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25
324화 이화가 화를 낼 때
제육천의 하나인 대흑련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하오문과 유사한 형태를 지녔다.
힘없는 밑바닥 출신들이 모여 결성된 조직이라는 점이다.
객잔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점소이, 취기에 올라 온갖 이야기가 오가는 술자리에 있는 기생, 길거리 노점상이나 소규모 장사를 하는 장사치 등등.
초창기에는 하오문과 같이 정보를 다루었으나, 곧 정보가 다른 의미에서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길을 달리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밀수였다.
나라에서 금지한 물건들을 들여와 돈을 벌었다.
음성적인 일은 위험도가 높긴 하지만, 그만큼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힘을 키웠다.
몰락한 무가의 후손들을 상대로 무공을 사들이며 무력을 강화했다.
무인은 생산력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무관을 차리거나 표국과 손을 잡는 등 나름대로 수익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나마 있는 재산도 홀라당 날려 먹기 십상이다.
음성적인 일에 거리낌 없이 손을 댄 조직답게 음지의 무인들, 범법자이거나 무림공적 등 본래대로라면 산적이 되거나, 새외로 도망가야 할 이들도 끌어모았다.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조직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그들은 살수들보다 잔인했고, 악덕 상인들보다 계산에 밝았으며, 밑바닥 파락호들보다 가차 없었다.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음험한 조직으로 발전했다.
검은 자들의 연합이라는 흑련이라는 조직은 그렇게 음지의 가장 밑바닥을 대표하게 되었다.
대흑련의 탄생이었다.
그런 대흑련이 흑룡회와 함께 섬서를 질주하고 있었다.
“여기가 섬서(陝西) 화음(華陰)이란 말이지?”
허연 수염이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노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구파의 영향력이 줄어든 게 체감이 되는구나. 나 때였다면 진즉에 누군가 앞을 막아섰을 것이거늘.”
젊었을 적 풍채가 짐작이 될 만큼 체구가 큰 노인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어지간한 장정은 언급하지도 못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했다.
그 거구에 새겨진 온갖 용 모양의 문신은 노인이 어디에 소속되어있는지 말해 주었다.
묘한 감회를 보이는 노인의 말을 옆에 있던 간사한 용모의 사내가 받았다.
“노야의 연세가 팔순을 넘기신 것으로 아온데, 아직도 오악의 하나인 화산을 본 일이 없다니 놀랄 일입니다.”
사내의 어투는 정중했지만, 그 안에는 비아냥이 담겨있었다.
노인은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점잖게 말을 돌렸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다.”
너 같은 잔챙이와는 달리 이름이 알려졌다는 의미다.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한 방 먹었음에도 얌전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노골적인 시비에 결국 한 중년인이 으르렁거리며 나섰다.
“거룡제 어르신은 너 따위가 함부로 대할 분이 아니시다. 사독구자. 죽고 싶으냐?”
일반적인 장검보다 폭이 두 치가량 넓은 대검을 등에 찬 중년인의 기세는 강렬했다.
흑룡회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전검투왕이라는 별호의 고수다.
“아니, 뭔 말도 못 합니까?”
간사한 용모의 사내, 사독구자가 슬그머니 발을 뺐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마치 자신이 피해자라도 되는 것마냥 신경을 건드리는 언행은 여전했다.
“밀수나 하는 것들이니 온갖 잡스러운 곳을 다 돌아다녀 봤겠다만, 그게 그리 자랑할 일인가!”
“그 덕에 여기까지 편히 오신 분들이 왜 이러실까?”
밀수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길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정파의 영향력이 약해진 것도 있겠지만, 그들이 정파의 영역을 거침없이 오갈 수 있는 이유에는 대흑련의 역할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깐죽대며 신경을 긁어대니 흑룡회 쪽 인물들도 곱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촉즉발이 되자 진화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
“에이, 같은 편끼리 왜들 이러십니까. ‘우린 다 같은’ 흑도 사파 아닙니까.”
말쑥한 모습의 사내가 유들유들하게 끼어들었다.
허나 전검투왕은 도리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닥쳐라! 고작 음심 따윌 절제 못 하고 패륜까지 저지른 쓰레기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놈 따위가 우리 운운하며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마라!”
하필 나선 작자가 사파흑도에서도 경멸하는 이가 많은 자였다.
소살검마.
단순한 음행을 넘어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댄, 선을 넘은 작자다.
“하! 이거 정파 샌님 새끼들이랑 똑같을 줄은 몰랐네?”
제 딴엔 좋은 의미로 나섰던 소살검마의 입에 비틀린 웃음이 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당장에라도 흑룡회와 대흑련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흉흉해졌다.
정파의 기재였으나 금기로 여겨지는 사악한 마공에 손을 댔다가 공적으로 몰려 대흑련에 투신한 현월마도 역시 엄지로 슬쩍 칼을 밀어 올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누른 것은 거구의 노인 거룡제였다.
“그만!”
거룡제가 지그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불이 붙어있던 전검투왕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기 싸움을 하던 사독구자와 소살검마가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이럴 거면 입이나 털지 말든가.”
하지만 이내 이죽이며 전검투왕을 긁었다.
거룡제는 그런 소살검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정해주지.”
“뭘 말이오?”
“대흑련이 흑룡회의 밑이 아니라는 것.”
거룡제는 꿰뚫어 보고 있었다.
대흑련이 은근히 시비를 걸어오는 연유가 무엇인지.
현재 사파의 거대세력들은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분위기다.
제육천에서 흑애무천과 삼악도를 제외한 나머지 넷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
당연히 서열이 갈리는 것이 수순이다.
그리고 대흑천의 서열은 아래에 위치해있다.
이대로라면 밑바닥으로 전락할 판이다.
애초에 창설부터가 밑바닥 인생들이기도 했고, 이후 가입한 구성원들 역시도 정상적이지 않다 보니 대흑련 출신들은 자격지심이 강했다.
그래서 자기 영역을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당연히 중재한답시고 나선 소살검마의 행동 역시도 노림수가 있었다.
대흑련에서도 쓰레기 취급을 받는 판국인데, 그런 작자가 노골적으로 ‘우린 다 같은’ 따위의 말을 한다고 반갑게 손에 손을 맞잡을 인간이 누가 있겠는가!
“영감님 눈치가…….”
“그만하라고 했다.”
목적을 달성한 성취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깐죽거리는 소살검마의 행동에 거룡제의 어투가 달라졌다.
눈에는 살기가 어리고, 온몸에 새겨진 문신은 불길한 검은 빛을 뿌리며 하늘하늘 흔들렸다.
문신들이 검은 불꽃처럼 너울거리며 흔들리니 용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소살검마는 깨달을 수 있었다.
“흐읍!?!?!”
왜 전검투왕이 바로 대가리를 숙였는지.
그저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온 세상이 조여 오는 것 같은 압박감이 덮쳤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소살검마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길 잠시.
“……푸핫!”
거룡제가 눈빛을 거두자 소살검마가 거세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빛만으로 절정고수를 찍어 누른 거룡제가 나직이 선언했다.
“지금부터 분쟁을 일으키는 놈은 내 친히 반으로 찢어주겠다.”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거룡제가 완벽하게 무리를 장악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상황이 되길 기다려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다시 움직인다.”
거룡제의 명령에 사독구자가 앞장섰다.
“‘저희’가 힘을 써야 할 일이 있을까요?”
분명 달라진 모습으로 거룡제를 대하는 사독구자다.
그들이 빠르게 섬서를 가로질렀다.
***
종남파를 제대로 엿 먹인 후 나와 관중연은 최대한 멀리 도주했다.
완전히 따돌렸음을 확인한 관중연이 발길을 멈췄다.
“자, 이거 받으시고요.”
그제야 들고 있던 맹자성의 수급을 넘겼다.
“아, 그리고 가급적이면 옷은 빨리 갈아입는 게 좋을 겁니다. 피 묻은 옷이라는 게 미관상으로도 안 좋지만, 자칫 추적의 빌미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러지.”
“그럼 또다시 헤어질 시간이네요.”
관중연은 미련 없이 손을 흔들었다.
역시나 동행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종남산으로 가려고?”
“그래야죠. 미리 지시는 내려뒀지만, 그래도 관리자가 얼굴을 비치는 것과 방치하는 것은 업무의 효율이 달라지는 법이거든요. 나중에 욕먹을 일도 줄여야 하고요.”
그렇기는 할 거다.
애당초 관중연의 임무는 자살특공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지금 종남산 일대에서 작업 중인 용린대 대원들은 관중연이 죽었으리라 여기고 업무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깜짝 놀라긴 하겠군.”
“뭐, 그렇기는 하겠죠.”
관중연이 너스레를 떨었다.
“뭐, 별일 없다면 가만히 지켜보다 일 다 끝나고 질질 짜고 있을 녀석들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만.”
“……댁답네.”
관중연 성격이라면 하고도 남을 짓이다.
“자고로 선물은 깜짝 선물이 최고죠.”
[그래, 선물은 깜짝 놀라게 해주는 것이 최고지.]나름 관중연이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데, 천마사부의 말에 괜히 마음이 심란해졌다.
관중연이 이전처럼 얄밉게 굴었다면 마음의 부담도 덜 할 텐데, 보는 시선이 달라져서 그런지 좀처럼 밉상으로 보기 어려웠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지만.
“자꾸 이상하게 보시는 게 걸리긴 하는데, 제 걱정하실 때가 아닌 거 아시죠? 돌아가는 길은 제법 험난할 겁니다.”
뭔가 찜찜한 예감을 느꼈는지 관중연이 말을 돌렸다.
아마 사파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는 충분해.”
“뭐, 자신감은 충분히 이해됩니다만…… 그쪽 분들은 더 감추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명분과 평판을 생각할 때 정파와의 싸움이라면 피하는 것이 맞지만, 이번에 싸울 적은 사파야. 싸그리 쓸어버려도 문제없어.”
아마도 장강에서 있었던 일은 무림에 어느 정도 퍼졌을 것이다.
그 소문 사이에 끼어있는 소수신마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한 흥밋거리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무림의 암중세력과 싸워온 존재라는 소문에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사파와의 격전에 나선다면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실적이 된다.
“그리고 그쪽에 남겨둔 힘은 설아 누나만이 아니야.”
신뢰할 만한 전력이 하나 더 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천마 사부의 피를 이은 계승자.
태생부터 불의 신력을 타고 난 천마신교의 무녀.
과연, 약육강식과 강자존이 중심사상인 천마신교의 마인들을 단지 권위만으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
“이화가 화를 내면 정말 무서울 거라고.”
***
“이야~ 바글바글하네.”
백무호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무언가의 접근을 느끼고 경계했다.
백설아가 살짝 놀랐다.
“많이 늘었네?”
“화산파 내공이라 그런가 봐. 몸에 잘 받아.”
자허진인에게 내공을 물려받은 백무호의 기량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무공에 대한 이해나 운용 측면은 경지가 깊었지만, 내공이 얕은 것이 단점이었는데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운 것이다.
이젠 어지간한 실력자도 경시하기 어려운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힘에 대한 적응이 완전히 끝난다면 더욱 실력이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백무호도 다가오는 적의 존재를 확인하자 얼굴이 굳어졌다.
“거물이네.”
“누구야?”
“거룡제. 흑룡회 서열 삼위야.”
노인답지 않게 장대한 기골의 무인이다.
유명한 특색에 백무호가 바로 정체를 파악하고 긴장했다.
백설아가 노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단한 건가?”
“……아닐 수도 있고.”
몸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심이 된 백설아를 맞상대할 사람은 천하에 다섯이 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흑룡회 서열 삼위의 고수라지만 백설아에게는 ‘고작’과 ‘따위’에 불과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긴장이 풀려버린 백무호는 거룡제의 뒤를 따르는 놈들을 살폈다.
“어라? 같이 온 놈들은 대흑련 같은데? 소살검마 저놈 용모파기는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거든. 저 새X들이 왜 같이 움직이지?”
“강해?”
“뭐…… 좀 거친 놈들이라더라.”
백무호는 강하냐는 누이의 물음에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그런 백무호의 평가에 가만히 있던 이화가 살포시 웃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이화이기에 그 웃음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백무호는 이화의 웃음이 좋은 의미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사실, 그 전부터 뭔가 안 좋은 것이 쌓여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경향은 친구인 연청운이 종남파 장문인의 목을 따겠다고 관중연과 단둘이 움직이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쟤네들이 거칠다고 하네요?”
“푸흐흐흐흐!”
“크흐흐흐흐!”
이화를 따르는 이들이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들을 등에 둔 채 이화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화를 따르는 마인들의 기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마인들에게 이화가 절대적인 명령을 내렸다.
“다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