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09
408화 새옹지마?
이경천과 곤륜파 제자들 그리고 포달랍궁의 대라마에게 서북관문을 뚫은 자들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뒤 화산파로 향하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화가 만들어낸 불꽃의 뱀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점차 머리끝이 움직이는 모습에 상황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늦었구나.”
이화가 주술의 매개로 선택한 대상은 백무호였다.
그런 백무호가 이동하고 있다.
확인을 위해 제갈 군사나 당천기 가주, 입천신마존으로 대상을 바꿨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손 어르신이 감지되지 않는다고?”
“예.”
“그렇다는 것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흑애무천의 주인이 귀천했다고 한다.
공손 어르신은 사적으로는 조부의 친우셨고, 공적으로는 무림맹에 참여한 거대 사파 세력 중 하나인 흑애무천의 천주다.
화산을 중심으로 공성계를 펼칠 생각이라면 피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뭔가 수를 쓸 것이란 생각은 했다.
하지만 흑애천주인 공손 어르신의 죽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공성계를 택한 순간 화산은 지켜야 하는 곳이 아니라, 이용해야 하는 곳이 된다.
대세의 흐름을 좌우할 곳이 아닌, 적에게 극단적인 피해를 강요하기 위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손 어르신을 잃는 상황은 아무리 해도 그려지지 않았다.
공손 어르신은 사파를 대표하는 거물이다.
무림맹에서도 함부로 소모할 수 없는 고수다.
고작 작전 하나 성공시키고자 요직의 장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멍청한 짓을 제갈 군사가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뭔가 변수가 있다는 건데…… 화산에서 뭔가를 찾은 건가?”
나는 대라마를 통해 화산을 버림패로 쓰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어쩌면 제갈 군사가 화산의 이모저모를 살피다 뭔가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까운 분이 가셨구나…….”
멸천회주와의 싸움은 천하의 존망을 건 전쟁이다.
누가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고 여겼지만, 공손 어르신이 귀천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니 가슴이 아려왔다.
‘누구라도 죽을 수 있다.’
손자(孫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했다.
설령 이긴다 할지라도 피해가 전무(全無)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만 해도 무림에 출두한 이후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저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죽음을 피해왔을 뿐이다.
그 대상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걸 막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
속에 담았어야 할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갑자기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등에 업고 있는 이화의 시선이 느껴진다.
“주인님은 죽지 않아요.”
“응?”
“이화가 막을 겁니다.”
목을 두르고 있는 이화의 팔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내 각성 때 얻은 괴력의 영향인지 만다라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숨이 턱 막힐 만큼 묵직했다.
“그래, 잘 알았다.”
“예! 반드시!”
내색을 안 했더니 얼마나 세게 내 목을 조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색했다간 어쩔 줄 몰라 하며 오체투지 할 것이 뻔했다.
나는 이화가 만든 불꽃의 뱀이 가리키는 곳으로 뛰었다.
서쪽. 소림이 있는 방향이다.
소림이 자리 잡은 숭산은 오악의 중심.
오행에서 중앙을 맡고 있는 대지(土)를 상징하는 곳이다.
숭산 자체부터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토체(土體)의 형상이라고 불리는 영산이다.
‘제갈 군사라면 제갈세가와 가까운 무당파로 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소림으로 향한다는 것은…… 정말 알고 움직이는 걸지도 모르겠네.’
목적지는 소림이다.
***
연청운과 모종의 인연을 맺은 세 청년 무일, 청수, 현백은 바싹 얼어있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지?”
“어…… 음…….”
“아마도?”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세 청년의 뒤로는 무수히 많은 이들이 줄지어있었다.
어림잡아도 오백이 넘는 대인원이다.
중간중간 나이 든 이들도 있지만, 젊은 축에 끼는 이들이 대다수다.
모두가 세 청년을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일이 어쩌다 이리되었다냐…….”
처음 끌어들인 사람은 고작 한 명에 불과했다.
정확하게는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한 협객을 도우며 시작했다.
마을을 구하기 위해 홀로 강시들과 맞서 싸우던 협객을 도왔는데, 그 협객은 양천대협이라 불리는 산서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하지만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는 데다, 마을사람들을 지키며 싸우는 터라 중과부적으로 밀리고 있었는데, 세 청년이 지원을 하며 주변을 받치자 승기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이어 사연을 전해 들은 양천대협은 흔쾌히 합류했다.
그리고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루가 멀다 하고 강시들과 싸웠다.
도움을 받은 마을마다 손을 보태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무관이 있는 곳의 경우는 열댓 명이 한꺼번에 합류하기도 했다.
소문을 들은 주변 마을에서도 힘을 보탰다.
특히 무당파와 소림의 속가제자들이 있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게 모이다 보니 오백에 달하는 대인원이 되었다.
이제는 하루하루 식비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이 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양천대협이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근처에 산서신검 조 대협이 은거하고 계신 곳이 있다네. 젊은 시절 호협함을 뽐내던 분이셨으니 한번 찾아가 뜻을 여쭤봄이 어떻겠나?”
“……천하십검의 일인이신 그분 말입니까?”
세 청년은 기겁했다.
의협 오백을 모은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고수가 참여해주기만 한다면 더 큰 일을 해낼 수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거 완전 그거 아니냐?”
무일이 신이 나서 나불댔다.
여전히 얼어붙어 있던 청수와 현백이 그런 무일을 빤히 바라봤다.
“그거라니?”
“새옹지마(塞翁之馬).”
청수와 현백이 얼굴을 굳혔다.
“야 이, 썅! 왜 하필 그건데?”
“왜? 맞잖아? 나쁜 일 뒤에 좋은 일이 온다.”
뜻만 생각하면 틀리진 않는다.
하지만 새옹지마의 이야기를 곰곰이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옹이 나쁜 일을 몇 번 당하지?”
“두 번?”
“그럼 나쁜 일이 한 번 더 올 건데, 우리에게 일어날 나쁜 일이 뭘까?”
“어… 음… 몰살?”
“……제발 입 좀 다물어주라.”
가뜩이나 가슴이 떨리는 상황인데, 애꿎은 놈이 살까지 떨리게 하고 있다.
그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초막에 도착한 이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한 식경쯤 흘렀을까.
양천대협이 면목 없단 얼굴로 초막을 나왔다.
“미안하네. 나설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야.”
“예? 왜요?”
무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직설적으로 물었다.
눈치라는 것이 남아있는지 의심되는 그 당돌함에 양천대협이 쓴웃음을 지었다.
“은거할 때의 마음가짐이 남아계신 모양이네. 그러니…….”
“아니, 이게 무림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는데 그게 뭔 소립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무일이 산서신검의 초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왔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콰앙!
들어갈 땐 제 발로 갔던 무일이 허공을 날아돌아왔다.
“쿠엑! 게에엑!”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르며 나가떨어진 무일이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이어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노인이 초막에서 나왔다.
“조만간 객사할 놈이구나. 양천 네놈은 고작 저런 것들이랑 어울리고 있더냐!”
“아하하…….”
차마 무일의 행동을 비호하기 힘든지 양천대협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어리지만 의리 있고 협의가 있는 좋은 녀석입니다.”
그나마 편을 들어준 게 이 정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산서신검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하던 일이나 해라. 양천이 있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터. 행여 구파와 제육천의 싸움판에 끼어들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라!”
산서신검의 호통에 현백이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이글거리는 눈으로 산서신검을 응시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논리적인 현백의 성격답지 않게 직설적으로 들이받았다.
그 기질이 어딘가 무일과 닮아있었다.
현백을 보는 산서신검이 시선이 무일을 볼 때와 같아졌다.
산서신검에게서 코웃음이 흘러나왔다.
“쓸모없으니까.”
“저희가 약하다곤 하지만, 이만큼 사람이 모여……?!”
목소리를 높여가던 현백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어느 순간 산서신검의 검이 목에 닿아있었다.
“내가 너를 벨 때 일 검 이상이 필요할까?”
산서신검이 명백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일류 무인이라면 삼류 무인쯤 간단히 죽인다. 절정, 초절정쯤 되면 그런 일류고수도 어린애 다루듯 할 수 있다. 그 너머에 오른다면 절정고수조차 애송이에 불과하다. 구파와 제육천의 싸움판은 그런 괴물들이 격돌하는 곳이다. 너희는 방해만 될 뿐, 애초에 너희가 낄 판이 아니야! 왜 구파가 중소문파를 규합하지 않는지 모르겠느냐!”
현백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 있는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냐? 반 각? 반의반 각? 들풀이면 들풀답게 살아.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이 되지 말고.”
냉정하다 못해 조롱으로 들린다.
현백이 이를 악물었다.
청수도 비슷한 얼굴이다.
“X발!”
그리고 무일은 무일답게 소리쳤다.
“약한 놈은 옳은 일도 못 한답니까!”
토악질을 할 정도로 얻어맞았음에도 무일은 무일이었다.
“옳은 사람이 되고 싶단 말입니다.”
뜨거웠다.
때 묻지 않은 혈기가 활활 타올랐다.
냉랭하던 산서신검이 한순간이나마 움찔했을 정도다.
“주둥이는 살아있구나.”
동요했던 기색을 빠르게 지운 산서신검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디 그 잘난 각오를 보자.”
산서신검이 세 청년의 앞에 검을 꽂았다.
“옳은 일을 하고 싶다? 명성이나 얻어 보겠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어 지껄인 것이 아니라면 어디 네놈들 오른팔을 잘라봐라. 그럼 내 다시 생각해보마.”
무인에게 오른팔을 내놓으라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요구다.
그러나 세 청년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검을 들어 자기 팔을 내리쳤다.
따당! 짜악!
“이런 천하의 멍청한 것들을 봤나!”
단숨에 세 청년의 손에서 무기를 뺏어내고 뺨을 후려친 산서신검이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세 청년은 되레 웃었다.
“저희 셋의 미래로 어르신이 움직인다면 남는 장사 아닙니까?”
“얼간이구나!”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얼간이라는 말을 칭찬으로 듣다니, 어디서 이런 구제불능이…….”
냉혹하게 비꼬았지만,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모두 알아차렸다.
산서신검이 그리 냉혹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양천대협 역시 그런 산서신검을 보며 세 청년과 비슷한 웃음을 지었다.
“멋진 놈들 아닙니까?”
“너도 맞고 싶으냐?”
단순한 위협으로 들리지 않았는지 양천대협이 슬쩍 거리를 벌렸다.
산서신검이 한숨을 내쉬었다.
“철권신협이라 불리던 놈이 있었다. 딱 너희 같은 놈이었지. 그의 협의는 백 년이 흘러도 기억될 것이라고 모두가 칭송했다. 하지만 놈이 죽자 세간은 놈을 잊었다. 백 년은 고사하고 십 년도 안 갔어. 무림에서 말하는 협이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한 것이야.”
산서신검의 목소리에서 철권신협이란 인물에 대한 애수가 묻어났다.
현백은 이것이 산서신검이 무림을 등진 이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십 년이면 오래 기억했네요, 뭘.”
여전히 무일은 생각 없이 입을 털었지만.
산서신검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 어디에도 냉소적인 기색은 없었다.
“어디, 그 멍청함이 얼마나 갈지 보자.”
지켜보겠다.
함께 가겠다는 소리다.
그 의미를 깨달은 세 청년이 활짝 웃었다.
하지만 산서신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양천.”
“예, 조 대인.”
“문곡과 희백에게 연통을 넣어라. 내가 불렀다 하면 놈들도 출두할 것이다.”
“하하하! 이거 오랜만에 대인들이 함께하는 것을 보겠군요!”
일이 점점 커졌다.
무일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거봐. 새옹지마 맞지?”
“그래, 니 똥 굵다.”
천하의 대세를 가를 결전.
그 속에 몸을 던진 작은 변수 하나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