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02
301화 달 아래서 춤을
무당파에서 벌어진 반란 미수 사건은 수습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주방에서 잡은 변절자들을 닦달하며 조지거나, 목이 잘린 벽궁도장과의 인과관계를 파헤치면서 무당파가 뒤집히긴 했지만, 벌어졌던 사건의 크기에 비하면 무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부님들이 정보를 내려주시면 한 발 걸칠 수도 있었지만,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딱히 쓸 만한 내용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소림으로 향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소림으로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내 의견을 허도진인과 장문인은 쉬이 납득해주셨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행인 점은 도연대사와 따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회합이 폐회되자 도연대사는 급한 볼일이라도 생겼다는 듯 소림제자들을 이끌고 서둘러 소림으로 떠났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작자와 여행이라니.
밥을 먹는 순간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안심한 채 잠을 잘 수도 없는 여행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혼자 여행을 하고 말지.
사실 홀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식사 준비는 물론 노숙 준비도 홀로 해야 한다. 특히 노숙을 할 때는 야생동물이나 산적 같은 위험도 있어 숙면을 취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마을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먼 거리를 여행할 때는 믿을 수 있는 동행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지만 홀로 여행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잠잘 준비를 갖춘 채 하늘을 올려다보자 묘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주변에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외로움은 가슴이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느끼기 때문일까?
밤의 어둠이 깔려 있어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백무호나 장소월 소저, 이화 같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사부님들도 바쁘신지 연락이 뜸해지셨다.
묘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외롭다는 감정을 인식해서인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혼자라는 게 이런 건가…….”
누구 하나 들어주는 이 없는 말이 허공으로 흘러간다.
그러자 이마에 옅은 자극이 세 번 연거푸 느껴졌다.
상화였다.
외롭다는 내 말에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미안.”
사과를 하니 이마에 찌릿한 자극이 느껴졌다.
내 사과를 받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처음 상화가 내 안에 자리 잡았을 때는 좋다 싫다 정도의 단순한 의사 표현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말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기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상화가 성장하는 모습에 쑥쑥 커가는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컸다.
‘애 앞에선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데…….’
혹시 천상의 도화나무들도 사춘기가 올까?
사춘기가 온 상화가 크게 토라져 내 안에서 칼춤을 추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조금 전까지 느끼던 외로움이란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애 교육을 잘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내가 여태까지 저질렀던 업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상화에게 가르친 것들이 사람 조지는 방법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다수의 이기어검을 펼칠 때는 그 제어를 아예 상화에게 맡겨놓은 수준이다.
여기에 얼마 전에는 천사대선을 통해 마성까지 익히게 되었다.
갑자기 조금 전 떠올렸던 생각이 지금 떠올린 생각과 혼합되자 끔찍한 혼종이 만들어졌다.
‘사람 조지는 법을 잘 배운 사춘기의 상화?’
뭔가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것 같다.
갑자기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상화야?”
찌릿.
내 부름에 이마에서 한 번 자극이 흐른다.
이젠 이 의미를 확실히 알겠다.
인식했다. 혹은 긍정적이라는 대답이다.
“상화는 오빠가 좋지?”
찌릿찌릿.
정확히 두 번 느껴졌다.
‘두 번이면 싫다는 거였나?’
뭔가 위기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다.
“싫어?”
찌릿찌릿.
이번에도 두 번이다.
다행히 내가 싫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했던 말을 되짚으며 상화가 아니라고 할 법한 단어를 찾아봤다.
다행히 선택지가 적어서 어느 부분을 짚어야 할지 금세 파악이 되었다.
“아빠?”
찌릿!
조금 전보다 자극의 강도가 높다.
매우 긍정적이라고 봐야 하려나?
아무튼, 이걸로 확실해졌다.
딸내미가 생겼다.
세상에!
‘이게 뭔 오빠가 아빠 되는…… 아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경험 한번 없는 순결한 몸으로 애라니?
설아 누나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웃을까, 정색을 할까?
그래도 설아 누나라면 수양딸(?)이라도 좋아해 주겠지?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린 나는 상화와 대화를 이어가 봤다.
아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역시 대화가 최고다.
“상화는 무공이 좋니?”
찌릿!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오빠가 아니라 아빠냐고 물어볼 때만큼이나 자극이 강하다.
머물고 있는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성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상화는 무(武)에 긍정적이다.
“다행이네.”
내 일생은 무(武)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일생을 함께해야 하는 길인데, 무에 긍정적이라니 다행이다.
아니, 오히려 좋다.
이대로 커간다면 추후 천상에 올랐을 때 반도가 열리는 과수원의 수문장이 되어 제천대성처럼 깽판을 부리러 오는 불한당을 계도(죽빵)시킬지도 모르겠다.
“그럼, 재미있는 거 가르쳐줄까?”
찌릿!
누가 보면 달밤에 홀로 춤추는 꼴이겠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신경 속에 녹아있는 상화와 함께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시작은 호쾌하게.’
범처럼 날렵하고 힘차게 뻗어내는 소림의 주먹질이 허공을 가른다.
매서운 소리가 저 멀리까지 뻗는다.
‘여기에서 섞으면…….’
소림권의 초식을 따라 유려함이 흐른다.
소림권과 무당권의 호흡이 뒤섞인다.
‘천마무겁수!’
여기에 천마무겁수의 무공을 합한다.
삼단의 합일이 진척되며 드러나는 결실이 빛을 발한다.
“하하하하하!!”
기운이 뒤섞이고, 기결이 뒤엉킨다.
어지간한 고수도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의 변화가 요동친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진즉에 피를 토하고 기경팔맥이 뒤틀렸겠지만, 사부님들의 가르침으로 담금질 된 몸은 이를 능히 감당해낸다.
하염없는 변화가 기맥 속에서 이뤄진다.
기운이 날뛴다.
흥이 솟는다.
“상화야!”
상화의 이름을 부르며 기맥을 열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온갖 것들이 튀어 올라 나와 함께 어울렸다.
어둠을 밝히는 강기가 번뜩이고, 사물이 그 위에서 춤을 춘다.
누가 보면 귀신이나 도깨비가 장난치고 있다 여길 법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마창 하후선엽을 죽일 때 사용했던 색다른 방식으로 운용했던 방법.
‘밀고 당긴다?’
무당파 무공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밀고, 당기며, 흔든다.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이를 행할 수 있다면 그 효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저 이기어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 하나의 추가가 아니라 이를 통해 무궁무진한 파생을 만들 수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찌릿!
“너도 좋다고?”
솟구치는 흥이 극에 달하니 상화도 덩달아 날뛴다.
몸이 없는 정(精)이 흥겹게 춤을 춘다.
이질적인 것들이 한덩어리로 뭉치며 내 무공이 한층 더 내 안에서 녹아든다.
이 순간만큼은 복잡한 무림의 정세조차 잊고 무공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일체감이 극에 달했다고 느낀 순간.
파각!
“어?”
뭔가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귓가에 들릴 리가 없는 파열음이 들렸을 정도다.
파열음 다음은 확장감이다.
쏟아져 나온 것들이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쑤욱 하고 늘어나는 감각이 느껴진다.
머물고 있던 집이 크게 증축된 것 같은 감각이다.
실제로 방금 전까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던 기맥에서 이제는 여유가 느껴졌다.
“오단공?”
아니다.
이 감각은 한 단계를 넘어선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두 단계.
중토신공 육단공이다.
갑자기 얼렁뚱땅 이뤄버렸다.
아니, 어쩌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지금 느낀 일체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경에 상화가 녹아있는 내 몸은 확실히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달밤에 춤도 춰볼 만하네.”
오랜만에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을 것 같은 밤이다.
***
명계의 저승차사들에게 들은 정보를 취합 정리하며 장삼풍과 달마는 고민에 빠졌다.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더 이상 삼도천 너머의 불구경이 아니었다.
저승차사는 설마 하며 한 이야기였지만, 정말 사실이라면 현재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선계의 움직임과도 닿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묵묵히 장고를 거듭하던 장삼풍이 불현듯 물었다.
“자오경의 근원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하늘이겠지. 아무리 대신격이라 한들 이만한 조화를 부리고 감당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이니 말일세.”
천의, 혹은 천리라 부르는 것.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
현천상제는 그 의지를 거부하였기에 몰락하였고, 옥황상제가 그 자리에 앉았다.
“벽궁도장이란 녀석의 영혼을 빼돌린 것이 정말로 경보천선이라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구먼.”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정말로 하늘의 안배가 숨어있다면 자미궁의 주인인 옥황상제가 얽혀 있는 것도 이해는 된다.
일전의 일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하지만 자오경을 통해 연청운을 키우고 있는 이유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제자에게 눈곱만큼이라도 해가 되는 일이라면, 축생 신청서에 도장을 찍는 한이 있어도 옥황상제를 들이받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말이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정보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있는지를 모르기에 엇갈린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파헤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태을진인의 요청으로 여러 가지를 알아봤었지?”
“그랬지.”
“이 부분도 좀 알아봐 주시게나.”
“알겠네.”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달마는 별다른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기꺼이 자신이 맡아야 하는 일이라는 듯 행동하는 달마의 모습에 장삼풍이 혀를 찼다.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선계에 적을 두고 있는 장삼풍보다는 극락정토에 적을 두고 있는 달마가 움직이는 것이 설령 일이 꼬이더라도 대처가 쉬워진다. 여차하면 배를 째는 방법도 있다. 그랬기에 태을진인도 달마에게 일을 의뢰한 것이다.
“우리 제자 놈은 사부님들이 이렇게 애쓰는 것을 알랑가 몰라.”
장삼풍이 투덜거렸다.
달마가 은은한 웃음을 지으며 받아넘겼다.
“좋아서 그러는 거 다 아네.”
“그거 반박하면 나만 쓰레기 되는 거 아닌가?”
“허허허.”
허허롭게 웃어넘기는 달마의 화경에 장삼풍이 콧방귀를 뀌었다.
달마의 기색에서 작은 경직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경직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걱정 말게. 우리 제자 녀석이 알아서 잘해 줄 거야.”
“아네. 듬직한 아이이니 소림에서도 잘해 주겠지.”
장삼풍의 위로에 힘을 얻은 달마가 자오경을 비추고 있는 보패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소림으로 향하고 있는 연청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흐음……. 역시 극강격의 심화편을 좀 더 다듬어봐야겠어. 못난 사부 때문에 이리 고생하는데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말아야지.”
연청운의 무공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달마가 보기에는 여전히 여리고 불안한 점이 많았다.
아무래도 다음 단계를 빨리 전수하기 위해서는 제자가 익히기 쉽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결심을 한 달마가 업무를 보는 한편으로 극강격 심화편의 구결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