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32
331화 어부지리
천마수신위의 마인과 그와 함께 움직이던 다른 두 명의 마인은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모습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일행 모두의 시선 또한 세 마인에게로 향했다.
특히 이화의 눈매가 굉장했다.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바라보는데,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적당히 무마해줄까?’
어쩔 수 없는 흐름에 올라탄 상황이라지만, 어째 이 이상 놔뒀다간 산 채로 튀겨지는 꼴을 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눈에 힘을 준 천마수신위 마인이 입을 열었다.
“더러운 정파의 위선자 년, 놈들아!”
우와아, 진짜 했다.
저질러버렸다, 저 인간!
나야 내가 시킨 일이니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다.
특히 삼양현에서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녹림마인들의 경우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님 도랏? 도르신?
역시 사람은 눈빛만으로도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반면 이화의 반응은 달랐다.
‘저 입꼬리 살짝 올라간 거 보소.’
아무런 표정이 없었기에 변화는 더욱 두드러졌다.
저건 절대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다.
천마수신위와 함께한 두 마인 역시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나였으면 그냥 지렸을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천마수신위 마인은 필사의 정신력으로 말을 이었다.
“……어디서 ‘대단한’ 조력자를 데려온 모양이구나.”
‘오! 그렇게 구분을 지으시겠다?’
그러니까 방금 ‘더러운 위선자’라 부른 것은 청성파의 두 사람, 이도천과 이청려로 구분 짓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대단한’ 조력자로 추켜세웠다.
이를 연결하면 ‘더러운 정파의 위선자인 이청려와 이도천이, 대단한 조력자인 나와 이화 일행을 데려왔다.’가 되는 것이다.
분전했다.
내가 내린 지시는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나를 욕하는 일은 완벽하게 회피해냈다.
보는 눈이 없었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이화의 입꼬리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수하가 이 정도로 노력했는데 삶아지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화에겐 이번 일은 그냥 넘기라고 말을 해놔야겠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네 말대로 대단한 조력자이지! 여기 있는 소협은 무려 무종 연청운 소협이라고!!”
“컥!”
이청려가 소문 많이 들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놈의 암덩이 같은 무종 개나리는 사천까지도 퍼진 모양이다.
“무종 연청운!”
게다가 천마수신위 마인은 발 빠르게 이에 올라탔다.
표정 관리 안 하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너무도 당황해 전음을 보내 막지 못한 대가는 곧바로 돌아왔다.
“중원의이름높은구대문파의양대산맥인무당과소림이그재능에탄복하여서로데려가고자하는‘대천재’이자사천의대분란을홀로틀어막은‘대영웅’!그외숱한영적인행보를보였으며근래장강에서십만도적떼를쓸어버리고오대세가가그위대함에스스로수하가되길자청한다는그무종연청운말인가!”
‘그만해 미친놈아아아아아아!!!’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평소 대가리에 뭘 담고 있기에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저리 빠르게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너무 거침없었기에 말을 끊어낼 새가 없었을 정도다.
“어…… 어, 그래! 맞아. 그 연청운…….”
“내가 오늘 운이 좋군. 이런 위대한 영웅을 직접 만나게 되다니. 내 비록 마인이지만,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지금 당장 오체투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천마수신위의 말에는 누가 들어도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어어…… 음? 으음…… 어…… 어라?”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되려 이청려가 당황해버렸다.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머리 위로 물음표가 난잡하게 떠오르는 느낌이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움을 청하는 시선이다.
“하아…….”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지 모르겠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기분이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부처님이 그리 강조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딱히 이청려의 물음에 답해줄 것이 없었다.
결국, 슬쩍 시선을 피하다 보니 이화와 눈이 마주쳤다.
이화의 비쭉 올라간 입술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화야?’
전혀 화난 얼굴이 아니다.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산 채로 튀길 때 쓸 기름이랑 솥, 장작 등을 손수 마련해주고 싶단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나와 달리 이화는 벌써 다 용서해버린 느낌이다. 어째 포상도 내려질 것 같다.
그런 이화의 표정을 확인한 듯 안도한 천마수신위와 그를 따르는 두 마인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고작 이 정도 전력으로 대영웅과 싸울 수는 없지! 돌아가자!”
당당하게 도주를 천명하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너무 황당한 상황에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백무호였다.
“끅… 끄윽…… 끄흐흣…….”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다가 숨을 못 쉬어 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배를 잡고 꺽꺽거렸다.
부디 꼭 뒈졌으면 좋겠다는 진심이 배 속 깊은 곳에서 샘솟았다.
반대로 이화는 매우 만족한 듯 반질반질한 미소로 도망치는 마인들의 뒤를 바라보았다.
“보는 눈이 있네요.”
“그, 그러게…….”
이청려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반면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이도천의 반응은 달랐다.
“일단… 추격해서 섬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상대가 보인 반응이야 어쨌든 기회가 왔을 때 마인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내 입장에서는 찬성할 수 없는 이야기다.
다행히 방도는 있었다.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함정이요?”
“누가 봐도 기이할 정도로 저를 치켜세우지 않았습니까. 처음 등장이야 돌발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저를 치켜세운 뒤 곧장 퇴각했습니다. 이것이 만약 저들의 의도라면…….”
“아…….”
사실은 내가 천마고 저들은 천마수신위가 포함된 마인 집단이기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이지만, 그 사실을 모른다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이청려가 당황할 정도로 엉뚱했다.
그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의도가 담겨있다면, 그 뒤에 책략이 숨겨져 있다고 의심할 법했다.
이도천 입장에서는 납득되는 이야기였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그러고 보니 저들은 셋이 움직였습니다. 척후조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구성이죠.”
주변의 지형과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 척후조는 소수로 구성된다.
단독으로 움직였다가 적에게 당한다면 정보를 전달할 수 없기에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원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셋이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둘이 결사적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다른 한 명이 본대에 정보를 전달하는 구성이다.
“아무래도 주변에 저들의 주력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도천은 강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똑똑한 사람답게 상황을 추론하는 솜씨가 제법이다.
기본 전제부터가 글러 먹었기에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긴 했지만.
어차피 주변에 본대가 있더라도 쟤네 보고가 들어가면 잽싸게 퇴각할 거다.
적어도 이곳으로 공격해오는 일은 절대 없다.
공격이 아니라 내 얼굴 한번 보겠다고 기웃거릴 수는 있지만, 대계 운운했으니 그럴 일도 없지…… 싶다?
“일단 움직이죠. 이쪽도 상당한 전력이라고는 하지만, 마교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이도천이 이동을 서두르자는 내 말에 수긍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 정말 다행이다.
***
사천당가 가주 당천기는 정파 수뇌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다음 행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요전에 마교와 흑애무천이 다시 충돌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소.”
“단파와 금천을 맞교환했다고 하더이다.”
“허허! 원시천존. 양측이 잘도 허를 찌르고 있구려.”
“부처님이 보우하사 저들이 저리 싸워주니 저희야 조심스레 관망할 수 있지만, 언제 불똥이 튈지 알 수가 없네요.”
사천당가 가주 당천기.
청성파 장문인 청경진인.
곤륜파 장문인 천원진인.
아미파 장문인 주곡사태.
사천을 대표하는 정파삼세의 핵심인사에 곤륜파까지 가세한 화려한 구성이었다.
게다가 근래에는 한 사람이 더 합류했다.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소이다.”
점창파 장문인 단원보가 그 인사였다.
운남의 점창파가 사천의 정사마 대치에 참전한 것이다.
단원보의 발언에 다른 네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단 장문인께서 뭔가 좋은 정보를 얻으신 모양이구려?”
“하하하하! 그렇소. 사문의 제자들이 요 근래 사천의 근황을 살피며 알아 온 정보이외다. 아마 틀림이 없을 것이오!”
수염을 어루만지며 자신만만하게 웃은 단원보가 탁자 위 지도에 손을 올렸다.
“마교가 소수정예를 꾸려온 탓에 전력을 크게 흩어놓지 않고 있음은 다들 알 것이오.”
“추측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알고 있소이다. 실제 움직임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 해서?”
“여기 강정 일대가 근래 비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소이다.”
점창파 장문인 단원보가 지도 위에 있는 돌을 들어 강정이라 쓰인 지역에 올려놓았다.
“여길 칩시다!”
“강정이라…….”
당천기가 지도를 노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는 근래 마교가 흑애무천의 영역을 빼앗은 곳이라 알고 있는데?”
“그러니 치자는 것이오. 단, 공개적으로 공세를 펴는 것이 아니라, 흑애무천에서 공격한 것처럼 위장을 해봅시다.”
“오호?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라. 마교와 흑애무천 간의 분쟁을 더욱 심화시키자?”
“바로 그것이오! 그리되어 양측의 싸움이 더욱 심화되면 결국 전면전으로 이어질 터. 그럼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면 되는 것 아니겠소.”
“흐음…….”
타당한 주장에 당천기가 눈을 반짝였다.
다른 셋도 기책이라는 듯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허면, 수행할 아이들을 추려봅시다. 가능한 빨리.”
“서둘러보겠소이다.”
“단 장문인께선 책략이 하늘에 닿으셨군요. 무림의 홍복입니다. 아미타불.”
모두가 첨창파 장문인 단원보의 계책에 동의했다.
한껏 치켜세워진 단원보도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이 내려졌으니 서두릅시다.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것이 전장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회의가 파했다.
하지만 끝난 줄 알았던 회의는 다른 장소에서 이어졌다.
다만 그 자리에는 한 사람이 빠져있었다.
“흑애무천 그 너구리 영감은 뭐랍니까?”
“곧 강정을 칠 거라 하더군.”
“이야, 시기 보소? 합이 딱 맞아떨어지는구먼.”
“흑애무천에도 속이 검은 놈이 있다는 거지. 아무래도 정보가 공유된 것이 분명하외다.”
“우리 측에는 단원보 그 작자인 것이고요.”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운운한 꼴을 보니 한판 크게 붙으면 상황이 바뀌었다며 둘러대려고 미리 약을 친 거구만. 망할 새끼.”
고명한 도인 둘과 불제자, 그리고 속세의 거두가 히죽 웃었다.
그렇게 음흉한(?) 의견을 교환한 넷이 결론을 내렸다.
“너구리 영감에게 전합시다. 그쪽 속 검은 놈들 죄다 강정에 처넣으라고.”
“거기에 천마신교가 어부지리로 뒤통수를 후리면 판이 참 재미있어지겠구랴.”
“푸후후! 저들이 그리 원하는 삼파전이 열리겠소이다.”
“이것도 선업을 쌓는 일이겠지요. 아미타불.”
아주 사기꾼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서로서로 패를 공유하며 사기도박판을 꾸린 이들이 등쳐먹겠다고 끼어든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았다.
“뭐, 피 보고 싶다는 놈 있으면 등 떠밀어주는 게 무림의 예의지.”
당천기가 지도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이 물감 번지듯 다른 세 사람에게도 옮겨졌다.
누가 보면 악당들이 음모를 꾸미는 중이라 여길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