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39
238화 확실하게 뿌리를 뽑고 간다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란 말이 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소리다.
그런 점에서 삼양현을 기점으로 호북 지방에 역참식 운송 체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녹림도들은 잠재적인 불안 요소를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양지로 나오게 되었다곤 하지만, 그들의 전직은 선량한 사람들 협박해서 뜯어낸 돈으로 먹고살던 도적들이다.
개중에는 양지로 나온 것에 만족하며 떳떳한 삶을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작자들도 아예 없을 리가 없단 소리다.
‘만약 내가 녹림도라면 도적 연맹 측이 접촉해 왔을 때 어떻게 생각할까?’
나라면 자존심을 챙긴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넘어가 봐야 후래자일 뿐이다.
당연히 대우는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기량이 있어 귀하게 쓰일 수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도적 연맹에서도 신뢰받을 수 없다. 한 번 배신한 자는 또다시 배신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중히 쓰지 않을 것이고, 능력이 있어도 위험한 곳에 투입돼 소모품으로 쓰여질 공산이 크다.
조금만 멀리 볼 수 있다면 도적 연맹의 제안이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눈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 녹림 생활을 했던 자들이라면 그런 쪽 성향이 더 많을 것이고…….’
안휘에 자리를 잡아가는 도적 연맹의 기세는 엄청나다.
남궁세가를 완전히 밀어내고 안휘를 다 먹어 치울 기세다.
가장 큰 걱정거리였을 군부마저도 잠잠하다.
도적 연맹이 안휘를 먹으면?
장강을 기반으로 하는 상권을 도적 연맹이 쥐게 된다.
어마어마한 이권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도적 연맹의 그 엄청난 머릿수를 먹여 살리는 걸 넘어 막대한 재물을 나눠줄 수 있을 정도로 부가 쌓일 것이다.
정말 이대로 도적 연맹이 안휘를 먹어 치우는 것에 성공한다면 역참형 물류 구조를 만들려는 호북 표국 연합의 구상보다 매력적이다.
신규 사업의 위험성도 위험성이지만, 무엇보다 선입견 문제가 크다.
아무리 기존 표국들을 중심으로 사업이 구성되고는 있다지만, 각 요충지를 관리하는 것은 전 녹림도들이다.
얼마 전만 해도 내 물건을 털어가겠다고 대도를 휘두르던 도적들에게 내 안전을 맡긴다는 것은 어지간한 배짱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그 일을 해야 하는 녹림도들 역시도 낯선 영업활동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호북 표국 연합에 남더라도 마냥 편한 길만 되진 않을 것이란 의미다.
반대로 도적 연맹이 먹은 장강의 경우는 불안 요소는 동일하더라도 대체할 방도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이용을 해야 한다.
‘결국, 도적 연맹의 제안이 위험하다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넘어갈 이유들은 차고 넘치네.’
편하지 않은 길이지만 양지로 나와 떳떳하게 살 것인가.
소모품으로 다뤄질 공산이 크지만, 기회를 노릴 것인가.
“고민 다 했냐?”
삼양현에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제를 떠넘긴 백무호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저 주둥이도 조졌어야 했는데…….”
“어허! 그런 끔찍한 소릴!”
백무호가 질색을 하며 물러났다.
“아무튼, 이따가 보자.”
“옹냐.”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니 다시 까분다.
다시 손을 들어야 하는 건가 고민을 하려는데 백무호가 후다닥 도주했다.
“아! 그리고 지금 집에 누나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와도 됨! 두 손만 무겁게 하고 오라고!”
저 말 하려고 도주한 모양이다.
본인 딴에는 설아 누나한테 이른다고 협박해 놓고 정작 당사자가 없으니 뒷감당이 걱정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설아 누나가 없다고?’
타고난 체질 탓에 마을 밖은 고사하고 집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설아 누나다.
천자산에 동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금기사항이라기보단 자제하고 있다는 쪽이 맞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머리 아프네…….”
알아보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또 늘어버렸다.
***
이번 천마신교행은 제법 오래 집을 비웠지만, 가족들 역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은근히 걱정하는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모습들이었다.
처음 집에 돌아올 때, 내 등짝을 후려갈기던 어머니의 반응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내 입장에서도 다행이다.
앞으로도 쏘다닐 일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가족들에게 마음고생을 시킨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집의 편안함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가자.”
“예.”
이화를 이끌고 나는 곧장 우리 쪽에 합류한 녹림도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녹림도들 가운데 마공을 익힌 자들, 이강천을 따르던 녹림도들이 있는 곳이다.
“그대로네.”
삼양현 구석진 외곽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무공 수련에 매진 중이었다.
마공을 익혔기에 녹림도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어! 연 공자님이시다!”
“돌아오셨구나!”
무공 수련에 열중하던 녹림도들이 나를 발견하곤 부리나케 달려왔다.
마치 그리워하던 주인님을 발견한 강아지 같은 모습들이다.
물론 그게 충성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그동안 쭉 이렇게 지내온 거겠지.’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에서 기댈 곳 하나 없는 상태로 내팽개쳐진 느낌이었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물론, 같은 녹림도들마저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태.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나나 이강천까지 자리를 비웠으니 불안한 마음이 치솟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돌아오니 얼굴이 활짝 펴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다가온 그들이 뭔가 두리번거리면서 또다시 불안한 기색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어어…… 천마… 아니, 그… 강천 두령은 왜 안 보이시지?”
“그러게.”
“무슨 문제라고 있었던 거 아니야?”
천마신교로 향했던 일이 친분을 쌓기 위한 사교 활동이 아님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불안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들의 눈동자가 한자리에 머물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를 앞에 두고 집중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 이화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조용!”
신력을 품고 있는 이화는 여느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다.
이화가 힘을 준 목소리에는 절로 영혼을 움켜쥐는 울림이 있다.
노여움을 품은 이화의 한마디에 혼란스러워하던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에도 마음에 차지 않는지 이화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마의 주인께서 오셨거늘! 소마들의 무릎은 어찌 그리 꼿꼿합니까?”
삼양현에 처음 합류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화가 이 정도까지 예를 갖추라 목소리를 높인 일은 없었다.
만마의 주인.
예를 갖추라는 명령.
모두 천마신교를 다녀온 이후의 지시들이다.
이것들이 가리키는 가정에 마공을 익힌 녹림도들이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하나의 가정.
자신들의 미래와도 직결되어 있는 그 가정을 떠올린 마인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일한’ 만마의 지존께 마땅한 예를 갖추세요!”
이화의 말이 그 가정에 쐐기를 박았다.
“소마들의 무례를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쿠웅!
즉각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몸을 떨었다.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었다.
환희와 기쁨!
이마가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에게선 일견 광기마저도 느껴졌다.
천마신교에서 보았던 절대적인 광신도(狂信徒)들을 보는 듯했다.
‘왠지 나보다 이화가 더 위엄이 있는 것 같은데?’
딱 부러지는 이화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화는 오체투지 한 마인들을 확인한 후 마지막에 살포시 몸을 돌려 무릎을 꿇으며 예를 올렸다.
‘같이 천상에 올라가면 참 좋을 것 같은데.’
“……??!!?”
감이 좋은 걸까?
이화가 오한이라도 느낀 듯 몸을 떨었다.
***
머리를 땅에 박아 놓고 대화를 할 수는 없다.
나는 이화를 비롯해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하여간 ‘적당히’라는 걸 모르네.’
이마를 땅에 박았던 마인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피가 흐르는 중이었다.
한데도 본인들은 그게 충혈(忠血)이라며 좋아했다.
피범벅인 얼굴로 실실 웃고 있단 이야기다.
솔직히 좀 무서울 정도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기겁을 하고 도망칠 거다.
그런 살벌한 모습과는 달리 분위기는 무척이나 훈훈했다.
다들 엉덩이에 꼬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적어도 이들의 충성심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지?’
백무호를 통해 듣게 된 안휘 도적 연맹의 행보.
내가 서둘러 이들과 접촉한 이유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뭐든 물어보십시오!”
“배 속을 갈라 속 내용물을 보이라 해도 기꺼이 하겠습니다!”
혈기 가득한 대답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혹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상쩍은 의도로 접근한 자들이 있지 않았나?”
잠깐이지만 흠칫하며 마인들이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필요한 답을 내놓았다.
“예! 얼마 전 접근해 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불충한 이야기였던 터라…… 지존께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 즉각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쿠웅!
마인들이 다시 땅에 머리를 박으며 용서를 구했다.
상처가 벌어지며 바닥이 피로 흥건해졌다.
슬슬 혈향이 느껴질 정도다.
‘이놈의 머리 박기는 규율로 금지하든가 해야지 원!’
안 그래도 광신도 기질이 철철 넘치느니만큼 어느 정도는 선을 정해 놓을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예상대로……라고 해야 하나?’
백무호에게 상황을 들었을 때 도적 연맹이 제일 먼저 포섭하려 할 대상이 어디일지 생각해 봤다.
답은 너무도 쉽게 나왔다.
무리에 속하지 못한 채 소외당하고 있는 느낌으로 자리 잡은 마인들.
역시나 도적 연맹은 이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어떻게 대처했지?”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백가표국 측에 알렸습니다.”
“추적도 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주변에 너무 알려지면 위험하겠다 싶기도 해서…….”
주변의 오해를 살까 두려워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스스로 결백하다 한들 자칫 의심을 사면 경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인 출신으로 살아왔으니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걸 노린 것일 수도 있겠지.’
의심은 독버섯 같은 거다.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계속 퍼져나간다.
이미 반쯤 고립된 이들이 의심을 사 구석에 몰리기 시작하면 배신하고 싶지 않아도 배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걸 노린 거라면?
재차 접촉해 올 수도 있다.
이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하게 뿌리를 뽑고 간다.’
안 그래도 안휘의 일을 정리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전에 내부의 단합을 해치는 불순한 의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