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24
323화 이간계(離間計)
생각지 못한 기습을 받으면 제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종남파 장문인 맹자성의 팔에 기형암기를 박아 넣은 순간 사실상 승기를 잡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몸에 박힌 비수가 스스로 살아 움직여 팔을 절단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익혔는지, 얼마나 막대한 내력을 쌓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맹자성이 제 역량을 발휘하기 전에 목을 뜯어냈다.
그리고 사람인 이상 머리가 뜯겨나가면 그걸로 끝이다.
“이노오오오옴!!”
육영기 장로가 수라나찰의 모습으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푸른 검광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칫!”
능운금광보를 쓴다면 단번에 검광의 영역을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능운금광보는 금강부동신법과 제운종의 장점과 특성을 결합하여 만든 독문무공이니만큼 알아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평소 펼치던 보법을 봉인했다고 해서 내 기량 자체가 묶이는 것은 아니다.
청경과 공감각으로 쏟아지는 검세를 읽는다.
동화의 법으로 세상의 흐름에 몸을 싣고, 천마 사부가 천자산에서 알려주셨던 연경심법을 움직이며 상화의 힘까지 더한다.
극대화된 감각으로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육영기 장로의 검세 하나하나가 눈에 보였다.
어차피 정면승부를 할 생각은 없다.
단순한 움직임으로 검세를 흘렸다.
픽! 피핏!
몸에 익은 무공을 자제하며 움직였기에 몇 개의 검세가 몸을 스쳤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댁은 나중에 봅시다.’
검세 밖으로 몸을 빼내며 나는 비공투살장을 날렸다.
파파팡!
틈을 찌르며 은밀하게 파고든 장력에 육영기 장로가 잠시 주춤한 사이 나는 재빨리 관중연에게 향했다.
탁!
솔개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관중연의 뒷덜미를 움켜잡은 뒤 그대로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으아…… 아?”
갑자기 뒷덜미를 잡혀 허공에 떠오른 관중연이 기겁을 하며 발버둥쳤지만 나라는 것을 알고 얌전해졌다.
“쫓아라!”
대신 육영기의 일갈에 열댓 명의 종남파 제자들이 몸을 날렸다.
사람 키보다 큰 높이의 바위들을 훌쩍훌쩍 뛰어오른다.
얼마나 살기가 등등한지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이다.
사아앗!
살기만이 아니다.
누군가 날린 검기가 등을 노렸다.
“이크!”
날아드는 검기 중에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는 것들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뒤를 잡힐 수도 있다.
어떻게든 저들을 떨쳐내야 하는데, 문제는 두 손이 묶여있다는 점이다.
한 손은 맹자성의 수급을, 다른 한 손은 관중연을 잡고 있다.
이기어검을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정말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하는 게 좋다.
꽤나 무림에 소문이 돌았을 것이기에 자칫 내 정체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받아요.]
맹자성의 수급을 관중연에게 넘기고, 자유로워진 손으로 품을 뒤졌다.
더 효과적인 사용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쓰는 것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고 허공에 뿌렸다.
근접해서 쫓던 종남파 제자들이 그 가루에 닿는 것은 필연이다.
“으악!”
“독! 독이다! 숨을 멈…… 크흡!”
가루를 뒤집어쓴 이들이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근접해있던 종남파 제자들 대부분이 청원독에 노출되었다.
설령 독에 중독되지 않았더라도 호흡이 끊어진 만큼 더 이상의 추격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쪽에는 여전히 추격자들이 있다.
나는 남아있는 세 자루의 기형암기를 한 손에 쥐었다.
투척류 무기를 다룬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감각이 부족한 경험을 채웠다.
내력을 가득 담아 뒤를 향해 뿌렸다.
눈으로 보고 던진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추격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내 감각이 그리 말했다.
카캉!
두 개의 암기가 튕겨지는 소리가 났다.
푹!
“커억!”
하지만 하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짧은 단말마가 들렸다.
“이건 좀 아플 거다!”
게다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관중연이 상의를 풀어 헤치더니 갑옷처럼 몸에 두르고 있던 것을 허공에 던졌다.
하나하나에 수십 개의 비침이 담겨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폭우이화침을 닮은 암기.
그런 것을 수십 개가 다발로 묶여있는 그대로 투척했다.
진짜로 뒤가 없는 작자다.
근거리에서 몽땅 터진다면 종남파 장문인이라도 목숨이 위험했을 법한 물건이다.
가까운 곳에서 터졌다간 이쪽도 위험할 텐데 터무니없는 짓을 가차 없이 저지른다.
파파팟!
황급히 절벽을 타고 올랐다.
화산 중턱에서 위를 향해 치솟으니 구름을 꿰뚫고 하늘 높은 곳까지 닿았다.
파파파파팡!
피피핑!
타타타탕!
“으아아아아!”
“X발! 이건 또 뭐야!!”
폭발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려온다.
“와하하하하하!”
속이 시원한지 관중연이 호탕하게 웃었다.
[허! 기가 막힌 놈일세.]“……그러게 말입니다.”
독에, 암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용한 수단들이 정파와는 거리가 있는 방법이라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은 무척이나 난해할 것이다.
실제로 사용한 독이나 암기들은 흑살대의 것들이다.
부디 안 좋은 방향으로 오해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관중연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계속 쫓아올까요?”
“글쎄.”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독과 암기로 인해 피해가 적지 않은 터이고, 이미 나는 저들의 시야를 벗어나 허공답보로 몸을 뺀 상태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흔적들을 기반으로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잘된 일이다.
“그보단, 다음 포석은 뭐지?”
관중연은 맹자성을 죽이면 종남파를 흔들 수 있다고 했다.
관중연이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냥 소문 좀 만들어보려고요.”
“소문?”
“혈교의 대법은 피를 통해서 재능을 높이는 술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정해봤습니다. 과연 그 피를 취할 대상이 평범한 무지렁이의 것이었을지, 아니면 나름 재능 넘치는 기재들의 것이었을지.”
“그야…….”
아무래도 대상의 피를 흡수해 재능을 높일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의 것보다는 재능 있는 기재의 피를 탐했을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겠지만, 이내 수급이 불안정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저들이 탐했을 피는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대상을 좁혀보자는 관중연의 말에 나는 불현듯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재능 넘치는 기재들…… 종남파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
어리고, 젊고, 미래가 창창한 이들은 줄곧 종남파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 분명했다.
“종남파의 속가제자들. 종남파에서 가르침을 받고 종남산 부근에 자리를 잡고 살아온 이들. 그들이 자식을 낳았을 때 과연 그 아이들을 어디로 보내겠습니까?”
“종남파…….”
재능이 없다면 그저 가업을 잇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나, 재능이 출중하다면 본산제자를 노리며 종남파로 보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어린 재능들이 모조리 저들의 배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면?
“무공을 가르치던 도중 죽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직 배움이 끝나지 않아 만날 수 없다고 둘러댔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한바탕 소란이 일지 않겠습니까?”
종남파의 조력자인 속가제자들을 선동한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는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소문일 것이다.
그 소문이 커지기 시작하면 의심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다.
사람 셋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내는 법이다.
하물며 앞으로 퍼질 소문은 거짓이 아니다.
“종남파 장문인을 죽인 이유는?”
“시간벌이죠. 저들이 작정하고 진화에 나선다면 소문을 퍼트린다고 해도 효과가 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머리가 날아간 뒤라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기 어려울 테죠.”
바로 납득이 되었다.
불은 초장에 꺼야 한다.
타오르는 불꽃을 방관하면 나중에 가서는 끌 수 없는 거대한 화마(火魔)가 되어버린다.
“이제 볼만해질 겁니다.”
관중연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무척이나 음험한 웃음이다.
[저놈 지옥을 면하긴 힘들겠구나.]천마 사부가 관중연의 사후를 예견하셨다.
[일꾼으로 꽤 쓸 만하겠어.]이걸 예견이라 해야 하나, 낙점이라 해야 하나.
아무래도 관중연은 죽은 뒤에도 편히 쉬긴 글러 먹은 것 같다.
갑자기 관중연이 불쌍해졌다.
아니, 나름 철밥통(?) 영원직장이니 좋다고 해야 할까?
“…………왜 갑자기 절 그리 측은하게 보십니까?”
“있어. 그런 거.”
미리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다.
[거기서 그냥 떨궈버리지 그러냐?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데.]‘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저런 분 밑에서 구르게 될 관중연의 미래를 생각하니 측은함이 배가되었다.
“관 형은 꿈이 뭐야?”
“별거 있겠습니까. 사지 멀쩡하게 정년퇴임해서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거죠.”
갑자기 안구가 축축해진다.
“……오래 살자.”
“예, 그럴 겁니다.”
지금까지 갈궈온 게 미안해졌다.
앞으로 잘 대해줘야겠다.
***
연청운과 관중연이 뿌린 독과 암기의 흔적이 가득한 화산파 중턱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쿠욱… 웁! 우웩!!!”
“으아… 으으으… 죽여… 줘…….”
특히 연청운을 지근거리까지 추격했던 제자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독에 당한 그들의 모습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혈관이 터질 것처럼 푸른색으로 굵게 부풀어 올랐다.
피부를 뚫고 나올 것처럼 튀어나온 혈관이 푸른색을 띠고 있으니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흐읍!”
육영기 장로를 비롯한 장로급 고수들이 독에 당한 제자들의 등에 손을 대고 내력을 불어넣어 독을 몰아내고자 했으나 상태가 호전되는 이는 없었다.
결국, 열댓 명에 달하는 제자들 모두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육영기 장로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독이기에 대종남의 공력을 무시한단 말인가!”
그런 가운데 종남 장로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과거 무림행을 할 때 들어본 기억이 있네.”
“알고 있는 바가 있소?”
육영기가 이를 갈며 대답을 재촉했다.
이만한 독을 사용하는 놈들이라면 특정이 가능할 것이다.
정체를 알아내기만 한다면 사지를 잘게 썰어버릴 것을 다짐했다.
“그게…….”
하지만 말을 꺼냈던 장로는 꺼려지는 내용인지 잠시 머뭇거린 뒤에야 입을 열었다.
“흑살대가 쓰는 독이 이런 결과를 만든다고 들었네.”
“흑살대?”
모종의 세력과 결탁한 종남파이기에 예사롭게 넘길 수가 없었다.
아군이라 생각한 이들이 쓰는 독에 종남파 제자들이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지 육영기 장로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이 비수도 살수들이 쓸법한 물건입니다.”
“그놈들이 정말 흑살대 살수라면…….”
자리에 함께하고 있던 다른 종남파 제자들도 저마다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결과였기에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결국, 결론을 내린 것은 육영기 장로였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이합집산의 세력들이 모였을 때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다.
모든 뜻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기에 서로를 의심한다.
비밀이 많은 암중 세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순히 실수로 비롯된 일이라도 그로 인해 치명적인 손실을 보게 된다면 실수가 아니라 모종의 음모라 여기게 된다.
“혈교 놈들이 우리를?”
그리고 육영기 장로는 너무도 쉽게 그 늪에 발을 담갔다.
그렇게 그의 뇌리에는 이번 일의 배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당연히 종남산 인근에서 퍼지고 있을 소문은 사소한 일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