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5
64화 사천은 다르다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천마 사부가 천상…… 아니, 지옥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저쪽에서 자오경을 엿볼 수 있는 기물을 만들어 팔고 계시다니.
천마 사부에 대한 수많은 전설이 있지만, 그중에 장사꾼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천마 사부가 그런 걸 팔고 계신다고요?”
[인과 좀 남아돈다 싶은 녀석들에게는 죄다 찔러 본 모양이더라고. 이래 봬도 역대급 신의를 꼽으면 나하고 편작 정도잖냐. 그러다 보니 나도 인과가 꽤나 모여 있는 편이지.]“왜 그런 일을……?”
[뭔가 이유가 있어서겠지. 천마 그 양반이 허튼짓할 양반도 아니고. 뭐, 근래에 대량으로 인과가 필요한 일이 생긴 게 아닐까?]‘인과라…….’
최근 인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었다. 덕분에 나 또한 이 인과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거운 것임을 인식했다.
처음에는 저승에서 쓰는 일종의 화폐 같은 개념인가 싶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들으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느낌이다.
‘하긴, 생각해 보니 굉장한 거네. 화타 선생의 경우도 인과를 크게 모았다는 것만으로 명계에서 나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신선이 아님에도 천상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니까.’
나중에 시간이 나면 자세히 한번 알아봐야겠다.
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천마 사부가 문제다.
‘뭔가 꾸미고 있단 느낌이 들긴 했는데…… 뭘까?’
“달마 사부. 천마 사부가 무슨 생각이실까요?”
직접적으로 알아볼 수 없다면, 주변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으음……. 내 한번 알아보마.]뭔가 고민하듯 살짝 침음을 흘리시던 달마 사부의 목소리에 나 역시 약간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천마 사부에게 그런 기물이 있고, 그런 기물을 찍어낼 물건이 있다면 지금 이 대화를 듣고 계시겠지.’
사실 방금은 달마 사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천마 사부에게 직접적으로 물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별다른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런 가운데.
“주인장 있소?”
의원을 찾는 외침과 함께 일렬의 사람들이 불편한 거동을 이끌며 문턱을 넘었다.
어디서 한껏 싸우다 온 것인지 피로 붉게 물든 옷 조각으로 이마를 동동 싸매고 있고, 어떤 사람은 팔과 다리를 감쌌다.
“주인장 어디 갔소?”
이마를 싸매고 있는 이가 내게 물었다.
상처가 아픈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탕약방에서 약 만들고 있을 겁니다.”
“그쪽도 당한 모양이구랴. 하긴, 사파 새끼들이 요즘 아주 지랄들이라. 지금 사천 바닥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꼬라지라오.”
자신들도 된통 당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상태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거슬리지?’
뭔가 딱 잡아 말할 수 없지만 거슬리는 게 있다. 몸의 어딘가가 간지러운데 정확하게 어딜 긁어야 시원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들이 약방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고.
[큭큭큭큭.]그때 화타 선생이 어딘가 경박하게 웃으셨다.
[다친 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일 거다.]그러면서 본인의 업적과 경력을 언급하신다.
동시에 저들을 알게 모르게 주시하고 있던 내 몸 또한 슬그머니 힘이 들어갔다.
답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들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놈들, 다친 놈들 아니야.]“어구구. 잠깐 좀 앉아서 쉽시다.”
다리를 다친 듯 무릎을 동여매고 있던 이가 불편한 움직임으로 환자들이 몸을 누이는 곳에 걸터앉으려 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가 걸터앉은 곳은 청성파 제자들이 누워 있는 곳이었다.
“그나저나, 이 친구들은 어딜 다쳤기에 안색이 이리 푸르딩딩한 게요?”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그가 걱정이라도 하는 양 태연하게 내 옆으로 팔을 뻗어 청성파 제자들을 만지려 한다.
나는 주저 없이 손을 썼다.
우득!
빗자루로 쓸어내리듯 손끝이 원을 그리며 상대의 손목을 휘어 감았다.
사람의 손이 황토 반죽 덩어리처럼 뭉개졌다.
손을 쓰면서도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누가 한 말인데.
“아악!”
“아픈 사람 걱정한다면서 침은 왜 들고 있냐?”
뭉개진 손과 손가락 사이에 가느다란 침이 보인다.
이놈들, 무력화된 청성파 제자들을 노리고 온 거다.
옷차림을 보고 청성파 제자들임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지만, 백무호 그 녀석이 재수탱이를 잡고 흔들 때 고래고래 소리친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사천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본 건가?’
아무리 약해져 있다고 하지만, 구파 제자를 이런 식으로 죽이려 하다니. 다른 곳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생각 이상으로 사천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이자들이 한 말 중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 사천 바닥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다.
“쳐!”
정체가 드러났다는 판단이 섰는지 녀석들도 주저하지 않았다.
‘다섯.’
차분하게 환자로 변장했던 놈들의 머릿수를 셌다.
그중 한 놈은 손이 박살 난 상태로 내게 제압되어 있으니 남은 놈은 넷.
그때 뭔가가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사파 특성이냐, 사천 특성이냐. 뭐 던지는 건 더럽게 좋아하네.’
흑백쌍마도 그랬지만 이 녀석들도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뭔가를 던지고 본다.
그러면서 만들어질 내 빈틈을 노리겠지. 아니면 그사이에 쓰러져 있는 청성파 제자들을 노리거나.
그럼 피하지 않으면 될 일.
나는 제압해 놓았던 자의 손목을 들어 올렸다.
자연스럽게 그자의 몸뚱이가 암기를 막는 방패가 되었다.
파파팟!
“억! 어억!”
“이놈! 치졸하다!”
“치졸은.”
시작부터 암기 던지는 새끼들이 뭔 소린지.
그러고 보니 화산파에서 싸운 마교 간자였던 상 뭐시긴가 하던 작자도 암기부터 날리고 시작했던 것 같긴 하다.
이게 실전적 대처라고 하는 거면 굳이 반론할 생각은 없지만,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있는 내겐 무의미한 수법이다.
‘그나마 독무 같은 건 아니니 다행이긴 하네.’
밀폐된 공간에서 그런 게 터지면 곤란하다.
나야 상관없지만, 청성파 제자들은 위험하다.
뭐, 그런 걸 썼다간 지들도 중독될 위험이 있으니 있어도 쓰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소중한 동료라면 어디 잘 받아보라고.”
나도 실전적 대처라는 거 한번 해보자.
내가 던질 건 니들이 던진 것과 크기에서 다르겠지만.
암기에 극독이 묻어 있었는지 거품을 물고 있는 놈을 힘껏 던졌다.
후확!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람 몸뚱이가 매섭게 날아가는데, 저들 중 누구 하나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는 사이 내 몸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귀, 귀신이냐!”
‘달마 사부가 말씀하셨지.’
능운금광보는 제운종과 금강부동신법의 장점만 뽑아 만든 보법이자 경신법. 경지가 높아지면 십장 거리도 한걸음처럼 움직이기에, 적들은 허깨비를 대하는 느낌일 거라 하셨다.
아직 그 정도로 경지가 높지는 않지만, 저들에게는 내 순간적인 움직임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눈동자가 한계치까지 확장하는 모습은 명확한 대답이나 다름이 없었다.
빠각!
호쾌하게 뻗어 들어간 일권이 안면을 부순다.
[어이쿠! 이거 재미있구만.]화타 선생이 무척이나 즐거워하신다. 어째 이 양반 환자를 두들겨 패는 것에 환상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환자를 박살 내는 걸 동경하는 의원이라니. 괜찮은 건가?
“이놈!”
나름 실전을 겪은 놈들인지 한 놈이 쓰러지는 사이 내 옆구리를 노린 반격이 들어왔지만, 태극권의 수가 자연스럽게 대응했다.
손등으로 밀치고, 원숭이 꼬리 걸치듯 손목을 잡는다.
와득!
“크아악!”
“미안. 아직 힘 조절이 완벽하지 않아서.”
중토신공 삼단공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땅의 신력까지 자연스럽게 흐르면 괴력이라고 해도 무방한 힘이 펼쳐진다.
원래대로라면 부드럽게 관절을 꺾는 수준으로 끝나야 하는데, 팔뚝을 수수깡처럼 분질러 버렸다.
뭐, 사람 손을 황토 반죽 주무르듯 뭉개 버리는 힘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다.
“미친……!”
“괴물!”
저쪽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를 잔뜩 겁먹은 눈으로 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누가 봐도 도주할 길을 찾는 모습이다.
“안 되겠어. 일단 튀……!”
푹!
“……커…… 크르럭!”
퇴각을 제의했던 녀석은 피를 뿜으며 꼬꾸라졌다.
벽을 뚫고 들어온 검에 목이 꿰뚫린 탓이다.
서걱!
다음 녀석도 마찬가지다.
창졸간의 상황이라 대응하는 것이 한 박자 느렸다. 백무호의 검격을 상대로 그 한 박자의 차이는 목이 날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마음 놓고 씻질 못하겠네.”
투덜거리며 들어오면서도 둘이나 목을 날려버린 백무호가 마저 검을 휘둘렀다. 내가 손을 뭉개버렸던 적, 미끼 삼아 내던졌던 습격자의 목을 긋고 마무리를 지었다.
“무, 무슨 일이…… 히익!!”
아무래도 저 의원은 당분간 고생해야 할 것 같지만.
탕약방에서 나온 의원은 기겁을 하며 놀라다가 슬금슬금 나와 백무호의 눈치를 살폈다.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백무호와 눈을 마주칠 땐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말이야.”
“응.”
“네가 처방한 그 탕약. 약효는 그렇다 쳐도 맛이 아주 지랄맞은 쪽으로 한 그릇만 따로 만들어 줄 순 없냐?”
한 그릇만 따로, 라는 점을 강조하는 걸 보면 그게 누구 입으로 들어갈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푸하하하! 이거 아주 병신 같은 생각인데.]화타 선생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셨다.
[좋았어. 하자.]***
“웁! 마, 맛이……!”
“불평하지 마. 토하지도 말고. 한 번 더 토하면 그땐 그냥 배 속에 있는 거 다 게워 놓고 먹이는 수가 있다.”
“끄어어!”
이 소리는 청성파 제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 들려오는 소리다.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재수탱이 입으로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것이 흘러 들어가면서 만들어진 소리였다.
냄새만으로도 여간 끔찍한 것이 아니던데.
[푸하하하하! 좋은데. 나도 한번 써먹어 봐야겠다. 푸하하하하하!]누군가는 꽤나 마음에 든 것 같지만.
굳이 고난을 함께 겪게 할 필요가 없기에 다른 청성파 제자 둘을 빼 온 나는 아직 안색이 창백한 그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을 알려 주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재수탱이가 겪는 고난에 대한 설명은 빼놓을 수 없었다.
“저쪽 친구는 독무가 터졌을 때 가까운 곳에 있었던 터라 좀 더 강한 약이 필요하거든요.”
“아아…….”
막 정신이 들어 혼몽한 상황이지만 상황은 납득한 것 같다.
그렇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도천이 곤혹스럽다는 듯 말했다.
“취죽 선생을 찾아가신다고요?”
“예. 아십니까?”
“그야 명망이 높으신 분이니 알긴 압니다만……. 으음!”
이도천의 표정이 심란해졌다.
“제가 알기로 그분이 부임해 계신 지역이 사파 쪽 영역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파 후기지수로 이름이 높은 소협이 거길 가도 될지…….”
“사파…… 영역이요?”
약방에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끔찍한 냄새가 감돌아서 그런가.
갑자기 두통이 밀려온다.
저기요? 할아버지? 손자한테 무슨 일을 던져주신 겁니까?