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6
65화 밑밥이 가득해
청성파 제자들은 탕약을 먹고 독을 해독하였으나 완전히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정상이 아닌 상황.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사파들이 알게 된다면 좀 전과 같은 습격이 또 있을 공산이 높다.
결국, 어느 정도 몸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돌봐줄 필요가 있었기에 한동안 같이 다니기로 했다.
양측 모두 이득이었다.
백무호도 사천 지리나 현황에 해박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목적지가 사파 쪽 영역이란 것도 몰랐을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방향도 같았다.
그렇게 동행을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는 그들을 어떻게 해독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청낭서…… 말입니까? 그 전설의 의서라는?”
“글쎄요. 화타 선생의 저서라는 말은 있었는데, 표지가 훼손되어 있어서 그게 청낭서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이도천에게 나는 미리 준비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해 둘 필요성이 있었다.
안 그래도 화타 선생이 지상의 약초들로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부탁해 오신 상황이다. 차후 그 부탁을 들어 드려야 할 상황이 있을 것이 분명하니 이쯤에서 내가 의술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밑밥을 깔아 두는 것이 좋다.
어쨌거나 내가 화타 선생의 의학적 지식을 빌려 쓸 수 있는 수단이 있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화타 선생의 의서라면 분명 귀물이 틀림없는데…….”
“조부께서 어찌어찌하다 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그러시군요.”
할아버지의 이름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취죽 선생에게 조용히 서신을 전달하라고 하셨다. 즉, 두 분 사이에 교류가 이어지고 있음이 외부에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무림에서 제법 명망이 있으셨다.
내가 무당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같은 구파인 청성파 역시 할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조부 되시는 분께서 대단히 고명한 분이신가 봅니다.”
내가 조부에 대한 말을 섣불리 꺼내지 않는 걸 보고 이도천 역시 함부로 묻지 않았다.
무림은 수많은 은원이 얽혀있다 보니 상대의 뒷배경 같은 것을 캐내려는 행동을 큰 무례로 여겼기 때문이다.
궁금하긴 하지만 선을 지키는 이도천의 언행에 나는 가볍게 웃어주는 것으로 답했다.
이도천이 나를 정중하게 대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과 달리 청성파의 다른 두 사람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좀 어색했다.
“끄앙! 내가 연상이라니. 내 쪽이 연상이라니…….”
이도천과 대화를 나누는 나를 힐끔거리면서도 선뜻 말을 붙이지 못하며 혼자 중얼거리는 청성파 소저 되시겠다.
‘혼잣말이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다 들리네.’
이름은 이청려. 무려 여기 정중하기 그지없는 이도천의 친여동생이라고 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어색한 느낌은 아니었다.
명석하면서도 구김 없는 밝은 성격이라고 할까? 이청려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인관계도 밝은지 내성적인 모습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처음에는 거리감 같은 것도 없이 내게 말을 걸어 오기도 했었다.
두 눈에 담긴 동경하는 기색은 좀 부담스러웠지만.
‘내 나이가 아직 약관을 못 넘었다는 말을 듣고 바뀌었지.’
내 나이를 듣게 된 이청려의 얼굴은 혼란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나를 동경하는 무림의 선배이자 오라버니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연하였다고 하니 심한 괴리감을 느낀 모양이다.
어? 그럼 내가 노안이라는 뜻인가?
“에휴, 이 녀석아.”
여동생의 혼잣말을 들은 건 나뿐만이 아닌지 옆에 있던 이도천이 이청려에게 다가가 뭔가를 속닥거렸다.
“끄앙!”
아무래도 ‘혼잣말 다 들렸다’고 까발린 것 같다.
절규하는 목소리에 부끄러움이 한가득 묻어 있다.
[귀여운 여동생 같은 건 허구라고 생각했다만…… 흐음!]“무호 주장으로는 성이 다른 남매는 서로 죽이고 싶어 하는 게 본능이라고 하더라고요.”
달마 사부의 말에 애써 웃음을 참는 사이 이청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청운 동……생?”
“예.”
“끄앙! 이거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고!”
아직도 혼란이 다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도천이 그런 이청려의 움직임을 막았다.
몇 번을 더 머뭇거린 다음에야 이청려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기…… 그냥 소협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편한 대로 하세요.”
“예! 청운 소협!”
참 구김 없는 성격이다.
분명 나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더 많은 누님인데, 하는 행동은 여동생 같다.
“에헤.”
이제야 상황을 정리했는지 처음 봤을 때의 밝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쳇.”
그에 반해 처음부터 끝까지 밉상인 재수탱이.
사공패란 녀석이다.
범각은 소림 제자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 탓에 오만하긴 했어도 근본은 나쁘지 않았는데, 이 녀석은 그냥 근본부터 싹수가 노랗다.
아무래도 까불면 호된 맛을 볼 것 같고, 그렇다고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는지 계속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낫다. 끝까지 서로 개 닭 보듯 하다가 헤어지자고.
“고현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이도천에게 취죽 선생이 임관해 있다는 곳에 관해 물었다.
사파 영역이라고 하니 미리 알아 둬야 할 점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 동네 돌아가는 판세 정도는 파악해 둬야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하든 싸우든 결론을 내릴 테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이도천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고현 부근에서 알아 두어야 할 이름이라면 둘이 있습니다. 귀수(鬼手) 백풍립과 악사도왕(惡事賭王) 곽대평이죠.”
“도왕(賭王)입니까?”
칼 도(刀)를 쓰는 도왕(刀王)이 아니라, 도박할 때의 도(賭)를 쓰니 도박의 왕이라는 소리다.
거기에 악한 일, 악행을 말하는 악사(惡事)가 붙었으니 별호만 들어도 그 성향이 짐작되었다.
‘그건 그렇고, 귀수 백풍립?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였더라?’
이도천이 언급한 두 인물 중 한 명은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고현에 가셨을 때 악사도왕…… 그자는 주의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도천은 특히 악사도왕을 강조했다.
악사도왕 곽대평. 기억해 둬야 할 이름인 것 같다.
***
청성파 제자들이 독에 당해 몸이 상했다는 소식이 퍼졌기에 암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추격해 온 자들은 없었다.
습격할 마음이 있었더라도 충분한 기량을 갖춘 자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어중이떠중이들이 노릴 만한 표적이 아니긴 하다.
덕분에 별 탈 없이 사흘 정도를 함께 여행했다.
“여기까지군요.”
고현까지는 아직 길이 남아 있었지만, 이도천이 아쉬움을 담아 동행의 끝을 알렸다.
“가능하다면 고현까지 함께 가서 도움을 드리는 것으로 소협께 받은 은을 갚고 싶습니다만…….”
“안 되겠죠.”
청성파 제자들은 너무 눈에 띈다.
나야 소천룡이란 낯간지러운 별호가 있다지만, 그 외에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나만 조심하면 내가 소천룡이라는 것을 알아볼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예. 안 될 겁니다. 그래서 아쉽고요.”
이도천은 내가 그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끝까지 예의를 지켰다.
그 속에 담긴 것이 존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나 역시 예의 바르게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쥐었다.
“그간 고마웠습니다.”
“저희가 할 말입니다.”
마주 포권을 쥐며 이도천이 물러나고.
“청운 소협. 제 이름 잊어버리면 안 돼요. 알았지요?”
이청려는 헤어지는 것을 잔뜩 아쉬워하였다.
‘여동생처럼 귀여운 연상이라니.’
특이한 유형이긴 하다.
“안 잊을게요. 청려 ‘누나’.”
“끄앙!”
장난을 담아 한 말에 이청려가 특유의 신음 소리를 냈다. 여전히 내게 연상 대접을 받는 것만은 익숙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사공패는.
“……신세 졌다.”
적어도 인사 정도는 하게 된 느낌이다.
여전히 좋다는 인상은 아니지만.
뭐, 솔직히 이쪽에서도 그리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작별 인사를 끝으로 청성파 제자들과는 깔끔하게 헤어졌다.
“흠.”
그런데 저들과 헤어진 직후 백무호가 이상한 방식으로 목을 매만졌다.
이유는 모르지만, 요 며칠 백무호가 목을 만지고 더듬는 걸 자주 본 것 같다.
목이 안 좋나? 잠자리가 안 좋아 목에 담이라도 온 건가?
“뭐 하냐?”
“알 거 없다.”
백무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청성파 제자들과 있을 때도 뭔가 잔뜩 경계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뭐, 이 상황에서 나한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가 그쪽으론 눈을 뜨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뭐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무호가 하는 말이다. 못 알아먹을 것 같은 말은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는 게 좋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늘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여기부터는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너나 잘하세요.”
콧방귀를 뀌는 백무호가 내 말을 무참히 씹으며 앞서나갔다.
***
“마음에 안 들어.”
사공패는 연청운과 백무호, 두 사람과 헤어진 이후 재잘거리며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천과 이청려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인연이 닿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이도천과 이청려는 아무래도 다시 한번 연청운과 백무호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망할.’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할 뻔했던 사공패는 입술을 씹으며 간신히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누를 수 있었다.
‘그런 놈 다시 봐서 뭐가 좋다고.’
사공패의 머릿속에서 연청운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짙어져 갔다. 그리고 그 적개심이 짙어질수록 연청운은 꼭 한 번 엿 먹여주고 싶은 놈이 되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
상대는 근래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후기지수다.
본신의 실력도 대단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무공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자신이었다면 흑백쌍마를 상대로 승산은커녕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다.
현명하게 처신한다면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인물이다.
“칫!”
허나 연청운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연청운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는 이청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현명한 판단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췄다.
뭔가 한 방 먹이고 싶다.
‘하지만 상대는 소천룡이야…….’
함부로 건드리면 피를 보는 쪽은 사공패 자신이다. 뿐만 아니라 연청운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저 두 사람도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연청운에게 한 방 먹이되, 이청려가 싫어하지 않을 만한 방법.
근본적으로 상충하는 전제조건이다.
말이 안 되는 전제조건에 헛웃음이 나오려던 사공패는 불현듯 한 가지 방도를 떠올렸다.
‘그놈 목적지가 사파 영역이라고 했잖아?’
저 고지식한 이도천이 끝까지 동행하지 못한 것은 사파 영역에서 청성파 제자는 너무 눈에 띈다는 이유였다.
‘명성을 높여주면 주목을 받게 될 거야. 그러면 눈에 띄게 되겠지?’
사파 영역 안에서 정파의 신성이 주목받는다?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연청운은 사천에서 은원이 생겼다.
무려 흑백쌍마를 쳐 죽였다.
‘결과만 생각하면 이청려도 좋아하진 않겠지. 하지만 나중에 내가 소문을 퍼트린 게 들통난다 해도 거기까진 생각 못했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야.’
이건 분명 이청려가 싫어하지 않을 일이면서도 연청운을 곤경을 빠트릴 수 있는 방법이다.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변명할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제대로만 먹힌다면 연청운이나 그 백무호란 놈까지 제대로 당하는 꼴을 볼 수 있을 거다.
“‘다시 볼 일이 없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지.”
연청운 주변에서 일어날 고생들을 상상하며 사공패가 음흉한 웃음을 숨죽여 흘렸다.
***
한편 그 시각.
청성산 청성파에서 놀라운 대화가 이뤄지는 중이었다.
“뭐가 필요하다고 하셨소이까?”
“청성파의 비전 영약인 대라신단이 필요합니다.”
“허허! 그리고 그게 필요한 이유가 당가의 가주 만독신군이 이유 모를 독에 중독되었는데, 해독할 방법을 찾기까지 시간 벌이를 하기 위함이라?”
“잘 들으신 게 맞으시군요.”
“허허허허! 당가의 가주가 독에 중독되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니. 그대가 한 말이 아니면 대라신단을 빼돌릴 생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여겼을 게요.”
청성파 장로의 말은 어딘가 비꼬는 기색마저 담겨 있었다.
하늘보다 드높다는 자존심을 내리누르고 있는 사천당가의 총관은 살짝 미간을 좁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청성파 장로는 끝내 자신의 말을 참아내는 상대의 반응을 보며 이게 정말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후우……. 대라신단을 내어주면 방법은 찾을 수 있겠소? 다른 곳도 아니고 당가에서 외부에 이리 손을 벌려야 할 정도의 독이면 보통 물건이 아닐 것인데?”
“해볼 수밖에요.”
사천당가의 총관은 그 말을 하면서도 한숨을 내뱉었다.
희망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어디서 ‘의술이 하늘에 닿은 이’라도 뚝 떨어졌으면 좋겠소만.”
스스로 한 말이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는지 사천당가 총관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