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04
403화 멸천회주의 진의
당연하지만 북방 기마인들에게 쫓기던 피난민들은 나를 두려워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야박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정확히는 그들의 반응을 아예 의식하지 않았다.
자칫 과잉 충성하는 수하들로 인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는 민간인들이 두려워할 만한 요소는 모조리 갖췄다.
일단, 무림인이다.
수틀리면 사람 죽이는 일을 꺼리지 않는 불한당.
무림에 얽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인식이다.
게다가 그 인식을 단번에 확대할 법한 일을 눈앞에서 보였다.
사람을 압착해서 완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사방은 피바다다.
애들 보기에 부적절한 광경이다.
저들에게는 어쩌면 내가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이경천을 비롯한 천마신교 마인들의 외침이 있었다.
천마신교의 주인 천마.
무림에서는 물론이요, 민간에서도 천마라는 두 글자는 사람이 아니라 악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극악무도의 대명사다.
천마신교가 무림에 자리를 잡으려면 이러한 인식들을 점차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어…… 가능……하려나?’
어째 멸천회주를 때려잡는 일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노력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나는 작은 결심을 굳히며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피난민들을 돌아보았다.
“히이이익!!”
그런 가운데 나와 눈이 마주친 어린 여자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굳어졌다.
뭔가 하려다가 무서워 머뭇거린 모습이랄까?
예닐곱 걸음 거리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여자아이가 도망치듯 부모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기마병에게서 처음으로 구한, 아비가 등에 업고 달리던 그 아이다.
“무례한 꼬마군요.”
“아하하…….”
이화가 저리 말하니 위화감이 넘쳐난다.
그러던 중 여자아이가 안절부절못하던 자리에 떨어져 있던 것을 발견했다.
헝겊을 기워 만든 손바닥만 한 인형이다.
조잡하기 그지없는 것이 부모가 만들어준 것 같다.
그것을 집어 들며 나는 멀어지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을까?”
놀라서 떨어트렸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기왕이면 희망을 담아봤다.
그 난리통에도 가지고 있던 걸 보면 꽤나 소중하게 여겼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생각하니 조잡한 인형임에도 제법 정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가지고 있을 건 아니다.
“가질래?”
이화에게 내밀었지만, 대답을 듣지 않아도 답을 알 것 같다.
괜한 소리를…….
“……예.”
“엥?”
뜻밖에도 이화는 인형을 받았다.
이런 것이 취향이었나 싶기도 했지만, 다음 이어진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오라버니가 주시는 거니까요.”
“으이그.”
나는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뻐할 수밖에 없는 아이다.
하지만 훈훈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천마신도 무인들에 이어 곤륜파 도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포달랍궁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라마승들이 나타났다.
“무서운 분이시구려. 의념만으로 이만한 일을 해내다니……. 사람의 경지가 아니외다.”
선두에 선 왠지 몸이 불편해 보이는 라마승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감탄인지 경계인지 모를 그의 평가에 나도 상대를 응시했다.
은연중에 느껴지는 기운은 깊고 웅장했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는 흔들림이 엿보였다.
‘이자가 라마승의 수좌인가?’
서역 제일로 논해지는 포달랍궁의 수좌치곤 젊어 보인다.
많이 잡아줘야 마흔을 갓 넘긴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개인의 기량 또한 미묘했다.
게다가 그릇에 금이 간 것이 정상이 아님이 분명했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나이와 기량. 그리고 정상이 아닌 몸.
사연이 없을 수가 없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멸천회주와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다.
“대라마 체텐이오.”
“천마 연청운입니다.”
가볍게 통성명을 했다.
그리고 대라마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잠시 시간을 내어주었으면 좋겠소.”
나로서는 반가운 제안이다.
사실 내가 먼저 꺼내려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죠.”
나는 대라마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난제가 산재해있지만, 대라마와의 대화는 선행되어야 할 것 중 하나였다.
***
대화를 하기 위해 일단 자리부터 옮겼다.
내가 한 일이지만, 진득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부적절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던 중 곤륜파 장로가 슬쩍 거리를 벌렸다.
“그럼 우리는 주변을 잠깐 돌아보고 오겠네. 몹쓸 놈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말일세.”
핑계처럼 말하고 있지만, 은연중에 살기가 느껴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서북 관문을 무너트리고 밀려든 기마대가 저지른 짓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대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 것인지 알고 있는 느낌이다.
굳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듣고 싶지 않다고 할까.
어쩌면 곤륜이 전력을 파견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경천.”
“소마 이경천, 여기 있습니다.”
이경천이 부복하며 지시를 기다렸다.
처음 만났을 때를 상기한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성어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주변에 소란을 일으키는 몹쓸 놈들을 찾아 정리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나는 명을 받고 물러나는 이경천을 유심히 살폈다.
그에게서도 일절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다.
과연 대라마가 어떤 이야기로 저들을 움직였는지 궁금해졌다.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고 기다리자 대라마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라마의 제자였다오.”
얼마 전까지.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왠지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는 말이다.
“멸천회주의 짓입니까?”
“그 마왕을 이곳에서는 그리 부르나 보오.”
할아버지가 학이라 부른 것에 비해 대라마는 무척이나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맞소이다. 그자는 사부님을 죽인 원수라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부님을 시해하였소이다.”
천마신교로 치면 내가 천마신교 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살해당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대로 눈이 돌아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게 이것을 남겼소.”
대라마가 가사를 걷어 가슴을 보였다.
거기에는 징그럽게 일어난 혈관과 그 혈관들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검은 고치 같은 것이 심장 박동에 맞춰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건…….”
“그자의 힘에 항거할 마음이 꺾였을 때 생겨나더이다. 뭔가 주술인 듯싶소. 마음을 추스른 지금은 그자에게 대항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내게 고통을 주고 있다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는 것 같지만, 고통이 심한지 말을 하는 내내 호흡이 흔들렸다.
수양이 깊어 보이는 대라마가 이리 힘들어할 정도라면 지금 그가 느끼는 고통이 만만치 않음을 의미했다.
이런 몸으로 멸천회주에게 도전하려는 행보가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명확했다.
“죽을 생각이십니까?”
“처음에는 그리 결심했다오. 마음이 꺾인 수도자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소이까.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을 잃었으니, 목숨을 던져서라도 응당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그대의 소문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오. 그대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것도 있고.”
대라마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되새기는지 참담함이 배어있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자가 사부를 시해한 뒤 참담하게도 마부르산의 용맥을 건드리는 것을 보았소. 그 여파는 수메루(수미산)에까지 닿았을 정도였소. 한동안 두 영산 사이가 시끄럽게 울었다오.”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용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언뜻 들어본 바가 있다.
영산을 언급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멸천회주가 아무런 이유 없이 영험함이 가득한 산을 흔들어놓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십만대산과 곤륜을 찾은 것은 그대와 연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산의 용맥을 살피려는 의도도 있었소이다.”
“어땠습니까?”
“곤륜산은 깨끗했소. 감히 건드리지 못했달까. 하지만 십만대산은 영향을 받은 곳이 있었소. 수미산 정도나 되는 영산의 용맥이 흔들렸다면 그 여파가 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라오. 만약 그 여파가 세를 불리기 시작한다면 결국 곤륜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오.”
대라마의 말을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불길함이 가득함은 분명히 인식했다.
인과니 용맥이니 신경 써야 할 것이 늘어남에 따라 더더욱 골치가 아파졌다.
나는 두통이 올라오려는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그 힘에 대한 반발인지 툭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화산을 ‘점거’한다.”
멸천회주의 진의에 대해 물었을 때 남만야수궁의 부궁주가 한 말이다.
화산을 ‘점거’한다.
당시에는 단순하게 힘을 집결해 무림맹을 치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곳에도 마부르산과 비견될 만한 영산이 있을 것이오. 이곳은 무탈하오이까?”
서역의 용맥을 멸천회주가 건드렸다고 대라마가 주장했다.
그자가 과연 이 땅의 용맥은 가만히 내버려뒀을까?
‘화산… 화산…… 화산?!’
화산은 오악의 하나이자, 오행 중 쇠(金)를 상징하는 서방금신의 기운을 담은 영산이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용맥이 흔들리면 어찌됩니까?”
“최소가 지진일 것이오. 견고한 건물도 모래탑처럼 붕괴될 것이라오.”
최소가 그 정도의 강진이다.
“그럼…… 최악의 경우는…….”
“모르오. 용맥은 사람의 힘으로 건드릴 영역이 아니외다. 하지만…… 그 거대한 흐름이 날뛰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대지의 표면이 통째로 뜯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오.”
상상력의 부족한 탓인지 좀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실제로 그리된다면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것 중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순식간에 피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싹함이 사지백해로 흩어졌다.
[에이, 그건 너무 나갔다.]‘장삼풍 사부?’
그때, 장삼풍 사부가 끼어들으셨다.
[물론 용맥이 한계치까지 폭주하면 그렇게 될 공산이 높지. 한데, 그만한 재해를 일으키는 것은 그 잡놈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야. 구파의 인과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대놓고 움직이지 못하는 놈이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지. 그 정도라면 현천상제께서 멀쩡한 상태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율인데.]지상을 날려버리는 미친 짓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백 년을 못 사는 인간과 달리, 신선의 몸을 가진 존재라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멸천회주는 그 영겁의 시간 동안 몰락한 채로 살아갈 자인가?
그건 아니다.
그 작자라면 분명 다른 기회를 엿볼 것이 분명하다.
“……용맥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불가능한 건 아니군. 용맥은 그 자체로 거대한 힘의 흐름이니까. 그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이적도 충분히 일으킬 수 있겠지.]단순하게 폭발시켜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가정에 대해서는 장삼풍 사부도 동의하셨다.
그렇다면 그 힘을 멸천회주는 어떻게 활용하려 할까?
[……어? 자, 잠깐…….]그에 대해 고민을 하는데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어렸다.
[오악으로 오행을 담고, 태극을 격동…… 여기에 수미산의 용맥을 동쪽 십만대산으로 돌린다면… 그 힘이 만나는 곳은 곤륜? 태허가 가득한 곳에 두 힘의 흐름을 순환한다면…… 오행, 태극, 태허…… 혼돈에 이르는 힘의 영역이 순환해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낸다?]뭔 소리를 하시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
다만 마지막에 나온 말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거 조잡하긴 하지만…… 봉신대결계의 구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