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01
300화 길을 떠나는 이들
벽궁도장은 육영기에게 목이 잘려 죽었지만, 주방에서 잡은 다른 반역도가 있었기에 허도진인과 장문인은 그를 취조하며 정보 획득에 주력했다.
그 외에도 집법당주 벽진도장과 감찰당주 등 무당파 수뇌부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당파를 샅샅이 털어냈다.
그렇게 무당파가 바빠진 사이 나는 오문도장과 자리를 마련했다.
“언제부터인가 공동파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네.”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오문도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호탕한 성품이던 선배가 난폭하다는 말이 어울리게 변모했고, 사문의 제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지.”
“보이지 않는 벽이라 하심은…….”
“아,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표현이 좀 애매했던 모양일세. 뭐라 해야 하려나…… 파벌? 으음… 이 또한 좀 묘하긴 하네만…….”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 내용인지 오문도장께선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셨다.
“끼리끼리 어울리게 됐다고 하는 편이 옳겠군. 물론 구파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친한 이들끼리 어울리는 법이네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지더군. 으음… 배척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그래, 배척한다는 말이 맞는 표현인 것 같군.”
“마치 자기들끼리 비밀결사(秘密結社) 같은 거라도 만든 것 같았을까요?”
“그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구먼. 마치 공동파 안에 또 다른 공동파가 만들어진 것 같았네.”
오문도장의 말을 들어보니 공동파는 무당파와 다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아니, 벽궁도장이 장문인이 되었다면 무당파 역시 공동파와 같은 방식으로 흘러갔을 공산이 높다.
그렇다는 것은 공동파는 학의 주구로 떨어진 이들의 규모가 상당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까지 심각해지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요.”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들 여겼다네. 후배도 알다시피 같은 무공을 배우더라도 같은 결과를 내지는 않지 않나.”
오문도장의 말을 반론할 수는 없었다.
사람의 성향은 무공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같은 태극권이라도 누군가는 거칠게 사용하는 반면, 누군가는 부드러움에 치중하고, 혹자는 강맹하게 펼쳐내기도 한다.
“하물며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하는 절기들은 더하지. 공동파 무공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는 그저 새로운 길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궁리를 위해 모이는 걸로만 생각을 했다네. 허나 점차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그리고 이번 무당산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나니 확신이 서더군.”
사람이 성향이 달라지고, 그렇게 성향이 달라진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고 있다.
무려 외부인인 내게 공동파 내에 새로운 공동파라고 만들어진 것 같다 말할 정도로.
상황이 그렇다고 하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규모는……?”
“절반을 넘었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하아…….”
오문도장이 느끼는 것만 그 정도라고 한다면 실제로는 어느 정도일지 아찔해진다.
적어도 칠 할, 어쩌면 팔 할 그 이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공동파는 넘어갔다고 봐야겠네.’
피아(彼我) 구분에 대한 정리를 새롭게 해야 할 것 같다.
“자, 이제 후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겠나?”
나 역시 내가 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는 오문도장의 얼굴은 심각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쯤에는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그렇군. 그나마 자네가 있어 다행일세.”
가려운 부분을 찾은 모습이랄까.
아니, 어떤 결의가 느껴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어찌하시려고요?”
“어쩌기는. 가 봐야지. 공동파로.”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무당파에서 일어난 일은 필시 학에게 넘어간 구파에도 행동을 개시할 효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대륙은 넓다. 구파는 그 대륙 곳곳에 퍼져 있다.
아무리 연락망을 치밀하게 깔아 놓았다고 해도 모든 것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거 책략가들처럼 몇 가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신호로 삼아 다음 행동을 미리 지시해놓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학에게 넘어간 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오문도장의 안위를 안심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오문도장과 함께 공동파로 향할 수도 없다.
내가 우선해야 할 곳은 소림이기 때문이다.
사부님들과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북숭소림, 남존무당.
구파의 두 기둥인 소림과 무당만큼은 절대로 학에게 넘어가선 안 된다.
그렇기에 공동파와 오문도장을 우선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어떨까?
“이번에 오대세가 네 곳과 호북의 표국들 그리고 전 녹림의 무인들이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우선은 그들과 함께하시죠.”
“허허. 놀라운 일이구먼. 오대세가와 표국, 그리고 전 녹림이라…….”
뜻밖의 조합이라 생각했는지 오문도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거기에 구파가 힘을 더하면 무림맹이겠구먼.”
“예. 그러니 공동파 역시 꼭 함께해주셨으면…….”
“고맙네. 허나 적어도 나는 힘들겠구먼.”
오문도장께서는 내 행보를 기꺼워하셨음에도 내 제안은 정중히 고사하셨다.
그 이유는 너무도 뻔했다.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이번에 무당파에서 일어난 일은 일종의 효시가 될 것이라고. 그렇기에 공동파로 돌아가야 한다네. 그래야 조금이라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도장…….”
“가족이라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내 가족일세. 내 안위를 염려해 가족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죠.”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말릴 수 없다.
사지로 향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붙잡을 수 없다.
오문도장이 빙그레 웃었다.
“누구나 죽네. 중요한 건 거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삶을 사느냐는 것이지.”
탈속한 대답이다.
구파 중에서 가장 사납다는 공동파.
마를 굴복시키기 위해 마를 이해한 문파의 장로가 누구보다 도인답게 보인다.
오문도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죽거든 언제고 날 위해 공동산에 올라 술 한 잔 올려주게나.”
어쩐지 유언처럼 들린다.
그에 대한 반발인지 나 역시 선언하듯 말했다.
“공동파의 자리를 비워 두고 기다리겠습니다.”
“하하하! 그것도 좋겠지.”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오문도장이 홀가분하게 자리를 떴다.
***
오문도장이 떠난 자리에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가 다가왔다.
표정이 심각한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백무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화산파도 같은 꼴이라는 거겠지?”
“아마도.”
“돌겠네, 진짜.”
무당파에서의 사건이 행동을 개시하는 효시가 된다면 이건 공동파만의 문제가 아니다.
화산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됐다.
내가 그리는 연합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최대한 막아야 한다.
이걸 막기 위해 힘을 모은 것이다.
암담한 상황이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무호야.”
“어.”
“삼양현으로 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모아 화산파를 지원해.”
삼양현에 대기하고 있는 이화와 녹림마인들만이 아니다.
백가표국에 숨겨진 힘까지 움직일 것을 요구한 것이다.
말뜻을 완벽하게 이해한 백무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주시했다.
“괜찮겠어?”
연합에선 소수신마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른 곳은 이야기가 다르다.
자칫 엉뚱한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 뒷감당은 내가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든 모조리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다.
내 지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 소저. 장문경 선배와 긴급히 연락할 수단이 있을까요?”
“……될 거예요.”
“그럼 공동파 쪽을 주시하도록 해주세요. 제갈 가주께는 제가 따로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제갈세가와 장문경 선배의 힘을 합친다면 활로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힘을 모조리 쏟아부을 생각이다.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겠다는 선언을 허언으로 만들지 않을 작정이다.
“반드시 연합 내에 공동파의 이름을 올려놓을 겁니다.”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내 각오를 읽었는지 장소월 소저가 자세를 바로 했다.
백무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너는?”
“나는 소림으로 간다.”
“혼자?”
삼양현에 모여 있는 힘은 화산으로, 제갈세가와 장문경 선배는 공동파로.
연합의 다른 힘은 안휘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
어디에도 나를 따를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뭐, 신승 어르신도 계시고 하니 어떻게든 되겠지.”
“잘난 척은.”
“나 잘난 거 이제 알았냐? 나 소천룡이야, 소천룡.”
앞으로 어떤 험난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
괜한 잘난 척은 성미에 맞지 않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단 낫다.
“걱정 마. 하늘 멱살을 잡고 흔들어서라도 해낼 테니까.”
각오를 다지는 내 말에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가 입을 다물었다.
신뢰와 염려가 뒤섞인 표정이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알았으면 얼른 움직여!”
나는 백무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왜 자기만 차냐고 항의하기에 한 번 더 걷어찼다.
그렇게 둘을 내보낸 뒤 나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쪽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만만치 않은 심계로 수백 년의 세월을 준비해온 음모를 박살 내야 하는 입장이다.
부디 학의 대장 놈 모가지를 딸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놈 죽여서 지옥으로 보내 놓으면 사부님들이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것이다.
아마 야근과 특근도 자처하실 것이다.
‘가능할 때 이야기겠지만…….’
과거 신선들의 문파였다는 현천궁의 무맥을 이었다는 자.
과연 어느 정도 강자일까?
어째 그에 관해선 정보를 풀지 않으시는 사부님들을 좇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북성검단(北聖劍團)의 단주 모용성웅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바라보며 경악에 빠졌다.
원인은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북방세력이 준동한다는 정보에 기선제압차 요격을 나섰는데 홀로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다.
오만불손한 태도로 도발하는 그자를 징치하기 위해 가문의 절기인 은하신검류의 절초를 내질렀으나 검은 상대의 두 손가락 사이에서 멈춰 섰다.
검강지기가 어린 가문의 절기를 어린애가 휘두르는 나무막대기처럼 잡아낸 상대의 얼굴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예전에 검성이라 불린 녀석을 본 적이 있지. 무공은 그냥저냥이었으나 무인으로서의 기개가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그저 버러지일 뿐이로구나.”
“무, 무슨…….”
모용세가의 검성이라면 가문의 시조를 말한다.
수백 년 전의 인물을 언급하는 상대의 말은 그 무위만큼이나 터무니가 없었다.
“버러지에게 무(武)란 너무 과분한 것이지.”
모용성웅은 이 터무니없는 자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느꼈다.
“더 볼 것도 없구나.”
상대는 검강지기가 이글거리는 검을 잡은 채 손을 휘저었다.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가벼운 손짓.
그러나 그 결과는 괴멸적이었다.
검과 팔,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고 있던 북성검단의 무인들이 바스러져 흩날렸다.
손짓 한 번에 무림 최정예 고수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현실감 없는 광경.
두 팔이 사라져 지독한 고통이 일고 있음에도 모용성운은 이 상황이 꿈처럼 느껴졌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거라.”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인 상대는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등을 돌리고 멀어졌다.
그렇게 사내가 사라진 자리 너머로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북방의 세력.
그 선두에 있는 이가 크고 두꺼운 반월도로 머리를 쪼개는 순간까지 모용성웅은 허수아비처럼 그저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