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76
375화 황도에서(2)
예상대로 구악도인의 도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설아 누나에게 잡혀 온 그는 거처로 쓰고 있는 신당에 오체투지를 한 상태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의 거처가 어디인지 몰랐다.
다만 조용히 물었을 뿐이다.
“시끄럽게 굴지 말자.”
“……옙!”
“보는 눈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는데…….”
“안내하겠습니다.”
구악도인은 평생 우리집 몸종으로 일하던 사람처럼 굴었다.
덕분에 이것저것 묻기는 편했지만,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주술로 사람을 죽이는 작자가 이리 순순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거처에 외부 침입자를 제거할 술수가 부려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의 거처는 내 경계가 무색할 정도로 무방비했다.
도리어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발작이 더욱 심해졌다.
“왜 나를 볼 때마다 그리 발작을 해대는 거야?”
궁금해서 물어보자 오체투지를 한 상태로 머리를 땅에 박으며 말했다.
“이토록 대단하신… 신들을 무수히 많이 담고… 계신 분이 아닙니까. 저 같은 하찮은… 것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호오?”
내게 무수히 많은 신이 담겨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담아냈다기보단 이어져 있다는 것이 어울리겠지만, 저자에게는 달리 보이는 것 같다.
[영안이 트여있는 놈이니 물질 너머의 세계를 볼 수도 있겠지.] [쯧! 살이나 날려대는 놈이 눈깔이 트였으면 뭐 해.] [이래서 면접 때 인성도 봐야 한다는 주장을 반론할 수가 없어요.] [그나저나 이 동네에도 저놈에게 잿밥을 얻어먹은 신령이나 토지신이 있나 보네. 멍청한 새끼들.] [옆 동네 터지는 걸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으면 대가리가 깨져야지.] [뭐, 보고서는 쓰고 있으니 뒷일은 감사원이 알아서 하겠지.] [감사원 놈들 어디 휴가 중에 출근해보라지! 카카카카!]위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미뤄보아 영안이란 것이 트여있으면 어느 정도 보이는 게 있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무서울 만하다.
가장 말단인 사부님들조차 세상을 홀로 부술 듯한 힘을 가지셨다.
그런 존재들을 직접 마주한다면 나라도 쫄릴 것이다.
하물며 구악도인 같은 하수라면야 뭐.
“근데 저도 상단전은 열었는데, 영안이란 건 안 트입니까?”
[술맥과 무맥은 다르니까.] [게다가 네 녀석은 제대로 된 싹수가 자라기 전부터 천마무겁수를 받아들인 탓에 상단전이라는 텃밭이 무맥에 맞춰졌지. 굳이 열고자 하면 못 열거야 없겠다만, 이제 와서 굳이?]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반응은 부정적이다.
확실히 일로정진해도 모자라니만큼 굳이 술맥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이화가 있기도 하고.
‘어? 잠깐.’
“넌 괜찮니?”
구악도인이 저리 질겁할 정도인데, 늘 내 곁에 있는 이화는 어떤지 걱정이 들었다.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이화는 담담했다.
감사하다는 말이 좀 이상했지만, 뒤이은 위의 말을 들어보니 납득이 되었다.
[모시는 신(?)이 가까이에 있는데 질겁할 이유가 뭔데?]하기야 그것도 그렇다.
게다가 이화는 천마 사부에게 직접 신탁을 받기도 했다.
걱정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오히려 이해 못 할 내용들이 오간 대화를 들은 설아 누나의 의중을 더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운이가 대단하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설아 누나는 배시시 웃을 뿐이다.
이런 부분에선 포용력 있는 누님이라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구악도인이라 했던가?”
“예, 옙!”
“땅값도 비싼 황도에 이런 신당까지 차려놓을 정도면 열심히 일했나 봐?”
구악도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내 말을 어설프게 흘릴 수도 없는 처지라는 걸 알기에 일단 입은 열었다.
“어어…… 관리들 쪽은 저도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만…….”
영안이 트여있어서인지 인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신령이나 토지신이랑 거래할 수 있는 수준의 술사라니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했어, 안 했어?”
“어…… 음…… 관직에 나가지 않은…… 이들이라면 가끔 했습니다.”
“관직에 나가지 않은?”
“저… 그게… 명문가쯤 되면 후계구도 같은 것이 좀 복잡한 경우가 있는지라…….”
관직에 나가 있는 자들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지만, 그 아래 있는 권력자들의 후계나 손발이 되는 자들의 경우는 간간이 손을 써왔다는 모양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쳐 죽여야 할 놈인 것은 분명하다.
흑살대 놈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당장은 쓸모가 있다.
명문가들의 후계구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은 황궁의 정치구도에 대해서도 제법 해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은근히 황궁의 속사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공산이 높다.
잘 되었다.
“하면, 황제를 누르고 있는 황궁의 정치세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
“폐하…… 말입니까?”
황제의 행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나와 달리 구악도인은 칼같이 황제를 높여 불렀다.
“그래.”
“예… 그…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럼 이부의 상서도 그에 속하는가?”
“……들어갑니다.”
“역시 그렇겠지.”
중앙의 행정을 맡은 조직은 크게 육부로 나뉜다.
그중 이부는 관리를 뽑고 알맞은 부서에 배치하는 인사(人事)를 담당하는 곳이다.
세금과 예산을 관리하는 호부와 더불어 황궁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핵심이다.
황제를 압박할 정도로 권력을 키웠다면 당연히 포함되어있어야 한다.
‘호부상서를 노릴까 생각했지만, 자금의 흐름을 관장하는 곳을 터트렸다간 행정 전체가 마비될 수 있어. 아직은 그쪽을 노릴 때가 아니야.’
세상은 예산이 지배한다.
자금의 흐름이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춘다.
하지만 같은 권력의 핵심이라도 이부는 경우가 다르다.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는 곳이 없어진다고 해도 추후라면 모를까 당장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부상서가 죽는다고 해도 기존에 뽑아놓은 관리들까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궁 내부야 혼란에 빠지겠지만, 그 여파가 당장 국정운영을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다.
빠르게 빈자리를 수습하면 해결된다.
어차피 몇 달씩이나 질질 일을 끌 생각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기회를 엿보고 있는 황제도 움직일 공산이 높다.
“그가 죽으면 어찌 될까?”
“황도가 험악해질 겁니다.”
이부상서쯤 되면 황궁에서도 수위의 권력을 가진 자다.
그런 고관대작이 죽는다면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
모르긴 몰라도 범인을 잡겠다며 황도의 관병들이 사방을 들쑤시고 다닐 것이다.
“이부상서는 누구지? 어디 사는지 말해.”
내 물음에 구악도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호의적인 의도로 물은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죽어 갈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면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공 상서가 사는 곳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압박에 구악도인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
이부상서 공형서.
관리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자답게 인맥 하나는 끝내주는 작자라고 했다.
황궁의 요직에 해당하는 부분을 죄다 저들 파벌로 채워놓아 발언권도 높다던가.
심지어 군부에도 영향력이 높아 함부로 건드리기가 힘들단다.
게다가 현 황제는 상당히 유약한 성격이라 그를 제어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관망만 하는 중이란 것이 구악도인의 평가였다.
뭐, 황제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자칫 선황처럼 비명에 갈 수가 있으니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내시나 궁녀들 같은 황제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궁인들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현 황제의 상황이라고 했다.
게다가 저들의 세력은 한 번에 쳐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물밑에서 용린대를 움직이며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보려는 것 같지만, 자금을 관리하는 호부가 저들의 손아귀에 있어 용린대는 조직 운영자금마저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이러니 흑살대를 고용해 고관대작들을 모조리 죽이고 보자는 식으로 폭주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모 아니면 도의 도박수에 가깝지만, 잘만 하면 단번에 권력을 복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황제의 의도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전무했다.
모 아니면 도라고 하면 언뜻 오할의 가능성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모가 나올 확률은 육푼에 불과하다.
하물며 멸천회주가 배후에 있다면 십할의 확률로 실패하게 될 것이다.
북방의 난이 끝나지 않은 지금, 황궁이 혼란에 빠진다면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질 것은 필연이다.
아마 멸천회주만 좋은 상황이 될 것이다.
멸천회주도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걸 전력으로 방해할 생각이다.
어쩌면 멸천회주는 내가 황도로 들어온 걸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쪽짜리지만 어쨌든 신선이니, 구악도인이 보는 것을 그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두고 하늘에게 향하는 것마냥 주둥이를 놀려댔던 것을 떠올리면 이 가정은 확신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는 삼양현이 아니다.
[그놈도 대가리가 있다면 황도에서 무력을 휘두르진 못할 거다.]적어도 황도에서 나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와 싸우다가 황도가 박살 나면 그로 인한 인과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나서지 않으려 할 터.
‘한 주먹거리라고 생각하는 애송이가 나대는데 관망만 해야 하는 꼴이라…….’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날 받은 굴욕을 일부나마 돌려줄 수 있는 기회처럼 들린다.
공형서라는 놈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나는 설아 누나와 이화를 데리고 구악도인이 알려준 이부상서의 집으로 향했다.
***
고래 등 같은 저택의 담장 한편에 붙어 내부의 기색을 살폈다.
-[무인이 있어.]
-[제대로 왔단 소리네요.]
역시나 구린 구석이 있는 작자답게 나름대로 대비를 해두고 있는 것 같지만, 나를 막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성벽에서 했던 것처럼 담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요한 공형서의 장원 곳곳에서 무인들의 존재가 느껴졌다.
외부의 공격에 대비해 경계를 서는 진형이다.
‘어떻게 움직일까?’
흑살대의 방식은 일단 죽이고 보는 식이다.
표적을 죽이고,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그 역시 죽인다.
목격자도 모조리 죽인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라는 주장이다.
흑살대처럼 모조리 죽이고 빠져나갈지, 아니면 공형서만 죽이고 조용히 빠져나갈지 고민이 됐다.
흉내를 내려면 확실하게 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저들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는 자가 있다면 죽여야겠지만,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겠지.’
-[조용히 움직이되, 막는 자가 있다면 일단 죽여요.]
-[알았어.]
방향을 정했으니 머뭇거릴 일도 없다.
복면을 좀 더 단단하게 여민 뒤 장원 내부로 깊숙이 들어갔다.
“어?”
그 순간 머리 위로 누군가가 지나갔다.
장원 내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무인들을 능가하는 고수다.
굳이 기세를 감추지 않으며 장원을 가로지른다.
오늘 밤 공형서를 공격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어? 저놈들 뭐지? 밤손님들인가?”
“알 게 뭐야. 다 죽여.”
굉장히 흑살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 우리를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