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46
345화 사나이!(2)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군.’
종극은 삼악도의 대장이라는 자를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과거 중원 무림에 발을 들이던 혈기 넘치던 시절은 지금과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시기였다.
후에 천마신교의 윗대가리들이 죄다 어깨 위에 올려진 것을 모자걸이로 쓰고 있는 병신들이란 걸 알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성격이 되긴 했지만.
그 치기 어렸던 시절, 종극은 중경에서 한 무인과 격돌한 일이 있었다.
옆구리가 뻐근해지는 기억이다.
상대는 외공의 고수였다.
내공이 자연의 기운을 내부로 축적해 괴력난신의 근간이 되는 힘으로 사용한다면, 외공은 육체의 단련을 우선시해 순수한 패력을 뿜어내는 무공이다.
단련을 거듭할수록 근육이 강해지고, 특별한 절차를 따라 수련을 거듭하면 피부가 질겨진다.
도검의 날카로움을 무시하는 도검불침의 경지에 다다르면 창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뛸 수 있다.
허나 무림에서 외공의 고수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쉽게 한계를 보기 때문이다.
내공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에 육체적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수련의 과정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육체적 한계를 높이기 위해선 언제나 몸을 극한까지 내몰아 단련해야 한다.
근육이 성장하면 그 성장에 맞춰 수련의 강도가 뒤따라야 하니 상승의 경지로 나아갈수록 고통은 배가된다.
초반에는 빠른 성취가 가능하지만, 일정 선을 넘으면 쉽게 내가공부에 따라잡히게 된다.
무엇보다 가혹한 수련을 통해 강철 같은 근육을 얻는다고 해도 치명적인 약점은 감출 수 없다.
단단한 외부를 넘어 내부를 흔드는 내가중수법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도검불침의 경지에 이른들 내가중수법을 익힌 자의 손길 한 번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수련은 가혹한데, 성취에는 한계가 있고, 치명적인 약점마저 있다.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모든 무공이 내외공을 균형 있게 단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초반의 기초단련을 벗어나면 대부분이 소홀히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공을 포기한 채 외공에만 치중하는 경우는 급하게 무인을 육성하여 써먹기 위한 용도가 대다수다.
‘그자도 그런 줄 알았지.’
손쉬운 상대라 생각하고 내가중수법을 펼쳤으나 돌아온 것은 코웃음이었다.
“사나이가 아니었군.”
피를 토하고 쓰러져야 할 자가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날렸다.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올려치는 권격이 종극의 옆구리에 꽂혔다.
황급히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였으나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내부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피를 토한 쪽은 오히려 종극이었다.
경시하는 생각을 완전히 집어던진 종극은 상처 입은 맹수가 되어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코와 입에서 흐른 피에 옷이 젖고, 상대의 주먹이 자신의 피로 물들 때까지 치고받았다.
온몸의 뼈에 금이 갔다고 느낄 정도로 전신이 넝마가 되어 패배와 죽음을 각오할 때쯤, 상대는 크게 웃으며 투기를 거뒀다.
“방금 했던 말은 취소다. 넌 사나이다, 마교의 어린 무인아.”
그리고는 그대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종극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땐 별 미친놈이 다 있구나 싶었지……였나?’
젊은 혈기에 잠깐 정신줄이 가출해서 벌인 뻘짓으로 평생 입 밖으로 내지 않은 흑역사다.
다행히 당시의 무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기에 스스로 털어놓지만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가중수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니 신중히 접근하소서.]
종극은 흑역사를 제외한 조언을 연청운에게 전음으로 전했다.
***
경태세의 돌진은 거대한 불곰이 달려드는 광경을 연상케 했다.
덩치와는 달리 전혀 굼뜨지 않았다.
덩치는 불곰인데 날렵하기는 표범이다.
온몸의 근육이 탄력적으로 움직이니 모든 움직임이 시위를 당긴 활처럼 빠르고 강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되지는 않았다.
빠르긴 하지만, 그뿐.
다 보이고, 다 읽힌다.
읽어낸 공세를 피하고, 한 방 한 방을 저 커다란 과녁판에 꽂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외공을 단련해봐야 내가중수법이면…….’
[저 아해 무공의 근본이 소림이라면 동황정련공이란 무공은 단순한 외공이 아닐 것이다.]하지만 달마 사부의 조언은 내 낙관론을 날려버렸다.
‘어라? 그러네?’
파훼법이 뚜렷한 무공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사파의 정점인 제육천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경태세는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간만 보자.’
아무리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 해도 장삼풍 사부의 천라무결 역시 녹록하진 않다.
진심으로 펼쳤다가 죽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사태가 될 것이기에 손속에 사정을 뒀다.
경태세의 공격을 피해 드러난 옆구리의 틈새로 손을 뻗었다.
통!
“억?!”
평소와는 다른 반응에 당황했다.
천라무결을 펼쳤을 때는 보통 물이 가득 찬 물통을 때리는 깊은 울림이 난다.
범종의 울림처럼 떨림이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그런 울림이다.
한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물통은 물통인데, 두께가 한 뼘은 되는 쇠물통이다.
통짜 쇳덩이 가운데 구멍 하나 파놓고 물통이라고 우기는 꼴이다.
그때 전음 한 자락이 들려왔다.
-[내가중수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니 신중히 접근하소서.]
‘아니~ 그걸 왜 이제……!’
달마 사부가 조언을 주시긴 했지만 이건 상정 외다.
솔직히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천라무결이 막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후확!
급히 허리를 뒤로 젖히자 안면에 묵직한 풍압이 닿았다.
내공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얼굴을 할퀴고 간 풍압에 고막이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흐흥!”
흥이 난 경태세가 무릎을 치켜세웠다.
무릎은 어깨를 잡아 고정시킨 때가 아니라면 상대를 밀어내는 용도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공격에 담긴 힘은 보통을 넘었다.
우득!
“큭!? 이 뭔…….”
마찬가지로 무릎을 들어 맞부딪치자 몸이 뒤로 튕겼다.
“하핫!”
뒤로 날아가는 나를 향해 쇄도하며 경태세는 신이 난 아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웃음과 달리 움직임은 광폭했다.
시야를 가리는 거구가 짓이기듯 달려드니 거친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다.
게다가 이 작자, 유연하기까지 했다.
근육은 철갑 같고, 힘을 전달하는 흐름은 버드나무처럼 유연하다.
강과 유를 겸비하여 힘을 뻗을 때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면서 빠르기까지 하다.
대인전 한정으론 깡패다.
수만의 대군을 상대로 돌격해 진형을 갈라낼 수 있는 괴물이다.
그런 힘이 나를 노리고 있다.
머리통을 부술 기세로 날아드는 일권에 진심으로 펼친 천라무결로 맞섰다.
퍼억!
단단하고 묵직하다.
지금까지 숱한 기격을 헤집고 찢어온 천라무결이었으나 경태세를 상대로는 밀렸다.
거대한 덩어리.
내공을 활용하는 상대를 쉽게 잡아먹어 온 천라무결의 천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날뛴다.
외공을 무너트리는 정석은 내가중수법이다.
이는 무림에서 공식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석이 되었다.
하지만 경태세는 오히려 내가중수법으로 상대하는 것이 더 까다롭다.
외공을 공략하겠다고 어쭙잖게 내가중수법을 들이미는 순간 박살 난다.
과연 제육천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
뚜렷한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내가중수법이 통하지 않는 이상,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거리를 두고 싸우거나, 아니면 근접전으로 결판을 보거나.
전자로는 저 말도 안 되는 근육을 깨트리기가 난해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산중왕을 상대로 산에서 싸우는 격이다.
새삼 소림무공이 근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실감되었다.
동시에 분명한 점 하나를 자각시켜줬다.
경태세는 무림의 정점 중 하나다.
제육천의 하나, 삼악도를 이끄는 대장.
사파를 대표하는 최강자 중 한 명이다.
‘이런 고수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려나…….’
거리를 두고 싸우냐, 접근전을 벌이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는데 경태세가 히죽 웃었다.
“언제까지 깔짝거릴 텐가?”
깔작? 깔짜아아악?
“한 판 뜨자며. 사나이답게.”
내게 선택지를 강요한다.
말은 불만을 토로하지만, 표정은 다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흥미진진한 모습이다.
도발이다.
나는 즉각 머릿속에 떠올렸던 이기어검이란 선택지를 지웠다.
‘이건 못 참지.’
이기어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승산이야 높일 수 있지만, 본래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나이’답지 않기 때문이다.
“하하하하!”
선택지 하나를 줄였더니 갑자기 속이 편해졌다.
어차피 머리 아프게 생각하며 싸울 자리가 아니다.
나는 크게 웃으며 경태세의 앞으로 걸어갔다.
“손.”
“……허어?”
내 행동에 경태세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이는 그냥 근접전을 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악도 사람들은 이러고 놀던데, 아닙니까?”
환희와 뜨거운 열기.
그리고 강력한 투기.
내 말에 자극받은 경태세의 몸 안을 가득 채운 것들이다.
이는 비단 경태세만이 아니었다.
“““사나이!”””
지켜보던 삼악도 무인들이 일제히 소리 지른다.
“““사나이!”””
경의를 가득 담아 외친다.
그 열기에 주변 온도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열화와 같은 환호에 불타오른다.
“좋군! 아주 좋아!”
경태세가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태산 같은 압력이 손을 통해 전달되었다.
온 힘을 다 끌어올려도 감당하기 어려운 완력이다.
하지만 나도 생각 없이 이런 싸움을 건 것이 아니다.
나는 달마 사부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장삼풍 사부의 제자이기도 하다.
우득!
쏟아지는 힘의 흐름을 흔들었다.
힘이 흐르는 방향을 비틀어 흘린다.
그것만으로 경태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손을 맞잡은 상태이기에 곧바로 경태세의 턱이 드러났다.
그 턱을 향해 창을 던지는 것처럼 주먹을 내질렀다.
뻐억!
극강격의 묘리가 담긴 일격이다.
하지만 경태세의 몸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려갈긴 내 주먹에 묵직한 통증이 일었다.
‘연금강?’
타격을 가한 상대에게 되레 상처를 입히는 무공이다.
진짜 연금강은 아닌 것 같지만, 그 비슷한 무공임은 분명했다.
그사이, 경태세는 기울어진 그대로 맞잡은 손을 잡아끌어 나를 당겼다.
동시에 무릎이 승천하는 용처럼 솟아올랐다.
상대를 잡아 고정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무릎을 쓰는 것은 보통 밀어내기 위한 용도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갈비뼈를 산산조각 내겠다는 의도로 판단되었다.
저 공격을 제대로 맞으면 일격에 무너질 수도 있다.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거리를 좁혔다.
우득!
무릎 위로 올라타 타점을 피해냈음에도 옆구리에 불이 난 것 같다.
스쳤는데도 불구하고 몸통이 울릴 정도다.
내공으로 내장을 보호했지만, 몸이 자연스럽게 움츠러든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만들어졌다.
허벅지 위에서 균형을 잡아냄과 동시에 발끝이 유연하게 휘며 경태세의 관자놀이를 찼다.
빠악!!
“하하하하!”
보통 무인이라면 즉사했을 타격인데 되레 웃는다.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경태세가 한층 더 힘을 끌어올렸다.
그 힘이 맞잡고 있는 손으로 전해진다.
내 몸의 균형을 흔들려는 힘과 함께 눈앞으로 팔꿈치가 날아들었다.
“흐아!”
간만에 피 터지게 싸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