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54
53화 삼단(三丹). 이력(二力). 일합(一合). 삼재일기공(三才一氣功)
‘드디어 장삼풍 사부의 무공을 배우는구나.’
장삼풍 사부에게서 배운 무공들은 적지 않았다. 사부님에게 배운 무공 중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청명심법이 있었고,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진정한 태극권을 배웠다.
다만 장삼풍 사부의 진짜 절기라 할 만한 무공들은 아니었다.
‘중토신공과 천마무겁수에 비하면 좀 아쉽긴 하지.’
게다가 장삼풍 사부는 달마 사부가 날 위해 다듬어 전수한 중토신공의 진가를 보시고 한동안 이를 가셨다. 그리고 더 나은 무공을 준비하겠다는 이야기를 이따금 하셨다.
사부님들은 능운금광보 같은 무공도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 내는 분들이시다. 그런 장삼풍 사부가 이만큼 오랜 시간 다듬은 끝에 내놓은 것이라면 얼마나 대단할지 절로 기대가 되었다.
[내가 가르칠 무공은 삼재일기공(三才一氣功)이다.]“삼재…….”
뭐랄까. 장삼풍 사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오신 무공이니 분명 굉장할 것이 틀림없지만 이름이 좀…….
무림에는 최고의 지명도를 가진 ‘삼재심법’과 ‘삼재검법’이라는 무공이 있다.
무림인이 아니어도 알고 있는, 막말로 어지간한 무관에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껴 가르치는 것을 꺼린다는 삼류 무공이다.
너무도 간단하고 기본적인 내용들이라 책으로도 익히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다. 무공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달까.
[왜? 삼재심법이랑 삼재검법 가르쳐 줄까 봐?]“사부님이 가르치시는 것이라면 삼재심법인들 못 배우겠습니까. 열심히 익히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장삼풍 사부가 내게 괜한 것을 권할 리가 있겠는가. 설령 삼재심법이라 해도 장삼풍 사부가 가르치는 것이라면 이유가 있는 거다.
거기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이 증명한다.
[이 녀석 보게. 제법 혀에 기름칠하는 법을 배웠구나.]그런 내 말을 장삼풍 사부는 진심이 아닌 아부로 받아들이신 것 같다.
진짠데. 억울하다.
내 억울함이야 어쨌든, 장삼풍 사부는 말을 이었다.
[삼재(三才)란 무어냐?]“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입니다.”
딱히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다.
굳이 이런 질문이 필요한가 싶기도 했지만 나는 성실한 태도로 답했다.
[모든 무공에는 그 힘의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이 있다. 서역의 무공은 그 그릇을 여덟까지로도 나눈다고 하지만 중원 무공은 보통 셋으로 나눈다. 흔히 말하는 삼단전(三丹田). 상단전(上丹田), 중단전(中丹田), 하단전(下丹田)이 그것이다. 이 세 개의 단전은 각기 맡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에 쓰임새 역시 다르다. 저마다 뛰어난 장점이 있어 어느 것이 더 대단하다는 구분은 없다.]그런가?
상단전을 활용하는 법을 깨우친 사람은 뭔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신비한 이능을 접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연유로 무림인들은 육체의 강함이나 실질적으로 내공을 담는 그릇인 하단전보다 이능의 영역에 있는 상단전이나 중단전을 더 높게 친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주마. 달마의 중토신공은 하단전에 자리를 잡는 무공이다. 나를 담아낸 그릇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무공이지. 상단전을 활용하는 법에 눈을 떠 이능을 구사하는 자라 하여 중토신공을 완성한 자의 힘을 꺾을 수 있겠느냐?]완성된 중토신공이라니.
사부님들이 평하길 중토신공의 팔단공에 이르면 능히 천마무겁수의 힘을 감당할 만하다고 했다. 간신히 버텨내는 정도라지만 어쨌거나 감당은 했다는 거니까.
그런 중토신공을 아예 완성한 경지라니.
어느 정도의 힘인지 상상이 안 간다.
“……힘들겠죠?”
[불가능하다. 같은 수준의 경지라면 모를까.]그러고 보니 달마 사부가 천마 사부와 신경전을 벌일 때 하셨던 말씀이, 다리를 뭉개 버렸다던가?
달마 사부는 팔이 뜯겼다고 하지만 어쨌든.
결국, 두 분은 호각(互角)이라고 해야겠지?
[말했다시피 달마의 중토신공은 그 힘을 담아낸 본질을 극한으로 완성하는 힘으로, 그 힘이 자리하는 곳은 하단전이다. 너의 영육을 담아낸 그릇을 완성하기 위한 자리에 있다.] [천마의 천마무겁수는 공과 허의 힘. 시작부터 이능의 영역에서 싹을 틔우는 무공이다. 그렇기에 영혼과 정신, 생각과 상상을 담는 상단전에 자리할 수밖에 없지.] [허면 청명심법은 어디에 자리를 잡을까?]청명심법은 언제나 마음을 맑고 평안하게 만드는 심법이었으니 그 자리는 정해져 있다.
“중단전.”
상단전에 천마 사부의 천마무겁수.
중단전에 장삼풍 사부의 청명심법.
하단전에 달마 사부의 중토신공.
뭔가 골고루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넌 오행의 다섯 신력 중 두 가지의 신력을 가졌지.]“난잡하네요.”
땅의 신력과 쇠의 신력.
달마 사부의 권유로 먹은 보패 조각은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인지 가슴과 단전 사이의 묘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실질적으로 내 안에 자리를 잡은 기운들이 이렇게 많았다.
[무공이란 정기신일체를 통해 비로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한다. 내면의 모든 힘을 일치단결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무공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지금의 넌 기(氣)가 너무 많아. 아니, 기의 근간인 뿌리가 너무 다양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지금까지는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겠으나, 그 기운들을 크게 키워내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부딪치는 날이 오게 될 게다. 그때가 네 성장이 멈추고 퇴보를 시작하는 날이 될 거고.]“그럴 것 같습니다.”
장삼풍 사부의 말을 들어보니 새삼 사부가 전수하려는 무공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간다.
천지인. 하늘과 땅. 그리고 그를 잇는 것은 인간이라.
“합일의 무공이군요.”
[그래, 지금의 네게는 가장 필요한 무공이다.]“그럼 그 삼재일기공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내 몸 안에 자리 잡은 힘들은 그 뿌리가 여러 갈래이면서도 강하고 특색이 짙다. 하나같이 그 기질이 극에 다다라 있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든 일이 될 게 분명하다.
[청명심법이 삼재일기공의 몸이자 껍질이 될 것이다.]“아…….”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바로 이해가 됐다.
문제가 생겼을 때 좋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며 보듬어 주었던 청명심법. 그것이 삼재일기공의 뼈대가 된다.
역시 장삼풍 사부는 다 생각이 있으시구나.
[구결을 가르쳐 주마.]장삼풍 사부의 강의가 이어졌다.
한마디, 한마디가 능숙한 석공의 손놀림처럼 내 몸에 새겨졌다.
이해가 아니라 체득으로 이어지는 감각.
사부님들의 무공은 신기할 정도로 나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 삼재일기공 역시 다르지 않았다.
습득은 빠르게 잘됐다.
다만.
‘뭐가 이렇게 어려워?’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일시에 다섯 개의 기운을 움직여 제어해야 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비유를 하자면 머리를 흔들면서, 깽깽이 발을 한 채로 양손으로 각각 무당권과 소림권을 펼치며,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느낌?
‘이거 보통 난이도가 아닌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얼추 느껴지는 이 무공의 난이도는 가히 암담할 지경이다. 머리가 두어 개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다.
[쉬울 거라곤 이야기 안 했다.]“옙!”
결국, 노오오오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무슨 원리로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빠른 무공 습득이 가능해진 것만 해도 하늘의 도우심이니 감사히 생각하자.
‘그나저나, 사부님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완전히 습득하기까지는 정말 지옥이겠네.’
무려 사부님들 기준에서도 쉽지 않을 거라 한다. 정말 노오오오오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도 배부른 소리겠지만.’
무당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하루 종일 쌍욕을 처박았겠지. 그딴 배부른 소리 계속하면 아예 배를 째 버리겠다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내 몸에 자리 잡은 삼재일기공의 깊이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집에 돌아온 이후 정신없이 수련에 매달려 있었기에 시간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수련을 하다가 정신줄을 잡고 나니 해가 사라져 있었던 경우가 허다했다.
그 정도로 삼재일기공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깊이 있는 무공이었다.
‘삼재라…….’
그러고 보면 무척 잘 어울렸다.
중토신공. 이름만 봐도 땅이 연상된다.
천마무겁수의 경우 공의 힘을 다룬다는 점에서 머리 위의 하늘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삼재일기공은 사람의 무공이구나.’
인간은 두 발(人)로 땅(土)에 서서 하늘(天)을 바라보는 존재.
‘하늘과 땅을 내 안에 담는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사람이 담아 묶는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신묘한 흐름을 정갈하게 이끌었다.
‘땅의 신력이 천지를 담는 그릇을 강하게 하고.’
‘쇠의 신력이 내 의지에 따라 필요한 형태, 필요한 자리에서 부족함을 메운다.’
나는 지금 새롭게 일보를 걸어야 하는 사람이다.
미숙한 자의 첫걸음은 느리다 한들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잘못된 걸음을 걷는 것.
‘멀리 가고자 하는 이의 첫걸음은 둔하고 느리더라도 곧고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허겁지겁 달려 닿은 곳이 엉뚱한 곳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담담하게 옳은 방향으로 최선의 길을 간다.
느리게 뻗는 내 손에는 미숙한 자의 결실이 꿈틀거렸다.
그그그그!
잠시나마 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뚜렷한 유형화를 거쳤다.
미숙하고 불안정할지언정 싹부터 다른 상위의 기운.
쉬이 가늠하기 힘든 아찔한 기운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이제야 한 번 성공하는구나.]“예.”
셀 수 없는 숱한 시도 끝의 성공.
장삼풍 사부의 말에 성취감이라는 감정이 물밀 듯 몰려왔다.
[하지만 느려. 심각하게 느려. 힘 한 번 쓰려고 일각이나 걸리면 그사이에 니 목이 몇 번 떨어질 것 같냐?]다음 이어진 말에 거짓말처럼 사라지긴 했지만.
너무 집중해서 몰랐지만, 일각이나 걸렸다고 하면 좀 심하긴 하다. 밥을 반은 먹었을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너무 그러지 마시게. 첫 일보라는 게 능숙할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한 번 성공했으면 두 번째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개수를 늘려나가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펼치는 날이 오겠지.]장삼풍 사부에게 쓴소리를 듣다 달마 사부의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역시 불가의 대자대비(大慈大悲)로 천상에 오른 분답게 말씀 하나하나가…….
[이제 그 일각을 촌각으로 바꾸면 되는 거란다.]“…….”
이상하다. 달마 사부가 한 말에 왜 처맞은 기분이 들지?
그럴 리가 없는데?
[달마 말대로, 한 번 성공했으니 다음도 성공할 수 있겠지.]“예, 될 것 같습니다.”
며칠간 시도했던 것 중 딱 한 번 성공한 게 전부이지만 성공을 했다는 실적이 남아서인지 지금은 뭔가 감이 잡히는 것 같다.
[그럼 이번에는 반각으로 줄여 보자.]“……갑자기 반으로 줄여 보자 하시는 건 좀 양심 없는 목표 아닐까요?”
[누가 뚝딱해내라고 했냐. 목표로 잡자는 거지. 그리고 반각으로 줄여도 못 써먹을 건 매한가지야, 이놈아.]장삼풍 사부의 타박이 속을 푹푹 찔렀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그랬다.
아무래도 삼재일기공을 제대로 운용하는 건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일 것 같았다.
당장 목표로 삼은 지점조차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그 목표를 이룬다고 해도 실용성은 여전히 없다.
“에휴.”
아무래도 당분간은 고생이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막상 뚜렷하게 떠오르진 않는데 뭔가 있었던 것 같은 기분.
너무 삼재일기공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건가 싶었지만, 곧 다시 수련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다른 생각들은 자취를 감췄다.
***
“재미있네.”
장삼풍에게서 넘겨받은 보패를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짓는 소년, 천상의 대신격(大神格) 현천상제(玄天上帝)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감질나는 것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더 이상 권태롭지 않은 지극한 존재의 눈이 거울 속 연청운을 주시했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자니 아쉽구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재미있어질까?”
현천상제의 표정에 짙은 장난기가 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