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36
235화 할아버지의 친구분들
청성파를 끌어들이는 모습을 본 천마 사부의 평가는 간단했다.
[흑막이 따로 없군.]“……저라고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요?”
이게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한테 할 소린가?
이런 소리 들으려고 사부님들의 귀환을 간절히 바랐는지 생각하니 자괴감이 심하게 올라온다.
갑자기 장삼풍 사부와 달마 사부가 그립다.
“천마 사부.”
[말해라.]“장삼풍 사부랑 달마 사부는 많이 바쁘세요?”
[왜? 내가 붙어있으니까 짜증 나냐?]천마 사부 목소리에 담긴 기색이 심상치 않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천마 사부와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가 떠올랐다.
잘못했다간 오늘 밤 잠자리가 무척이나 뒤숭숭할 것 같다는 예감이 팍팍 든다.
“……아뇨, 그럴 리가요. 에헤헤헤.”
갑자기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싶은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끓어오르는 본능을 필사적으로 억제해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흥!]천마 사부의 콧방귀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행이야. 고생했다, 생존 본능.’
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삼풍이랑 달마라……. 흐흐흐.]“…….”
오늘따라 생존 본능의 활동이 무척이나 활발했다.
특히 악당처럼 웃으시는 천마 사부의 웃음소리에는 등골에서부터 차가운 것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달마 녀석은 많이 바쁘다. 곤륜에 무슨 일이 있는지, 태을진인과 무슨 일을 하는 것 같던데.]“태을진인? 그 태을진인요?”
[그놈 말고 태을진인이 또 있겠느냐.]“아, 예…….”
대라조화심결을 몰래 전수했단 이유로 장삼풍 사부를 잡아간 분이 분명 태을진인이었다.
달마 사부가 그런 분과 일을 하고 계시다니, 어쩌면 달마 사부도 어딘가에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자 왠지 가슴이 미어졌다.
“그럼 장삼풍 사부는…….”
[네가 올라오면 투입될 곳에서 신나게 구르는 중이지.]뭔가 본업에 충실인 상황이라는 말로 들린다.
다행히 장삼풍 사부는 큰 벌을 받고 계신 건 아닌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믿습니다, 장삼풍 사부! 제자가 올라가기 전에 잘 끝내 놓으실 것이라 믿슴다!’
나는 장삼풍 사부를 열심히 응원했다.
아무튼, 그런 거다.
생각보다(?) 잘 지내고들 계신다니 이 제자의 미어지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응?’
그런 가운데 뭔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
이화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계책을 실행하기 전까지 천마신교는 행적이 드러나선 안 되기에 사천 곳곳에 있는 안가(安家)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이화는 끝까지 고집해 나와 함께하기로 했다.
“할 말 있니?”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 걸로 치자.
괜히 방금 전 내 행동에 대해 언급을 하면 나도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서두르자. 여유가 없어.”
현재 나는 취죽 선생을 뵈러 가는 길이다.
할아버지의 친우이시고, 과거의 인연도 있으니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명분일 뿐이고, 실질적인 목적은 본격적으로 혈교와 학이 움직이고 있는 중이기에 그에 대한 주의를 알리기 위함이다.
이미 취죽 선생은 놈들의 표적이 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제대로 위험에 대해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흑애무천인데…….’
아미파의 경우는 사천당가와 청성파가 은밀하게 제어할 수 있지만, 흑애무천은 손 쓸 방도가 없다.
자칫 위전(僞戰)이 실전(實戰)으로 흘러버리게 되는 수가 있다.
그렇다고 천마신교가 사천에서 난리를 피우는데 흑애무천이 이를 묵인할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다.
사파 특유의 자존심 때문이다.
그렇다고 천마신교에서 흑애무천을 무시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차피 싸움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사파를 터는 쪽이 낫다.
‘오랫동안 음모를 꾸며 온 혈교와 학의 눈을 잡아 두려면 제대로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필요하단 말이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사천 무림을 어느 정도 안정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
고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는 시간이었다.
사천당가에서 출발한 시간을 생각하면 얼추 하루하고 한나절이니 제법 빠르게 도착했다.
“다행이네.”
지난번 고현에 있을 당시에는 신의 노릇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고치고 다녔다.
자칫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건 좋지 않아.’
암중 세력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다. 자칫 내 존재나 행적이 드러날 경우 내 주변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다른 이유긴 하지만 흑살대가 삼양현을 습격하기도 했었다.
문제는 이전처럼 내 행적을 가려줄 거물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장문경 선배라든가, 신승 어르신이라든가.
내가 뭔가 일을 저지를 때는 굵직굵직한 거물들이 있어 그분들에게 먼저 시선이 갔다.
실제로 아직도 내 별호가 소천룡인 것은, 세간의 시선이 여전히 나를 후기지수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간 내가 해왔던 일들의 성과를 생각하면 깔보이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현재의 상황이 기꺼웠다.
“조용히 가자.”
나는 이화와 해가 저무는 고현 거리를 걸었다.
붉게 물들던 하늘이 거뭇거뭇해지고 있음에도 거리에는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들 대부분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취죽 선생께서 일을 잘하고 계신 모양이네.’
고현을 다스리는 위정자가 무능하다면 나올 수 없는 모습들이다.
고현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취죽 선생이 머무는 곳을 찾았다.
그런데.
“응?”
관의 대문을 앞에 둔 순간 나는 심각한 위화감을 느꼈다.
우선 대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관병들이 보이지 않았다.
해가 저물었으니 퇴관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경비를 설 병사는 남아서 문을 지켜야 한다.
활짝 문이 열려 있음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관청의 모습은 마치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비어 있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기척이 느껴진다. 대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쪽을 향하는 시선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뭐지? 귀수 어르신이나 악사도왕 쪽 사람들 같진 않은데…….’
이 기척은 그보다 더 윗줄의 것이다.
“……일단 장단을 맞춰 보자.”
“예.”
이들이 적이고, 이 안에 취죽 선생이 계신 거라면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일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억이 이끄는 대로 취죽 선생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집무실로 들어서자 무탈해 보이는 취죽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를 확인한 취죽 선생이 빙그레 웃었다.
“손님이 왔다더니, 청운이구나.”
“예,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는 예를 취하며 조심스럽게 다른 쪽을 살폈다.
취죽 선생은 혼자가 아니었다.
꽤나 성깔 있어 보이는 노인이 취죽 선생의 맞은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세가 몸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지 않지만, 앉아 있는 자세며 은연중에 느껴지는 존재감은 분명 무림인이다.
‘고수.’
다른 사람 눈엔 어찌 보일지 모르겠으나, 내 눈엔 흡사 시퍼렇게 날이 선 한 자루의 검으로 보였다.
무시할 수 없는 그 존재감을 애써 지우며 나는 취죽 선생을 향해 마저 인사를 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다행히 별일 없었다네. 오히려 이런 호사를 누리는 중이지.”
차를 즐기고 있었는지 그윽한 차향이 코끝을 스친다.
“와서 자네도 한잔하게.”
범상치 않은 고수가 대뜸 차를 권한다.
보통 무림의 나이 든 꼰대들이 어린 후기지수를 시험할 때 하는 행동이다.
따르는 차나 술에 내공을 담아 어린 후기지수가 얼마나 잘 버티는지 보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딱히 걱정 없이 빈자리에 앉았다.
쪼르르르.
김이 오르는 찻잔 속의 찻물이 진한 차향을 풍겼다.
담담하게 받은 나는 홀짝 차를 마셨다.
차를 따라 준 고수 노인이 피식 웃었다.
“태연하구나.”
“별거 없었으니까요.”
고수 노인은 그냥 차를 따라 주었다.
나는 그냥 차를 받아 마셨을 뿐이다.
“차가 좋네요.”
능청스럽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수 노인이 내 반응에 재차 웃었다.
“시험이란 생각은 안 했고?”
“전혀요. 아시다시피 저희 할아버지께선 쓸데없이 힘자랑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세요. 가뜩이나 사람을 가리시는데, 그런 할아버지 친구분이 쓸데없는 힘자랑 같은 걸 할 리가 있나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물 흐르듯 나온 자연스러운 대답에 고수 노인이 눈빛을 반짝였다.
“내가 무애의 친구라는 건 어찌 알았누?”
“취죽 선생님 성격이 저렇다 보니 친구가 별로 없으시잖아요? 그런 분 친구면 뻔한 거죠.”
“허허! 이 녀석이…….”
“와하하하하하!”
갑자기 한 방 맞은 취죽 선생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고수 노인은 무릎을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염을 많이 닮았구나.”
“감사합니다.”
“아주 판박이야. 젊은 시절의 자염은 자네보다 더했지.”
“……그런가요?”
이건 좀 의외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언제나 현명하고 깊이 있는 모습들뿐이었다.
내가 모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어딘가 기분이 묘해졌다.
묘한 괴리감에 고개를 갸웃하는 내 모습에 고수 노인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는 공손도라고 한다.”
“연청운이라 합니다.”
이름을 밝히는 고수 노인에게 나 역시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내 태도에 돌연 취죽 선생이 피식 웃었다.
“자네는 무림인이면서 나보다 더 무림의 일에 어둡구먼.”
“……그런 편이긴 합니다.”
아무래도 공손도라는 이 고수 노인은 유명인사인 것 같다.
‘호북 쪽에 있는 유명인사들 명단도 다 못 외웠는데, 사천 쪽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림에 출두한 지 이제 고작 이 년째다.
지역 쪽 인사도 아니고 머나먼 사천 인사들의 이름까지 다 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내 반응에 공손도라는 고수 노인은 살짝 자존심이 상한 얼굴을 했다.
그런 공손도의 모습을 보며 취죽선생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흑애무천은 알고 있느냐?”
“그야 알죠.”
뜬금없이 흑애무천을 언급하는 취죽 선생의 말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그가 흑애천주다.”
“와아…….”
‘흑애천주가 할아버지 친우라고?’
어째 요즘 들어 내 주변 사람들 구성이 무척이나 요상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 잠깐.’
그러다 새롭게 알게 된 이 사실로 인해 내가 그리던 구상이 헝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파와는 긴장 상태를 만들면서 실질적인 싸움이 필요할 때는 흑애무천을 표적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 구상대로 나가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버렸다.
할아버지의 친우이면서 취죽 선생과 친분이 있는 분이시다.
그럼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