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89
288화 지옥에서 봅시다
신제현은 무당파 속가제자를 관리하는 현도당의 당주를 지냈던 자다.
비록 장삼풍 사부의 무맥을 온전히 잇지 못한 불완전한 무공이라고는 하나 수십 년간 무당파 무공을 수련했을 것이다.
그런 자를 하수라고 대차게 깠다.
그럼 어떻게 대응할까?
‘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겠지.’
무당파 무공을 이용해 나를 쓰러트리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몸에 익은 무당파 무공을 펼치려 하면?
더 편하게 제압이 가능하다.
“흐읍!”
곱사등이처럼 굽은 손을 갈고리처럼 뻗어 낚아채려 한다.
옆으로 흘려 피하자 삭풍처럼 빠르고 날카롭게 손끝에 변화를 그리며 내 목을 노리고 뻗는다.
확실히 빠르고 기세가 높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설프다.
손을 뻗는 움직임 자체는 빠르고 기세가 넘쳤지만, 궤적을 바꾸고 변화를 줘야 할 때는 무척이나 느리고 뻣뻣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나무가 땅에 부딪혀 튕기는 것처럼 딱딱했다.
그 이유는 너무도 쉽게 추론이 가능했다.
나도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중토신공이 단계를 오를 때마다 힘과 기운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만들어지는 부조화를 일치시키기까지 크게 고생했었다.
주체하기 힘들 만큼 넘쳐흐르는 힘 때문에 섬세한 움직임은 오히려 둔해지는 것이다.
죄인으로서 여기에 유폐된 신세라면 무공을 펼치지 못하게 폐맥대법을 받았을 터.
그런 몸이 갑자기 회복된 데다, 혈교 대법으로 몸의 기능이 크게 올라갔다.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후욱! 부웅!
무거운 파공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십 초식은 한 손만 쓰겠다고 공언했다.
굳이 맞상대하기보단 보법을 이용해 공격을 피해내며, 한 번 더 입을 털어 속을 긁었다.
“쉬는 동안 몸이 많이 녹스셨나 봅니다?”
“닥쳐!”
스스로도 뭐가 문제인지 인식은 하는 것 같다.
그 의도가 추격해 오는 신제현의 공격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제는 그로 인해 더욱 공격이 둔해졌다는 점이다.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 저돌적인 기세였는데, 크게 한풀 꺾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게는 그냥 공격해 달라며 방어를 모두 풀어내는 수준이다.
십 초식 동안 한 손만 쓴다는 제약은 아직 유효하지만, 일단 선수를 양보했으니 공세에 대한 제약은 사라졌다.
사실 무당파 무공에서 한 손을 봉쇄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족쇄다.
힘을 받아 흘리거나, 혹은 흘린 힘을 접어내기 위해서는 양손이 각각 제 역할을 해야 온전하게 투로가 돌고 돈다.
하지만 틈을 찌르는 것은 문제가 없다.
나는 뻔히 보이는 빈틈을 노려 손을 뻗었다.
팟!
신제현의 몸 일부를 낚아챘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이다.
둔하고 엉성한 초식을 펼치는데 손의 움직임이 멀쩡할 리가 없다.
움켜쥔 손가락을 측면 바깥으로 비틀었다.
뚜둑!
“윽!”
이거 생각보다 아프다.
손가락을 제압당해 꺾인 순간부턴 양자택일이다.
손가락 두 개를 날리든가, 아니면 바닥을 구르든가.
억지로 뿌리치려 한다면 그냥 꺾어 뽑아내면 그만이다.
분노에 차 있는 만큼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높으니 다가올 역공에 대비했다.
한데.
신제현이 택한 것은 의외로 내가 비튼 방향을 향해 몸을 구르는 것이었다.
꺾인 손가락을 따라 바닥을 구르며 신제현의 머리가 내 발아래로 내려왔다.
싸우는 상대의 머리가 발 앞에 있다면 걷어차는 것이 인지상정.
퍽!
“크윽!”
얼굴을 얻어맞은 신제현이 뒤로 저만치 날아갔다.
부러진 이빨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흐으으…….”
뽑힌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가 흘렀다.
꼴이 우습다.
하지만 신제현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나더니 무너진 암자 잔해를 뒤지며 뭔가를 열심히 찾았다.
얼마나 추악한 꼴인지.
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등을 훤히 보이고 있다.
헛웃음이 나오는 행동이기에 일단은 지켜보았다.
그러는 사이 뭔가 찾긴 했는지 신제현이 먼지 묻은 길쭉한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흐으흐으!”
“검?”
“히제촘타를커다!”
폐맥대법을 받고 유폐되었으면서 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저건 누군가에게서 전달받은 것이다.
‘벽궁…… 벽궁도…… 벽궁도장?’
처음 신제현과 마주할 때 언급하다 끊은 말을 떠올리며 하나의 이름을 기억에 새겼다.
피비린내를 흘리던 장로.
아마도 그의 도명일 것이다.
신제현은 자신만만하게 검을 겨눴다.
체면을 구겨서라도 새끼손가락을 지킨 이유를 알겠다.
검을 휘두를 때 새끼손가락은 검의 방향을 좌우한다.
뒤늦게 검의 존재를 떠올렸음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신제현이 두렵지는 않다.
“앞니가 다 날아가서인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네요.”
쉬익!
대답 대신 검이 날아들었다.
무기(武器)가 괜히 무기가 아니다.
어지간한 싸움에서는 작은 날붙이를 가진 것만으로도 승률이 크게 올라간다.
하지만 경지에 오른 무림인들 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미 몸 그 자체가 신병이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기세를 다스리지 못하는 무당파 검법이라면 검의 우위는 의미가 없다.
‘쯧! 차라리 호쾌하게 내지를 용기라도 있더라면…….’
장삼풍 사부의 무공이 허접하게 사용되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 정도다.
둔하기 그지없는 검의 궤적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검의 시작과 끝이 훤히 보인다.
읽어낸 검로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앙!
“크윽!!”
검면을 때리는 힘에 경을 담았다.
검날을 흔들고도 남은 여력이 펄떡이며 요동치자 신제현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끝내죠.”
나는 성큼 신제현에게 다가갔다.
다급히 수습해 방패처럼 막아 세우는 요동치는 검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파캉! 푹!
“끄아아악!”
부러진 검날이 신제현의 어깨에 박혔다.
각법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내가 뻗은 발끝이 먼저 신제현의 단전에 닿았다.
퍼걱!
발끝에서 탄력 있는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이 일어났다.
단전이 박살 나는 감각이다.
“쿠억…… 우웩!!!”
한차례 출렁거린 신제현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토혈 사이사이에 찢기고 터진 장기조각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원망을 가득 담아 나를 올려다보는 신제현의 눈은 거멓게 죽어갔다.
“검 들면 뭐 좀 달라질 줄 알았어요?”
“흐으…….”
도발을 섞어 긁어 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시원찮다.
더 이상 몸을 일으킬 힘도 없는지 자신이 토한 핏덩이 속에 얼굴을 처박으며 축 늘어졌다.
“주겨라…….”
“물어볼 게 남았는데요.”
“크흐… 내카마랄커카트냐?”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이다.
이런 상태라면 고문을 가해도 얻어낼 게 많지 않다.
설령 입을 열더라도 비틀린 대답이 나올 거다.
이번 일에 연관된 사람을 캐물어 본들 당영진의 경우처럼 엉뚱한 사람이나 지목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흐음…….”
“크흐흐흐…….”
내가 망설이는 모습에 신제현은 기분 좋게 웃었다.
싸움에는 졌지만, 전쟁에선 이겼다는 듯한 모습이다.
“서령이플연타해토그태는타느은태일터. 프파하하하하!”
‘늦다?’
작은 성취감에 도취된 것일까?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신제현은 큰 단서를 제 입으로 털어놓았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줄기차게 도발하고 긁어댄 결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역시 뭔가 꾸미는 게 있단 거네요. 그 일은 근시일 내에 벌어질 것이고…….”
뒤늦게야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신제현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너어…… 크억!”
나는 신제현이 듣기 싫은 고성을 내지르기 전에 발로 그의 목을 짓밟았다.
밟은 목에서 가느다란 생명선이 느껴졌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툭 하고 터질 것 같은 혈맥의 맥동은 우스울 정도로 가냘팠다.
“자비를 베풀어드리죠. 댁이 그랬던 것처럼.”
“너어… 크윽… 치오케서… 키타리마!”
“하하하하!”
마지막까지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알고 말하는 것인지 원.
그래도 독기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예. 지옥에서 봅시다.”
아마도 신제현이 그리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테지만.
나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그때를 기약하며 나는 목을 누르고 있는 발에 힘을 얹었다.
우득!
목뼈가 으스러지며 부들거리던 신제현의 몸이 축 늘어졌다.
***
신제현과의 악연을 끝낸 뒤 나는 그가 남긴 단서를 되새겨보았다.
“근시일 내로 뭔가 벌어진다?”
생각해보면 신제현을 이번 일에 끌어들인 것부터가 무리수다.
아무리 죄를 짓고 유폐되었다지만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
폐맥대법으로 기혈이 막히면 여느 평범한 사람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사냥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음식을 구하기 위해 유폐지를 벗어나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 정기적으로 신제현에게 식량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보관 상태 등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사나흘 간격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자칫 일을 벌이기 전에 발각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일을 벌인다면 쓸 만한 패가 될 수 있다.
“사나흘이라…….”
근일이라는 단어에 부합한다.
신제현도 그사이 바뀐 몸 상태에 맞춰 조정하는 단계를 거칠 생각이었을 것이다.
“죄인인 신제현의 폐맥대법을 풀어주고, 혈교의 대법까지 베풀었다. 이정 도면 아예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거기까지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무당파에 대한 공격?”
이미 구파는 한 차례 공격을 받은 바 있다.
한 번 있던 일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적어도 무당파를 정상적인 상태로 두지 않겠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거기에 벽궁도장이 얽혀 있다는 소리고.
그렇다면 그 공격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내부에서?
아니면 외부에서?
“양쪽 다일 수도 있겠네.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그쪽이 맞겠지.”
내부에서 암계를 펼쳐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외부의 공격이 들어온다.
아니면 외부의 공격에 주의가 쏠린 결정적인 찰나,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무당파를 노리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고려할 계책이다.
“위험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빠르게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다행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유폐된 신제현까지 끌어들여야 할 정도로 내부 간자는 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변수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를 고려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하자 몇 가지 계책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
거처로 돌아온 나는 자고 있는 제갈윤재를 흔들어 깨웠다.
“흐아아암…… 연 소협?”
늦잠이라도 잔 건가 싶었던 걸까?
반쯤 풀린 눈으로 몸을 일으킨 제갈윤재가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창밖이 여전히 어둡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나를 바라봤다.
빠르게 잠이 깨는지 눈빛이 깊어진다.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다.
“……무슨 일이죠?”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이 늦은 시간에 깨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긴 물음이다.
“제갈세가는 연합에 진심입니까?”
말하기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다.
다행히 생각하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진심입니다.”
“그럼, 그 진심을 믿겠습니다.”
본거지 지척에 무당파가 있는 탓에 세력을 넓히지 못했던 제갈세가.
그들이 진정으로 몸을 일으킬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