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13
412화 선계의 결정
일제 휴가를 통한 정당한 파업으로 일거리 전부를 윗대가리들에게 떠넘긴 뒤 그야말로 올바른 신선놀음(?)을 누리던 신선들에게 모두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연히 한동안 한가하던(?) 선계에 소란이 일었다.
강제로 파업을 진압해 모조리 업무에 복귀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내전이 일어날 법한 가정에서부터, 적당히 타협안을 제시해 어느 정도 근무환경이 개선되려는 것이 아니냐는 꽃냄새 가득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소소하게 영보천존이 지상의 핏덩이에게 한 방 먹은 것 때문에 내리갈굼이 일어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세가 되지는 못했다.
신선들이 집결한 회당 구석에 자리한 천마도 슬쩍 장삼풍에게 의견을 물었다.
“너는 어느 쪽일 것 같냐?”
장삼풍이 어깨를 으쓱하며 흘렸다.
“뭐가? 아, 달마가 정말 여래 미간에 뇌정 박았을 것 같냐고?”
“그거겠냐! 뭐, 것도 궁금하긴 하다만.”
슬쩍 이야기를 돌리는 장삼풍의 태도에 천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전히 주어가 분명하지 않은 천마의 말에 장삼풍도 덩달아 얼굴을 굳혔다.
다른 신선들과 달리 둘은 연청운의 사부다.
당연히 생각하는 관점도 다른 신선들과는 달랐다.
“글쎄.”
하지만 함부로 털어놓기에는 너무도 큰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천마 역시 말을 돌리는 것이기도 했다.
“모르지. 정말 파업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장삼풍의 턱짓이 슬쩍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격무에 시달려 골골대고 있는 윗대가리들이 모여 있었다.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옆구리에 슬쩍 칼침을 박아 넣으면 그대로 소멸할 것 같은 모습이다.
“안 그래도 요즘 선계 대장간이 은근히 북적이더라. 칼 갈러 오는 신선들이 엄청 늘었다던가? 누구 옆구리에 칼침을 박고 싶어서 그리 열심히 칼을 갈았는지 모르겠네?”
막장스러운 선계 분위기를 언급하며 장삼풍이 피식 웃었다.
강경진압에 대응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정말 누구 옆구리를 쑤셔보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법한 정황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흥! 됐다.”
끝끝내 흉중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 장삼풍의 언변에 천마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후 단상 위에 누군가가 올라왔다.
영보천존이다.
“어라?”
“진짜?”
“와! 정말 그거야?”
순식간에 회당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존심이 있지?
가장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한 건일지도 모를 판이 되자 모인 신선들의 표정이 황망하게 변했다.
하지만, 장삼풍은 다른 의미로 조금 전 천마와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안 좋은데…….”
영보천존이 정말 청운이에게 한 방 먹은 것 때문에 기강 잡겠다고 이렇게 신선들을 불러 모았을까?
장삼풍은 아니라도 판단했다.
아무리 영보천존의 성깔이 더럽다고는 해도, 이런 사소한 일로 뻘짓을 할 만큼 막장은 아니다.
설령 그럴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더라도,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이를 좌시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태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적어도 영보천존급, 삼청급에서 논할 이야기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장삼풍의 표정이 썩어가는 이유였다.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영보천존의 입이 열렸다.
“봉신대결계를 해제하고 지상에 관여하는 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수군거리던 분위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영보천존의 말에 내포되어 있는 무거움을 깨달은 신선들이 다시금 사고를 회복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모됐다.
그 엄혹(嚴酷)한 침묵 가운데 한 신선이 어렵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해제…입니까?”
“해제다.”
“그게… 그러니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야. 만드는 법을 아는데, 해제하는 법을 모를까. 물론 여러 영역의 힘을 근간에 두고 있는 만큼 쉽지는 않지만, 선계의 공론이 모인다면 해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여 있던 신선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영보천존이 봉신대결계의 해제를 논하는 이유.
멸천회주라 자칭하는 현천궁의 모질이 때문이었다.
“지상에 봉신대결계를 만들게 되면 천상의 봉신대결계와 맞물릴 우려가 크다. 놈이 만들려는 봉신대결계의 근간은 지상의 용맥인 만큼 그 여파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때가 된다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게 될지 추측할 수 없다. 어쩌면 아예 손을 댈 수 없을지도 모르지.”
영보천존은 현 상황이 위기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다른 존재도 아닌 삼청의 경고에 얼굴을 굳히는 신선들이 늘어났다.
“물론 설령 지상과 천상이 격리된다 할지라도 영혼의 순환만은 막히지 않을 것이다. 봉신대결계는 그저 신의 힘을 막는 결계일 뿐이니까. 우리는 그저 현천궁의 낙제생 모질이 놈이 던지는 똥덩이만 치우면 될 일이야. 아마도 온갖 더럽고 역겨운 것들을 던져대겠지. 당연한 소리겠지만 너희가 짊어져야 할 건 더욱 커질 것이고.”
일을 처리할 인원은 더 이상 늘지 않는데, 일거리는 늘어날 것이라 예견한다.
끔찍한 미래를 떠올린 신선들의 얼굴은 굳어지는 것을 넘어 제각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손을 놓아버리든가.
“지금 개입하면 그런 미래는 막을 수 있다. 인과야 좀 털리겠지만, 그 정돈 감당해야겠지.”
신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언급한다.
문제는 지상은 더 이상 과거 신들이 거닐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왕과 요마들이 가득하던 시대의 지상은 신력으로 가득했으며, 그에 걸맞은 내구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지상은 상위신이 강림하는 것만으로도 물질계가 붕괴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위급 신선이 작정하고 움직여도 지상은 초토화 확정이다.
“그렇다면 지상의 인간들은…….”
“쓸려나가겠지. 그래도 명맥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좀…….”
급이 낮은 신선일수록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영보천존은 단호했다.
“이는 징계이기도 하다. 저 빌어먹을 놈의 짓거리에 동조하고 놀아난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도 모르겠는가. 멸절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야.”
신의 분노는 가볍지 않다.
한번 움직이면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뭐, 어찌 보면 좋은 일이기도 하지. 적어도 수천 년은 지금처럼 일에 쫓길 일도 없을 것이다.”
일이 줄어든다.
영보천존은 양심에 거리껴 할 이들을 위한 반대급부도 쥐여 주었다.
명분도 있고, 돌아오는 혜택도 있다.
몇몇 신선들은 손익을 저울질하며 고민에 들어갔다.
그때 어울리지 않는 장포를 걸친 어린 소년이 나섰다.
“그만하시오.”
현천상제.
전대 신들의 왕이 단상 위에 올랐다.
영보천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폐위된 자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려는 자리에 경험자가 나서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같은 실수?”
“저 모질이를 보며 난 이리 생각했소. 지상에서 날뛰는 저것의 정체는 내 과거 행위에 대한 또 다른 과율일지도 모르겠다고.”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한 현천상제의 주장은 이 사태에 대한 다른 여지를 주었다.
현천상제의 주장에 영보천존이 미간을 좁혔다.
“이 또한 천리다?”
“그 복잡한 하늘의 뜻을 누가 헤아리겠느냐만, 내가 다 감당하지 못한 여파로 인한 것임은 분명해 보이오.”
과거 현천상제는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했다.
하지만 만물에는 음과 양이 있는 법.
행위가 있으면 그에 따른 과가 생긴다.
현천상제의 몰락만으로 다 채우지 못한 과.
“저것이 하늘이 남긴 과라면, 이를 다시금 과로 치웠을 때 새로이 생겨날 과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오. 부디 살펴 헤아리시오, 혼돈의 태(態)여.”
전대의 상제가 삼라만상의 본질 중 하나인 영보천존에게 읍소했다.
이를 바라보는 신선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이 조금씩이나마 풀어진다.
장삼풍이 앞으로 나섰다.
“쉬운 길이 결코 최선의 길이 아닙니다.”
“연자염이란 인간이 한 말이구나. 도에 다다라 신선의 몸을 이뤘음에도 인간의 말을 귀에 담느냐.”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말이라 할지라도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몸 장삼풍의 근원이었던 인간을! 피와 땀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내는 존재들의 노력을! 그리고! 제 제자(弟子)를!”
뭇 신선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삼풍은 제자를 믿어 달라 소리쳤다.
지금까지 자오경을 통해 연청운을 보아왔던 신선들이 표정을 바꿨다.
본인의 마음이 향한 곳으로 움직였다.
“우리 제자겠지, 얼간아. 혼자 잘난 척이냐.”
천마가 장삼풍과 나란히 섰다.
그러자 다른 신선들 또한 장삼풍와 천마의 옆으로, 뒤로 모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피로에 찌든 상급 신선들도 있었다.
마치 강물이 흘러가듯 만들어낸 흐름이 결집해 몸집을 불렸다.
단상 위에 올랐던 현천상제가 천마의 옆에 섰다.
“호호호호호!”
서왕모가 소리 높여 웃었다.
그리고 장삼풍의 옆에 섰다.
“천리는 여기에 있느니라!”
대신격의 선포에 외롭게 홀로 남겨진 영보천존이 혀를 차며 그들을 훑었다.
“보면 알겠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영보천존이 스르르 사라졌다.
선계의 중론이 지상의 변고에 결정을 내렸다.
믿고 묵묵히 지켜보는 것으로!
***
들뜬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자 스리슬쩍 대열에서 몸을 뺀 장삼풍이 벽에 손을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개쫄렸네, X바…….”
장삼풍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창백했다.
제자야, 사부가 널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
뒤따라온 천마가 피식 웃었다.
“이 정도면 달마가 여래 미간에 뇌정 박는 것보다 더한 거 아니냐?”
“그쪽은 독박이고, 나는 사정이 다르지!”
“흥!”
“왜 이래. 우리 제자라며? 우리 동반자잖아? 응?”
장삼풍이 천마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태세를 갖췄다.
은근슬쩍 책임을 나누는 장삼풍의 언사에도 천마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웬일이야? 띠껍게 한마디 할 줄 알았더니?”
“굳이 반박할 거리가 있나? 청운이 그 녀석이 내 제자라는 건 하늘과 땅이 뒤집혀도 바뀌지 않는 일이다.”
“크으!”
장삼풍이 탄성을 흘렸다.
“청운이 그놈은 알려나? 지 스승인 천마가 이리 찐하게 아낀다는 거.”
“닥쳐.”
그제야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천마를 보며 장삼풍이 키득거렸다.
그러다 웃음기를 지우며 자미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좀 이상하지?”
“(옥황)상제 말이냐?”
“그래. 이 정도 심각한 사안임에도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니.”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가.”
***
[묵묵.] [묵묵.] [너, 방금 선계에서…….] [어허! 묵묵이래도!] [하! 알겠다. 묵묵.]‘뭐지 이거?’
갑자기 선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곳이야 워낙 미쳐 돌아가는 곳이라 뭔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다만, 이건 이상함을 넘어 괴상함의 영역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저런 곳에 신승 어르신이나, 허도진인 같은 분들을 던져놓는 것은 뭔가 인권유린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선박에 나눠 탄 고수들이 저마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중연은 선박을 징발하는 동안 인근 대장간을 총동원해 철로 된 노(櫓)를 준비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준비가 끝났으니 달릴 시간이다.
아니, 노질할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갑시다! 태산으로!”
내 외침과 함께 힘찬 노질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