
차를 마시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릴 만큼 주변이 적막해졌다.
껌뻑껌뻑.
눈 깜빡이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다.
그런 긴 침묵 끝에 공손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너도… 라니?
나를 통해 누군가를 언급하는 말이다.
위로만 쭉쭉 뻗어나가던 두 분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꺾였다.
***
“허허, 이것 참…….”
“이걸 안 믿을 수도 없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당천기 가주에게 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공손 어르신과 취죽 선생의 반응은 뭔가 저렴했다.
사실 청성파 장문인인 청경진인 이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것으로 여겼는데, 너무 쉽게 받아들여 김이 빠질 지경이었다.
상세한 내용까진 몰랐어도 상황의 배경은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까?
“문제가 크구나.”
취죽 선생이 심각한 얼굴로 장고에 들어갔다. 뭔가 지금까지 따로 놀던 조각들을 연결할 고리를 발견한 모습이다.
반면 공손 어르신은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오늘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어느 하나는 죽어 나갔겠군.”
“예. 운이 좋았네요.”
“그러게 말일세. 내가 참 운이 좋았어.”
당연한 소리지만 흑애무천을 표적으로 하려 했다는 초기 계획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조언을 주셨다.
“그렇지만 계책의 조건이 놈들의 이목을 묶어 두는 것이라면 거창하게 판을 벌일 필요가 있겠네만.”
“그게 제일 문제이긴 합니다.”
“흐음…….”
흑애무천 대신 어디를 노리는 것이 가장 이목을 끌기 좋을까?
사천의 사정에 정통한 공손 어르신이라면 좋은 조언을 주실 것이다.
잠시 고민을 기울이던 공손 어르신의 입이 열렸다.
“잔가지를 쳐내는 방식은 좋지 않겠구나.”
“예?”
“불을 지르려면 제대로 질러야지. 시작은 화려할수록 좋을 걸세.”
공손 어르신의 생각은 나와는 많이 달랐다.
“그 말씀은……?”
“흑애무천을 치게. 분타 몇 개 불태워버리는 수준으로 날려버리면 화끈하게 이목이 몰리겠지.”
역시나 사파 거두다운 화끈한 계책이다.
“아! 물론 흑애무천만 쳐선 안 될 것이네. 놈들이 취하는 계책의 기본 골조가 분란을 조장하는 방식이라면 사파뿐만이 아니라 정파도 쳐야 할 테지. 당 가주와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다면 아예 사천당가 영역도 일부 불살라 버리면 그럴싸해질 걸세. 사천 전체가 거대한 불판이 될 테니 놈들도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
단번에 이어질 상황이 머리에 그려진다.
천마신교가 날뛰고, 흑애무천 분파가 박살 나며, 오랜 세월 터전을 지켜온 토호인 사천당가가 불탄다.
곧바로 황주(黃酒)에 닭다리를 찾게 될 어마어마한 불꽃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와중에 피를 볼 것이라는 점이다.
‘사천당가야 중과부적으로 몸을 피하면서 본문이 불타 버렸다고 하면 인명 피해는 줄일 수 있겠지만…….’
당천기 가주와 잘 이야기만 되면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흑애무천은 다르다.
진짜로 피를 봐야 한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흑애무천은 사파일세. 나름 사내다운 녀석들도 많지만, 질이 안 좋은 녀석들도 상당하지.”
“아…….”
확실히 흑애무천의 경우는 사천당가와는 경우가 다르다.
공손 어르신의 이야기대로라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자들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개중에는 불온한 녀석들도 있더군. 사파의 기준으로 봐도 선을 넘어버린 녀석들이 있어.”
“그들 중에 혈교나 학의 손길이 닿은 자들도 있을 수 있겠군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공손 어르신의 시야는 대단히 넓다.
“각각 품고 있는 생각들이 다르니 정답 역시 다들 다르다곤 하지만, 품기 까다로운 놈들은 쳐내는 것이 맞겠지. 오히려 내게는 좋은 이야기일세.”
공손 어르신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사파의 하늘 중 하나를 지배하는 거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좋은 분이지만, 좋은 모습만으로 흑애무천 같은 곳을 이끌 수는 없을 것이다.
“자네는 자네 할 일을 하게.”
뜻을 정한 공손 어르신이 내 등을 떠밀어 주셨다.
이걸로 흑애무천 역시 같은 편에 섰다.
***
할 일이 생겼다며 공손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리가 파하게 됐다.
공손 어르신이 서두르는 이유가 뻔하니만큼 나 역시도 다음 포석을 생각해야 했다.
지금 내가 움직일 방향은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곧 있을 구파의 모임이다.
‘기각.’
하지만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일에 손을 댔다간 구파를 뒤집어엎는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혈교의 주구로 드러난 덕풍 윤가의 사건으로 인해 잠시 불만들을 눌러 둘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잠시 보류해 둔 것에 불과하다.
외부의 계속되는 도발과 자극으로 구파는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황이다.
확실한 사전 준비와 치밀한 계책이 없다면 진짜로 뒤집히게 될 것이다.
구파는 봉합의 대상이지 뒤집어엎을 곳이 아니다.
가뜩이나 혈교와 학이 잘 쓰는 수법이, 내부의 불화를 끌어내서 상잔시키는 계책이다.
함부로 째 버리면 정말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무작정 째고 볼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지, 얼마나 썩어서 고름이 쌓여 있는지 모두가 보고 알게 해야 한다.
‘답은 정해져 있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선해야 할 것은 안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