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03
402화 밀리는 수 싸움
남만야수궁을 추적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이화의 능력이 효과를 발휘했다.
이경천이라면 이화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경천이 아니더라도 원정을 나왔을 법한 대주급을 중점으로 찾으면 된다.
이화는 잠시 집중을 하더니 청조를 찾을 때 보았던 불꽃뱀을 피워 올려 방향을 제시했고, 나는 그 방향으로 달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무탈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하늘을 난다?”
허공답보로 하늘을 달리는데 아래에서 누군가 기겁을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경외감이 담긴 비명이었다.
“……여기서도 이상한 전설이 생기겠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내가 지금 벌이는 일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아무리 허공답보를 펼칠 수 있는 고수라도, 나처럼 장시간 펼칠 수는 없다.
공령의 경지에 다다라 내공이 무한에 가깝지 않은 이상 금방 내력 고갈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전투 중 체공 상태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짤막하게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동 수단으로 사용할 때는 경공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형을 돌파할 때나 일시적으로 활용한다.
이를 달리 이야기한다면 공령에 다다라있다면 목적지까지 허공답보를 써서 일직선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는 그 공령에 닿아있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빨빨거리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무림맹에서 일반적인 전투부대를 파견했다면 이동에만도 상당한 시일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보름달이 두세 번은 바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싶다.
나는 슬쩍 아래에 있는 마을을 살폈다.
나를 발견한 마을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오체투지 했다.
“어떻게 생각하니, 이화야?”
“저들이 오라버니를 추종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 그러니?”
“예, 오라버니의 위대한 모습을 보았으니 섬기고 추앙하며 복종하는 건 마땅합니다. 필시 이를 널리 알려 오라버니를 섬기겠지요.”
“……그렇구나. 이화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뭔가 크게 잘못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광신도 기질이 다분한 이화에게 이런 걸 물은 자체가 실수인 것 같다.
‘이게 자발적 자기의심이라는 건가?’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다니.
제법이구나, 이화야.
“다만 송구하고 죄스러운 것이 오롯이 받으셔야 할 위대한 전설에 제가 언급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하아…….”
“어…… 음…….”
나는 이화의 말에 확실하게 결심했다.
훗날 무림맹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뒤라도, 이화는 눈에 띄는 곳에 두어야겠다는 것이다.
무림맹이 되었건, 천마신교가 되었건 이화에게 실권이 주어지는 순간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이 들었다.
이화 같은 광신도를 늘리는 건 이후 무림 생활에 좋을 것이 없어 보였다.
‘천마 사부가 알면 화내실 것 같으니 조용히 있자.’
안 그래도 얼마 전 달마 사부가 여래 마빡에 뇌정 박으러 갔다는 이야기가 남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주변에 다른 신선들이 많아서인지 장삼풍 사부도, 천마 사부도 신경이 곤두서 계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땐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체험을 통해 배웠다.
고이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이화가 띄워놓은 불꽃뱀을 살폈다.
방향이 꽤 변했다.
그저 목적지를 가리키는 방식이라면 거리가 멀수록 변화가 적다.
하지만 초기와 달리 지금은 꽤나 변해있다.
이는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경천을 비롯한 천마신교의 이동속도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척이나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
합류하는 대로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멸천회주가 남만야수궁에 손을 쓴 방식을 본다면 좋은 이야기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다만, 그 뒤에 숨겨진 멸천회주의 진의를 파악할 단서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응?”
그런 가운데 멀리 눈에 밟히는 것이 보였다.
허공답보로 하늘을 달리고 있는 만큼, 시야 또한 높아졌다.
당연히 사람이 모래 알갱이만 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까지 볼 수가 있다.
그런 작은 형상이 깨알 구르듯 달리고 있다.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숫자를 고려한다면 여행객은 아니다.
난리를 피해 이주하는 무리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짐이 없다.
피난길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식량이나 옷은 챙겨야 하는데,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먼지구름이 일고 있었다.
몇 번 정도 보았던 기억이 있다.
말이 달릴 때 일어나는 흔적이다.
수백, 수천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기십은 되어 보였다.
말을 탄 북방 출신 무인은 그 수가 설령 기십에 불과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젠장!”
나는 먼지가 일어나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서북 관문이 뚫렸다는 말을 들었지만, 벌써 감숙을 넘어 여기까지 영향력을 뻗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거의 무주공산으로 달린 수준이다.
어떻게 이런 빠른 움직임이 가능했을까?
“X발, 공동파…….”
화산에 머무는 동안 제갈신무를 통해 종남파의 참극에 대해 들었다.
구파 정도 되는 곳이 혈교의 대법에 취해 타락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예시나 다름없었다.
공동파 역시 감숙에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들이 작정하고 주변을 잡아먹기로 결정했다면, 어지간한 곳은 싸그리 먹어치웠다고 봐도 무방하다.
종남파의 경우보다 더 좋지 않다.
감숙에 위치한 구파는 공동파뿐이다.
섬서를 화산파와 양분하던 종남파와는 사정이 다르다.
정사 간의 분쟁이 본격적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감숙의 무림문파들은 어느 곳을 중심으로 뭉쳤을까?
아마도 공동파 입장에서는 잘 차려진 밥상이 들어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각 마을과 도시에 퍼져있던 무림세력들이 일소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상 무림문파라는 것은 각 지역에서 세를 이룬 호족(豪族)이나 다름이 없다.
그 지역을 지키는 방벽이기도 하다.
서북의 관문이 뚫린 상황에서, 지역을 지키던 방벽마저 사라졌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저들의 움직임은 이를 증명하는 것과 같다.
전력을 잘게 나눠 사방으로 흩어진 채 전진.
전형적인 초토화 전략이다.
저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들은 그대로 밟혀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을들을 부수고 내려온 거지?”
기십으로 나눠서 부대를 운용하고 있다면, 그 수십 개의 부대가 하루에 마을 하나씩을 부쉈어도 수백에 달하는 마을이 날아갔다는 계산이 내려진다.
사람이 아니라 마을이 날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중임에도 바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다.
“대체…… 얼마나 많은 과율을 만든 거지?”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비명 뒤로 멸천회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참극의 실체가 도주 중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아아악!!”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가장 취약한 곳이 먼저 무너진다.
노인, 병약자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취약한 이는 지켜야 할 대상이 있는 사람이다.
어린아이를 업고 달리던 사내가 바닥을 굴렀다.
일가족인지 그 사내에게 아낙으로 보이는 여인이 달려갔다.
뒤를 쫓는 말 탄 무인은 멈출 생각 없이 속도를 유지했다.
밟아 죽일 생각인 것이다.
“빠르게!”
전력을 다해 달리는 중이었지만, 이대로는 늦는다.
나는 의념을 통해 내 등을 떠밀었다.
“더 빠르게!”
사물이 길게 늘어진다.
늘어지는 소리가 이명처럼 한 줄기 잡음으로 통일된다.
시간마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듯한 초감각의 영역.
그 영역에 발을 들이고도 나는 벼리고 벼려냈다.
내 안의 모든 것을 하나의 목적에 맞췄다.
그런 가운데 내 안에 담겨 있는 상화의 의지가 한줄기 흐름을 만들었다.
우드득!
내가 있는 곳보다 더 안쪽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잡초처럼 뽑혔다.
쐐애액!
뽑힌 나무가 나보다 먼저 선두를 달리던 말 탄 무인에게 화살처럼 날아갔다.
퍼걱!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던 말 탄 무인이 그대로 나무에 꿰뚫렸다.
다행히 그대로 피난민들을 밟고 지나가려던 적들이 말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속도를 줄이고 사방을 살핀다.
거리를 좁히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닿았다.’
쏘아진 화살보다 빠르게, 내다 꽂듯 덮친다!
우직!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내 손에 뭉개지는 살덩이와 질긴 말가죽의 감촉이 느껴진다.
움켜쥔 악력에 뭉개지는 핏덩이의 감촉이다.
저항을 묵살시키는 힘이 그대로 움켜쥔 것을 들어 올린다.
일천 근이 넘는 무게의 말이 가볍다.
공깃돌처럼 느껴진다.
나는 손에 쥐어진 그것을 앞으로 던졌다.
내가 달려올 때 만들어진 속도와 힘까지 실어 힘껏 던졌다.
모르긴 몰라도 삼악도 호걸들이 인사마냥 던지는 쇳덩이 못지않을 것이다.
히이이이잉!
“으아아아악!”
“뭐, 뭐야!”
“피해!!”
우드득! 콰득! 쿠당탕!
거대한 말이었던 것이 가로막는 것들을 뭉개며 날아갔다.
“괴물이다!”
“대체 어디서!!”
가속을 멈춘 내 귓가로 경악하는 목소리가 닿아온다.
방금까지만 해도 유혈에 취했던 얼굴이 공포로 물들어있다.
저들 눈에는 내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으로 보였을 터이니 무리도 아니다.
“지옥으로 꺼져라.”
크게 분노한 나는 과거의 편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과거 한 마을에서 혈겁을 일으키려던 마적들을 뭉개버렸던 힘.
천마무겁수.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펼쳤던 힘이 지금은 너무도 쉽게 전개되며 사방을 집어삼킨다.
내 의념을 충실히 반영한 현실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그 순간보다 더 강렬하게!
우득!
“으아아아악!”
“뼈, 뼈가! 뼈가!!”
시작은 뼈다.
곧게 펴져 있던 뼈가 부러진다.
손가락이 고철처럼 찌그러지고, 굵고 단단한 정강이뼈가 강제로 굽어지기 시작한다.
목이 꺾이고, 어깨가 둥글게 말린다.
“아아아아악!!”
히이이이이잉!
짓눌린 진흙처럼 우그러지는 손으로 사방을 휘젓지만, 무언가에 옥죄어진 팔다리는 뻗어지지 않는다.
점점 작아지는, 보이지 않는 우리에 갇힌 듯한 모습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이 피와 살로 이뤄진 것을 두 손으로 둥글게 빚어내는 듯하다.
우드드득!
“으아아악!”
“사, 살려…….”
발버둥쳐 봐도 몸은 계속해서 둥글게 말려질 뿐이다.
“꺼어어…….”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가 찌그러지면서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비명 소리가 잦아든 순간에도 둥글게 압축되는 힘은 멈추지 않는다.
마치 걸레에서 물기를 짜내듯 고깃덩어리에서 모든 피가 빠져나오며 땅을 적신다.
기십의 무인과 말이 쏟아낸 피로 사방이 피바다가 되었다.
꿀꺽!
목숨이 구해진 감사보다 공포가 앞서는지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내 시선은 북쪽으로 향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적인가 싶었지만, 곧 그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이들의 선두에 익숙한 얼굴이 있다.
그렇게 달려온 이는 내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머리를 땅에 박았다.
“소마 이경천! 전지전능하신 천마를 뵙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천마신교의 교도들 역시 사방이 피바다임에도 개의치 않고 오체투지를 한다.
“천마강림!”
“영세무궁!”
피범벅이 된 그들에게선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한없이 순수한 경외를 담아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영세! 영세! 영영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