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52
51화 기분이 안 좋은 분들
소림에서 있었던 구파의 회동에서 언급된 연청운의 이름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강맹한 소림권을 구사하던 청년 고수가 숙련도 높은 무당권을 구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목격자가 너무도 많았다. 하물며 그들 하나하나가 각 문파의 미래를 이끌어갈 후기지수들이었기에 안목을 의심하기도 어려웠다.
무당파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기에 회동에서는 부인했지만, 그들이 생각해도 연청운이라는 청년 고수가 무당파와 인연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힘이 실렸다.
그렇기에 무당파 수뇌부들은 숭산에서 돌아오자마자 무당파 인명부를 뒤졌다.
“없구먼.”
“역시 착각이었다니까. 화경을 살린 이화접목의 수법을 자랑하는 것이 무당의 특기라지만, 그런 무공이 어디 무당파만의 것인가.”
그러나 본산제자 인명부 어디에서도 연청운이란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찰나.
“있어?”
“있다고?”
혹시나 하고 뒤져본 속가제자 인명부에서 그 이름을 찾았다.
“속가?”
“말이 되나? 명공진살을 잡았다며? 그것도 잠폭단을 먹어서 잠력까지 끌어 썼다는데?”
“그 정도 자질이라면 진즉에 본산제자로 올렸어야지. 현도당주는 대체 뭐 하는 거야?”
본산제자가 아니라고 하니 불쾌하긴 해도 어느 정도 상황이 납득이 되었다. 본산제자도 아닌데, 신승께서 거두겠다는 것을 누가 거절하겠는가.
그렇게 발생한 불쾌함은 자연스럽게 현도당주에게 향했다.
속가제자로 입문했다가 그 재능을 인정받아 본산제자로 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속가제자들의 자질을 살피는 것은 현도당주의 중요한 업무였다.
게다가 뒤이어진 내용은 더욱 심각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적(除籍)?”
“이 무슨……?”
무당파 수뇌부들은 더욱 불쾌해졌다.
무당파 정도의 세력을 운영하려면 적지 않은 운영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운영비를 일부 충당할 목적으로 속가제자들을 들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쉽게 속가제자들을 버릴 수 없다. 가뜩이나 속물적인 목적이 포함되어 모집한 제자들을 함부로 제적한다면 정파답지 않다는 악명이 쌓인다.
속가제자라도 제자다. 일단 한 번 사승 관계를 맺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정파로서 지켜야 할 의무다.
“지금 현도당을 누가 맡고 있지?”
“제현입니다.”
“알아봐.”
기분이 나빠진 무당파 수뇌부들이 현도당을 곱지 않은 눈으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
현도당의 당주 신제현은 최근 속이 좋지 않았다. 요 근래 신경 쓸 일이 늘어난 탓이다.
높으신 분들의 관심이 현도당으로 몰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원인도 문제였다.
“여기 연청운이라는 제자가 있었다고 들었네만?”
또다시 들어온 문의에 신제현은 필사적으로 미소를 유지했다. 사력을 다해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대로 속마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에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아랫사람이라면 호통을 치며 성질을 부렸겠지만, 윗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럴 배짱은 없었다.
하물며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냥 높은 양반도 아니다.
“감찰당주…….”
“뭔가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무려 무당파의 감찰당주. 권위가 하늘에 닿아 있는 장로급 인사들조차 조심스럽게 대하는 양반이다.
같은 당주라도 신제현과는 급이 다르다.
신제현이 피가 마르는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예, 그런 제자가 있긴 했습니다.”
“있었다?”
말끝을 슬쩍 올리며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는 감찰당주의 모습은 심상치 않았다.
얼굴 가죽을 최대한 제어해 봤지만,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는 목울대의 움직임만은 누를 수 없었던 신제현이 침을 꿀꺽 삼키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청운이라는 이름은 꽤 흔한 이름 아니겠습니까. 감찰당주가 찾는 그 후기지수는 아닐 겁니다.”
“동명이인이다?”
“예.”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음에도 신제현은 매끄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간 몇 번이나 반복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최근 현도당을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은 감찰당주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신제현은 다음 이어질 말도 짐작했다.
“허나, 청운이라는 이름은 흔하다 해도 연 씨는…….”
“제가 아는 무당파 속가제자 연청운은 무당산을 떠날 때 태극권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둔재였습니다.”
“태극권조차?”
감찰당주는 신제현의 말을 듣고 지그시 눈살을 찌푸렸다.
속가제자로 들어온 아이가 태극권조차 제대로 떼지 못했다니. 이건 화산파 제자가 매화검법을 못한다는 말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동기인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비열한 암수를 써서 비무를 이겼을 만큼 치졸한 아이이기도 합니다.”
“흠! 비열하고 치졸하다…….”
“그런 녀석이 세상 밖으로 나가 무당파의 제자라며 행세하고 다녔다면 무슨 끔찍한 짓거리를 저질렀을지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그대로 두면 사문에 먹칠을 할 녀석이었다?”
“예! 그래서 제가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제적을 시킨 겁니다! 무당을 위해서! 그런 쓰레기 같은 놈을 어찌 이 티끌 하나 없이 청정한 무당의 품 안에 두겠습니까!”
말을 거듭할수록 신제현은 연청운에 대한 부름을 달리했다. 아이라고 부르던 명칭은 어느새 놈이 됐고, 그 앞에는 비열하고 치졸한 그리고 쓰레기 같다는 어두가 붙었다.
“흐음…….”
감찰당주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신제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사특한 아이다. 그런 아이를 신승께서 거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태극권조차 습득하지 못한 둔재라면 소림에서 활약했다는 그 후기지수와 같은 기량을 뽐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신제현의 말처럼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거다.
다만, 신제현이 본인만의 판단으로 속가제자를 제적시킨 것은 권한을 넘은 일이었다.
“자네, 지금 한 말 책임질 수 있나?”
“제 목을 걸지요.”
한바탕 소리를 지른 뒤여서 그런지 감찰당주의 말에 응답하는 신제현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다면야.”
감찰당주는 신제현의 호언장담을 듣고 난 다음에야 몸을 돌리고 물러났다.
“후우…….”
한숨 돌린 신제현은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얼마나 큰 압박감과 중압감을 느꼈는지 소매가 땀으로 흥건했다.
“빌어먹을. 이게 뭔 개 같은…….”
욕지거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도인다운 풍모는 죄다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모습이었다.
“윤시후 그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별것도 아닌 연청운 그놈을 괴롭히다가 탈탈 털리더니 괜한 부탁을 해서 자신을 끌어들여 버렸다.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윤시후 탓을 하던 신제현은 불쑥 떠오른 생각 하나를 애써 지웠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기량이 증진되었다곤 하나 소림에서 그만한 일을 하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동명이인이야. 틀림없어. 불가능하다고.”
감찰당주에게 했던 변명들. 신제현은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연청운이라는 이름이 무명(武名)을 떨치기 시작한 시기가 연청운이 제적되어 하산한 시기와 겹치기는 하지만, 신제현은 이를 우연의 일치로 치부했다.
신제현의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설령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내밀어진다 해도 조작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윤시후 이 자식은…….”
머릿속에서 연청운을 부정하기만 하던 신제현은 다시 돌고 돌아 윤시후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이쯤 됐으면 대가리 숙이고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빌어먹을 새끼.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중인데.”
신제현은 근래의 윤시후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소림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터진 이후, 무당파로 돌아온 윤시후는 어딘가 이상해졌다.
평소의 윤시후라면 구파 후기지수들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하며 열심히 주둥이를 털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윤시후는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말수가 적어지고,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졌다.
동생이 죽은 일로 슬퍼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신제현은 윤시후를 잘 알고 있었다.
“저 독사 같은 놈이라면 오히려 좋아하고 있을걸? 가문을 이어받을 유일한 후계자가 되었으니.”
허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신제현은 홀로 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삭여야 했다.
“미치겠군, 정말.”
윤시후가 덕풍윤가의 후계자가 된다면 이대로 손절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동명이인 때문에 현도당이 털리면서 그간 신제현이 저지른 일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윤시후라는 끈이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
“하아아…….”
결국, 참는 수밖에 없다.
신제현이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현도당주. 잠깐 좀 보세.”
어떻게든 불안한 속내를 다독이며 숨을 고르는 사이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신제현은 권력의 행방에 민감한 편이다. 그렇기에 이 목소리의 주인을 잘 알았다. 무당파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의 목소리였으니까.
무당파 장문인.
신제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푸른빛을 띠었다.
‘토할 것…… 같아!’
꾸르르르륵!
신제현의 배 속에서 구멍이 뚫린 듯한 소리가 났다.
***
근래 백설아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문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무림을 떠도는 풍문들 사이로 연청운과 백무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무림에 이름이 떠돈다는 것은 그만한 사건을 겪었다는 의미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청운과 백무호가 험한 무림에서 날뛰고 있다.
백설아가 보기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운이가 사고 치고 다닐 리는 없으니까……. 무호, 이 녀석 짓이겠지.”
이런 상황을 만든 원흉이 누구일까 생각하자 가장 먼저 자신의 동생, 백무호가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주먹을 움켜쥔 백설아의 섬섬옥수가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
“돌아오기만 해봐라.”
백무호가 들었다면 억울함에 펄쩍 뛰었겠지만, 이미 결론이 정해진 이상 백무호의 변론은 의미가 없었다.
만일 백무호가 화성촌에서 보낸 서신이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다른 판결이 내려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 서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후우.”
그렇게 잠시 속으로 분노를 삭이던 백설아는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바보들. 걱정이나 끼치고.”
화를 내는 것도, 결국은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설아는 자신이 표출한 감정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았다.
“흠흠!”
아무도 모르게 감춰둔 비밀 상자를 잠시 들춰보는 것처럼, 자신의 근원을 잠시 들여다본 백설아가 볼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다들 보는 눈들은 있네.”
누가 들으면 유치하다고 할 것 같은 자화자찬 같은 말.
본인이 말하고도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지 백설아의 흰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기분이 안 좋았던 백설아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자리 잡았다.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이 있기 전까진.
“언니, 오랜만이에요.”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
“이 근방에 볼일이 있어서요.”
정‧사‧마를 통틀어 검으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천하십검의 일인 장문경의 여식.
손꼽히는 후기지수로 일신의 무공만큼이나 아름다운 외모로 이름 높은 장소월이 찾아왔다.
과거 검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았던 아버지와 장문경 사이에는 교류가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쪽 가문과도.
백설아의 얼굴에 경계심이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소월이 반갑게 다가왔다.
“언니는 이 근방에 대해 잘 아시겠네요.”
“왜 그러는데?”
“혹시…… 연청운 소협을 아시나요?”
뭔가 부끄러운 것을 묻는 것처럼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백무호. 직무유기.”
빠득!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백설아의 섬섬옥수가 만들어낸 거친 관절음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
업무 중이던 장삼풍은 책상 위에 올려진 자오경을 비추는 거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양반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공간을 다루는 수법에 능한 양반답게 어디에서나 자오경을 볼 수 있는 보패를 만들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천마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꼭 사고가 터지곤 했다. 뭔가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천상에서 천마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 지옥 밑바닥에서 제일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데다가 본인의 힘조차 특별한 종류의 것이라 대라신선급도 천마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신입이라도 빵빵하게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 천상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덕분에 더럽고 거지 같은 일을 도맡아 하는 천마가 위로 을질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까다롭지. 인과율을 무지막지하게 쥐고 있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지상에는 천마를 추앙하는 거대 세력이 있다.
인과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다.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큰 축 중 하나가 인간이기에 인간에 대한 영향력이 있는 천마는 강한 인과율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이 양반을 견제해 줄 수 있는 작자는 한 명밖에 안 떠오르네.”
다행히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뭐, 슬슬 위쪽과도 한번 이야기를 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업무를 종료하고 퇴근 명부에 도장을 찍은 장삼풍이 어딘가로 향했다.
휘황찬란한 대궐. 그 정문을 지나자 거무튀튀한 옥좌 위에 반쯤 누워 있는 이가 있었다.
외견만 보면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런 체형임에도 어른 옷을 걸치고 있어서 앞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소년이 장삼풍을 바라보며 권태로운 시선을 던졌다.
“뭐지?”
“도움 좀 받으러 왔습니다, 선배.”
“선배?”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 보이던 옥좌 위의 소년은 장삼풍의 말에 묘한 웃음을 흘렸다.
“같은 무당산 출신이니 그리 부르라 했던 적은 있지만……. 음?”
비틀린 눈웃음을 치던 소년이 돌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의 눈이 장삼풍의 손에 고정되었다.
“너, 재미있는 걸 가지고 왔네?”
권태로움이 가득하던 소년의 눈에 신광이 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