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18
317화 살수들의 접근(2)
살수라 여기고 관찰하자 보이는 것이 많았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심장 박동이 무척이나 닮았다는 점이다.
같이 생활하며 같은 훈련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결과 같다.
‘이 심장 박동을 기억해 두면 흑살대에서 보낸 살수를 파악하는 것에 도움이 되려나?’
흑살대가 명성을 떨치며 제육천의 일좌를 차지한 것은 그들의 살행 방식 때문이다.
살아있는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라는 논리로, 무력을 앞세워 쳐들어가 몰살시키는 방식으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살수들을 보니 정통적인(?) 방식의 살행도 하는 것 같다.
뭐, 이들이 살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흑살대라는 것은 아직 확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가운데 사내가 무속인들이 잘 써먹는 화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고생이 많으신 모양이네요.”
주어가 뚜렷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먹히는 말이다.
사람은 보통 자기가 겪은 일이 타인에 비해 유독 힘들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녀노소 신분 고하에 관계없다.
특히나 무림인들이 어려서부터 혹독한 수련을 한다는 사실은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고생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 그렇기는 합니다. 어휴! 저도 과분한 아내를 얻어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아요.”
“행복한 고민이네요.”
‘미인계 맞나?’
공감대를 만들어두려 노력해놓고, 아내 자랑을 저리 해대면 어디 부담스러워서 음심이라도 품겠냐.
간혹 타인의 여자를 건드린다는 금기에 매력을 느끼는 작자들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난 그런 취향이 아니다.
이런 계책을 쓴다는 것은 나를 그런 계열의 개새끼로 봤다는 의미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이 작자들 제대로 조사한 거 맞아?
“예, 행복하죠. 하지만 그래서 불안하기도 합니다.”
“행복이 깨질까 봐요?”
“맞습니다. 누가 봐도 제겐 과분한 아내니까요. 그러니… 제 행복을 깨려는 놈이 있다면…… 죽여 버릴 겁니다.”
그러다 갑자기 사내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표정 변화가 제대로다.
뻔히 살수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음에도 불안정함을 느낄 정도다.
사내의 그런 모습에 미녀는 내게만 보이는 각도에서 난처한 웃음을 내비쳤다.
그 표정 속에는 남에게 보여선 안 될 것을 보였다는 난처함과 함께 사내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어떻게 보면 도와달라는 도움의 요청처럼 보였다.
왜 남자가 굳이 흉성을 내보이나 했더니 미녀의 행동과 연결이 되자 바로 납득이 되었다.
이 상황에 대해 굳이 명명하자면 ‘의처증이 있는 흉포한(?) 사내에게서 아름다운 미녀를 구하라.’ 정도가 되시겠다.
조만간 저 미녀 살수가 사내에게 뺨이라도 한 대 맞고 내게 매달리지 싶다.
그럼 사내는 광분해서 날뛸 테고, 온갖 욕설과 위협으로 내 신경을 잡아둔 사이 여자가 독이 묻은 암기로 푹!
어설픈 것 같으면서도 제법 잘 구성된 각본이다.
내 나이대의 청년이라면 미녀를 구하는 일에 환상 같은 것이 있을법하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서 나선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성격을 잘 파악한 것 같기도 하네. 무림에서 보인 내 행보는 그런 성향이 짙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조금 전에 느꼈던 더러웠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다.
“고생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기대했던 말이 아닌지 사내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 되었다.
노숙하기 적당한 곳을 발견하자 두 남녀가 말에서 내렸다.
말은 생각보다 높다.
때문에 말에 타고 내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인은 과감하게 먼저 말에서 내렸다.
“읏차.”
듣기에 따라서는 어딘가 야릇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주목을 끄는가 싶더니, 역시나 헛발질을 하며 몸이 기울어졌다.
“아앗!”
이대로라면 말에서 떨어질 상황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받아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아…….’
역시나 미녀 살수는 내 시야에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뭔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말에서 떨어지는 걸 받아주는 순간 목을 찌르려는 모양이다.
콰당!
멀뚱멀뚱 지켜봤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공을 익힌 흔적을 드러내면 안 되니 의식적으로 낙법을 자제해서 무척이나 아팠을 것이다.
꼬꾸라진 여인이 황당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럴 줄 몰랐다는 표정이다.
“잘 잡아줬어야죠.”
H77
“아… 예…….”
나는 슬쩍 남자 탓으로 돌렸다.
사내 역시도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여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살수들의 첫 번째 시도가 허무하게 날아갔다.
***
다음 시도는 음식이었다.
있는 대로 향신료를 때려 넣었는지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음식을 내게 권했다.
“변변찮지만, 많이 드세요.”
여인의 표정만 보자면 도움을 받은 협사에게 작은 보답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독이 들었겠지.’
향신료를 가득 넣은 것은 식욕을 돋우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독을 감추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이다.
땅의 신력만으로도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는다고 사부님들이 보장해주셨다.
여기에 중토신공 육단공에 오른 만큼 내 몸은 사실상 만독불침이나 다름없다.
이거 먹는다고 별다른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다만, 너무도 뻔한 수법에 심술이 났다.
“마을에서 사 온 건량이랑 육포가 넉넉해서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여인은 너무나도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반면 사내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물론 사내는 질투심 많은 남편이란 설정을 만들어놨으니 내게 음식을 권하지 못했다.
“신혼이나 다름없는데 제가 낄 수야 없죠. 그 정도로 눈치 없진 않습니다.”
“예? 어, 어어…….”
전혀 내색은 하지 않지만 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그리고 남편분도 부인이 차려준 음식 맛있게 드시고, 조금 전 실수는 그만 털어버리세요.”
아마도 두 사람은 이미 해약을 복용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설령 해약을 먹어 둔 상태라도 독을 먹는데 멀쩡할 수는 없다.
적어도 속은 제대로 뒤집힐 것이 분명하다.
“그럼, 전 근방을 순찰하겠습니다.”
나는 슬쩍 자리를 비켜줬다.
얕은 둔덕이라 주변에 몸을 숨길 곳은 많았다.
적당히 멀어졌다 싶도록 움직인 뒤 내공으로 청력을 강화하니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오! 저 새끼 고자 아냐?”
낮은 목소리였지만, 명백한 분노가 느껴졌다.
계책이 통하지 않은 것에 꽤나 화가 난 모양이다.
“구십구호, 네 방법이 통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
“놀리지 마, 팔십일호!”
역시나 흑살대가 맞았다.
흑살대는 번호로 일원을 구분한다고 들었다.
낮은 번호 대일수록 고수라고 했다.
그리 고수로 보이지는 않았음에도 순위가 높은 것을 보면 이런 방식으로 제법 실적을 올린 모양이다.
“젠장! 귀한 청원독(凊怨毒)만 날렸네. 이래놓고 저 새끼 못 죽이면 분명 징계다. 아오!”
‘청원독?’
들어본 적이 없는 독이다.
적어도 대중적인 독은 아닌 것 같다.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만큼 사용자에 대한 범위도 좁아진다.
개방이나 용린대를 통해 쑤셔보면 뭔가 나오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부님들 주머니의 평화를 위해서 스스로 알아낼 수 있다면 그쪽이 좋다.
“그나저나 이건 어쩔래?”
“어쩌건 뭘 어째. 버려야지. 그거 먹었다가 밤새 고생할 일 있어?”
아무래도 굳이 독이 든 음식을 먹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냄새가 짙어서 버리려면 멀리 가서 버려야겠는데?”
“이리 줘. 기왕 버릴 거 근처 냇가에 가서 땀이나 씻고 올 테니까.”
구십구호가 앙칼지게 말하곤 어른 머리만 한 크기의 솥을 들었다.
그렇게 구십구호가 멀어지자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냥 오늘 끝내자.’
화산에 도착하기까지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정보를 캐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흑살대 살수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침 인적도 드문 곳에 상황도 잘 차려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구십구호의 뒤를 따라갔다.
졸졸졸.
어느새 귓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기척을 죽이고 있을 필요가 없어서 구십구호 앞에 모습을 내비쳤다.
물가 옆에 솥을 내려놓고 음식을 묻으려고 땅을 파던 구십구호가 나를 보곤 얼굴을 굳혔다.
“아…… 순찰을 도신다더니 이쪽을 둘러보고 계셨나 보네요.”
“예.”
“아하… 이거 좀 부끄럽네요. 속이 안 좋아서 버리려던 참이었거든요.”
땅을 파고 있던 구십구호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구십구호의 속은 냉철했다.
오히려 심장박동수가 느려졌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가 몸을 낮추는 것 같다.
피부 안쪽에 있는 모든 것이 차가운 색으로 물드는 듯하다.
“설거지하고 좀 씻으려는데 고개 좀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손에 내력이 모인다.
‘눈치챘나?’
냉정하게 판단해 기량이 내게 닿지 않음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공격을 준비한다.
내가 등장한 순간이 너무도 공교롭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예. 안 되겠는데요.”
화악!
웃으며 거절한 순간 내 시야에 솥 속의 내용물이 그물처럼 허공에 뿌려졌다.
짙은 냄새와 독기를 품은 내용물이 쇳덩이와 함께 날아온다.
쇄액!
그 뒤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한 호흡에 솥단지와 날 선 비수를 던진다.
투척 후 사각을 노린 공격.
이젠 이골이 날 정도다.
실전에서 유용한 방법이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미 예측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정면으로 치고 나갔다.
바닥에 붙을 정도로 낮은 자세로 솥단지와 음식을 피해낸 뒤 그 뒤로 날아드는 비수를 낚아챘다.
그 너머로 구십구호가 보인다.
내가 좌측이든 우측이든 돌아서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는지 정면으로 치고 들어온 내 움직임에 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곧바로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능운금광보.
제운종과 금강부동신법의 묘리를 담은 보법이자 신법이 한순간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푸욱!
손에 들고 있던 비수를 훤하게 드러난 구십구호의 목젖에 꽂았다.
크륵!
피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몸이 허물어졌다.
“역시 흑살대 살수답게 독하네. 아무래도 흑살대 본거지에 대한 정보는 사부님께 여쭤봐야 할지도 모르겠어.”
개방과 용린대를 통해 청원독에 대해 알아보고, 나오는 것이 없다면 도움을 청해야겠다.
방침을 정하고 즉시 시체를 살폈다.
비수 몇 자루와 독특하게 생긴 암기 두 개, 그리고 쇠로 만들어진 손바닥 크기의 상자 하나가 나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삼할 정도가 사용된 푸른 가루가 들어있었다.
“이게 청원독인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파 수뇌부 몇 놈을 이걸로 죽이면 어떻게 반응하려나?”
살수만큼 뒤통수를 간지럽게 하는 놈들도 드물다.
최근에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흑살대다.
정사 간에 싸움을 일으킨 놈들이 사파 수뇌부 급도 죽이고 다닌다?
제육천의 연계가 굳건하지 않다면 효과는 클 것이다.
“그럼 저놈이 가진 것도 수거해야겠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했다.
꼭 독이 아니라도 이 독특하게 생긴 암기는 좋은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저놈은 입이 가벼웠으면 좋겠는데.”
물론 저놈은 쉽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흑살대의 본거지라든가, 흑살대가 나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현재 사파의 움직임이 어떤 방향성을 띠고 있는가 등등 알아볼 것은 너무도 많다.
딱히 고문에 정통하지 않은 만큼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진솔한 면담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사부님들 주머니의 평화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