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38
337화 무(武)의 화신
제발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나잇살 먹어서 하는 짓거리가 반찬 투정하는 청우랑 동급이다.
“나를 찾았다 들었소.”
-[생각 없이 움직인 거라면 정말 화낼 겁니다.]
점창파와 흑애무천 무인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고 들었다.
그중에는 점창파 장문인까지 끼어있었다고 했다.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그런 내 추궁에 입천신마존이 피식 웃었다.
“근래, 무림에서 가장 명성이 높더군.”
-[흑애무천의 너구리가 서신을 보냈다. 점창파와 내통한 증거를 찾았다는군.]
-[그게 그리 허술히 있던가요?]
-[뭐, 사실이든 아니든 나왔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양측이 내통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흔적을 남겨뒀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째 조작의 냄새가 풀풀 풍겼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정의의 증거 조작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게 뭔 혼종인가 싶어졌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진짜 사기꾼들이다.
“그저 허명일 뿐이오.”
-[흑애무천에서는 여기서 죽은 자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을 테고……. 이 소문이 퍼져나가면 점창파의 처지도 이상해지겠네요. 마치 흑애무천과의 대치를 조작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훗! 허명으로 치부하기에는 단단한 실적이 뒷받침되어 있더군.”
-[그때 암중세력이 부각되는 거지.]
-[생각 없이 움직인 것은 아니니 다행이네요.]
누군가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천의 이 혼란이 누군가의 음모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 공동의 적을 만들 수 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하에 정사마가 뜻을 함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행동에는 양극이 존재하는 법이다.
의도와 달리 사람의 심리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때문에 할아버지도 언제나 인사(人事)를 중히 여기셨다.
게다가 끝내주는 불안 요소도 하나 남아있다.
눈앞의 이 양반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오?”
“여기까지 와 놓고 뭘 물어?”
깍지를 낀 입천신마존이 몸을 활대처럼 쭉 당기며 근육을 풀었다.
-[중간점검이다. 겸사겸사 쌓인 것도 좀 풀고.]
‘겸사겸사는 개뿔.’
단언하건대 후자가 주목적이다.
그것도 꽤나 진심이다.
앞서 했던 이년의 약속이 지켜질지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절로 긴장감이 일었다.
한동안 어울려 봤기에 잘 안다.
일단은 대련의 형식을 취하겠지만, 저 작자의 성격에 마음에 안 든다면 언제든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쉽지 않다.
십만대산을 떠나올 때만 하더라도 두려움에 떨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좀 떨리긴 한다.
입천신마존.
천마사부가 자신을 빼다 박았다고 평하는 자이며, 별호 그대로 하늘에 닿은 신마(神魔)다.
내(사부님들의) 도움이 없이도 언젠가는 천상의 문을 두드릴 자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피가 끓었다.
멸천회주라는 자의 강함.
설아 누나에 대한 내 입장.
장소월 소저에 대한 고민.
슬슬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책무들과 그 외의 복잡한 인간관계들.
어깨에 올라간 거대한 책임과 눈 앞에 펼쳐진 난제들에 대한 걱정거리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신줄을 내려놓고 날뛰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판 뜨자는 걸 잘도 돌려서 말하시는군.”
-[어디 누가 더 엿같이 쌓여있었는지 대봅시다.]
뜻밖의 말이었는지 입천신마존이 눈을 크게 뜨더니 파안대소했다.
“와하하하하하하!”
공기가 달라졌다.
입천신마존을 중심으로 허공이 출렁이며 흔들거렸다.
“죽지 마라.”
경고를 전하는 목소리는 웃음기가 남아있어 훈훈함이 감돌았지만, 덮쳐오는 공격은 전혀 훈훈하지 못했다.
자연재해다.
그저 다가올 뿐인데 눈앞의 세상 전체가 들고일어나 덮쳐오는 것 같다.
기세가 시야를 굴절시킨다.
‘쫄지 마!’
억지로 몸의 방향을 정면으로 잡는다.
피하지 않고 달려든다.
밀려오는 성벽을 향해 돌진하는 느낌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수록 피가 더욱 뜨겁게 끓어오른다.
이성을 누르고 본능을 부각시킨다.
내가 입천신마존에 비해 앞선 몇 안 되는 부분을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감각!
천상의 존재인 상화가 자리하고 있는 내 감각은 세상 누구보다 예민하고 날카롭다.
이를 기반으로 흑우(黑牛)처럼 우직하게 달려든다.
“헐? 맞불?”
무모해 보이는 내 선택에 되레 입천신마존이 놀랐지만, 찰나에 불과했다.
이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장난처럼 뻗은 일권이 벼락처럼 무시무시하게 날아들었다.
빠르다.
사람의 영역을 뛰어넘은 감각으로도 간신히 알아차리는 것이 고작이다.
날이 세워진 감각이 인도하는 대로 벼락같은 권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보내며 입천신마존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나를 반기는 것은 입천신마존의 무릎이다.
거리를 둔 상태에서 권각을 쓰고, 품 안으로 들어온 상대는 무릎과 팔꿈치를 쓴다.
근접 전투에서의 교본과도 같은 대응이다.
첫 공격이었다면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가속 중에 한 번 몸을 비튼 뒤이기에 반응할 여지가 적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한 뼘 거리를 더 나아갔다.
카각!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무릎의 궤적이 옆구리를 스치며 치명상을 피했다.
‘흡!’
살짝 스쳤을 뿐인데 배 속이 진탕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근거리에서 기회를 잡았다.
눈앞에 드러난 빈틈을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파앙!
내지른 주먹 끝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다.
닿지 않았다.
나처럼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몸을 비튼 것도 아닌데, 입천신마존은 당연하다는 듯 공격을 피했다.
-[아직도 잡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으로 입천신마존의 말이 꽂혔다.
전음이 아니다. 전음이었다면 저 말을 다 듣기 전에 주먹질이 서너 번은 더 날아왔을 테니까.
이건 그냥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꽂아 넣는 말이다.
-[좀 더 몰입해봐.]
그 말과 함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생존본능에 경종이 울린다.
생각 같은 걸 할 수 없게 만드는 빠른 연계다.
후확!!
본능 그 자체인 움직임 옆으로 무지막지한 것이 지나간다.
피부 위의 모든 것이 곤두서고, 피부 아래의 모든 것이 떨린다.
제대로 적중당한다면 몸의 절반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 공포를 실감할 틈도 없이 공격이 이어졌다.
팟!
팔꿈치가 도끼질처럼 몸을 노리고.
파핫!
각법이 채찍처럼 몸의 상하단으로 동시에 쇄도했다.
권(拳), 장(掌), 퇴(頹), 슬(膝).
두 손 두 발로 행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절정고수라도 자신이 뭐에 맞아 죽었는지 모를 정도의 공격이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수십 번이 쏟아졌다.
전장이고, 실전(?)이었다면 입천신마존은 절정고수 수십을 일거에 뭉개버린 뒤였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몸으로 이런 위용을 펼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머리는 이런 의문 한 자락조차 품을 여유가 없었다.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어떻게든 공세를 피해 보는 가운데, 그 수가 백에 이른 순간!
‘컥?! 주, 죽는다?!’
어느새 퇴로가 막힌 곳으로 몰려버렸다.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다.
그런 예감이 든 순간, 온몸의 힘이 하나로 모였다.
극강격, 합일권, 천라무결.
몸부림치듯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하나로 뭉쳐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백초가 넘는 공방 속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굉음!
땅이 들썩일 정도의 후폭풍이 일어나는 가운데, 내 몸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크으…….”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몸통을 제대로 맞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내공으로 내장을 보호했음에도 숨이 턱 막히며 발이 멈춘다.
“제법이구나. 과연 무림에 떠도는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알겠다.”
-[내가 곧 의지다.]
가르침을 내리듯 입천신마존이 훈수를 뒀다.
-[압도적인 강자는 굳이 상대를 속이는 잡수 따위가 필요 없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했다. 마차는 사마귀 따위가 뭐라 하든 밟아버릴 수 있다.]
당랑거철을 인용하며 마차가 되라 조언한다.
졸지에 사마귀 취급이 되어 버리자 울컥했다.
‘썅! 의지만으로 그게 가능할……?!’
말은 참 쉽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을 뒤흔드는 가르침이 있었다.
‘……가능하다?’
이미 알고 있으며, 쓸 줄 아는 힘이 있다.
“……무극(武極)?”
입천신마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만족스럽게 미소를 머금을 뿐이다.
‘설마 지금까지 보인 모든 것이?’
의념절기.
의지를 세상에 투영하는 무극의 힘.
입천신마존이 펼치는 모든 움직임에 무극이 깃들어있다.
몸과 의지, 그리고 무공을 하나로 합일시켰다.
단순하게 펼치는 모든 움직임이 의념절기였던 것이다!
더 빠르고자 하는 의지를 세상에 투영시킴으로써 더욱 빨라진다.
더 단단하고자 하는 의지를 세상에 투영시킴으로써 더욱 단단해진다.
뭐든 부숴버리겠다는 의지를 세상에 투영시킴으로써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늘에 닿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입천신마존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나와 무(武) 사이에 구분을 없애라.
혈관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다.
내 몸 안에 있는 것은 뼈와 근육이 아니다.
자잘한 구분을 지우고 몸 안에 오롯이 무(武) 하나만을 담아라.
스스로 땅을 거니는 무의 화신이 되어라!
‘괴물이 따로 없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입천신마존은 인간이 아니다.
내 앞에 있는 것은 입천신마존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쌓아올린 무(武) 그 자체다!
“하하하…….”
다른 점은 몰라도 감각, 반응속도에 관해선 내가 우위여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바로 납득이 되었다.
의념절기는 특별하다.
나 같은 경우는 그것을 주로 이기어검으로 다뤘다.
손으로 잡고 휘두르지 않아도 스스로 검이 움직였다.
신승 어르신은 강기로 만들어진 팔을 만들어 운용했다.
두 손, 두 발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한 번에 두어 가지만 펼칠 수 있는 소림의 절기를 일거에 모조리 쏟아낼 수 있게 했다.
입천신마존은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특별함을 특별하지 않게 다룬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그로 인해 입천신마존은 모든 움직임이 세상의 상리에서 벗어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만 보면 그의 존재는 이미 사람보다 신에 가까운 영역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슬슬 몸이 다 풀렸으면 지금부터는 제대로 해볼까?”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말하는 입천신마존의 주변에서 검은 물결이 쳤다.
위험한 힘이 그의 주변을 감돌며 이죽였다.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특별함을 당연스럽게…라…….’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일부나마 차용하여 쓰는 것이 고작일 터!
“검!”
나는 입천신마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외쳤다.
내 말을 알아들은 이들이 검을 꺼내 내 쪽으로 던졌다.
등 뒤로 백여 자루가 넘는 검들이 수북하게 꽂히며 작은 검림(劍林)을 이뤘다.
그 일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십여 개의 이기어검이 내 주변에 자리 잡았다.
“해봅시다!”
나와 검들이 하늘에 닿은 자를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