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37
336화 하늘에 닿은 자
단원보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자, 입천신마존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대체 언제…….”
단원보는 알 수 있었다.
방금 이자가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임을.
간격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점창파라…… 수준 이하인데. 구파라며? 이거밖에 안 되나?”
대놓고 까내렸지만 단원보는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언제 거리를 좁혀올지 몰랐기에 온 신경을 입천신마존의 일거수일투족에 쏟아부었다.
말을 하기 위한 행동마저도 사치에 불과했다.
“쯧! 정파란 것이 저따위니, 그만큼이나 성장한 것도 기적이라 해야겠군. 역시 그는 천마신교에서 태어났어야 했어.”
누군가를 지칭하는 그 말을 단원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흑애무천의 사파 무인들은 달랐다.
“뭐라는 거냐, 새꺄.”
협박이라도 하듯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악을 쓴다.
약자로 낙인찍히면 잡아먹히는 것이 사파의 생리다.
심상치 않은 상대라도 일단 들이받고 보는 성향을 앞세워 입천신마존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행동이지만, 입천신마존은 되레 사파 무인들을 향해 웃어보였다.
“차라리 이쪽이 낫군.”
“하! 조까라 십새야!”
방금 단원보와 검을 맞대고 있던 흑애무천 고수가 소리를 지르며 좌우로 신호를 보냈다.
틈을 봐서 협공을 하라는 의미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뻔한 수법이다.
그가 휘두른 공격을 입천신마존이 막거나 쳐내면 그 빈틈을 노리려는 것이다.
정석적이지만, 효과적인 합격이다.
실제로 검을 휘두르는 사파 고수의 좌우로 너덧 명의 사파 무인들이 은밀하게 사각을 파고들었다.
다음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퍼걱!
흑애무천 고수가 펼쳐낸 일격이 만들어낸 소리는 이질적이었다.
당연히 들려야 할 소리가 없다.
강철로 만들어진 검이 내는 청명한 쇳소리가 아니다.
마치 절구통에 집어넣은 돼지고기를 절구로 찧은 소리다.
그저 사람의 몸이 뭉개지는 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그 결과가 단원보 앞에 있었다.
기세 좋게 검을 휘둘렀던 사파 고수의 상체가 사라졌다.
하체만이 남은 몸뚱이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무언가가 펼쳐진 것도 아니다.
그저 책상 위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리듯 손을 저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사람의 상체가 강기를 머금고 있던 검과 함께 쓸려나갔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건… 이건…… 안 돼…….”
단원보는 알 수 있었다.
이자는 천재지이(天變地異)다.
애당초 무공의 초식이라는 것은 공격과 방어를 행함에 있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움직임의 총합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격과 방어를 행할 수 있는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저 손짓 하나로 상대를 뭉개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단원보가 배운 것 중에는 없었다.
“피해…….”
저것은 괴물이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다.
구파의 하나인 점창파 장문인조차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무언가다.
“……당장 도망쳐라!!”
단원보는 주저 없이 몸을 돌려 도망쳤다.
제자들에게 도망을 지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무를 다했다고 여겼다.
그 외침이 신호가 되어 점창파 제자들과 흑애무천의 무인들이 개미떼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허나 그 판단의 결과는 입천신마존의 차가운 선언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입천신마존의 손이 조금 전 사람을 뭉갠 것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그 순간 검은 기운이 사방을 휩쓸었다.
공포에 질려 뒤를 돌아본 단원보는 물결치듯 출렁이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힘을 보고 성난 바다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성난 파도와 같다고 생각했다.
콰아아아아아아!
입천신마존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도주하려던 자들 전부가 그 힘의 흐름에 삼켜져 한 줌 핏물이 되었다.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것은 단원보뿐이었다.
허나 그마저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으윽!”
바닥에 패대기쳐진 단원보는 두 다리에서 지독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불판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양팔로 상체를 일으켰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뒤를 돌아본 단원보는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다리…… 없어… 다리가 없어…….”
머리는 열심히 다리에게 움직일 것을 지시했지만, 지시를 따라야 할 두 다리는 사라져 있었다.
허벅지 아래로 말끔하게 사라진 자리에서 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뤘다.
“으아… 으아아아…….”
단원보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내던지고 필사적으로 꿈틀거렸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입천신마존과 한 치라도 멀어지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런 단원보를 향해 입천신마존이 천천히 다가갔다.
공포라는 개념이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다가왔다.
사라진 두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머릿속을 집어삼킨 공포가 더욱 선명했다.
“으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공포에 잠식당한 사고는 언어조차 잊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사실 제정신일지라도 이 상황을 말로 표현할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본능적인 도주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천천히 걸어온 입천신마존이 단원보의 머리 위로 발을 올렸다.
“말했잖아. 그냥 다 죽으면 된다고.”
단원보는 머리를 누르는 힘이 점차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연약한 계란 껍질이 깨지는 소리가 짓밟힌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두개골이 천천히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무르고 질척한 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단원보는 끊어지는 의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감정을 확인했다.
“흐으…….”
지독한 공포감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
그것은 안도감이었다.
***
사천의 정파 연합은 점창파를 선봉으로 내세웠다.
암중세력과 손을 잡고 뒤통수를 치려 한 점창파에 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점창파와 흑애무천의 사파 고수들이 조우하는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리고 뒤이은 점창파와 흑애무천 사파 고수들의 대치를 통해 배신을 확인하고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 결정에 작은 후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 벌어진 광경은 그야말로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허어…….”
도저히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가까스로 흘려보낼 수 있는 소리는 그것이 전부였다.
“저런 게 마교에 있었단 말이지…….”
“후우우우우…….”
당천기의 말에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있던 이들이 가늘고 긴 한숨을 흘렸다.
그 깊은 숨결로도 배 속을 가득 채운 공포를 다 쏟아내지 못한 듯 부르르 떠는 손을 움켜쥐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아미타불…….”
아미파의 장문인 주곡사태는 손에 쥐고 있던 염주가 부서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나지막하게 불호를 외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천원진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대체 곤륜은 저런 괴물을 어찌 막고 계셨습니까?”
“저자가 진심으로 움직였다면 곤륜도 막지 못했을 것이오. 얼마 전 천운으로 복원된 태허도룡검법을 완성한다면 해볼 만하겠으나…….”
경외감까지 담긴 주곡사태의 물음에 천원진인은 허탈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스스로의 무력감에 한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오히려 주곡사태는 더욱 경악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막아볼 수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청해에서 외로이 마교와 대적해온 곤륜파의 저력에 주곡사태는 다시 한번 불호를 외우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때 매복해 있던 정파삼세의 세력을 쭈욱 훑어본 입천신마존이 목소리를 높였다.
“날 막고 싶거든 이런 잔챙이들이 아니라 무종 연청운이라도 데려와야 할 것이다!”
연청운을 콕 집어 말한 입천신마존의 발언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믿을 수 없는 신위를 드러낸 입천신마존이 인정한 강자.
그 말이 어떤 소문이 되어 퍼질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허! 그놈 명성이 천하를 울리겠군.”
무려 점창파 장문인과 고수들, 그리고 흑애무천의 고수들을 순식간에 지워버린 절대고수의 선언이다.
명확한 비교 대상이 있는 만큼 연청운에 대한 세간의 척도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윗사람이라고 챙겨주는 건가? 저 양반도 사회생활 잘하네.”
연청운이 천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당천기는 툴툴대면서도 내심 안도했다.
무서울 정도로 강하긴 하지만 결국 연청운 휘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 사천에 있다고 들었다.”
“응?”
단순히 연청운의 명성을 높여줄 생각이라면 이어지는 뒷말은 사족이다.
당천기를 비롯한 정파삼세의 수뇌부들은 불길한 예감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역시나 이어진 말은 그들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과연 그 명성대로인지 시험해봐야겠다. 만약 사흘 안에 그가 내 앞에 서지 않는다면 사천당가를 불태우고, 청성산과 아미산에 오르겠다.”
무시무시한 선언이 강정 인근의 벌판 위를 달렸다.
***
청풍자 장로와 함께 강정에 도착한 나와 일행들은 이질적인 공기를 읽었다.
무겁고 딱딱한 공기가 벌판 위를 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문제가 생긴 걸까요?”
“으음…….”
경험이 많은 청풍자 장로 역시 묘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절대로 승리한 자들이 품을 기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감도는 공기만큼이나 무거운 생각이 가슴을 눌렀다.
“가보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최악의 상황이 기다린다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아가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큰 손해는 없어 보이는데…….”
“남아있는 전력을 보면 아예 피해가 없는 것 같군.”
사천 정파연합의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청풍자 선배가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아예 교전 자체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데… 점창파가 보이지 않는구먼.”
“그런가요?”
멸천회와 손을 잡은 것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야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안도감에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였다.
“무종 연청운?”
“연 소협이다!”
“연 대협이 왔다!!”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름 명성을 얻다 보니 환호하고 반기는 이들이야 종종 있었지만, 이 반응은 분명 이질적이다.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당천기 가주다.
“잠깐 좀 보자!”
그렇게 납치라도 당한 사람마냥 끌려간 내 앞에 네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초면이었다.
“이렇게 뵙는구려, 연 시주.”
곱게 늙은 비구니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주변의 구성으로 보아 이 비구니가 누구인지는 쉽게 추측이 가능했다.
아미파 장문인 주곡사태가 분명하다.
반갑게 맞이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통성명을 나눠야 하지만, 당천기 가주의 닦달이 먼저였다.
“말해봐! 너, 입천신마존이란 놈 제어가 되는 거 맞지? 그지?”
윽박지르듯 얼굴을 들이미는 당천기 가주에게 이 상황에 대한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
“어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입천신마존이 기다리는 자리를 향해 걸어 나가자 익숙한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복할 것처럼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시립해 있는 천마신교의 마인들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입천신마존이다.
-[분명, 이 년 뒤라고 했을 텐데요.]
그와 약조한 시간은 분명 이 년 뒤다.
지금이 아니다.
하지만 입천신마존은 가볍게 웃으며 씹었다.
-[처음 만났을 때 분명 이야기했을 텐데.]
입천신마존의 주변에서 위험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난 나보다 약한 놈 말 안 들어.]
천마신교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가 갑작스럽게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