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31
330화 더러운 정파의 위선자 놈들
내가 무림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무림에 출두한 것은 백가표국의 표행에 동행하는 것이었으니 채 이 년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 짧은 경험 속에서 확실하게 인식한 것은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예외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물.”
이화가 한마디 하자 사방에서 물을 담은 주머니가 줄을 잇는다.
신중하게 살피던 이화는 그중 하나를 골라 내게 바쳤다.
사실 살짝 목이 마르던 시점이었다.
“어… 고맙다.”
“황송하옵니다.”
고맙다는 한마디에 이화가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그리고 물주머니가 선택된 녹림마인의 표정도 같았다.
잘했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줬다간 기절이라도 할 것 같다.
반대로 선택받지 못한(?) 다른 녹림마인들은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다음 기회를 노렸다.
뭔가 사냥감이라도 된 기분이다.
“뭐가 그리 뻣뻣해?”
옆에서 지켜보던 백무호가 슬쩍 끼어들었다.
내가 유난을 떤다는 듯 말한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헌신하는 건 부모자식 간에도 힘들어. 저런 충성이 어디 흔한 줄 아냐?”
백무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일리는…….
하지만 이들의 맹목적인 모습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백무호 녀석도 말과는 달리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한 것이 놀려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갑자기 이놈을 조지라는 명령을 내려 보고 싶어졌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구경거리가 될 것이기에 입이 간지러웠다.
그래도 그건 상상으로만 남겼다.
그딴 일에 이들의 충성심을 낭비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책임감인가?’
어쩌면 이런 마음가짐이 저들의 행동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렵다.
누군가의 위에 선다는 것은 그만한 책임을 떠안는 일이라고 배워왔다.
저들의 충성심을 편하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큰 문제로 이어지는 입구라고 생각되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책임은 어려워야 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넘기려 하다 보면 자기합리화가 생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다 보면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그 순간 사람에서 괴물이 된다.
지나치게 딱딱한 사고방식일지 모르나, 괴물이 되는 것보단 낫다.
“어이구, 너도 참 사서 고생이다.”
내 표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읽어내기라도 한 듯 백무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그나저나 꽤 많이 온 것 같은데…… 슬슬 사천 경계 아니냐?”
“아마 그럴걸?”
설아 누나와 길을 달리하고 며칠째 이어진 여정이다.
사천으로 도주 중이라는 장소월 소저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꽤 강행군을 했다.
얼추 사천 경계에 닿을 시점이긴 하다.
“근데 왜?”
“직업병이랄까. 어째 슬슬 보여야 할 게 안 보여서.”
직업병 운운하는 말에 백무호가 뭘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산적들이다.
할아버지의 지시로 백무호와 사천으로 향할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산적과 부딪쳤다.
덕분에 노잣돈도 쏠쏠하게 뜯어먹을 수 있었는데, 어째 이번에는 산적들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녹림이 제대로 박살 나긴 했나 보다.”
천자산에서 있었던 녹림대통합을 통해 녹림의 반 정도가 장강수로채와 연합을 했다가 토벌당했고, 나머지 절반의 반 정도는 연합에 합류했다. 실질적으로 다시 영업에 복귀한 것은 십여 개의 산채에 불과했다.
비어있는 산에 새로 산적들이 생겨날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봐야 어중이떠중이다.
“역참 체제를 구축하긴 딱 좋은 시긴데……,”
“산채가 있는 곳은 보통 교통의 요지인 경우가 많으니까. 비어있을 때 점거하는 것이 편하긴 하지. 천하만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그러네.”
백무호의 말에 문뜩 인과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 어쩌면 이 일에 대한 일도 내 인과에 대한 지분이 되려나?’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이를 인식하니 또 문득 궁금해졌다.
녹림을 규합시켰다가 망하게 만든 놈들은 인과를 쌓았을까? 아니면 잃었을까?
잠시 사고에 빠져있는데 이화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그 방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다가온다.
산적들인가 싶지만 소수다.
곧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어? 연 소협?”
기억에 있는 남녀가 나를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오랜만입니다, 이 소저, 이 형.”
청성파의 제자 이도천과 이청려 남매였다.
***
“와! 이게 얼마 만이야?”
“오랜만입니다.”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두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이청려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도천은 어딘가 맏형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나와 백무호를 대했다.
과거와 같지만 다른 느낌이다.
내 기억 속의 이청려는 좀 더 거리감이 없었다.
여전히 천진하지만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지켰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변화다.
“소문 많이 들었어. 여전히 활약하고 다닌다며?”
실실 웃으며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장난을 걸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 구김 없는 모습을 보니 본연의 모습은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
이도천이 슬쩍 내 뒤에 있는 녹림마인들을 살피며 물었다.
“공동파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장소월 소저와 제갈세가가 도운 일부가 사천으로 향하는 중이라 해서 지원을 가는 중입니다.”
“으음……. 공동파… 공동파라…….”
같은 구파의 일인지 이도천이 말을 아꼈다.
“이리 사방에서 혼란이 일어나니, 세상이 어지러워질 모양입니다. 하아…….”
백무호 녀석의 기준에서 보면 이도천은 내 과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서 고생을 하는 성격이라는 의미다.
물론 조금이라도 정세를 살필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걱정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근황을 들어둘 기회이기도 했다.
입천신마존과 천마신교에 단단히 당부를 해놓았지만, 살짝 못 미더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입천신마존의 성격을 생각하면 안심할 수 없다.
“사천 역시 많이 혼란스럽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되어가는 중입니까?”
내 물음에 이청려가 활짝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걱정할 거 없어. 연전연승이야!”
“연전연승이요?”
입천신마존이 움직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자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렇다고 하니 다른 쪽이 걱정되었다.
‘설마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 건가?’
내가 내린 지시 때문에 마음껏 싸우지 못하고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천마신교 사람들도 결국 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도천의 평가는 달랐다.
“공세 작전은 모두 성공을 거뒀으니 청려의 말처럼 연전연승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서로 허를 찌르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허를 찌른다는 건…….”
“현재 마교와 흑애무천 사이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요. 서로 점령한 주요거점을 주고받는 중이랄까요. 그사이 틈틈이 정파 쪽으로도 공격이 들어오지만, 한쪽으로 전력을 집중할 수 없다 보니 점령한 거점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빈집털이만 하고 있다는 거군요.”
“으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사소한 국지전은 계속 벌어지고 있으나, 정면충돌은 없습니다. 묘한 대치상황이긴 하지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겠다.
가령 천마신교가 흑애무천의 거점을 점령하면, 흑애무천은 천마신교의 병력이 빠진 곳을 공격해 되찾아오는 것이다.
전투는 벌어지되, 서로 전력이 크게 부딪치는 일은 없기에 인명피해는 나지 않는다.
물론 전투과정에서 건물이나 물건이 부서져 재산피해는 제법 일어나겠지만,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파고 사파고 자신들의 계책이나 허를 찌르는 전략이 모두 성공하고 있으니 이청려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천마신교야 이런 행동에 의문 자체를 가지지 않을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생각보다 입천신마존이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이 정도면 그 양반도 슬슬 즐기는 중이 아닐까 싶다.
“사천엔 정말 대단한 책략가들이 많은가 보네요.”
“그렇기도 하지만, 윗분들은 어쩌면 일종의 기만책일 수도 있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십니다. 일부러 허술한 부분을 노출해 승리에 취하도록 만든 뒤 어느 순간 큰 역습을 준비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나도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고요. 해서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전제가 잘못되었다.
그것도 설계의 하나다.
이청려처럼 승리감에 취한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신중론인 것이다.
신중론이 떡하니 자리하는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대격돌로 이어질 상황 역시 봉쇄할 수 있다.
타짜들끼리 서로 패 보여주면서 판을 깔아놓았으니, 뒷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적당한 명분 하나만 던져줘도 봉합하는 덴 무리가 없겠어.’
인명피해가 적은 만큼 감정의 골도 깊지 않으니 봉합하기도 쉽다.
하물며 이 싸움 자체가 멸천회의 수작질에 놀아난 것이라고 드러내면 제대로 불타오를 것이다.
내심 걱정했던 부분에 큰 탈이 없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쯤이었다.
‘응?’
강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 접근해오는 것이 느껴진다.
정파의 정대한 기운이 아니다.
어두우면서도 무거운 기운.
피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모습을 드러낸 자들을 보며 나는 표정에 힘껏 힘을 주어야 했다.
‘돌겠네.’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마인들이다.
그중 하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다.
종노를 따라 삼양현에 자리를 잡았던 천마수신위 중 하나다.
다른 둘도 천마신교에서 본 기억이 있다.
“……!!”
나를 보고 깜짝 놀란 천마수신위와 뒤따르는 마인들이 황급히 오체투지를 할 기세로 몸을 낮추려 한다.
백무호만 있다면 모를까, 이도천 이청려 남매가 있는 자리에서 내게 그런 예를 취했다간 상황이 꼬일 수 있다.
-[멈춰!]
다행히 반응은 빨랐다.
-[나를 아는 척하지 마라. 대계를 그르칠 셈이냐!]
속사정을 알고 있는 만큼 천마수신위 마인은 적절하게 대응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적절한 대응이라는 게 그저 멈춰 선 것에 그쳤다는 정도다.
“마인?!”
“마교가 여기까지!!”
이청려와 이도천 입장에선 마인들이 보인 모습은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충분했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말도 없이 노려보면(?) 누구나 오해하기 쉽다.
입을 꾹 다문 채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던 천마수신위가 결국 나를 애절하게(?) 바라봤다.
‘어쩔 수 없네.’
-[하던 대로 해.]
내 전음에 천마수신위 마인이 눈을 부릅떴다.
“큿! 해보자는 거냐!”
이도천에겐 그것마저 위협으로 느껴졌는지 바싹 긴장했다.
내가 볼 땐 그저 어리바리한 것일 뿐이었지만.
결국, 추가지시를 내려야 했다.
-[정파와 만났을 때 하는 거 있잖아.]
천마수신위 마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예? 뭐라굽쇼?
사람이 눈빛만으로도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천마수신위 마인에게 추가로 세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자, 따라 해 봐. ‘더러운 정파의 위선자 놈들.’ 뒤로는 알아서 창의적으로.]
어쩌면 천마신교 역사상 최초로 천마에게 쌍욕을 박은 천마수신위의 업적을 달성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어떤 창의적인 욕설이 튀어나올지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