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05
304화 누구나 생각이 있다
소림방장.
구파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북숭 소림을 이끌어나가는 최고책임자를 일컫는다.
당대 소림방장인 도천대사는 근래 들어 머리가 아팠다.
“이를 어이할꼬.”
무림이 뒤숭숭하다.
무당파에서 일어난 흑살대와 흑룡회의 습격은 명백히 정사 간에 존재했던 평화조약을 무위로 돌려버리는 만행이었다.
지금쯤 다른 구파 역시도 곧 있을 사파의 준동에 대비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사파 또한 구파 못지않게 천하 각지에 흩어져있으니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점인데…….”
도연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위험, 아직 준비가 미흡한 정파와 달리 사파는 준비를 모두 갖춘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천대사는 곧 고개를 저었다.
도연이 무당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오기 전, 사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책임을 묻겠다며 쳐들어온 마교가 사천을 뒤집는 중이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제육천의 일각인 흑애무천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던가.
거기에 사천 정파의 기둥인 사천당가, 청성파, 아미파까지 어울려 정사마의 세력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각축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마교의 사천 진출을 복이라 여겨야 할지, 화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군.”
마교의 행보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은 정파뿐만이 아니다.
흑애무천의 행보에 큰 변화가 보이지 않고, 다른 사파들 역시 사천의 상황을 좌시하는 것을 보면 제육천이 정사대전을 위한 준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미뤄 판단하면 무당산에서의 일은 다른 제육천의 동의 없이 흑살대와 흑룡회가 움직인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 또한 꽤나 머리가 아픈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문제는 골치 아픈 일이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아! 사조께서 함부로 움직이실 때가 아니건만…….”
무림의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상황이다.
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
소림이 왜 소림이며, 정파의 태산북두인가!
소림이 정파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저 힘만 강한 무림세력의 하나일 뿐이라면 소림은 절대로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뻗어내지 못했다.
위기의 순간에 소림의 영향력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사조의 행보가 안타까운 것이다.
“그분의 무공은 입신의 경지라 할 수 있겠으나,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소림 내부의 단합조차 이뤄내지 못하시는 분이 정파 전체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단합하여 힘을 모으는 것이 최우선이다.
지금 같은 시기이기에 더욱더 사조는 소림방장인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해. 내가 중심이 되어 하나로 묶어야만 해.”
이를 위해선 일단 사조를 눌러놓아야 한다.
도천대사는 그렇게 판단했다.
“문제는… 사조님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점인데…….”
무당파에서도 내부에 간자가 잠입해있었음이 밝혀졌다. 그것도 장로급의 고위직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림이라고 이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있겠지.”
그리 생각하면 결국 사조의 말이 옳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조의 뜻을 따르자니 그분의 영향력이 커진다.
사조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 자신의 지도력이 흔들린다.
안 그래도 최근 무공이 유출된 건으로 소림방장의 위상에 적지 않은 타격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심각한 사안을 제대로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대책 없이 터트린 것이 바로 사조님이었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일을 크게 벌여버린 것이다.
독선적인 성향이 짙은 사조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후로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 분을 소림의 전면에 내세울 순 없다.
“조용히 따라주실 분이셨다면 이런 고민도 필요 없었을 것을…….”
고민이 많아질수록 도천대사의 수심 역시 깊어졌다.
그런 가운데 방문자가 있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십니다, 방장 사형.”
도천대사는 방장실로 들어오는 이를 반가이 맞이했다.
“무당파에 다녀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더 쉬지 않고.”
방에 들어온 사람은 사제인 도연이었다.
“제가 뭔 고생입니까. 방장 사형이 고생이시지요.”도연은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도천대사의 앞에 앉았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사제는 인상이 참으로 좋아.”
도천대사는 도연의 웃음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부처님의 웃음이 저러할까 싶을 정도다.
“부끄럽습니다, 사형.”
“부끄러울 게 뭐가 있나. 보이는 대로 말할 뿐인데.”
“아미타불.”
겸손하게 합장을 하며 불호를 외는 도연의 모습에 도천대사는 수심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한데, 소식 들으셨습니까?”
“음?”
“연청운이라는 시주가 달마 조사님의 무공을 대성했다고 찾아왔다는데, 곧바로 사조님을 찾아뵈러 갔다고 합니다.”
“으으으음!?”
도천대사는 앞으로 이어질 사태를 예감하며 침음을 흘렸다.
“문제구먼. 문제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할 정도로 찡그려진 표정은 도천대사의 심중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사조님도 다 소림을 걱정해서 하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글쎄. 내겐 그저 당신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는 분으로 보이는구먼.”
도연이 다급히 수습하려 했지만, 오히려 도천대사의 반응은 사나워졌다.
“방장 사형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사조님은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일을 하실 뿐이라는 게지요.”
도연은 오해하지 말라며 도천대사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도천대사를 더욱 자극했다.
“그게 문제라는 걸세. 자기만 옳다 생각하는 분이니, 이후로도 얼마나 사고를 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이. 휴우우우!”
크게 성을 내는 도천대사의 모습에 난처해하던 도연이 슬쩍 품에서 꺼낸 약을 하나 내밀었다.
“무당파에서 선물로 받은 것인데, 방장 사형에게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좋은 향기가 나는 단약이다.
그러면서 슬쩍 한마디를 얹었다.
“방장 사형이 염려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사제가?”
“지금 같은 상황이면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필경 간자를 솎아낸다며 내부를 들쑤실까 봐 걱정하고 계시겠지요.”
“옳네. 사제가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구먼.”
도천대사는 드디어 이해자를 만났다는 반가움에 얼굴을 폈다.
도연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해서 말인데…… 사제가 한번 나서 볼까요?”
“흐으으으으음.”
“저야 방장 사형 사람이잖습니까. 무당파에서 있었던 일을 제일 처음 소림에 알린 것도 저구요. 그러니 제가 소림 내부를 솎아낸다고 하면…….”
“설령 간자가 나와도 사제와 나의 공이 되겠군.”
“그겁니다.”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도천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 말이 옳네. 피곤하겠지만, 내 부탁함세.”
“알겠습니다, 방장 사형.”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는 도연을 도천대사는 푸근한 눈으로 바라봤다.
자처하며 힘든 일을 도맡는 사제가 무척이나 기특했다.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된 도천대사는 도연이 건넨 단약을 입에 넣었다.
“좋은 약이군.”
배 속을 쓸어내리는 청량함에 도천대사는 간만에 평안함을 느꼈다.
***
방장실을 나온 도연은 흘낏 뒤를 돌아보았다.
우거진 대나무 숲에 가려 방장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즘 도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달마 사부의 중토신공을 미끼로 삼겠다고 했지만, 딱히 별도의 행동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미끼는 그저 먹음직스러우면 그만이다.
먼저 나서서 들이미는 행동은 오히려 미끼의 가치를 떨어트릴 뿐이다.
미끼를 물때까지 차분히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그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야 너무도 뻔했다.
중토신공의 성취를 보겠다며 신승 어르신과의 대련이 벌어졌다.
“받아 봐라. 반야장이다.”
역동적으로 뻗어내는 장법이 매섭다.
마치 몸을 활대처럼 쓰는 수법이 매우 인상적이다.
어깨에서 팔꿈치로 흐름이 이어지는 순간 힘을 터트린다.
보통 힘을 폭발시키는 순간 흐름이 끊어지기 마련인데 몸을 활대처럼 계속 튕기니 좌우의 손이 번갈아 가며 공세를 퍼붓는다.
파파파팡!
소림오권 중 사권으로 쳐내보지만 폭류처럼 쏟아지는 공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다.
신승 어르신의 장법과 맞닿을 때마다 몸속 깊은 곳에 소림 무공의 흔적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공부가 되었다.
달마 사부가 가르치지 않았던 무공들이다.
굳이 눈에 차지 않는 무공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달마 사부 사후에 만들어져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배울 부분이 많았다.
그렇게 삼십 초식을 겨루자 신승 어르신이 무공을 바꿨다.
“이게 쇄비장이다.”
반야장이 역동적이었다면, 지금 펼쳐지는 무공은 우직하다.
돌기둥을 부순다는 초식명에 어울리는 장법이다.
변화무쌍함보다는 깊이 있는 위력이 인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문뜩 의문이 들었다.
“금강대력장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단순하지만 강맹한 무공.
달마 사부에게 배운 극강격의 원형이 바로 금강대력장이었다.
그것과 닮았다.
“금강대력장이 온몸으로 치는 것이라면, 쇄비장은 뜯어낸다고 해야겠구나. 망치와 가시 박힌 철퇴의 차이랄까.”
“아, 그래서 이렇게 따끔한 거군요.”
“……중토신공이 대단하긴 하구나.”
내가 한 말을 좀 다르게 받아들이신 것인지 신승 어르신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쯧! 살점 정도는 뜯어낼 요량이었다만.”
“하하하. 농담도…….”
“…….”
“아하하하…….”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전력을 다하진 않으신 것 같지만, 살짝 상처 낼 정도의 힘을 담으신 건 맞는 모양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신승 어르신과의 격돌을 감당할 정도로 중토신공 육단공의 공능이 대단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덕분에 신승 어르신의 투쟁심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어디 처음 만났던 날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까?”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올린 무공은 연대구품이다.
과거 연대구품을 직면하는 순간 경악하며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연대구품이니라.”
지도대련처럼 펼치는 무공이 무엇인지 다 말해주셨다.
“저도 갑니다!”
아홉으로 갈라지는 신승 어르신을 향해 나 역시 비슷하지만 다른, 내 방식의 연대구품을 펼쳤다.
쾅! 콰콰콰쾅! 콰쾅!
아홉 형상을 향해 아홉 형상이 달려든다.
열여덟의 신형이 허공에서 각축을 벌였다.
신승 어르신의 눈이 수박만 하게 커졌다.
아홉이나 되는 형상이 모두 놀란 눈을 하고 있으니 뭔가 재미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무상대능력.”
일순간 신승 어르신을 감싸고 있던 기도가 변했다.
순간 지독한 무게감이 나를 억눌렀다.
뻗어낸 경력이 닿은 것도 아닌데 몸에 영향을 준다.
나는 이 무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의념의 구현!
심검지도라 불리는 경지.
개인의 의지가 세상을 통제하는 무극지경.
머릿속에 생각한 의지를 세상에 구현하는 힘이기에 이 힘은 의지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선근을 얻고, 불완전하다지만 중토신공의 편린을 얻은 신승 어르신의 무도가 어디에 다다랐는지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하지만 그거라면 저도 한가락 하거든요?’
과거처럼 몸뚱이가 감당하지 못해 빌빌거릴 일도 없다.
천마무겁수.
소림의 무상대능력을 향해 하늘 아래 유일한 독존의 무공이 내 몸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