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45
344화 사나이!(1)
할아버지의 친구분이 해주셨던 조언이 떠올랐다.
잘 모르는 사람과 수월하게 대화를 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에 맞장구치며 공감해주면 된다고 하셨다.
여기선 그 주제가 ‘사나이’란 단어일 것이다.
여전히 이해는 안 가지만.
어쩌면 저 사람들은 ‘사나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의사소통까지 가능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나이?”
[제자야?] [오염당했냐?]장삼풍 사부와 천마 사부가 기겁을 하신다.
이화와 종노도 수상쩍은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반면 정면에 있는 삼악도의 무인들은 달랐다.
마치 영혼의 동반자라도 만난 것마냥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계획대로다.
“사나이!”
그리고 계획이 어긋났다.
쇳덩이가 날아들었다.
‘삐이이~(자체심의삭제)!!!!’
나를 뭉갤 기세로 날아드는 쇳덩이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
바로 결론을 말하자면 안 죽었다.
혈마를 이기고, 입천신마존과도 당당하게 자웅을 겨뤘던 몸이시다.
고작 이 정도에 죽을까 보냐!
‘살짝 쫄기는 했지만.’
이건 본능의 문제다.
사람이라면 일단 코앞으로 몸뚱이보다 큰 쇳덩이가 벼락같이 날아드는데 움찔하는 것이 당연하다.
장담하는데, 저 작자들이 던진 쇳덩이는 굳건한 성벽도 한 방에 허물어버릴 위력이었다.
이건 직접 받아 본 경험을 토대로 한 확신이다.
저거 잘 챙겨 놨다가 전쟁터에서 쓰면 정말 엄청난 파괴력을 보일 것이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저게 지나가고 난 다음의 참상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공성전 같은 상황에서는 필승을 보장하는 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특유의 소리를 동반하며 날아오는 거대한 쇳덩이는 그 자체로도 사람을 위축시키는 위압감이 있었다.
확실히 이 야성적인 작자들이 한편이 되어 준다면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압도적인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크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집단전에서 제어되지 않는 힘은 오히려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과거 명성 높은 전략가들은 군기를 엄격하게 유지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진짜 고민되네…….”
“혼잣말은 사나이답지 않다.”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장금보가 툭 말을 던진다.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했다.
여기 예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존중하고자 하는 의도를 느꼈는지 장금보가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곧 대장이 올 거다.”
사천연합에서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명백한 불신과 경계를 드러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신뢰를 보였다.
그러니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만나게 해주려는 것이다.
‘성격이 좀(?) 과격할 뿐이지 멍청하진 않아.’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자세히 보고 파악했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들의 성향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마음에 든다면 아이처럼 순수하고 개방적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끔찍하리만큼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렇게 내가 이들에 대한 파악을 끝낼 즘 장금보가 입을 열었다.
“대장 왔다.”
장금보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다수의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장삼풍 사부가 감탄을 하셨다.
그럴 만했다.
비단 한두 사람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이들 전원의 기골이 장대했다.
어지간한 성인보다 최소 두 뼘은 더 커 보이는 장대한 체구의 사내들이 다가오자 흡사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크다…….”
확실히 삼악도 무인들 전원이 덩치가 컸다.
정파에서도 패도적으로 유명한 하북팽가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기골이다.
이 정도라면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삼악도 무인들이 익힌 무공은 거구만이 익힐 수 있는 것이든가, 아니면 무공이 사람의 체형을 바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전자일 가능성이 크지만, 후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칭찬 고맙네.”
내 말을 들었는지 다가오는 일행의 선두에 선 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 대답에 뜨끔해진 나는 슬쩍 옆을 살폈다.
역시나 장금보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다.
방금 혼잣말은 사나이답지 않다고 충고했는데, 그를 무시한 꼴이다.
역시 버릇은 쉽게 고치기 어렵다.
혼잣말 비스무리하게 중얼거리는 건 내게만 들리는 사부님들과의 대화를 하다 보니 몸에 밴 습관이었기에 더욱 쉽지 않다.
어쨌든 삼악도의 대장이라는 사내를 살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장금보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다.
뭐랄까…… 지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말하는 것도 그렇고, 사고방식도 정상인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정상인!
이 얼마나 위대한 단어인가!
이 비정상인 소굴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다.
하지만 방심하진 않았다.
비정상인 속에서 정상인은 장애에 부딪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장은 너무 관대하다. 사나이답지 않…….”
“사나이!”
“쏴놔이!!!”
대장이라는 사내가 사나이를 외치니 다른 이들이 환호하며 따라 외친다.
“우오오오오!! 싸나이!!”
그중에는 방금 불평을 늘어놓던 장금보도 있었다.
우렁찬 외침에 불평불만이 싹 날아갔는지 장금보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이거 악질 세뇌 아니냐?]‘동의합니다.’
나도 모르게 정신이 혼미해졌다.
여긴 진짜 정상이 아니다.
“그런 친구들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예, 뭐…….”
이 지성이 느껴지는 양반도 급격하게 수상쩍어졌다.
정상인이 아니라 정상인 흉내를 내고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삼악도가 그런대로 굴러가는 것은 이 양반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선입견일 수는 있지만, 삼악도는 무지성으로 폭주하기 딱 좋은 집단이다.
이런 불안한 형태의 집단이 중경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세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가 수좌로서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아!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세.”
손뼉을 치는 것으로 분위기를 잡은 대장이란 사내가 눈빛을 달리했다.
“듣자 하니 사천에서 왔다던데, 무슨 볼일이 있어 여기까지 왔는가?”
한 무리를 이끄는 자 특유의 무게감이 생겼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이곳이 사지로 돌변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정신 나간 소리를 해야 한다.
장금보 역시 내 말을 듣고 나를 미친놈 보듯 했었다.
미친놈에게 미친놈 취급받는 게 얼마나 엿 같은 일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천의 정사마 연합은 삼악도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일단 질렀다.
그런데 대장이라는 사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사실이었군. 나는 전달하는 녀석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납득을 한다.
“……자네 보통 배짱이 아니구만?”
아니, 납득을 넘어 호의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대체 왜?
그렇게 의아함이 극에 달할 즘 장금보가 활짝 웃었다.
“저 미친 배짱을 봤습니까? 저자는 사나이입니다!”
“““사나이!”””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좋아한다.
이를 통해 한 가지를 더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장금보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단순히 몸이 좋다는 이유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미친 짓을 아무렇지 않게 질러버리는 배짱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눈앞의 이 사내도 비슷한 성향인지 훈훈한 미소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삼악도의 도주를 맞고 있는 경태세라네.”
“호북 삼양현 사람으로 연청운이라고 합니다.”
“연청운이라…… 연청운…… 연청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는 듯 되뇌던 경태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종? 그 소림과 무당의 공동제자라는?”
역시 사람은 유명하고 볼 일이다.
그 망할 놈의 무종은 여기까지 퍼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응했다.
“몇몇 분들이 그리 부르시더군요.”
“사천에서 왔다더니?”
“인연이 있는 분들을 돕다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하하하하!”
경태세의 표정이 더욱 편안하게 풀렸다.
“그럼 우리와도 아주 무관한 친구는 아니구만.”
“예?”
“삼악도의 개파조사께선 소림 출신이시거든. 사정이 있어 하산한 뒤 중경에 자리를 잡으셨지. 그러다 장강의 수적들이 횡포를 부리는 걸 보고 무공을 가르치셨다네. 본산의 허락 없이 소림의 무공을 가르칠 순 없어 스스로 동황정련공(動荒精鍊功)이란 무공을 따로 만들어 전수하긴 했지만.”
“아, 소림…….”
갑자기 많은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역시, 소림…….] [그럴 것 같았지.]장삼풍 사부와 천마 사부도 바로 납득을 하셨다.
[……다들 왜 갑자기 납득을 하는 겐가? 소림이 뭘 어쨌다고?]반대로 달마 사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의문을 표하셨다.
머릿속에서 사부님들까지 투닥거리는 소리가 소소하게 울렸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을 듣고 기질이 달라졌다.
웃고는 있지만, 웃음 뒤에는 날이 날카롭게 서 있다.
비유를 하자면 칼이 칼집에서 반쯤 뽑힌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모르는 은원이 있나?’
삼악도와 직접적으로 부딪친 일은 없었지만, 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어찌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휘말린 통에 죽인 자가 삼악도와 연이 있다든가 하는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무림에 출두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워낙 벌린 일들이 많다 보니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싸워야 합니까?”
“응?”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 안에 칼을 세우신 것 같아서요.”
경태세의 얼굴에 경직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경태세는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었다.
“와하하하하! 정말 배짱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사나이야! 하하하하!”
“““사나이!!”””
경태세의 말에 잠시 표정이 굳어 있던 다른 삼악도 무인들도 환히 웃으며 소리쳤다.
그 반응을 보며 나는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은원은 아니네.’
이들의 성향은 순수하면서도 폭력적이다.
개인적인 은원이 걸려 있다면 저리 환하게 웃진 않을 것이다.
다른 연유에 대해 떠올리며 가정을 해 보는 가운데 경태세가 먼저 털어놓았다.
“몇 년 전인가. 정체 모를 놈들이 나를 찾아왔었지. 자네처럼 자신들에게 합류하라고 하더군. 나야 당연히 거절을 했고.”
아무래도 그놈들인 것 같다.
당연히 그놈들의 성향을 알고 있는 만큼 의문이 생겼다.
“그냥 순순히 물러날 놈들이 아닐 텐데요.”
“맞아. 습격을 하더군.”
“그것과 제가 무슨 연관이라도 있나요?”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어진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그놈들, 구파 무공을 쓰더군. 소림에 무당에. 뭐, 다 찢어 죽이긴 했지만, 꽤 신선한 경험이었지.”
“아하.”
어떤 놈들인지 알겠다.
안휘에서 한 차례 부딪쳤던 흑기를 쓰던 그놈들이다.
“게다가 요 근래 좀 시끄럽다지? 구파 상태도 말이 아니라고 하고.”
“그렇기는 하죠.”
“그러니 나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네. 자네가 같은 편인 것처럼 스며들어 수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까.”
이 또한 납득이 되었다.
여기가 정파 세력이었다면 좀 덜했을 것이다.
허나 여기는 사파다.
정파와 지겹도록 분쟁을 벌인 역사가 있는 곳이다.
게다가 정체 모를 습격자가 구파 무공을 펼쳤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만했다.
“저는 삼악도와 손을 잡고자 왔습니다.”
“내 눈에도 그리 보이긴 해. 하지만 의심이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
증명하라.
의심을 풀어 봐라.
경태세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어떤 대답을 바라는지 훤히 보였다.
“한판 뜰까요? 사나이답게?”
“하하하하하!”
바라는 대답이었는지 경태세가 시원하게 웃었다.
“좋지. 사나이답게!”
결국, 그도 삼악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